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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청년시절>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와 서예]

[퍼스트레이디]

[나환자촌]

[어머니와 목련]

[보릿고개]

[외할머니]

[아버지의 정치수업]

[새마음운동]

[대한민국의 금기]

[최태민]

[최순실]

[평범한 삶]

[아버지의 죽음]

[권력의 허망함]

[18년의 은둔]

[영남대학교와 육영재단]

[철학왕 박근혜]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내 나라 , 내 땅 대한민국]

[IMF 경제위기]

<라봉봉>

 

[어머니의 죽음]

프랑스에서 유학중이던 박근혜는

친구들과 여행중이던 어느날

갑자기 하숙집에서 전화가 왔고

어머니에게서 무슨일이 생겼다며 빨리 하숙집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박근혜는 혼자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어머니가 걱정이었습니다

 

프랑스 유학시절 박근혜 , 동아일보

 

하숙집에 도착하니 대사관에서 나온 분들이

와계셨고

모두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박근혜는 그들의 얼굴에서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박근혜에게 급히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가야한다 말했고

박근혜는 커다란 불안감이 언급했습니다

 

<박근혜>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

 

그 질문에 그들은 난처한 표정만 지었고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짐도 챙기지 못하고 서둘러 박근혜는 공항에 도착했고

뭐가뭔지 모르던 박근혜는 궁금한 소식에 신문스탠드로 갔고

한 신문에 실린 아버지 , 어머니 사진 위에

 

'암살'

 

이라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박근혜는 급히 신문을 펼쳐보았고

일면에 어머니 사진이 크게 실렸습니다

 

육영수 저격사건

 

 

박근혜는 온몸에 수만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고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히 찌르는듯 통증이 몰려오고

눈앞이 캄캄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오듯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박근혜는 그렇게

갑작스레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행사에서

공산주의자 문세광의 총탄에 맞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나와계셨고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굳게 닫은 입술에서

아버지의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창백히 질린 박근혜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 듯 했지만

아버지는 곧 평소의 표정을 되찾으셨고

아버지는 입을 굳게닫은채 박근혜의 등을 그저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죽음 이후

가족 모두 공황상태에 빠져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저격 당시의 상황이 정해졌습니다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 당시의 박근혜의 묘사로는

8월 15일 광복절 축사가 이어질때

몇발의 총성이 울려 실내가 곧 아수라장이 됬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졌고

축사를 낭독하는 아버지는 급하게 연설대 뒤로 몸을 피했고

첫발의 총성이 울린뒤 15초정도 지난 뒤였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있던 어머니의 고개가

왼쪽으로 떨궈졌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가장먼저 발견한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단상쪽으로 성큼 걸어나온 아버지는 어머니쪽을 손짓하며

 

<박정희>병원 !

 

을 외쳤습니다

 

경호원들이 의식을 잃은 육영수를 안고 황급히 행사장으로 나갔고

그사이 범인이 잡혔고 빠져나온 청중들이 돌아왔습니다

 

박정희는 다시 단상에 올라

예정대로 기념사를 끝내고

육영수가 앉아있던 자리를 살폈습니다

 

초록색 빈 의자 뒤에 육영수의 고무신이 흩어져 있고

한쪽에 핸드백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박정희는 허리를 숙여 고무신과 핸드백을 주웠고

 

그 광경을 티비로 지켜보던 박근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떨렸고

텔레비전에서 몇일동안 그 광경을 반복해서 방영했고

박근혜에게는 그것이 더없이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박근혜>날마다 어머니의 죽음이 일일 드라마처럼

수시로 방영된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범인은 일본여권을 가진 공산주의자 문세광으로 밝혀졌고

배후세력은 조총련 ,

북한 지령에 의한 범행이었습니다

 

문세광

 

문세광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으로서

오사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시절 김일성 선집 , 마오쩌둥 어록을 탐독하며

좌익 사상에 심취하였고

1973년 9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조총련 , 일본내 북한의 재일조선인단체로서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는 단체 ,

사실상 북한 정부기관이기에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 정부나 통일부 ,

국정원 허가 없이 조총련과 함부로 접촉하면 처벌받음)

 

정치부장을 처음 만난 문세광은

그에게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해

인민봉기의 기폭제를 만들자 주장했고

공작금 50만엔을 받은 후

오사카에 정박중이던 만경봉호에서 사상교육을 받고

문세광은 1974년 7월 17일 밤 오사카시내 파출소 창문을 깨고 침입해

경찰관 4명이 잠을 자는 사이 실탄 5개가 들어간 권총 2자루를 빼냈고

8월 6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트랜지스터 라디오속에 권총을 감추고

8월 8일 김포국제공항을 거쳐 서울에 도착합니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문세광은 8월 15일 광복절 경축행사가 열린

국립극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육영수 여사를 살해했고

 

경찰에게 체포되 조사받던 도중

문세광은 은근 기대하면서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 ?'

 

라고 물었다가

이용당한걸 알게되고

유언으로

 

'육영수 여사에게 죄송하다 ,

내가 속았다'

 

라는 말을 남기고

문세광은 만 22살의 나이에

사형이 집행되 형장에 이슬로 사라집니다

 

<문세광 진술>

나는 바보였습니다...

참으로 대통령과 여사에 대해서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재일동포로서 무엇하나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대통령에게 깊이 사과 드립니다.

대통령에게 총을 겨냥해서 잘못했습니다.

나는 일본에서 그들에게 속았습니다.

내가 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 됐습니다.

참으로 대통령에게 미안합니다.

여사와 죽은 사람 곁에서 같이 살고 싶습니다.

 

경제제일주의자이며 개발독재자인 박정희 대통령에 비해

노동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여러 사회봉사활동을 한 육영수 여사는

국민적 호감도와 지지가 높은 인물이었기에

박정희 대통령 사망시 인과응보라거나 잘죽었다라며 실랄한 비판(+비난)을 하는

진보계에서도 육영수 여사 사망은 위로를 표할 정도였고

 

육영수 여사 사망 사건으로 비단 박근혜 일가 뿐만 아닌

전국적인 대혼란과 대국민 분노심이 일어났습니다

 

눈물바다가 된 육영수 여사 장례식

 

반공운동

 

육영수 여사가 병원에 실려가자

수백명의 시민들이 병원 앞으로 몰려들었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 한채

어머니는 8월 15일 저녁 7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박근혜는 나중에 들으니

비서실장에게 어머니의 죽음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순간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참동안 나오지 않으셨고

아버지의 오열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육여사 사망후

대국민적 슬픔이 감돌았고

운전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찾아와 국화 몇송이를 보초병에게 

맡긴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거센 비바람에도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내외신기자들도 이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매 시간마다 서울발 뉴스를 내보냈고

16일 아침 10시부터 일반조문객을 받기로 했지만

9시가 되기도전에 1만 조문객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는 뉴스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박근혜>아들에게 업혀온 할머니 ,

갓쓴 할아버지 ,

코흘리개 어린아이 ,

모시옷을 다려입은 중년 남녀 등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조문객이 찾아왔다

 

장례식을 마치고 청와대에 돌아왔을때

아버지는 양 팔을 벌려 박근혜를 안았고

아버지의 팔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박근혜>나에게는 마음껏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

가족의 고통을 추스리기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힘을 내야했다 ,

하지만 그럴수록 어머니의 빈자리가 점점 크게 다가왔다

 

육영수 여사 장례식때 박정희 일가

 

 

[어머니와 서예]

<육영수 여사가 사망 2일전 8월 13일에 쓴 부산어린이 회관 예찬비>

웃고 뛰놀자

그리고

하늘을 보며

생각하고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

 

 

육영수 여사는 일반적 영부인들과 달리

정치 ,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남편 박정희 대통령을 내조하며 꾸준히 견제했던 인물이었고

실제로 좌우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영부인이었고

 

박근혜게도 일반적 어머니가 아니라

정신적 지주이자 롤모델이었는데

살아계실적 박근혜가 본 어머니는 서예에 취미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기거하는 방에

서예용 책상을 따로두고 틈만나면 붓글씨를 쓰셨고

단순한 예술적 취미같지 않고

어머니는 근심이 있을때마다 책상에 앉아 붓을 잡으셨습니다

 

<박근혜>그 손길이 마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여는

노력처럼 보였다

 

박근혜는 간혹 곁에서 먹을 갈아드리곤 했는데

어머니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 고요해보여서

박근혜의 손길도 조심스러워지곤 했습니다

 

어느날엔 어머니가 밤늦도록 서예에 열중하고 계셨는데

밤을 새워 붓글씨를 쓸만큼 어머니에게도 힘든 시련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종종 박근혜에게

신당동 집(박정희일가가 청와대에 들어가기전 , 5.16 군사정변 전 살던 원래 집)

에가서 살날을 기다린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육영수>작은 집이라도 가족끼리 오손도손 모여살면 참 좋겠어 ,

이 무거운 책임감을 벗어 버리고 말이지..

 

박근혜는 어머니의 유품을 하나씩 정리하며

심장이 잘려나갈듯한 고통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당장이라도 하얀한복을 입은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이름을 부르는 거 같았고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퍼스트레이디]

이후 박근혜는 면역력도 약해져

없던 알레르기가 생겨 매일 재체기도 났고

건강도 악화됩니다

 

하지만 더이상 주저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고

아버지의 고통은 우리 삼남매의 고통보다 더한 것이었기에

박근혜는

 

<박근혜>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나는 나를 추스렸다 ,

바쁜 꿀벌은 슬퍼할 시간도 없으니 말이다

 

<박근혜>

'부지런한 새가 신선한 먹이를 얻는다'

 

어머니를 잃은

박근혜에게는 새로운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22살의 나이에 박근혜는 어머니 대신

퍼스트레이디(영부인 , 대통령의 부인인데 박근혜는

어머니 사후 재혼하지 않은 아버지 옆에서 영부인 노릇을 했음)

 

<박근혜>

이는 내가 어머니에게서 배운 교훈이다.

나는 게으른 퍼스트레이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이자' 는 원칙으로 일했다.

그래야 더 많은 일을 빠른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한 건의 민원이라도 신속히 해결해야

국민이 편안해 진다고 믿었다

 

장례식을 치른 뒤 불과 엿새 뒤

박근혜는 예정되있던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대회에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참석했고

울먹이는 사람들 앞에서

박근혜는 애써 눈물을 참았고

그 자리는 인간 박근혜가 아닌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수행하는 처음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퍼스트 레이디의 삶을 시작한 박근혜

 

 

 

어머니의 죽음은 박근혜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았고

프랑스 유학이후 강단에 서겠다는 박근혜의 꿈은 아득히 멀어졌습니다

 

(박근혜 원래 꿈은 학자였다고도 하고

근데 진짜 박근혜 부모님이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한국 현대사가 어떻게 흘러갔을지도 모릅니다)

 

박근혜는 대학시절 묘한 꿈을 꾼적이 있는데

그당시엔 대수롭지 않게여겨 누구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그 꿈은 박근혜의 기억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박근혜의 꿈>

성난파도가 몰려오는 바닷가 ,

엄청난 파도가 몰아쳐서 사람들과 같이 등대 밑에 피해있는데

그 순간 장면이 확 바뀌며

태양이 빛추고

탄탄대로가 펼쳐졌다

길너머 언덕에서 태양이 솟아올랐다

 

시뻘겋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었다

 

문무왕릉의 일출

 

그 꿈을 꾸고 몇일 뒤 또다시 박근혜는 이상한 꿈을 꾸었고

파랗고 아름다운 고리에 둘러쌓인 천체가 박근혜 주위를 맴돌았고

고리는 돌면서 점점 박근혜에게 다가와

그 천체의 빛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신비로웠고

환상적인 느낌이 드는 꿈이었습니다

 

당시 박근혜는 일기장에

왠지모르는 불안감이 든다했고

졸업을 하면 사회생활을 할텐데 힘들고 고통스런 시련이 닥칠거라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꿈이 뭐라 연관해 설명하긴 어려워도

가끔 그 꿈과 어머니의 죽음 , 달라진 내인생이 한 지점에 맞물려

박근혜에게 떠올랐습니다

 

박근혜는 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청와대에 밀려온 수백건의 민원을 정리하고

담당부서에서 잘 처리하는지 일일히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박근혜>

낙후된 환경 ,

영세한 기업 ,

어렵고 소외된 계층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주요업무였다

 

할일은 태산같은데 시간은 너무 빨리흘렀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해

하루 5시간으로 잠을 줄였고

아파도 아파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1977년 3월 걸스카우트 대원들을 만나는 박근혜(+최태민)

 

박근혜는 새벽에 일어나면

아침식사가 준비되는동안 뉴스를 듣고

대통령의 하루 일정을 점검한 뒤

자신의 하루 일과를 살폈습니다

 

하루의 방문일정과 처리해야할 문건을 살피면

금새 아침이 되고 

박근혜는 직무가 시작되자 오가는 사람들의 힘찬 발걸음을 들으며

하루의 시작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 모든게 그녀의 어머니가 이전 해오셨던 일이었고

어머니가 해오던 일처리방식은 박근혜에겐

훌륭한 교과서였고

박근혜는 어머니처럼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퍼스트레이디시절 박근혜

 

탁상행정을 몹시 싫어하셨던 어머니는

고되고 힘들더라도 직접 뛰어다니며 민원을 해결하셨고

현장방문은 어머니에게 매우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실제로도 위에서 앉아 명령하는게 아니라

직접 발로 뛰어나니며 이끄는거고

부하직원이 일을 덮으려 거짓을 보고할 수도 있어

현장과 문서상의 괴리도 많기에 직접 현장을 느껴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박정희 제3공화국 당시 괜히 나라가 잘되고 쑥쑥 큰게 아닙니다)

 

[나환자촌]

하루는 박근혜는 어머니와 함께

나환자(나병 환자) 촌을 방문했을때의 일인데

 

(육영수 여사가 벤허를 감동적으로 2번이나 봐가지고

영화속 나병환자를 보고 나병환자에 관심을 가졌다함)

 

아이를 들춰입은 여인들이 박근혜 , 육영수 일행을 맞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고

그들의 손과 얼굴은 나병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하지만 눈빛만은 티없이 말고 깨끗했습니다

 

1965년 전남 나주 나환자촌 호혜원을 방문한 육영수 여사

 

소록도 전국 한센가족의 날 행사에 방문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2007년 5월 17일&amp;amp;amp;nbsp;

 

어머니는

젊은 여인의 뭉그러진 손을 다정하게 마주잡았고

그 모습을 쳐다보던 수행원 중 한 사람이 기겁을 하며

어머니를 말렸습니다

 

<수행원>여사님 !

제발 악수만은 하지 마십시오 !

병이 옮을 수도 있습니다

 

<육영수>괜찮아요 ,

나병은 옮지 않아요

 

불행속에서도 밝게 웃을지도 아는

저 여인의 미소가 참 곱지 않나요 ?

나에겐 그것만 보여요

 

나환자촌을 방문하고 나서 어머니는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여러날을 고민하셨고

그러다 내린 결론이

전국 37개 나환자촌을 선정하여

470마리의 씨돼지를 보내는 것이었고

그로인해 그들은 자립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청와대에 오는 편지를 직접 챙겼고

국민이 보낸 편지 단 한통의 편지라도 소홀히 하지 않던 어머니는

청와대에 들어오는 편지들을 반드시 자신의 손을 거치게 했고

보좌관들의 손에서 민원이나 엽서 , 편지가 처리되거나 분실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를 주었고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가 되고서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하루에도 수백통씩 날라오는 편지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나서야 잠자리를 들었습니다

 

<박근혜>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그만큼 고된 노동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국민의 민원을 받아

그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조언하는 일을 도맡아 하였고

그런 어머니는

 

'청와대 내의 야당 , 청와대 내의 신문고'

 

로 불렸습니다

 

학자가 되기를 꿈꾸며 공부만 하던 박근혜에게

그토록 많은 일은 버거운 부담이 되었고

그럼에도 반드시해야한다는 사명감과

국민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은 어머니가 가르쳐준 일과 책임들로 

박근혜는 도망치지않고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어머니와 목련]

이렇게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로서

큰 노력을 하자

오지 않을것 같은 봄은 다시 박근혜 가족에게 찾아왔습니다

어머니와 산책하던 길가에도 새삭들이 꽃망울을 피기 시작했고

어느새 하얀 목련이 청와대 뜰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습니다

 

박근혜는 하루는 창문을 활짝열고

봄바람을 즐기며 아버지와 차 한잔을 나누었는데

아버지는 다른날보다 유난히 말씀이 없다

20분쯤 흘렀을까

아버지가 문득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박정희>목련은 너희 어머니가 특히 좋아하던 꽃인데

마음이 아프구나

네 어머니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사사로운 욕망을 내세워 재산을 모으려 하거나 ,

이득을 챙기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대통령의 아내가 되고서도

가난한 군인의 아내로 살던 때처럼 한결같았지.

 

내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작은 동산이 있는 곳에 집을 얻어

꽃과 나무를 가꾸며 살자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 소박한 바람도 이루어주지 못한채

혼자 먼길을 보낸게 가슴이 사무칠때가 많다

 

근혜야 ,

너마저 없었다면 살 수 없을거만 같아

 

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1974년 9월 14일 박근혜의 일기>

아침 진지를 드신 후 아버지는 잠시 울음을 터뜨리셨다.

 

'근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네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려고

너를 두셨는가봐'

 

그러시며 어머니를 회상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볼때마다 박근혜는 가슴이 아파

어찌할줄 몰랐고

그럴수록 더 어머니의 빈자리를 매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보릿고개]

<박근혜>어머니의 바람은

대한민국이 가난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었고

우리 국민이 좀더 잘먹고 잘 살수 있는 나라 ,

끼니때 밥걱정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 ,

육이오전쟁으로 인해 더없이 궁핍했던 어머니에겐

가난은 무엇보다 무서웠던 적이었던 것이다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와

끊없이 이어지는 피난민의 행령 ,

거리 곳곳에 넘쳐나는 거지들 ,

어머니는 양팔을 걷어부치고 아버지를 도왔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자'

 

목표는 분명했다

 

보릿고개 시절 대한민국

 

박정희 정부 당시는

 

'보릿고개(춘궁기 , 여름보리가 수확될때까지 봄에

곡식이 없어 굶어죽던 시기)'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먹고살기가 너무 힘든 시절이었고

하루는 경기여고 졸업반이던 동생 근영이가

수업끝나고 청와대로 돌아오는 길에

광화문 교육회관앞의 육교를 건너다가

시멘트 바닥에 업드려 구걸하는 소년을 봤고

청와대에 돌아오자마자 근영이는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렸습니다

 

어머니는 청와대로 그 소년을 데려오게했고

어머니는 그 아이의 낡고 헤진 옷을 벗기고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깨끗히 씻긴 뒤

머리카락을 손질해주고 손톱까지 잘라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차려 준 저녁식사를 아이는 맛있게 먹었고

가만히 보니 남동생 지만이보다 훨씬 어려보였고

아이의 안색은 파리하고 창백했습니다

 

아이의 밥먹는 모습을 보던 어머니의 눈가가 흔들렸고

어머니는 아이 옆에 앉아 숟가락에 반찬을 하나씩 올려주었고

아이 눈에 가득하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아이는 귀여운 아기새처럼 어머니가 올려주는 반찬을 냉큼냉큼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50년대 한국 어린이(ㄹㅇ 옛날에 한국이 아프리카 수준이었음)

 

배가 부르도록 밥을 먹고난 뒤

아이는 형이 자신을 찾을테니 빨리 돌아가야한다했고

어머니는 아이에게 새옷을 입히고 비서실장을 딸려보냅니다

 

<육영수>아이의 형을 만나면 일자리를 주선해

먹고 살 길을 만들어주세요

 

어머니는 몇번이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날밤 어머니의 직무실에는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박근혜>나는 그날 보았던

어머니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아픔과 연민 , 미안함으로 가득하던 그 눈빛

 

힘들때면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며

어머니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때처럼

혼자 깊숙한 속내를 꺼내곤 했다

그럴때면 어느곳에선가

어머니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외할머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육영수 여사의 어머니 ,

외할머니의 건강은 급속히 나빠지셨고

믿고 의지한 딸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외할머니의 병세를 더욱 악화시킨 것입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때부터 외할머니가 아팠는데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병간호에 힘쓰셨고

외할머니를 청와대에 모셔와 병간호하셨는데

어머니는 업무가 끝난뒤에

반드시 2층 외할머니 방에 들려 온도나 습도를 살펴보고

하루중 재밌었던 일이나 바깥세상 풍경을 전하며

외할머니의 이야기 동무가 되어드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염려속에서

하루하루 병세가 호전되가던 외할머니는

육영수여사가 사망하자

삶의 의지를 잃은듯 보였고

외할머니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근심은 나날이 깊어갑니다

 

아버지에게 외할머니는 친어머니와 같았는데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을 반대할때

외할머니는 아버지를 믿고 딸의 결혼을 지지하며

결혼식에서도 외할머니 혼자 참여했고

그런 사연이 있을정도로

외할머니는 아버지에게 친어머니 못지않았습니다

 

(육영수가 충북 옥천군 대지주 육종관의 딸이었고

육종관은 옥천에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인물로서

99평의 대저택에서 수십명 하인 거느리는 집안이었고

이전 두변 결혼했고 전쟁군인인 박정희는 육영수와 결혼이 쉽지 않았는데

육영수 어머니가 밀어줘서 겨우 결혼한거기에

박정희는 장모에게 빚이 컸음)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전갈이 오면

아버지는 입맛을 잃고 쓸쓸한 표정이 됬고

아버지는 평소 외할머니를 장모님이라 부르지 않고

어머님이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육영수 여사가 살아있을때와

전혀 다르지 않게 장모님 간호에 정성이셨고

어머니 장례식을 치룬 뒤 5개월뒤

외할머니의 팔순이 다가오자

아버지의 심경이 착잡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조용히 박근혜를 불렀습니다

 

<박정희>어머님 팔순잔치를 해드리고 싶구나 ,

딸을 먼저보낸 죄인이 무슨 잔치라고 펄쩍 뛰시지만

네가 알아서 준비하도록 해라

 

박근혜는 일가 친척만 부르는 조촐한 식사자리를 마련했고

친지들만 모인 축하자리에서도

외할머니는 먼저간 딸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손자손녀들이 준비한 선물보따리를 일일히 풀어보시며

모처럼 활짝 웃으셨지만

너무나 큰 충격을 받으셔서 목소리가 안나오실만큼

건강이 안좋으셨기에 메모장에 글을 적어 기쁜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아버지도 친지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종일관 흐믓한 모습이셨습니다

 

잔치에서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모든사람이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는데

남동생 지만이는 몹시 부끄러워하며 새마을 노래를 불렀습니다 (ㅅㅂㅋㅋ)

어찌나 쑥스러워 하던지 나중에 모든사람이 다같이 합창을 해주었습니다

거의 전국노래자랑급으로 여러노래들이 다나왔고

박근혜차례가 되자 박근혜는 부를 노래가 없었는데

결국 박근혜도 지만이처럼 새마을 노래를 부르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새마을노래는 박근혜 아버지

킹제너럴엠페러 박정희가 작사작곡한 노래고

결국 아빠 띵곡 메들리잼ㅋㅋㅋ)

 

박근혜에게 그날의 기억은

매서운 겨울에 찾아온 따뜻한 봄날처럼

그리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박근혜의 할머니 이경령

 

외할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셔서

자주 절에 찾으셨는데 젊어서부터 부잣집 큰살림을 도맡아하며

몸고생 마음고생하던 할머니에게 종교는 유일한 의지처였고

하루는 박근혜와 절을 다녀오던 길에

외할머니는 보초를 서던 젊은 장병을 보더니

구멍가게 앞에 잠시 차를 세우게 했고

 

외할머니는 구멍가게에 들어가

담배 한보루와 라면 몇개를 사오셔서

곧장 젊은 장병에게 다가가 건내주었습니다

 

<외할머니>작은 거지만 받아둬요 ,

젊은사람이 추운 날 이렇게 고생하는데 ,

내가 마음이 아파서 그래요 ,

다른 동료들과 나누어 먹도록 해요.

 

낯선 할머니에게 담배를 선물받은 군인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외할머니에게 씩씩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차안으로 들어오며 외할머니는 그제야 편안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외할머니는 자신의 옷중 깨끗한것은 다시 손질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보내셨고

불심이 깊으셨기에 살아서 많은 선행을 해야한다고 여기셨습니다

 

가톨릭 중학교를 다닌 영향으로 박근혜는 어린시절부터 성경책을 접했지만

외할머니 영향으로 불교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외할머니를 모시고 절을 다녀온 날은 부쩍 어머니 생각이 많이났고

어머니는 외할머니 모시고 자주 절에 다니셨는데

시간이 날때면 박근혜도 함께 셋이 가곤 했고

박근혜에겐 고요한 산사에 두분이 나란히 앉아

불공을 드리던 모습이 잔잔한 그림으로 기억속에 남아있었습니다

 

박근혜 어머니는 불심이 깊으셨지만

자식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으셨고

박근혜가 성경책을 들여다보면

 

<육영수>어떤 종교던 바른마음으로 믿으면 되는거야

 

아버지의 염려와 지극한 보살핌속에서도

외할머니의 건강은 좋아지지 않으셨고

거동이 불편하시더라도 한달에 한번 꼭 가시던 절에도

가지 못하시게 됬고

결국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을때

아버지는 비통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을 못하시고

외할머니의 영정앞에서 아버지는 오열을 멈추지 못하셨고

그 울음소리에 주변사람이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박근혜>겉으로 드러난 아버지는

강한 지도자의 모습이었지만 ,

내면에는 한없이 인간적인 속내를 감추고 계셨다

 

어린시절 커다랗게 느껴졌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보일때 ,

자식의 마음 또한 편할 수가 없는 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둘이나 잃은 

아버지의 절절함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렇게 점차 박근혜는 더이상 순진한 여대생이 아닌

어른의 자세가 요구되고 있었고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의 삶이 시작됬습니다

 

[아버지의 정치수업]

박근혜는 아버지에게 어깨너머로 ,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정치수업을 배워갔고

 

아버지가 국토시찰이나 산업현장을 방문할때마다

같이 따라나서면서 주로 아버지와 승용차 안에서 대화하며

역사 , 안보 , 경제에 대한 1-1 개인과외를 받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박근혜에게 해준말>

근혜야 , 기억해둬라

방위산업을 보면 그 나라 산업의 수준을 알 수 있단다

방위산업이 그 나라 산업의 척도가 된다고 여기면 될 거야

방위산업은 자주국방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자동차 수출 , 탱크생산 등

남의 나라 눈치 보지 않고 우리 기술로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게 되지

 

방위산업이나 중공업 발전 , 종합제철소 건설 같은 일이 지금 당장은 힘에 부치더라도

이것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살 길을 열어주고

국력을 신장시켜줄 무기가 될 수 있다

 

아직 이르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이 바로 적기다

지도자란 어려운 길을 개척할 수 있어햐 하고

자기 소신을 가져야 하지

욕을 많이 먹더라도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가야할 길을 잃지 말아야한다

 

 

비록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에 여러 논란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나라가 부강해지고 잘사는 것에 대해 진심 , 걱정을 한 인물이기도 했고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에겐 가장 건설 , 개발을 많이한 대통령 1위로 꼽히는 유능한 독재자였고

 

(저도 원래 박정희 별로 안좋아했는데

민주당 정부를 공부하고 겪으며

민주당이 대게 경제에 심각한 허점이 많이 보였고

여야 , 좌우세력이 각각 장단점이 뚜렷히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박정희는 독서를 많이한

그 시대의 지식인이기도 했기에

박근혜가 비단 아버지 후광으로만 대통령 되는게 아니라

진짜 거물정치인이 바로 옆에서 1-1로 해주는 귀중한 정치수업을 받았고

이후 정치인 박근혜나 대통령 박근혜의 통치술에선

실제로도 박정희의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박근혜>'국익 최우선' 이라는 아버지의 정치신념은 확고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국민을 안정시키는 일에

당신의 전 생을 걸고 계셨다.

나또한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퍼스트레이디의 경력에 탄력이 붙고 자신감이 생겼다.

 

지미카터 미국 대통령 부부와 박정희 박근혜 부녀&amp;amp;amp;nbsp;

 

[새마음운동]

박근혜는 아버지가 농촌 개혁운동 , 농촌 근대화 운동인

새마을운동을 성공시킨것에 영향을 받았는데

 

새마을운동은 그시절 전기도 , 도로도 없고 초가집으로 뒤덮인 농촌에

근대식 전기 , 도로 , 수세식 화장실 건설 , 초가집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기 등을 한

농촌 개혁운동이었고

오늘날에도 개발도상국과 가난한 나라들의 모범이 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 된 성공적인 정치사례였습니다

 

새마을운동 , 농촌에 다리건설하는 국민들

 

개발도상국에도 수출된 대한민국 새마을운동

 

박근혜는 비록 독재자였지만

이렇게 혁명가 , 풍운아 기질이 강했던

아버지 박정희가 국가를 눈에 보이게

크게 개조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란 것이었고

 

또한 어머니 육영수가 조용히 짜져있는 영부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며 양지회라는 봉사단체를 조직해서

다른 귀부인들을 규합시켜서

국민들과 빈민들의 삶 , 봉사에 뛰어든 인물이었기에

그런것을 항상 밥상머리나 직접 눈으로 보고 자랐기에

퍼스트레이디가 가만히 있으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허수아비 직위지만

또 퍼스트레이디로서도 열심히 노력하면

국민에게 봉사할 기회가 많다는 것도 봐왔기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본인도 퍼스트레이디로서

 

'새마음운동(마을 New town 아님 마음 New Heart 임ㅋㅋ)'

 

을 전개하였고

 

 

 

새마을운동이 시골의 근대화 , 수세식화 , 전기보급 등

눈에 보이는 외적 운동이라면

자신의 새마음 운동은

당시 국민민도와 의식수준이 낮았기에

길거리에 침을 뱉지 말거나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한다거나 하는 것의 중요성을

서로 알리게 하는

정신적인 ,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운동이었고

 

(나름 아버지 , 어머니 흉내를 진짜 열심히 냈음 ㅠㅠ)

 

[대한민국의 금기]

근데 이때가량부터 박근혜는 이후 엄청난 논란이 된

최태민과의 인연이 시작되는데

 

(비극의 씨앗)

 

저도 이런 국가적 거대한 사태와

유례없는 탄핵 , 박근혜 일가가 보통 평범한 집안이 아닌걸 알고

또한 박근혜 탄핵이 비단 개인 잘못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야당은 정권을 잡고 여당이 되는게 중요 목표기도 해서

여야관의 정치권력과 세력관계도 긴밀히 엮였다는 것을 알기에

선동이나 잘못된 정보도 많이 있고

역사에는 인간의 명과 암도 있고

억울하게 잘못 기록되서 고통받은 사람들도 있기에

함부로 선동이나 잘못된 정보에 넘어가지 않으려

반대 , 찬성 , 지지 , 비지지자 , 사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보았고

 

또한 개인적으론 생존자들의 경우

비록 범법자여도 계도나 반성과 회생의 기회를 주는게 그래도

저는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고

사회학에서는 '낙인효과(Social stigma)' 라는게 분명 존재하기에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비행청소년 , 범죄자의 경우도 실제로

본인들 죄를 정확히 알고 있기에 물론 욕을 먹고 당해도 싸더라도

계속 뇌절할 수준으로 자극하고 욕하면 더 나쁜 결과가 일어나거나

반성은 커녕 더 나쁜쪽으로 흘러갈 수 있기에

 

저도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하면 비판했지

이미 처벌이 끝났거나 충분히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매장되 죽은권력이 된 인물들을

계속해서 조롱하고 비판해봤자 너무 좋지는 않다는 생각이라

한땐 강자였고 독재자였지만 정권이 바뀌거나 법적 절차가 끝나거나 하면

나름 약자를 보는 시각이나 학술적 목적으로

주변에 알리고 자료나 개인적 책을 읽으려 하는 편이고

 

아무리 ㅈ병신 ㅆ놈 ㅆ년 , 악인이어도

일단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거나 역사에 큰 충격을 남긴 인물이라면

그인물과 시대상에 대한 연구나 학술적 목적 ,

그 인물이 왜 그지경이 됬는지 성장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그 악인의 자서전 등을 연구목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끼치지 않을 수준으로 타당성 등을 알리고

읽을 수는 있다 생각하고

 

실제로 독재자며 금서로 지정된

히틀러 나의투쟁 , 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등도

사실 인간의 한정된 수명에서 최대한 좋은거 보고

독재자 이야기보단 좋은 위인전 하나라도 더읽는게 더 좋지만

불득불하게 독일사를 연구하거나 북한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찬양목적이 아닌

비판 , 학술연구목적이라 확실히 알린 상태에서

금서를 읽는것은 용인될 수 있다는 생각이고

 

(참고로 저는 북한찬양자 이런거 절대 아니고

저는 단지 북한은 일단 아주 감정적이고

개인의 자유보다 일당독재로 움직이는 국가인걸 잘 알기에

군대도 안다녀온 대한민국 미필 ㅈ병신 정치인 , 지식인들도 함부로 북한 도발이나 자극을 하며

우리 대한민국 국군에게 군사적 불안과 긴장감을 주면 하면 안된다는 생각정도이고

저는 북한 독재나 세계의 독재 , 전쟁을 싫어합니다 ㅡㅡ)

 

학문의 자유 , 학술의 자유와도 연관되 있기에

극우나 극좌 , 범죄자들이 쓴 책도

무조건 매장하고 탄압하는 풍조가 계속되면

점차 사회 자유분위기가 축소되고 평범한 일반인들도

극우나 극좌로 몰리며 자유가 축소될 우려가 있고

 

전 이거때문에 최근 판매금지된 전두환 회고록도

역사왜곡내용이 있다 할지라도

80년대 시대를 주름잡은 독재자의 회고록을 통해

그시대상이나 그시절 독재집권자가 바라본 대한민국 정치를 볼 수 있는

주요 자료라고도 생각되고

어짜피 박정희나 전두환은 5000년 대한민국 역사에 독재자로 확실히 새겨졌기에

사람들도 전두환이 독재자인걸 다 알고 읽는 것이기에

그냥 대머리 독재자가 핑계대고 헛소리 하는군 정도로 넘기면 될걸

과연 책을 판매 금지시키는게 맞을까도 싶고

계속 검열이 강화되며 사회가 너무 팍팍해지는건 아닐까 싶고

 

(지금도 자본론 , 공산당선언은 버젓히 팔리는뎅??)

 

또한 박정희나 전두환이 산업화나 경제발전을 하지 않았다고

하거나 한국경제발전사를 왜곡해도 보수계가 고소나 고발하지는 않는데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선

물론 숭고하고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희생인건 변함없지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왜곡했다는 이유로 진보계가 고소나 고발하는게

과연 맞을까도 싶고

 

그냥 '아니지 ㅂㅅ아 ㅋㅋ' 하면서 주먹 한대 쳐주면서 넘기면 될걸

왜이리 성역화되고 비판도 불가능한 수준이 됬나 싶고

 

그당시에도 보수계에서 부정부패 및 노동자들을 희생시켰듯이

민주화운동계에서 학벌주의나 역겨운 진보적인 성문화같은게

있었다는걸 저는 정확히 알고 있기에 이런것에 대해

서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공과 잘못은 서로 인정하고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풍조로 가는게 옳다는 생각이고

 

인간은 누구나 평범한 사람들도

특정 부분에선 극단적인 부분이 있고

 

(저도 사실 평범한 사람이지만

역사분야에서는 극단적으로 , 일반인과 전혀 다른 수준으로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처럼)

 

성장과정이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거나

극단적이게 부유하거나 불행하면

충분히 극단적인 사고를 가질 수도 있기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선에선

함부로 극단적 세력도 탄압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고

 

저도 범죄자 미화나 심취 이런게 아니라

평소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고

민주당 문재인 정부때부터 특히 코로나 사태부터

개인자유의 가치가 축소됬다는게

피부로 여럿 느껴왔기에

 

(ㅂㅅ같은 방역패스)

 

그런 생각을 가져서인지

박근혜 글 쓸때는 보다 조심하며

박근혜측 입장이나 박근혜 비판 , 지지자들이 쓴 박근혜 연구서적을 여럿 읽었고

제가 박근혜정부때 한창 20대 초반일때

대학 자퇴하고 맨날 도서관다닌 기억이 있는데

모처럼만에 도서관가서 그시절 분위기 느끼며

박근혜 책 다 쓸어와서 며칠동안 읽었고

 

(전 900번 역사코너가 나와바리였는데

박근혜때문에 300번 사회과학 분야를 보게 되었고

박근혜 이외에도 흥미로운 대통령 , 정치인들 자서전이 많았습니다)

 

박근혜 비판서적과 찬양서적 ,

박근혜 어머니 육영수 평전도 읽고

심지어 최순실 옥중 자서전 '나는 누구인가' 까지 읽었고

 

(짜증ㅋㅋ)

 

박근혜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게 되었고

제가 내린 결론은

ㅅㅂ 좀 느끼하게 표현한거 같지만

박근혜가 평생 진짜 '공주병' 이 있긴 있었다는 생각인데

 

소설 어린왕자의 어린왕자 별에 사는

장미가 자신은 매우 특별하고 대단하고

강한 가시가 있고 아름답다고 여기지만

어린왕자는 그런 장미가 대단하고 세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라

생각하지만

알고보니 사실 (너같은) 장미는 지구별에 수없이 있고

그런 어린왕자별안의 장미도 수없이 많은 장미들중 하나인

그저그런 평범한 장미일 뿐이었고

 

박근혜 본인 스스로도 한반도 5천년 역사 최초의

여자대통령이라는 자부심도 있을테고

부모가 물려준 자산이 많아 돈걱정 없이 살았고

주변(지지자들 , 박사모 등) 에서 ㅈㄴ 빨아주니 으쓱했던 것도 많았겠지만

 

여자대통령이 아닌 그냥 대통령으로 ,

역사적으로 보면 박근혜는 그저 그런 평범한 권력자정도고

솔직히 아버지 박정희보다 급이 낮고

박근혜는 그냥 특별히 뛰어나지도 , 비판자의 말처럼

대단히 모자란 칠푼이도 아니고

부모님이 둘다 총에 맞아 죽은 트라우마와 엄청난 불행도 분명 있어서

동정론도 많이 있는 인물이고 자기 나름대로 철학도 있고

삶을 살아가려 노력한 대한민국 한녀 , 국민중 하나일 뿐이고

전 그냥 박근혜가 아버지급이 되거나 부모님 수준 뛰어넘진 못했고

그저그런 평범한 혹은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여튼 ,

돌고돌아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그만큼 한국인들이 보는 박정희 , 박근혜 부녀가

평범한 일반적 대통령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여럿 민감한 사항들이 많다는 것이고

다시 새마음운동 이야기로 돌아가서..

 

[최태민]

박근혜는 이렇게 엄빠를 따라한

새마음운동을 전개할때즈음

최태민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최태민

 

일단 일반 , 보통사람들에겐

박근혜가 어머니를 잃고 그 빈자리를

최태민이 들어와서 ㅈㄴ 꼬시고

박근혜와 연인관계를 맺고

몸과 마음을 지배해버렸다

이런거로 알려져있지만

 

저는 너무나 그게 괴상해서

오히려 적당히 현실성이 있어야 믿는데

일단 박근혜도 그당시 애새끼 나이는 아니고

백번 양보해서 맞다쳐도 20살 성인 여자가

40살 중년을 만나던

70살 할배를 만나던 저는 이성 , 연애문제는

 

'개인의 자유'

 

기 때문에 함부로 뭐라 할 수 없다 생각하고

 

(위인전에 있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도

옛시절에 52세에 첫결혼[재혼아님] 을 해서

22살 연하랑 결혼한 ㅈㄴ 특이한 케이스고

결혼문제가 의외로 쉬운게 아니라 다 사람마다 다르고

때와 시기도 다 달라서 꼭 20 , 30대에 간다는 보장도 없고

저희 아버지도 40살에 결혼하셨습니다)

 

최태민 , 최순실이 강제로 박근혜를 강간했다거나 그랬다면

아주 큰 문제가 있지만 엄연히 박근혜가 본인의 의지로

이 둘과 어울리고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라

또한 박근혜는 최씨일가를 충분히 통제할 힘과 권력이 있었고

사회적 측면에서도 박근혜가 슈퍼갑이었기에

오히려 자잘못을 따지더라도 박근혜 잘못이지 최씨일가보다 더 책임이 크고

계속 한쪽만 뭐라 ㅈㄴ게 패는것도 너무 가혹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고

 

사회적으로 계층이 다른 사람들 ,

신분이 높고 낮은 사람들 ,

지성인과 저학력자들 ,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직접 어울리고 친밀히 지내는게 저는

그래도 박애 개념이나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면도 있다 생각이라

최씨 일가도 물론 전형적인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시대 부패한 훈구파같은 집안에

ㅂㅅ같지만 제도권적내에서는

제도권 정치권력 , 먹물과 연관 없는 비주류 , 약자인 일가였고

 

비주류나 사회하류층 , 빈민과 서민들이

원래 노력도 안하고 의식수준도 떨어지고 사이비에 잘빠지고

선동도 잘당하고 이런

ㅂㅅ 같은 면이 많기때문에 그러니까 지잡에 하류층이 된것도 있는데

 

그럼에도 모든 인간은 세상 잘난 사람들도

사실 누구나 다 밑바닥에 독득한 아이덴티티와

비주류 , 지잡 , 졸부 , 하류층적 성향이 있기에

 

(뭐랄까 인간은 나이 먹어도 중2병이 다 있음)

 

계속 그런 하류층이나

서민 , 빈민을 계속 조롱하고 무시하는게 좋지 않다 생각되고

 

(최씨 일가가 ㅅㅂ 부패해서 기득권들에게 박근혜 이용하며

삥도 뜯고 돈은 잘 쓸어담았지만

최순실 자서전도 나름 읽어보니 최씨가족들도

중앙정보부 , 검찰 , 언론이 두려워서

평생 덜덜 떨었다하고 교양없는 흔한 강남 졸부느낌의

ㅂㅅ 집안은 맞는데

엄청 세간에 알려질정도로 명문가도 아니고

그냥 돈많고 엮여있고 그렇다는 것 외엔

사회에 내세워서 직접 당당히 양지로 나오기 힘든

졸부정도라 여기면 본인들 스스로도 인정하고 체념할 수준이고

무슨 사회전체를 조종하는 그런 대단한 집안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계속 너무 조롱하고 비하하고 그러면 대한민국이 점차 신분제화되고 학벌 , 지연 , 인맥 등으로만

변하면 공산당 국가들이 상위 1% 공산당원끼리만 어울리듯이

사회가 경직될 우려가 있고

 

옛날 조선시대 성리학 사림파들이 부패한 훈구파를 몰아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조선 훈구파는 나중엔 ㅂㅅ 꼴통집단으로 추악하게 개같이 멸망하긴 했지만

훈구파들은 오직 성리학빨이하다 이후 개같이 멸망한 사림파들과 달리

성리학 이외에도 불교나 무속신앙 , 민간신앙에도 관심이 있었고

근왕주의 , 애국보수성향으로서

경제 , 역사 , 과학 , 잡기 , 연예(연예인) 등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훈구파를 없애버린 후 조선은 다양성이 사라지고 사회가 매우 고착화된 면도 있고

 

저는 물론 기독교고 평생 대형교회 밭인 메이저 도시에서 자랐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상의 자유도 있기에

이미 주류로 자리잡은 기독교나 불교에 비해

오늘날에도 지방 , 시골엔 사이비 종교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있고

ㅈㄴ 사이비처럼 보여도 일단 큰 논란이나 범죄를 일으키지 않은 이상

심증적 이유만으로 함부로 탄압해도 안된다는 생각이고

 

(근데 미국은 이런게 잘되있음)

 

옛날 불교 , 성리학 , 기독교도 이런거때매

온갖 박해와 학살을 당한 전례가 있기에

좀 개인 신앙자유도 중시해야 하고

종교도 결국 인간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되려 믿는다는 점은

궁극적으로는 모두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종교는 항상 인간존중의 측면에서 , 다양성과 다름도 존중하며

서로 조심스레 봐야한다는 생각입니다

 

또 저는 기독교지만

요즘도 정치인들 무당연관설 이런 썰들이 많이 나오는데

ㅅㅂ 좀 무당이랑도 친하게 지낼 수도 있는거 아닌가 싶고

제가 역사를 매우 많이 공부한사람으로서

샤머니즘 , 무당은 한국 전통종교였고

한국 삼국시대에도 불교도입전엔 사무 , 스승무당이란 직위가 있어

왕을 보필하고 지혜를 줬는데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사람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는거고

명성황후가 굿하느라 국고 탕진한 수준마냥

크게 문제될 수준 아니면 너무 무당이랑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까는 분위기도 위험하다는 생각이고

 

무속신앙은 우리 전통문화와 한국인들의 내면 밑바닥에 

깊이 존재하기에 너무 무슨 사회악으로 치부하는게 좀 아니라는 생각이고

정치인들 외국신안인 목사나 신부 , 승려들 만나는건 연례행사면서

우리 전통신앙인 무당 만나는건 바로 ㅈㄹ나고 욕하는게 참 어이없고

하나의 종교로 존중해주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무당도 한국역사에서

권력자나 사람들 홀려서 국고탕진한 전례가 있어서

이미지는 ㅈ창났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점쟁이들 역시

돈벌어 먹으려 대충 그사람 분위기나 옷차림 읽고

궁예질 하는것도 있다 생각되고

 

(맞으면 내가 맞지 거봐 하고

틀리면 조상신이 도왔어 !!)

 

애초에 무당에 빠질 애들은

교회에도 빠지고 그런거라 보면되지

무속은 우리 민족신앙이기도 해서

무속신앙을 사회악수준으로 여기고 하는건 좋다 보지 않습니다

 

(전 기독교임 근데)

 

저는 최씨일가가 물론 잘못했지만 계속 무당 , 사이비 , 비과학적 비판으로

너무 심각하게 매도되는게 좀 불편한 느낌도 있었고

역사는 문학에 속하기도 하지만

절대로 문학판타지가 아니고 사회'과학' 의 개념이기에

사실을 써야하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써야해서

최태민-최순실 스캔들 당시

너무 사이비 애로망가같은 비판은 좀 갈수록

민주당에서 뇌절치는 느낌이라 점점 짜증났고

 

(참고로 저는 집안 대대로 기독교집안이고

할아버지가 ㅅㅂ 서울대형교회에 돈 ㅈㄴ바쳐서

아버지랑 맞장좀 뜨고 그랬던 것은 있는데

최태민의 영세교나 사이비 이런쪽과 전혀 연관없음 ㅡㅡ)

 

최태민이 박근혜와 어울리며 영향도 많이 줬겠지만

박근혜도 그당시 애새끼도 아니고

명문대학교인 서강대 공대를 쟁쟁한 고급인력들 사이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대인재에 5개국어 가능한

ㅈㄴ 똑똑한 엘리트 대가리 여성이기에

 

(물론 이전 이야기에서 썼듯이

과장된 이야기 + 조작성적이겠지만

대충 박근혜 본인 피셜정도로 치고 넘어가보면)

 

최씨일가가 박근혜를 이용 , 조종했다지만

오히려 다재다능의 대졸 학사 박근혜가 별다른 학력도 없는

부패한 무지렁이 최태민 , 최순실 일가를

나름 손과 발로 '이용' 했다고도 볼 수도 있고

 

솔직히 ㅈㄴ웃긴 합성이지만 이지경까진 아니라는 생각ㅋㅋ

 

서로 얽히고 섥힌 공생관계라 보면 됬고

그냥 양측 의견과 여러서적 종합해본 결과

박근혜가 결혼도 못하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

심리 , 생활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고받았고

그 과정에서 콩고물 얻거나 좀 ㅈㄹ좀 해서

야당이나 박근혜 무너져야 돈버는 사람들에게

딱 걸렸다 보면 될거 같습니다

 

비록 무능하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지만

박근혜도 엄연히 개인적 철학과 지성과 이성과 양심이 있긴 있는 인물로

보는게 타당하고

 

그동안 무조건적으로 순진무구한 세상물정 모르는 금수저 영애 박근혜가

교활한 최태민 , 최순실 부녀에게 조종당하고 기억조작 , 최면에 걸려서

몸과 마음이 모두 이용당하고 꼭두각시처럼 행동했다는 무슨 삼류 망가스토리에 나올법한

ㅂㅅ같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저는 물론 ㅂㅅ이지만

최순실 입장도 한번 궁금해졌고

최순실(최서원) 옥중자서전 '나는 누구인가' 보면

 

아버지(최태민) 는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후

얼마 안되서 박근혜를 알게 되었고

당시 우리나라가 혼란에 빠졌고 안보가 크게 흔들리던 상황이었기에

박근혜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도 새마음운동을 전개하며

국민 정신개혁운동에 노력했고

점차 박근혜의 뉴하트 무브먼트(새마음운동)는 전국 동 , 면까지 지부를 가질 정도로 활성화 됬는데

 

박근혜는 그저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자는 구호로 끝내지 않고

새마음 병원을 지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시절

무료병원을 만들기까지 하는데

그건 의사들이 본인들 진료가 끝나고 야간에 무료봉사를 해야 가능한 일이었고

이때 최태민이 끼어들어 의사들을 설득해서 박근혜를 도와 일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 , 빈민 , 어려운 노인들에게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고

 

최순실은 그때 본인 아버지 최태민이 앞장서서 의사들을 설득했기에

그때부터 박근혜가 최태민을 고맙게 여겼을 거 같다고 합니다

 

여러 논란이 된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 , 뉴스타파

 

새마음 무료병원에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들자

박정희 대통령도 영향을 씨게 받아서 전국민 대상 의료보험을 만든 것이었고

그때 (최순실 말에 의하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그걸 ㅈㄴ 아니꼽게 봤는데

아버지(최태민)는 김재규의 덫에 걸려들었고 (과연 그럴지는 ㅅㅂㅋㅋ)

 

언론과 방송도 점차

소설을 써서 아버지가 심령술로 박근혜 마음을 흔들었다 했다 하고

 

(최순실 주장)

 

당대 최고권력이었던 중앙정보부를 대응할 수 없었던

최씨일가는 그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저도 하다하다 최순실 자서전까지 찾아보면서

ㅈㄴ 특이한 이야기를 읽어봤는데

앞으로는 최순실 주장임 하여튼ㅋㅋ)

 

최태민은 그일로 협심증(가슴답답)이 생겨서

혈압이 오르고 가슴앓이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고

당시 서대문 고려병원에 입원했는데

거기서 밤낮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그들은 집까지 들어와 이잡듯이 뒤지고

장독대에 있는 고추장 독까지 휘저어 보았다하고

마침 집에 최순실이 있었는데 그때

최순실을 벽으로 밀어붙이더니 무턱대고 사진을 찍고 돌아갔고

이때 대학초년생이던 최순실은 무섭고 두려워서 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근데 최씨 일가에서도 백번 양보해서

설사 세간의 이야기들이 다 진실이어서

박근혜를 세뇌 , 조종했다해도 최태민이

비록 독재자지만 진짜 ㅋㅆㅎㅌㅊ 밑바닥에서 대통령까지 찍고 올라간

박정희나 전두환과와 기싸움에서 이긴다거나

그런 기성 주류권력자들을 제압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고 박근혜한테 공사치고

박근혜 팔이하면서 놀러다니며 돈삥땅쳐먹고 다녔고

군사정권에서도

최태민이 나름 종교인으로서

기성정치인들 약점도 좀 쥐고있나 엮여있다고도 하고

당대 종교인들이 군사정권에 대항하던 시긴데

사이비지만 약삭빨라 기회와 이익에 밝던 최태민이 그래도

박근혜를 방패로 쓰면서 애국보수를 부르짖는 종교인이다보니

박정희나 전두환도 최태민 ㅈ같아서 조지려다가

괜히 건들이면 피곤하고

진보 , 좌파 종교인들이 더 ㅈ같아서 대충 눈감아 줬다 보면 될거 같습니다

 

웃고있는걸 보니 나름 최태민을 완전 조지지는 않았던 박정희 대통령

 

하여튼 그럼에도 박정희 , 군부정권 입장에선

최태민이 ㅈ같은건 사실이라

최태민은 조사까지 받고

날마다 수사관들이 최태민이 입원한 병원에 드나들며 조사하자

최태민은 열이 40도까지 올라서 의식이 흐리고

숨도 쉬기 힘들어도 밤늦게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았고

이때부터 최씨일가는 권력이랑 중앙정보부가 ㅈㄴ 무서운 것을

깨닫게 되고 ㅈㄴ 사리게 됬다 하고

 

계속 조지는데 일단 최태민에게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자

박정희가 최태민을 집적 친국(직접 조사) 을 했고

대통령에게 불려가 친국받고 나온뒤 ㅈ됨을 깨달은 최태민은

그날 이후로 해던 모든 일에서 손떼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려했다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고 전두환정부가 들어서자

전두환도 박근혜를 견제하며 최태민을 다시 조사했고

이때도 최태민은 언론에서 두들겨 맞고

전두환이 조사해보니 최태민은 뚜렷한 범죄사실은 드러나지 않아

강원도로 보내 격리시켰고

 

점차 최태민은 중앙정보부와 신군부에 당한 일로

협심증과 고혈압 등의 병을 얻다가

종종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고

1994년 5월 갑자기 고혈압이 악화되 사망했고

 

최씨일가는 더이상 언론에 이런 이야기들이 회자되는게 힘들어

평소 다니던 교회에서 기독교장으로 최태민 장례를 치뤘다하고

최순실 입장에서 최순실에게는

아버지 최태민은 인륜상 부녀지간 정은 그래도 있지만

최태민도 기상천외한 인물로

박근혜 조종 , 한국의 라스푸틴 , 사이비 교주 이런 이미지가 강하고

부정부패와 연관된 인물이기에

딱히 자랑스러운 아버지도 아니고 그냥 조용조용 묻어간 사람이라 보면 됩니다

 

참 박근혜 스스로나

박근혜 주변인물들이 쓰기도 복잡하고 짜증난데

여기까지가 최순실이 본 아버지 최태민이고

세간에는

박근혜가 정신적 지주로 여기며 존경하던 어머니 육영수를 잃고 방황하던 시기

최태민은 어머니 육영수 영혼 빙의(영혼이 다른사람 몸에 들어감 ㅅㅂㅋㅋ) 가 가능하다며

박근혜에 접촉했고

점차 박근혜는 최태민에 빠져들었다하고

 

러시아 요승 라스푸틴에 비유되는 최태민

 

최태민은 해방전엔 일본제국 경찰로 근무하며

국내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다니는 조선인 순사였고

해방과 전쟁 이후엔

1970년대부터 서울과 대전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며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이다

육여사 사망 이후인

1975년부터 박근혜와 인연으로 막후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합니다

 

일단 독재 및 권위주의가 아주 강했던 당시 박정희 유신정부였기에

박정희가 가장 아끼는 큰딸 겸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하던 박근혜의 입지는

ㅈㄴ게 크긴 컸고

정부 고관대작이나 왠만한 시장과 군수 , 기업회장들도

그런 박근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기에

최씨일가 본인들 주장으론 그저 도움을 주고받았던 관계라 주장하지만

박근혜 따라다니며 방구한번만 껴도

호가호위(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림) 가 ㅈㄴ게 쌉가능했기에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루며 박근혜 이름을 팔아서

많은 대기업들에게 많은 돈을 갈취한 뒤 흥청망청 돈쓰고 다녔다하고

그의 딸 최순실과도 인연이 생겨

최씨일가가 박근혜에게 '도움' 을 주며 재산을 축적해나갔다 하고

이 '도움' 이란건

 

아무리 대단한 권력자나 공주여도 다 밥먹고 똥싸고

말동무도 필요하고

옷입고 가전제품이나 치약칫솔도 사고 이런 기본적 생활적인 일은 해야하는데

점차 이런거에 엮이며 최순실이 이런걸 담당했다 보면 되고

그러면서 자연히 독신 미혼이던

박근혜와 잦은 접촉을 가지며 정서 , 심리적으로도

의지하던 관계가 형성되는 거고

박근혜 주변인들 , 고위 공무원들에게 아니꼽게 보이고

최씨 스캔들은 한번 터질게 터진거였습니다

 

근데 위에선 제가 나름 최씨일가입장에서도 썼지만

근데 최태민은 이름을 7번이나 개명하고

전과 44범 , 성범죄 전과 12번까지 더해서

총전과 56범으로 좀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고

기회주의와 이익에 밝아 그런곳에 ㅈㄴ 뛰어든 인물이었습니다

 

최태민은 불교 , 기독교 , 천도교를 종합하는 영혼합일법이라는 교리를 내세우고

영세계의 교리라 주장했다는 말도 있고

박근혜 만나기 전까진 그냥 이것저것 하다가

박근혜라는 대어가 걸려부리자

 

(참고로 최태민은 박근혜를 만나기전까지

아무 자산이 없고 박근혜를 만난 이후

엄청난 자산가로 변신하게 됬다 합니다)

 

박근혜에게 접근해

꿈에 육영수가 나타나

박근혜는

 

'한국의 지도자 , 더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가 될 것이며

자신(육영수)은 그러기 위해 자리를 비켜준 거고

내 딸 근혜가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니 가서 그녀를 도우라'

 

라 했다하고

 

(중정부장 김형욱 피셜)

 

이거로 박근혜는 1975년 3월 최태민을 집적 만났고

최태민이 어머니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현하자

최태민에게 심리적으로 상당히 의존했다고도 합니다

 

최태민은 세간에 한국판 라스푸틴이나 신돈이라 불리고 있고

 

(라스푸틴은 러시아의 사이비종교인으로

러시아 황제일가를 조종하며 몰락시킨 인물이고

신돈은 고려의 요승으로 공민왕을 등에업고

부정부패했다는 승려임)

 

미국에서도 평가가 안좋아

2007년 7월 20일 미대사관 전문 위키리스크에는

 

<위키리스크>

Park has also been forced to explain her own past, including her relationship some 35 years ago with a pastor ,

Choi Tae-min ,

whom her opponents characterize as a "Korean Rasputin,"

and how he controlled Park during her time in the Blue House

when she was first lady after her mother's assassination.

...

Park has been linked to the late Choi Tae min ,

a charismatic pastor. Rumors are rife that the late pastor had complete control over Park's body and soul

during her formative years and that his children accumulated enormous wealth as a result.

 

로 되있는데

또 요즘 영어 공부하는 제가 번역좀 해보면ㅋ

 

박근혜는 또한 해명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그녀 자신의 과거를 ,

그녀의 35년전 목사 , 최태민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

그녀의 반대자들에게는 그가 '한국의 라스푸틴' 처럼 묘사됩니다 ,

박근혜 그녀는 그녀의 엄마가 암살된 이후 퍼스트레이디가 됬을때

청와대에서 살던 박근혜를 어떻게 그가 조종해버렸냐면

...

박근혜는 고인이 된 카리스마있는 목사였던 최태민과 연관이 됬다 ,

한국에 널리 퍼져있는 소문들로는

고 최태민 목사가 완전히 통제해부렸습니다

박근혜의 몸과 영혼을(ㅅㅂㅋㅋ)

그녀가 정신적 인격이 형성될 시기동안 그리고

그 결과 최태민의 아이들이 막대한 재산을 축적시켜부렸습니다

 

최면요법을 사용하는 그림 , 리카르드 베르그 스웨덴 화가

 

하여튼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분명 그렇게 좋은인간은 아니였고

박정희 주변 측근들이나 정부 관료들도 박근혜가

이런 최태민과 어울려다니는걸 ㅈㄴ아니꼽게보거나

걱정을 많이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일단 최태민이 같은 보수 , 극우파라

정치적 이유로 냅둔 것도 있고

본인 자체도 문란한 성생활을 해와서

육영수 여사 만나기전에 여자가 여럿 있었고

육영수 여사와 결혼후에도 여자문제로 육여사와도 부부싸움을 해오고

육영수 여사 사후에도 연예인들 건들고 다녔던 인물이라

딸이 건전한 남성을 만나게 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아버지는 아니였기에

최태민의 사실을 보고로 듣고있어도

딱히 터치하거나 그러지도 못하던 상황이었고

 

김재규는 이런 박근혜-최태민과의 관계때문에

못마땅하게 여겼고 박정희를 암살한데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있을정도 였습니다

 

이후에도 박근혜를 등에업고

최태민이 전횡을 일삼았다하고

큰누나 , 큰언니 박근혜를 구하기위해

박근혜의 동생 박지만과 박근령은

구출계획을 세우려고도 했고

 

1990년 8월엔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최태민을 떨어트려 달라 요구할 정도였습니다

 

<박지만과 박근령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누나(언니)가 최태민에게 속고 있으니 구해달라 ,

최태민이 아버님 재직시 아버님의 눈을 속이고

누나의 비호아래 치부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행위가 폭로될까봐

누나를 방패막이로 삼고있다

 

하여튼 이것저것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대충 박근혜가 어머니 사후 방황할때

최태민이 파고들어 같이 봉사활동을 하며 관계를 맺었는데

최태민이 박근혜를 방패막이로 쓰며 재산축적을 하고

그렇게 점차 최씨일가는 박근혜와 깊숙히 엮였고

 

그렇다고 막 최씨일가가 ㅈㄴ 오징어게임 깐부할배마냥

박근혜의 모든것을 통제하고 조종하며 나서지는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러면서 재산을 축적하며 전횡을 일삼았고

딸 최순실 역시 박근혜의 외로움을 달래주며 인연을 맺다가

이전부터 언론이나 박근혜 측근 , 고위관료들 사이에선

이런것에 대해 여러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박근혜 정부 말기 그런게 전부 대중들에게 수면위로 드러나며

국민적 지탄을 받게 됬다고 보면 됩니다

 

즉 최순실 입장에선

자신의 아버지와 본인이 무슨 정권막후실세 , 최고권력자마냥

군림하며 박근혜를 조종해서 나라를 이끌었다는 이런 소문들은

억울하고 본인들도 그렇게 이야기되는게 매우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있다 하고

 

(최순실 본인은 그저 대통령 옆에 붙어먹어서 조금 해쳐먹는 다른 측근과 다를바 없는데

이럴바엔 본인도 차라리 공식직함 하나들고나서

정식으로 박근혜 정부에 참여한다던가 조용히 자중했어햐하는데 하며

스스로도 후회하는 듯 하고

계속 실제 대한민국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등 ,

비과학적으로 미신으로 박근혜를 조종했다는 등 이런건 말도 안되고 부담스럽고

이런 이미지가 만들어져서 본인 스스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거로 보면 됩니다)

 

그냥 박근혜 따라다니며 매니저일이나

시다바리짓하면서 콩고물 뜯은 일가라 보면 되고

 

참고로 이게 꼭 말이 안되는게 아닌게

1군 운동선수나 연예인들도 화려하게 티비나 무대에 서지만

무대 밑에 내려오면 매니저가 수건이랑 물건내주고

차태워주고 간식챙겨주고 메이크업 해주고 등등

누군가는 해줘야 할 일들이고

 

누구나 스타가 되고싶지만

자리는 한정되있기에

현재도 대한민국에서는

밑바닥에서 한 명의 스타를 위해서

음지에서 조용히 일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단히 잘생기고 배우고 돈많은 사람들이 이런 그림자 일 하진 않을거고

그런사람들은 무대에 직접 나서겠지만

당연 다 사연이 있거나 공부못하고 가난하고 못생긴 사람들이 하겠지만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고

하여튼 잘난 사람이나 부자들은 혼자 움직이는거 같아도

이렇게 밑에 딸린 식솔이나 식구들이 많습니다

 

일반인들의 경우 이런일을 보통

엄마나 아빠 , 가족들이 해주고

재산이 수백억씩 넘어가거나 A급 연예인 이런경우는

가족들 손으로도 부족해서

이렇게 점차 외부인도 고용하며 기업화되는건데

 

박근혜는 너무 젊은시절 부모님을 잃어

누군가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긴 필요했고

이게 꼭 어릴때만 돌보는게 아니라

나이먹어도 이런게 필요한게 사람이라

 

제 생각엔 최씨일가는 박근혜의 개인 매니저로

뒤에서 활약도 분명 하긴 했고

호가호위하며 부정부패로 재산을 불렸다 보면 될거같고

박근혜가 매니저 관리를 잘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박근혜 역시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총에 맞아 사망하는

끔찍하고 불우한 가족사가 있어서

기회주의 , 왔다갔다를 잘하고

극단적이고 카리스마있는 아버지와 비슷한 최태민에게 끌렸고

일반 가족들처럼 최씨일가에 의지하며

외롭고 어려운 시기를 견디기도 했고

 

최태민 역시 이 점을 파고들어 대충 해처먹고

또 그러면서도

정부나 검찰이 또다시 조사할까봐 두려워서

덜덜 떨다가 사망했던 인물이라

보면 될거 같습니다

 

하여튼 ,

결론은 육영수 여사 사후 박근혜에겐

최태민 , 최순실과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됬고

이는 그녀가 평생을 안고가야할 컴플렉스가 되었습니다

 

 

[최순실]

최순실 이야기도 연이어 하자면

최순실은 1970년대 20대 학창시절때

박근혜를 처음 만났고

 

<최순실>인연인지 악연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죄 없는 박 대통령이 구속되어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이

나의 잘못임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앗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가 최순실 아버지 최태민과 같이 새마음운동 하던 시기

최태민의 딸 최순실 역시 대학생 연합회의 일원으로

새마음갖기 운동에 동참해 새마음 야간학교에서

한과목을 맡이 가르치기도 했고

 

당시 평범한 대학생이던 최순실은

어머니를 잃고 퍼스트레이디를 하던 박근혜를 멀리서 바라보는데

그녀가 그런 상처도 딛고 일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앞장서는 모습에 최순실은 박근혜에게 매료됬고 좋아하게 됬고

점차 같은 행사에 참여하며 친해졌습니다

 

젊은시절 최순실과 박근혜

 

어느날 최순실은 아버지 최태민에게

왜그리 박근혜씨를 신뢰하는지 물었고

최태민은

 

<최태민>그분만큼 명철하고 모든 분야에 박식하며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투철한 분이 드물다.

젊은 사람들이 읽기 어려운 중국의 고전에도 통달하고 있었으며

4개 외국어를 독학으로 능숙하게 구사할 정도로

지적으로도 뛰어난 분.

또한 졸지에 어머니를 잃고도 보여준 강한 의지력으로

언젠가는 나라를 위해 크게 한몫 하실 분이니

도와드리고 싶다.

내가 보기에도 겉으론 약해보이시지만

신념과 의지가 굉장히 강하시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능력을 타고나신분 같았다

 

하며 최태민은 최순실에게 박근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원래 어려운시기 만난 인연이 더 고맙고 잊히지 않는 법이고

당시 박근혜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

최태민과 최순실 부녀는 그때마다 마음으로 함께했다 하고

 

(물론 박근혜덕분에 돈벌었다는 얘기는 안썼지만

나름 최순실 입장에서 본 박근혜임)

 

이후 최순실은 유치원을 운영하느라 바빠졌는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박근혜는 청와대를 나와 평범한 삶이 시작됬고

이때 최순실은 기꺼히 박근혜의 외로운 길에 동참하기로 생각했다하고

처음에 그분과 동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는데

여러 카리스마에 최순실은 박근혜를 깍듯이 존경했다 하고

 

(별 힘없던 자기 집안 일으켜준 아가씨기도 하고

또 인간적으로도 나름 최순실이 박근혜를 존경했다고 보여집니다)

 

박근혜 역시 최순실에게 최원장이라며

존중해 주었고

최순실은 불행한 가족사에 어린시절부터 청와대 생활을 오래해서

절제된 생활이 몸에밴 박근혜를 지켜보며

불우한 박근혜의 인생역정이 너무 가슴아파서

그의 곁을 지키기로 결정합니다

 

박근혜가 무조건 이용당했다 보기도 뭐한게

박근혜가 최태민 사후 정식으로 정계입문한 뒤

정치인할때 최순실이나 최순실 남편 정윤회가 여러면에서

박근혜의 수족처럼 도왔고

 

원래 최순실이 직접 도우려 했는데

본인은 최태민의 딸로 알려져 있기에

정치적 비난과 박근혜에게 누가 될까봐

남편 유라아빠 , 정윤회에게 나서달라 했고

 

결국 최순실은 박근혜를 옆에서 지켜보며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박근혜의 개인적인 일을 도왔고

유라아빠 정윤회 역시 지구당 직원들과 함께 숙소를 쓰며

처음해보는 정치에서 열심히 뛰었다 합니다

 

정윤회

 

박근혜 정부 시기 승마공주로 논란이 된 정유라

 

그당시 처세 잘못한 정유라

 

결국 선거는 대승으로 박근혜는 화려하게 정계에 들어왔고

당시 최순실은 본인이 구설수에 오른 최태민의 딸이었기에

티비를 보며 쓸쓸히 박수만치고 축하하는 무리속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하고

다행히 유라아빠는 한다리 건너 사위였기에

별 큰 관심을 끌지 않아 유라아빠는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박대통령을 돕게 됩니다

 

이후 박근혜의 정치영역이 넓어지고

당대표까지 진출하자 슬슬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2014년 11월 세계일보에

정윤회 사건이 보도 ,

박대통령의 배후에 최순실 , 정윤회 부부가 있고

비선실세 논란이 시작됩니다

 

하여튼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선경선할때도

최순실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최순실은 할 수 없이 짜져있었다 하고

2012년 결국 박근혜가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당선되자

박근혜의 그림자로서 일했던

최순실은 가슴에서 뭉클한 기쁨과 감격에 눈물을 흘렸고

이제 그분이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포부와 국정철학을 펼치실 때가 됬으니

그분 곁을 떠나야겠다 생각했고 가족들도 그렇게 하길 강력히 권유했는데

한편으론 챙겨줄 가족 한분 없는 박대통령 뒤를 떠나기가 쉽지가 않았고

 

(근데 이게 물론 돈과 엮여서 붙어있어야 해먹을 수도 있는것도 있지만

인간관계라는게 진짜 무조건 돈으로만 돌아가는것도 아니고

그리 단순한게 아니라서 진짜 최순실이 박근혜 덕을 평소 많이 봐왔고

박근혜를 존경하기도 했기에

도의상으로도 함부로 박근혜를 떠나기가 어렵기도 했고

박근혜의 생활부분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가 있습니다)

 

원래 박근혜가 되게 검소하고 알뜰해서

청와대에 들어갈때 물건들 이삿짐 옮기려해도

청와대에 가져갈만한게 별로 없었고

일단 최순실은 여러고민을 하다

본인 빌딩(하여튼 박근혜덕으로 빌딩세울만큼 앵간치 쳐먹은것도 사실임 ㅡㅡ)

관리하는 관리인을 시켜서 도와드리게도 했고

 

당시 박근혜는 에어컨도 옛날 금성사 제품에

선풍기도 골동품같은 거를 사용했기에

도저히 청와대로 가져갈 수 없는게 많았고

근데 진짜 박근혜는 동거하는 가족이 없어서

이런 개인적이고 자잘한거를 챙겨줄 사람은 필요했기에

그역할을 최순실이 한거였습니다

 

<최순실>물론 공식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들도 있고

국내 최고의 의료진들이 잘 보살펴 드리겠지만

곁에서 가족처럼 수발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그렇게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것이

필연적인 인연의 연속이었던거 같다

 

한 나라의 대통령 위치에 있는 분 가까이에 있으니

내가 권력이나 명예를 좇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든 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함께 지내는 가족도 없는 그분의 허전한

옆자리를 채워 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점차 최순실은 이런거로

가족들과도 소원해지고 남편 정실장과도 수시로 갈등을 겪었고

남편도 최태민과 박대통령에 엮여 언론의 주목을 받는것을 극도로 꺼려

최순실에게 제발 박대통령 곁을 떠나라며 수차례 권유했는데

최순실은 의리를 저버리는거 같고 그대로있자니

세상이 냅두지 않을거 같고 하며 갈등하다가

결국 남편을 최태민의 사위에서 놓아주기로 하고

이혼을 하게 되고 2014년 최순실-정윤회 부부는 이혼합니다

 

(최순실도 공사구분 잘못하고 부패한 정많고 나대는 졸부 아줌마라 보면 될거같고

본인도 업보는 있지만 그렇다고

박근혜를 조종하고 이런거는 분명 야당이나 반대파들의 공세로

뒤집어 씌어진게 있는 것도 있고 ㅈㄴ 부담이 클듯합니다)

 

점차 박근혜 그림자로 활동하던 최순실은 그렇게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박근혜 취임식때도 입은 한복도 맞춰주는게 훗날 비선실세 1위가 해준 옷이라는 등

여러 말이 나왔지만 최순실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

그리고 챙겨줄 가족도 없는 박근혜에게 옷한벌 해주는게 뭐 어떠냐는 생각이었고

대한민국 전통의상 한복을 입는게 뭐 어떠냐는 생각에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의 색처럼

청색치마위에 붉은 두루마기를 담은 것으로 선물한거고

너무 과대하게 부풀려져

뒤에서 박근혜의 옷까지 통제하고 조종했다 이런거에 부담이 큰 인물입니다

 

박근혜 취임식 한복 , Produced by 최순실

 

(근데 이옷이 최순실 작품이었군 ;;)

 

<최순실>국가의 정책은 대통령의 철학과 정치관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어느 한 개인이 뒤에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누구보다 애국심과 역사관이 투철하시고 ,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 또한 확실한 분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터득한 경제관 또한 누구도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확고하고 그 분야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신 분이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당대표까지 맡으셨던 경륜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분은 장담컨대 대한민국 헌정사상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박 대통령의 큰 뜻과 확고한 정치철학을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바꾸거나 함부로 정책에 관여할 수 없었음은 당연한 것이다.

비선실세란 말은 가당치도 않다

 

근데 이건 저도 최순실 말이 맞다 생각하고

영향은 분명 줬겠지만

박근혜가 주변에 최순실만 있는것도 아니고

인간은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때문에

최태민 , 최순실이 크고 자잘한 영향을 준건 맞는데

국정농단이라는 등 모든 과오를 최씨일가에 다 덮는건

그래도 너무 잔인한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고

한편으론 너무 이기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고

그냥 박근혜 본인이 무능하고 주변 인재풀이

이정도였다 보면 될거 같습니다

 

참고로 박근혜는 조종당했다기엔

충분히 최태민과 최순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권력과 힘과 인재풀과 정보력이 있는 인물이었고

 

제 입장은 너무 최씨 일가만 까면

권력자가 본인이 무능해서 망한것을

밑사람에게 책임 전가하는 모습이라

더 나쁘고 더 무능하고 이기적인 모습이라 생각되고

 

(러시아 황실은 라스푸틴 이전에도

후진 봉건국이라 상황이 원체 안좋았고

고려도 신돈 이전에도 이미 국가멸망상황이었고

공민왕도 정신차리고 개혁하다가 마누라 죽고 말년에 엽색하다가 살해당함)

 

그냥 전두환처럼 밑사람들은 잘못 없고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 하고 하면

사람들이 그래도 나쁜놈이어도 의리는 있다며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생기는데

박근혜는 맨날 주변탓이랑 남탓 , 본인잘못은 절대 말안하는 구석이 있고

최종 권력 , 책임자는 결국 박근혜였기에

저는 박근혜가 최씨를 조종하면 했지

전두환보다 훨씬 못했다는 생각이고

 

괜히 전두환도 박근혜를 보고

 

<전두환>박(근혜) 대통령이 머리는 똑똑한데

똑똑하고 잘하는데 혼자 사니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부부간에 살면서 싸우며 좋은것(생각) 이 많이 나오는 법인데

혼자서 어떻게 하겠어

 

하며 정확하게 박근혜의 약점을 지적한 바가 있고

 

전두환의 디스ㅋㅋ

 

노태우 대통령 역시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하던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신년가족식사자리에 초대됬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날밤 1개를 집어

 

<박정희>이것 참 맛있겠구나

 

하며 박근혜에게 줬는데

박근혜는 받지 않았고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고

옆에 앉은 근영양이 

 

<박근영>아버지 , 저 주세요

 

하고 받아서는 입에 넣어 깨물었고

이 장면을 보며 노태우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 외롭겠다'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인간은 독재자던 위대한 정치가이던 항상 함께하고 같이 움직이게 되있고

전두환 대통령은 그래도 이순자 여사와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기도 했고

이런 생리와 지혜를 매우 잘알던 인물이었기에

힘만 무식하게 쎈 빡대가리에 ㅆㅎㅌㅊ 흙수저에서

독재자였지만 상남자 리더십으로 대통령까지 해먹은 것이었고

 

박근혜는 결국 이런 문제들로

국가와 결혼한 처녀 대통령 이미지를 구축하며

거의 역사속 여자나 미혼 정치인인

선덕여왕 ,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잔다르크 같은 신비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며 정치계에서

아버지 후광 외에도 최초의 여자대통령 버프까지 받아서

나름 대통령 당선까지는 성공적인 출세가도를 달려왔지만

결국 이게 가장 큰 컴플렉스가 된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저는 최태민이나 최순실 기록을 읽다가

뭐지 레즈인가 (?) 할 정도로 의외로

박근혜가 최태민보다 최순실과 더 공생관계와 서로 의지하는 관계가

형성됬다고 느껴졌고

물론 레즈니 이런건 너무 나갔고 좀 장난으로 한 말인데

실제로 최순실이 알게모르게 남자를 사귀지 못했던 박근혜 주변에 머물며

비선실세보단 박근혜의 식모나 남편노릇을 했다고 보여지고

 

뭔가 레즈+모에화된 최순실과 박근혜 , 굽시니스트 박4모

 

인간은 그렇게 설사 결혼을 못하더라도 혼자서 살지 못하고

누군과 의지하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하고

여자의 몸 , 결혼을 못한게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박근혜의 언더독 효과로 작용해

큰 이점을 누리기도 했지만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참 그게 큰 약점으로 작용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박근혜도 정치 , 정책적 도움은 측근이나 다른 관료들과 논의했지만

보통 최순실은 박근혜의 생활적 담당을 했다 보면 되고

참고로 이미 힘없는 권력자를 조롱하거나 그런게 아니라

제가 보니 박근혜가 결혼을 못했기에 최순실이 나름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 친구 겸 비밀 영부인(? 부군인가 ?) 노릇을 했다 보면 되고

말동무도 하고 친구로 지내며

자주 붙어다니니 점차 최순실이 정치 연설문도 옆에서 고쳐주고

나대고 그런건 있었는데

만약 최순실이 남자였고 박근혜 남편이었으면

육영수처럼 나랏일에 적극적인 퍼스트젠틀맨(?) 이라 할 정도거나

충분히 국민들이 신경 안쓸정도 수준이고

하다못해 박근혜가 부담 감수하고라도

최순실한테 공식적인 자리 하나라도 줬다면

차라리 이런일은 없을텐데

대국민으로 조리돌림 당할줄은 본인도 예상 못한듯 합니다

 

최순실이 개인적으로 박근혜의 남편행세를 했다 생각되는게

이게 조롱이 아닌게 인간은 기본적으로

아무리 막대한 권력자라도 혼자살 수 없는 존재기에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하고 정치적 도움은 기존 새누리당 엘리트들이나

박근혜의 아버지시대때 인물들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지만

 

박근혜도 먹고자고 생활하고 그런거랑 생필품도 구매를 해야하고

누군가는 박근혜 옆에서 24시간 수시로 무슨일 있을까 봐주기도 해야하는데

그런 역할을 남편도 아니고 서울대 나온 정치인들이나 국회의원 , 의사들이 하기엔

그들의 몸값이 너무 비싸고 

여자의 경우는

보통 부모님이나 남편이나 자녀들이 해주어야 하는데

박근혜는 부모님도 너무 일찍 돌아가셨고 동생들도 각기 살게 됬기에

최순실이 그 역할을 대충 했고

그렇게 둘이 붙어다니며 친구처럼도 지내고 또 최씨일가가

그런 박근혜를 등에 업고 전횡을 했다고도 보면 됩니다

 

(박근혜가 무슨 진짜 캐 ㅂㅅ도 아니고

녹취록에서 최순실한테 네네 한게 최순실한테 조종당하고 쫄아서가 아니라

자기보다 어리고 오랜 인연이고

오히려 밑사람에 대한 존중의 의미라 생각됩니다 ,

박근혜가 애초에 최순실에게 굽힐 이유도 없고

만약 박근혜가 최순실을 하녀나 머슴부리듯 했으면

진작 서로 생까고 다른길 갔겠죠)

 

박근혜가 유세현장에서 피습당할때도 최순실이 붙어서 간호했다 할정도로

박과 최가 수족이나 깊은 관계는 맞았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평소 고리타분한 정장을 고수하니

디자이너들과 호흡이 잘 안맞아서 결국 최순실에게

옷구입을 맡기는등을 했고

이렇게 최순실은 박근혜 부탁을 받고 박근혜 일상을 돕기 시작했고

 

(그니까 정책도운게 아니라 대게 일상적 도움을 준 인물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밝은색의 파스텔 톤을 좋아했는데

원래 명품이 없어서 취향에 맞는걸 찾기 어려웠고

하루는 가방이 필요한데 원하는 색을 찾을 수 없어

최순실은 마침 고영태가 지갑을 팔던 일이 생각나서

그에게 아는 공장을 연결받아 박근혜 가방을 맞췄고

 

<최순실>그것이 불행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최순실은 고영태가 백을 전문적으로 만다는 디자이너도 아니고

주변 친구들이 하는 공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운거라 알고있었는데

최순실은 가방을 주문하며 자신이 쓸거라 했는데

언론으로 알게됬는데 고영태는 대통령이 드셨던 가방을

자신이 제작한 것처럼 보도되게 했고

그때 최순실은 화를 내며 고영태에게 기사를 내리라 한 적도 있었는데

 

논란의 고영태 제작가방 , 박근혜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샤넬이나 루이비통 들긴 그래서 최순실 시켜서 국산제작품찾다가 이사단이 난듯 합니다

 

그러다 점차 고영태가 직접 옷을 만들고 모든 과정을 본인이 다 한것처럼

언론에 나오기 시작했고

 

<최순실>그의 언변과 요령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최순실의 아는 후배가 기겁을 하며

최순실에게 고영태의 과거를 얘기해주었고

고영태는 고민우라 불리며 강남의 호스트바를 출입하는

웬만한 여자들은 그를 다 알고 있다고 말해주었고

최순실은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리며

몸에 기운이 풀리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립니다

이후 최순실은 고영태를 멀리하고 일에서도 배제시켰는데

점차 최순실게이트가 터지며 이런 이야기들이 과대해석됬다 합니다

 

(최순실 피셜)

 

하여튼 여기까지가 길고긴

육영수 여사 사후 박근혜 , 최태민 , 최순실이

어떻게 인연을 맺고 무슨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름 여러자료들을 조사하고

최씨일가 주장도 읽어보며 썼고

 

그냥 최순실 스캔들은

엄청 왜곡해서 과대해석해도 안되고

박근혜가 무능하고 혼자지내는 것 때문에

그점을 파고들며

ㅈㄴ 부를 축적한 최씨일가라 보면 될거 같습니다

 

[평범한 삶]

하여튼 ,

육영수 여사 사후

최씨일가의 접촉 이외에도

아버지도 육여사를 그리며 방황하셨고

점차 박정희 대통령 주변사람들도 박정희 대통령이

맛탱이 가는 것을 느끼며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자존심 강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아무 필터없이 쓴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시 대한민국에 육영수 밖에 없었고

육여사가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비판을 할때는

박정희가 던진 재떨이가 날라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고 (;;)

 

그러나 박대통령도 결국 육여사의 충고를 함부로 무시하진 못했습니다

 

<박정희>나와 가장 가까우면서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

그게 바로 임자야. 난 청와대 야당(육영수의 별명)이 제일 무서워

 

이에 육영수 여사도

 

<육영수>야당은 야당이지만 제가 무슨 조직에 속한 사람도 아니고

정권에 대한 욕심은 더욱 없어요.

그러니 앞으로 야당탄압을 하실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마세요

 

하면 재치있는 농담에 박정희 대통령도 껄껄껄 웃으며 무릎을 치고 그랬는데

이런 '각하'의 명령이라면 모두가 눈을 내리깔던 시절

자존심 강한 최고 권력자에게 감히 조언할 사람이 육영수 밖에 없었고

육영수는 박정희가 고립되는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다양한 통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영부인이었는데

 

<당시 야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하고 저하고는 대화를 해본 일이 없어요.

68 봄인가 한번 있었습니다.

그때는 대통령한테 세배하러 가는 예가 있었어요.

야당은 별로 안가는데 ,

저는 갔어요.

세배했더니 아주 반갑게 맞으면서 세배하러 사람들이 줄을 있는데도

저를 한쪽으로 끌더니 4, 5 얘기 했어요.

육영수 여사가 나를 보더니 친정식구같이 반가워하더라고요.

그러면서 

 

' 부인하고 같이 안왔느냐?' 

 

하면서 정말 안타깝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육영수 여사를 세상 사람들이 흠모하는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진 일이 있습니다.

 

이런 조언자가 사라진 이후 박정희는 아내의 죽음 이후 정치적균형을 잃어버리고

실패의 길에 들어섰고

 

(박정희도 클래스가 있는 사람이라

쉽게 무너지진 않았지만

진짜 균형을 잃었다는 표현이 정확함)

 

누가 봐도 이상할 지경으로 엽색행각에 빠져들고

신망을 잃어갑니다

 

박정희 역시 박근혜가 대통령때 그랬던 것처럼

혼자가 되자 더이상 견제해줄 , 바로 옆에서 쓴소리 해줄 사람이 사라져 버렸고

한때는 청렴과 강직함을 내세우며

5.16 군사정변 이후 자신을 군사혁명가라 내세우며 경제를 발전시키고 하며

많은 지지와 존경을 받기도 했지만

육영수 여사 사후부턴 그저그런 부패한 유신독재자가 되서

뜬금없이 권력을 이용해 연예인들과 놀러다니거나

괜히 언어 순화운동이니 뭐니를 시작해

방송에서 영어를 강압적으로 사용 금지시키고

연예인들 이름도 한국말만 쓰게 통제하고 그랬고

야당정치인들은 탄압당하고

점차 국민과 측근들도 경제성장률도 떨어지고

유신독재 말년이 들어서며

박정희의 엽색행각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박근혜가 본 아버지 박정희는

197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고 계셨고

박근혜는 아버지가 본인이 꿈꾸던 조국근대화 작업이 어느정도 열매를 맺었다

생각하고 계신듯 보였습니다

 

이전 어머니 육영수 역시

권력의 허무함을 아주 잘알았기에

항상 자녀들에게 언젠간 신당동 집으로 돌아가야한다고 당부하셨고

 

아내 육영수 여사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심적으로 많이 외롭고 약해져 있었고

늦은 밤이면 혼자 텔레비전을 보다 거실 의자에서

그대로 잠들기도 했습니다

 

집권 말년에는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지켜온 대통령의 자리에서

서서히 물러날 준비를 했고

처음 자신이 혁명을 다짐하던 떄의 목표를 어느정도 달성했다

느낀 박정희였고

하루 한끼 먹는 일이 어려웠던 혁명 당시에 비하면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하루 세끼밥은 먹을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는 성장해있었습니다

 

<박정희>나도 이제 이 자리 그만하고

신당동으로 돌아가야지.

전세 월세 떠돌다가 신당동 집으로 이사갔을때

내자(아내) 하고 애들이 얼마나 좋아했던지.

 

욕심내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모아서 살림하는 거,

그게 인생사는 재미 아니겠나 ?

 

박정희는 자신의 15년지기 이발사였던

박수웅씨에게 이렇게 말하며 슬슬 은퇴를 서사했고

이전에도 박정희가 핵무기 개발을 완수하고

1980년 초 정계은퇴를 한다는등 여러 이야기가 있었기에

진짜 집권말기인 1970년이 끝나가던 시기

박정희의 정계은퇴 이야기는 본인 입에서도

나오던 상황이긴 했고

박정희는 김재규의 암살로 자진은퇴 기회를 잃게 되었고

만약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 역사가 진짜 어떻게 흘러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딸 박근혜에게는

 

<박정희>퇴임후 남쪽으로 낙향해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며 평화로운 말년을 보내고 싶다 ,

 

황폐해진 작은 산을 사서

거기에 꽃과 나무를 심는 재미로 살고 싶다 ,

젖소도 두어마리 있으면 좋겠지 ?

방학마다 손자 , 손녀들이 놀러와 시끌벅적하게 지내는 것도

즐거울 거야

 

귀농을 꿈꿨던 박정희 대통령

 

이후 박근혜는 역시 평범한 삶이 가장 부럽다했고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때가 되면 결혼해서

목화밭을 가꾸며 밭일을 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는 한 터키소녀의 말에

박근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을 정도였고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이자 로열패밀리였던

육영수 , 박정희 , 박근혜 일가가 평생 가장 부러워한 것은

어찌보면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1979년 10월 26일 ,

박정희 대통령은 이른 아침에 박근혜에게

 

<박정희>오늘은 삽교천 행사에 간다

 

하고 인사를 건네고 어느때처럼 청와대를 나섰고

그날도 박근혜는 퍼스트레이디로서 청와대에서

바쁜하루를 지내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티비속 아버지 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보였고

문득 아버지가 이세상 사람이 아닌것처럼 느껴졌고

박근혜는 아버지 몸에 무리가 온거 같으니

앞으로 아버지 건강에 조금더 신경써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이날 호텔에서 기르는 노루가

박정희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 소리에 놀라 뛰다가

그만 나무에 부딪혀 죽었다는 불길한 이야기도 들렸고

박근혜는 다음날 일정이 빡빡해서

일단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1시 반쯤에 전화가 울렸고

잠시 후 김계원 비서실장이 관저로 찾아와

 

<김계원>각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에 박근혜는 온몸이 얼어붙는거 같았고

무의식중에

 

<박근혜>전방에 이상이 없습니까 ?

 

라고 말했고

아버지의 죽음을 틈타 북한이 무력침공을 감행해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10.26 사건

 

박근혜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고

5년전 어머니의 시신이 눕혀졌던 병풍 뒤에

아버지의 시신이 안치됬고

박근혜는 아버지의 시신을 바라보며 참았던 슬픔을 쏟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 오열하는 동생들이 보였고

장녀 박근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동생들을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이후 장례가 시작되자 빈소에는 조문객들이 끊이질 않았고

청와대 앞에는 국화꽃이 수북하게 쌓여갔습니다

 

<박근혜>나는 아버지의 피묻은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빨면서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을 수 없었다

비서실장이 전해준 아버지의 옷은 온통 시뻘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수술한다고 여기저기 찢어놓아 처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옷을 보고 있자니 굵은 눈물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몇 년 전 어머니의 피묻은 한복을 빨던 기억이 스쳐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분도 아니고 부모님 모두 총탄에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가혹한 이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핏물이 가시지 않는 아버지의 옷을 빨며

남들이 평생 울 만큼의 눈물을 흘렸다

죽을만큼 힘든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9일장을 치룬뒤 박근혜는 청와대를 떠났습니다

 

아버지 장례식을 치루는 장녀 박근혜

 

그녀는 더이상 대통령의 딸도 , 퍼스트레이디도 아니었고

대통령의 가족만이 청와대에서 거주할 수 있기에

그렇게 된 것이었고

결국 어머니가 생전 그토록 우리가족이 신당동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당부하신 것처럼 박근혜 삼남매는 신당동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동생들도 점차 말을 잃어갔고

신당동 집에는 하루에도 몇백통씩 위로편지가 쌓여갔습니다

 

[권력의 허망함]

청와대를 나온 뒤

박근혜는 그토록 어머니가 그때 당부한 말씀들이

피부로 와닿게 되었고

이후부턴 정권차원에서 아버지에 대한 매도가 계속되고

권력자가 교체되자 곧바로 박정희 지우기가 시작됩니다

 

<박근혜>청와대 시절 ,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왜 그토록 겸손 또 겸손하라고 당부하셨는지를

나는 신당동에 돌아와서야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물론 박근혜도 이점을 알고 인정하지만

아버지가 살아있을 시기

 

'유신만이 살길'

 

이라 떠들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할 수 있었겠느냐'

 

말하는것을 보니 서글픔이 밀려왔고

180도 바뀌어진 사람들 시선에

권력의 허망함을 깨닫고

또 시류에 오락가락하지 않고 진실된 태도를 보여준 사람들의

고마움과 소중함도 깨닫게 됩니다

 

새 권력자가 된 전두환은 박정희를 그대로 따라하면서도

퍼스트레이디 활동을 하던 박근혜가 껄끄러웠고

 

그래도 본인 주군이자 전직 대통령의 장녀였기에

전두환은 10.26사건 , 박정희 시해 직후

박근혜에게 예우를 다하며 9억을 챙겨주었고

박근혜는 아버지 죽음 수사자금으로 쓰라며 3억을 전두환에게 돌려줍니다

 

박근혜에게 6억주는 전두환 , 드라마 제5공화국

 

이후 박근혜는 18년간 은둔생활을 시작합니다

 

<박근혜>당시 아버지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

어린 동생들과 살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배려하는 차원에서 준다고 했을 때 ,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받았다

 

당시 6억은 서울 강남 30평 은마아파트 30채 값으로

지금 은마아파트가 한채에 25억정도 하니

지금돈으로 750억이고 (ㅡㅡ)

 

호탕한 상남자 전두환이 주군의 딸에 대한 통큰 의리고

배려라 볼 수 있지만

그게 다 국민 세금이고 국민 돈 , 나랏돈인데

왜 남의돈으로 본인들끼리 훈훈하게 의리 챙기는지 의문이고

민주화가 되지 못한 군사독재시절의 기득권끼리의 의리였다 보면 됩니다

 

[18년의 은둔]

하여튼 박근혜는 이후 한나라당 잔다르크로 부활하기 전까지

1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은둔을 시작하는데

본인말로는

 

<박근혜>지금도 나는 내가 걸어온 18년이라는 세월이

은둔과 칩거로 치부될 때 쓴웃음이 나온다

그때도 나는 대한민국의 하늘아래 살고 있었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

 

제가 박근혜 우호적인 책도 읽었는데

 

(박사모 말고도 무슨 박근혜 연구회까지 있음 ㅋㅋ)

 

그분들 말을 종합하면

이 18년시기 박근혜는 은둔이 아니라

집에서 독서하고 수련(기수련을 했다함ㅋㅋㅋ)

, 엄청난 내공을 쌓고 있었고

일기를 쓰며 자신의 철학을 쌓아가고 있었던

수련의 시기였다 보면 됩니다

 

청와대에서 나온 뒤

세월이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이 18년의 시간은 박근혜에게 잃어버린 18년도 아니고

의미있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추모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나는 아버지와 그 세대가 이땅의 산업화를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만큼 ,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분들에게도 높이 평가한다.

 

사실 아버지 시절에는 북한의 남침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기에

'민주화' 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족한 면도 잇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본의아니게 피해를 입으신 분들도 계셨다

 

나는 그분들에게 항상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왔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드는데

그분들의 희생 또한 값진 것이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제대로 보답하는 길은

아버지가 못다하신 민주화를 활짝 꽃피우고 ,

잘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와 육영재단]

새마음 봉사단은 강제해체됬고

1980년 박근혜는 대구에 있는 영남대 이사장직을 잠시 맡았는데

학교내 운동권에서 저항이 일어났고

28세의 사학재단 이사장 박근혜는 도저히 교육계의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인물이었고

 

영남대는 원래 경주만석꾼 최부잣집 경주 최씨가 만든 학교로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이 있었는데

두 대학을 박정희 정권시절 통합해 만들어

창립자 박정희 , 교주(학교주인) 박정희로 하는 영남대가 탄생했고

교주 비판에 현재는 설립자 박정희로 변경되었습니다

 

대학경영난때 잠시 삼성 이병철이 인수했다가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이 퇴진하고

2년뒤 현장복귀하는 조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대구대학을 넘겼고

정확히는 대구대를 넘기고 성균관대를 받는다는조건으로 (캐이득인데 ?)

이병철은 박정희에게 대구대 경영권을 주었고

경주최씨-이병철-박정희에게 대학은 넘어갔고

1967년 청구대학 , 대구대학이 통합해 현재의 영남대가 출범합니다

 

영남대 홈페이지(;;)

 

이 과정에서 영남대 자산이 헐값에 팔리고 선산땅도 잃은 경주최씨집안은

몰랐했고

이런 대학 이사장에 박근혜가 취임하자

영남대에서는 학원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박근혜는 7개월만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박근혜는 어머니가 남기신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어머니가 하던일을 조용히 해나갔습니다

어린이 교육에 힘쓰다

이후 동생에게 넘겼고

 

박근혜 육영재단 잡지 보물섬에서 초히트친 만화 아이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

 

육영재단 운영을 그만두고난 뒤부터

박근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되었고

그동안 간절히 그리던 평범한 생활을 시작합니다

 

하루하루 고요한 하루가 흘러갔고

날마다 일기와 독서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틈틈이 시를 쓰며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또 단전호흡을 시작했는데

그런걸 하니 마음에 멍울같은게 사라지는 느낌이었고

병에 대한 면역력도 좋아졌고 몸이 건강해집니다

 

[철학왕 박근혜]

박근혜는 철학에도 관심을 자져서

불교경전과 성경도 두루 찾아 읽었고

동양서적이나 유교책인 정관정요 , 명심보감 등은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읽었습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자 삶의 기쁨이 하나둘 늘었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고

매일 EBS 교육방송을 시청하며 테이프를 가지고 다니며

틈날때마다 반복해서 들었고

이전 영어 , 프랑스어 , 스페인어 공부때도 이렇게 했기에

중국에 독학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박근혜는 이시기 점차 내공이 강해지고

자신만의 철학이 정립됩니다

 

<박근혜 1991.11.11 일기>공자왈...

옛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몸이 말에 미치지 못할까 부끄러운 때문이다 -논어

 

박근혜가 어머니에게 배운것은

절제와 검소뿐만이 아니었고

 

<육영수>근혜야 ,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단다

여성들의 무대는 더이상 안방과 부엌이 아니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 있도록

자기계발을 해야해

세계를 무대로 뛰어들 준비도 해야 돼

 

그렇게 박근혜는 부지런히 독서와 공부 , 일기쓰기를 하며

은둔의 세월동안 내공을 쌓고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기 시작합니다

 

<박근혜-결국한 줌 , 결국한 점>

이건 정말 너무했어 ,

이건 말도 안 돼 ,

이럴 수도 있는거야

 

하며 인간의 작은 머리는 따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리 대들고 따져보았자

하늘 보고 주먹질하기다

 

자신의 지혜를 다하고 인내와 노력을 할만큼 했다 하더라도

자기의 뜻과 같이 세상사가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의미에서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세상만사중 단 한가지라도 천도를 어기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하나님의 독생자를

하늘이 힘이 없어서 구해내지 못하셨을까

 

6년동안 엄청난 고행이 없이도 싯다르타 태자에게 깨달음을 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

 

공자같은 분을 춘추시대 , 그 난세에 왕이 되도록 하셨다면

천하가 평안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천도가 그렇게 정해져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세 전부터 짜여진 계획은 원래 인간의 권위에 있다

인간의 '똑똑한' 머리는 아무리 달나라 별나라를 왔다 갔다 하더라도

하늘의 무궁무진함 앞에서는 바닷가 모래알만도 못하다

 

그 계획을 따지고 간섭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세상사가 어떻게 흐르더라도 어떤 흐름의 한가운데에

자신이 던져졌다 하더라도

인간의 숭고한 몫은 단 한가지에 있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를 배우고 익혀온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승리가 있다

 

그 어떤 생의 흐름을 타게 되더라도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도리만을 다하는 사람에게

그 어떤 운명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박근혜(박근혜의 낭만시기)

 

박근혜가 나중에 대통령되고 멘붕왔는지

에너지 분산 드립치면서 조롱받았던것에 비해

 

(대통령때는 이때처럼 한가한 백수가 아니라

나라운영하고 야당한테 1초에 1번 공격당하던 시기라

심리적 스트레스가 엄청나서 당황도 많이하고 말도 잘 안나왔을거 같습니다)

 

젊은시절 집에서 수련하며 쓴 이 글은 나름 명문이라 인상적으로 읽은 글이었고

삼국지에서도 제갈량이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 하지만 

이루어지는 건 하늘에 달려있다더니 , 

억지로 되지 않는구나!'

 

라며

한탄하는 '모사재인 성사재천' 이라는 명대사를 남기는데

이런 느낌이고

 

저도 20대 초엔 매사진선 ,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고 좌우명을 설정하고

노력으로 뭐든지 이뤄낼 수 있을거 같았는데

나이들면서 인간의 수명과 한계등이 체감이 되고

지금 역시 노력을 열심히 하자는건 변함이 없고

노력이 배신은 안하기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해도

다른방식으로 보상은 받는다 생각하나

사람이 노력만으로 되는게 있고 안되는게 있다는 생각이고

 

또 나이들며 느낀게 내가 인지하고 생각하는 것 너머의 세계가 있었고

저는 제가 되게 똑똑한줄 알고

물론 제가 역사공부도 많이하고 똑똑하다는 평가를 듣지만

그럼에도 지금 제가 느끼는 신비롭고 나만 느끼는 것 같은 감정도

나보다 더 앞서서 생각한 사람들도 요즘 보이기도 하고

그런저런 생각이 요즘 드는거 같고

박근혜 역시 나이가 들어가고 철학책도 읽고 사색하며

이런저런 깊은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이고

 

옛날 김대중 대통령도 옥중서신글에

본래 인간은 결국 죽을 수 밖에 없기에 패배자의 운명으로 태어나는데

 

독생자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서

신의 사랑을 실천해 남을 사랑하는 것으로

자기를 완성해 영원한 승자가 됬다는 비슷한 이야기를 한 바가 있어

박근혜나 김대중의 사색에서 나온 종교적 철학은 깊은 공감이 되고

 

나이먹으며 느끼는게

촌스럽거나 ㅂㅅ같아 보이던 기성세대들도

당시 환경 , 물리적 한계로 그게 최선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거나

하는 모습들도 많이 보이고

지금 나이먹으며 생로병사나 가정을 꾸려야한다거나 등 여러 생각이 맞물려 올라오며

옛날처럼 걱정없이 놀고 글만쓰고 그러진 못했고

요즘 제가 그래서 영어공부도 꾸준히 하고있고

그런생각들이랑 피로감이 겹쳐서

최근에 몸살도 나서 블로그도 잘 못하고 몸을 많이 못가누었던거 같습니다

 

하여튼 ,

굳이 정치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고 싶은 때도 있고

제가 딱 고등학교때부터 뭔가 자퇴하고

어디 동굴같은데를 들어가고 싶다는 기분이 계속 올라왔는데

이후 대학교자퇴하고서 몇년을 집안에 있었고

 

(마트나 도서관 갈때 빼곤 집밖을 나가지 않았음)

 

꼭 은둔이 나쁘다고도 생각되지 않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속에서

지친 몸도 쉴 수 있고

자기만의 깊은 생각도 할 수있고

못읽은 책도 읽고 , 못다한 게임도 깨는 재미도 있고 ,

못가본 여행지도 가보고 등

인간은 자기만의 세계나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져보는게

꼭 이기적이라거나 나쁘다고만 생각되지는 않고

어찌보면 또 그런 시기를 반드시 거쳐야

훌륭하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웅녀도 굴속에서 오랫동안 마늘과 쑥을 먹다 사람이 됬고

매미는 땅속에서 수년간을 ,

나방도 누에고치속 번데기의 시간을 겪어야 하듯이

가끔 빠릿빠릿했던 온몸이 굳어지고 피로해지면

쉬고 자고 마음의 안정을 취해야 하는 시기라 생각하고

쉬고 노는거에 너무 인색해도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이나 박근혜 지지자들은 이 시기를

은둔이 아니라 성장의 시간이라 하지만

은둔이 왜 꼭 나쁘냐 생각되고

박근혜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너무 불행하게 돌아가셨기에

몸과 마음을 추스러야 했고 대통령의 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세상 인심도 살펴야하는 시기가 필요했던 거고

나름 박근혜에겐 행복하고 귀중한 시간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렇게 박근혜는 모처럼만에 대통령의 딸일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국내여행도 다녔고 어느 시골마을에서는 국수를 얻어먹다가

박정희 딸인걸 알아보는 시골촌로가 덕분에 시골마을에 전기가 들어와서

너무 고맙다며 거부하는 박근혜 손에 천원짜리 몇장을 쥐어주는 것에 감동도 받았고

그분은

 

<시골 할머니>힘내. 아직 살날이 더 많아

 

하니

박근혜는 얼마나 고맙던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그무렵 박근혜는 그렇게 여행을 다니고 수필도 쓰며

문인으로서 길을 시작했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을 출간하고

이후에도

 

'결국 한 줌 , 결국 한 점'

 

이라는 수필집도 펴냈고

어느덧 박근혜는 문인협회 회원이 되어있었습니다

 

박근혜가 쓴 수많은 역작(?) 들

 

이후 박근혜는 그녀의 역작(?)

or 진보계가 보기엔 라면냄비받침으로도 볼 수 있는

그녀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를 펴내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정치인(~2007) 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썼는데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좀 불리한 이야기는 안쓰고

부모님 미화가 심하지만

 

(그래도 실제 딸이니 별 수 없음..)

 

필력이 좋아서 술술 잘읽히고

저도 박근혜 이야기 쓰다가

조금만 보고 빨리 끝내려했는데

ㅈㄴ 특이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다 읽었고 육영수 평전도 읽고

박정희 일가까지 전부 연구하게 됬고

 

제가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글들 읽어보니 글이 술술 잘읽히고 필력도 있는데

실제로 박근혜는 문학소녀 기질이 있어서 글을 되게 잘썼고

부모님이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던 인물이었기에

그녀가 본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한 역사자료이고

 

솔직히 재밌게 봄

 

누에고치가 나비가 됬데서 빵터짐ㅋㅋㅋㅋㅋ

 

단지 박근혜도 본인 아버지 박정희가 어린시절부터 영웅들 위인전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을 동경하며 괜히 모를 피해의식에 심취하며 자랐듯이

박근혜도 필력은 좋은데 신세한탄 이런게 좀많고

박근혜가 물론 불행도 많았지만 또 능력있는 부모님 덕분에

최고의 환경과 최상의 교육도 받고 부족함없이 자랐기에

그런 행복에도 많이 집중했으면 좋았겠는데

필력에 비해 글 내용은 우울하고 슬픈 내용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입니다

 

박근혜가 어린시절부터 문학소녀였다는 것을 인상깊게 봤는데

문인들도 산문(소설 , 수필)에 강한 타입과 운문(시 , 가사)에 강한 타입이 나뉘는데

 

보통 이성적인 부류들이 산문에 강하고

낭만 , 감정적인 부류들이 운문에 강한듯 하고

 

고려 당대 학자 김부식이 산문에 강해서

역사서 삼국사기 집필을 맡았고

라이벌 정지상은 운문에 강해서 시를 잘썼는데

 

박근혜는 냉철하다는 평도 있는 인물에

뭔가 이성적인 부류고

감성적인 인물은 아니었기에

수필 잘쓰고 괜히 어머니 육영수가

역사학과 가라 권유한게 아니었다는 생각이고

글 자체는 되게 섬세하게 잘 쓴다는 생각입니다

 

근데 나름 머리는 좋은데

정치인 할 수준까진 아니었다 생각하고

하여튼,,

 

[내 나라 , 내 땅 대한민국]

그렇게 박근혜는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눈가에 주름이 생겼지만 나이가 주는 흔적이 낯설지 않았고

가끔 자신의 얼굴에서 어머니 얼굴이 보일때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조용히 살아가는 나날은 매일 만족스러웠고

간혹 정치제의 권유를 받을때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예전 대학졸업반시기 어머니는 갑자기 결혼이야기를 꺼내보셨고

 

<육영수>네 이상형은 어떤 사람이니 ?

 

<박근혜>지금까지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답변을 못드리겠는데요

 

<육영수>곰곰이 생각해보고 귀띔해주렴.

좋은 벗을 만나 평생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덕에

갑자기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하고

눈코뜰새없이 바빠진 박근혜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신분때문에 연애도 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후 중년이자 대한민국 소시민이 된 박근혜는

하루는 아침일찍 두부같은 찬거리를 사려 동네 구멍가게에 갔는데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젊은 부부가 그곳 주인이었고

남편이 무거운 것을 들다 구슬땀을 흘리면 어린아내는 그 이마를 안쓰럽게 닦아주었고

그렇게 젊은 부부가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박근혜는 일부로 큰 슈퍼를 포기하고 그곳의 단골손님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박근혜는 나이가 들며

정치인이 되고 나서도 점차 젊은 사람들과 만남을 좋아했고

그들의 청춘의 패기와 당당한 모습들은 박근혜에게 큰 위로도 되고

그들과 같은 힘이 생기는 기분이었습니다

 

<박근혜>우리 젊은이들에게 아버지 , 어머니 세대가 가졌던

'할 수 있다' 는 정신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부모세대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다

우리 젊은세대는 대학민국을 세계 최고의 나라로 만들어 낼 것이

틀림없다

 

청년들과 박근혜 대통령

 

그렇게 박근혜는 어느덧 혼기도 놓친 노처녀가 되었지만

점차 부모님이 힘써서 가꾸어낸 대한민국 ,

내 나라 , 내 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고

대한민국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청와대에서 나온후

주변에서는 대한민국을 뜨는게 어떻겠냐는 말도 나왔지만

박근혜는 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나라 , 내 땅에서

어디에 가서 산들 이 나라에서 사는 것만큼

당당하고 행복할까 싶었고

괴롭고 힘들더라도 내 나라에 나의 인생과 뼈를 묻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IMF 경제위기]

1997년 IMF 경제위기가 터지며

박근혜는 큰 충격을 받았고

텔레비전이서는 온종일 부도 , 경제위기 , 대량실업사태와 사람들의 생활고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됬고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박근혜는 이런 기사들을 보고 가슴 밑바닥부터 분노가 솟아올랐고

어떻게 세운나라인데 , 그렇게 국민들 한명한명의 피땀으로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박근혜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가 얼마나 사람들이 굶어죽는 가난한 나라에서

그래도 끼니걱정은 안할정도로 만든 것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자란 인물이었고

 

미국의 원조 외엔

아무도 돈도 빌려주지도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에

주부들은 머리카락을 팔아 쌀과 반찬을 사고

그렇게 모인 머리카락은 가발로 만들어져 수출되고

돈빌려주겠다는 나라도 없어서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 눈물흘리며 겨우 1억 4천마르크를 빌릴 정도였고

수많은 젊은이가 가난을 벗어나보겠다는 일념으로

먼타국 외국땅에 청춘을 바친것을 박근혜는 눈으로 보고 자랐는데

 

IMF 로 그렇게 쌓아온 나라 경제가 송두리채 흔들리는  것을 본

박근혜는 을지로 앞 길을 줄게 선 무료배급소에서 줄선 노숙자들을 바라보며

울분을 삼켜야 했고

 

<박근혜>IMF 가 터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가족과 편안한 저녁을 즐기고 있을 터였다.

누가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었을 저 사내의 어깨를 저토록 왜소하게 만들었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IMF 당시 노숙자들 , 노컷뉴스

 

한숨도 나왔고 밥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신문과 텔레비전 , 어느 한 곳에서도

누구하나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이 없었고

18년전 돌아가신 아버지탓만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이제와서 외환위기를 60 , 70년대 산업화 탓으로 돌린다는게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박근혜는 이전 사생활도 없고 무한한 책임을 필요로한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일반인으로 지낼동안 정치권 입문제의를 한사코 거절해왔는데

IMF 가 터지자 이 나라를 위해 내가 작게나마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생각하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남은 생을 모두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졌고

정치인 박근혜의 길을 가기로 다짐합니다

 

정치인 시절 박근혜(야당때는 논리 오졌음) , 오마이뉴스

 

좀 낯간지러운 미화가 있으나

박근혜 지지자들의 말 등에서는 이때 박근혜의 심리가

불행한 가족사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을때

박근혜 역시 그때 이미 죽은 몸이었고

이때부터 죽을힘을 다해 용기를 가지고 나라를 위해 정치계로 나섰다고도 하고 있습니다

 

<라봉봉>쓰다보니 너무 이야기가 길어졌고

박근혜 책을 여럿 읽어보니

오해나 지나친 폄훼도 많다는 생각이고

뭔가 불쌍한 느낌이 너무 많습니다 (ㅠㅠ)

 

근데 그 빈틈을 최씨일가가 파고든거 같고

근데 이 심령술이나 최면조종은 솔직히 ㅈㄹ인데

상상력을 너무 나가면 안되더라도

또 한편으로는 창녀나 그런거한테 설계나 공사당한다는 말이 있듯이

붙어다니며 이용당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몇일전에 썸머워즈라는 애니를 감명깊게 봤는데

(옛날 명작애니인데 너무 늦게봄 ㅠㅠ)

 

거기 나이 먹을대로 먹고 지혜로운 할머니(진노우치 사카에)가

거대한 저택 명문가 주인으로서 대가족들을 이끌고

젊고 어리고 중장년 남자 , 여자 할것없이

대가족이 현명한 할머니의 카리스마와 지휘에 따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이상적인 모습의 부드러운 여성리더였고

아마 박근혜도 조금더 현명하고 포용력이 강했더라면

그런 인자한 할머니 대통령이 됬지 않았을까도 싶고

 

박근혜도 완전 무능하진 않았기에

박근혜가 여성 지도자 스타트를 잘 끊어줬다면

제2의 박근혜 , 제3의 박근혜도 계속 나왔을텐데

아쉬운 면이 많이 있습니다

 

썸머워즈 애니에서 사카에 할머니가

한 말이 마음에 남았는데

사카에 할머니는 함께 모이는 것을 강조하며

 

'가장 나쁜것은 외로움과 배고픔이다'

 

라며 유언으로

 

'힘든 일이 있더라도 같이 모여 밥을 먹어라'

 

라는 간단한 유언을 남기고 죽는데

 

결국 박근혜는 최태민이나 최순실보다

친구가 ,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박근혜의 최대 약점이었고

사상초유의 탄핵이라는

너무 비극적인 여성대통령이 됬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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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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