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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여왕시기 인물들>

[딸부자 진평왕]

[삼국통일전쟁의 시작]

[한국위인 삼국통일 불세출의 명장 김유신]

[김유신과 이순신]

[한국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

[대나무같은 절개 죽죽]

[비담의 난]

[태종 김춘추와 태종 이방원]

[미녀여왕 진덕여왕]

[일가족 전원 자살돌격 비녕자]

[마지막 성골 진성여왕]

<라봉봉>

 

[딸부자 진평왕]

그렇게 진평왕은 54년이라는 긴 재위를 마치고 사망했는데

진평왕 시기동안 진흥왕 시기 신라에 밀린 백제가

무왕이라는 마지막 명군을 맞이하며

다시 국력을 회복하고 일어나기 시작해

신라에 공세를 가하고 있었고

신라는 진흥왕때 한강유역을 확보한 뒤

한강유역의 곡창지대 확보 및 중국과의 직접교류로

선진 , 강대국이 되는 발판은 얻었지만

신라의 한강유역 점령으로 백제와 고구려의 국경을 막힌 상황이었고

이로인해 신라는 북으로는 고구려 , 남과 서로는 백제의 공세에

샌드위치되는 신세가 되었고

동서남북으로 공세에 시달리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고

딸만 셋인 딸부자였는데

 

첫째딸 김덕만은 여승이 된다고 출가한 상황이어서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고

 

둘째딸 선화는 삼국에서 가장 이름난 어여쁜 아가씨여서

백제왕손 서동이 마를 판다고 꾀를 써서 획득해버려서 백제로 시집갔고

 

셋째딸 문명은 김용춘(김용수)에게 시집갔는데

 

(조선상고사 기록으로 김용춘 부인이 진평왕딸 천명공주기에

문명이 천명인듯)

 

원래 신라국법에

왕이 아들이 없으면 사위가 승계한다는 법이 있어서

서로 다른 세 성의 박씨 , 석씨 , 김씨가 왕위를 이을 수 있었고

이는 고대 신라시기부터 이어져온 관습이었고

이로인해 첫째사위인 서동 즉 백제 무왕은

백제국왕이자 선화공주 남편으로서

신라 진평왕의 첫째 사위로서 신라 왕위를 잇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고

실제로 진평왕도 가장 예쁜 딸이었던 선화를 가장 아꼈는데

 

막상 예쁜 둘째딸 선화공주가 백제로 시집가서 떨어지게 되자

진평왕의 애정이 자연 셋째딸 문명공주에 쏠렸고

문명과 결혼한 둘째사위인 김용춘 역시

자신이 왕위를 잇고 싶었기에

무왕에게 왕위를 승계하는것을 적극 반대하였고

 

결국 골치아파진 진평왕은 둘을 달래기 위해

출가해서 승려가 된 첫째딸 덕만을 불러와서

왕태녀로 삼고 셋째싸위 김용춘에게 실권을 주는 형식으로

무왕과 김용춘을 둘다 달래려 했는데

 

무왕과 김용춘 역시 뜬금없는 덕만의 등장에

부들부들하게 되었고

백제 무왕은 신라 왕위를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신라를 침공하게 되었고

이로인해 백제와 신라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결혼동맹이라는 평화가 깨지고

동서전쟁이 시작되어 신라는 백제의 적극적 공세를 받게 되었고

양국 지휘관으로서 진평왕의 두 사위인

무왕과 김용춘(김용수) 의 왕위계승전이 시작됩니다

 

[삼국통일전쟁의 시작]

두 사람의 이기심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양국의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고

쇠가 쇠를 먹고 살이 살을 먹는 참극이 벌어졌고

 

그 시작이 '아막성 전투(602년)' 였는데

이전부터 백제가 원래 수도였던 한강유역(위례백제) 를 찾기 위해

계속 북진하다가 신라의 한강유역 요새화로 막혀버린 상황이어서

백제 무왕은 아예 목표를 요새화된 한강이 아닌 신라 수도 서라벌로 정해서

한강수복이 아닌 신라를 멸망시키려는 목표를 세워버렸고

신라 역시 핵심지대였던 한강유역에 대한 병사들을 뺄 수도 없었기에

무왕의 전략은 맞아떨어져 신라는 백제의 대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하고

백제는 이전 관산성 전투의 패배와 한강유역 상실로 크게 위축됬다가

이때의 승리로 점차 자신감을 찾고 신라 멸망을 위해 신라를

군사적 , 외교적으로 고립시킵니다

 

사실상 삼국통일전쟁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인 전투가

아막성 전투라 생각되고

사실 삼국통일전쟁이

무슨 고구려 백제 신라 세 조선이 연합하여

외세에 맞서고 우리민족끼리 지상락원(ㅋ..)을 이루자라는

고고한 뜻이 아니라

그냥 개인의 이기심과 공명심으로 시작된 면이 있고

 

백제 무왕 즉 서동이 젊을때

맨날 지상파 3사에 나오던 존예인 1군 아이돌 공주 한 번 먹어보려고

머리깎고 신라 수도까지 잠입해

서라벌에 음담패설을 퍼트려서 공매도 친후

디스패치랑 신라백성들에게 헛소문으로

선화가 계속 밤마다 이상한 어깨들이랑 호텔에 들어간다고

AI 합성사진을 뿌려버렸고

졸지에 걸레가 되버린 선화공주(처녀)가 떡락하고

방송국에서 퇴출되고 민심 나락가자

걸레로 낙인되어 삶이 피폐해진 공주에게 접근해

 

'나랑 결혼 안하면 확 이 마랑 함께 불질러 버린당께 !!'

 

하고 약간의 위협 + 가스라이팅해서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선화공주를 빠르게 범해서

서동은 선화공주 남편이자 백제 국왕에까지 오를 수 있었고

 

원래 신라인들도

서동의 이런 신라왕실을 상대로 한 지략과 꾀 , 무모함과 도전정신 ,

땅속의 장어인 마를 자주 먹어서 좋아진 스태미너 하나만큼은 인정해주었는데

서동새끼가 백제 왕위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능글능글거리며 더 나대면서 아예

신라국왕까지 넘보는 전라도 본색을 계속 드러내버리니까

신라인들과 김용춘(김용수) 는 개빡친 상황이었고

 

무왕(서동) 역시 Gas lighting 이 끝나서 Brain control 이 완료 되버린

와이프 선화와 결합해 선화에게 정보를 얻고 선화의 조국인 신라를 침공하며

아막성전투가 시작되며 삼국통일전쟁이 시작된거고

 

그렇게 아막성 전투가 602년이고

신라장군 김유신이 595년에 태어났는데

아막성 전투가 시작되며

일반적 영토확장전쟁이 아닌

수도를 노리는 '멸망전' 이 시작되버리자

신라 백제 양국 백성들은

이떄부터 전부 징집되어 전선으로 끌려가는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5~6세기 당시

대략 고구려 인구가 350만 , 백제 380만 , 신라 85만 정도니

백제에 비해 인구가 택없이 적었던 신라는

이전에 쓴 설씨녀 이야기처럼

노인네들도 징집하던 상황이 된 것이고

당시 신라의 귀족들도 계속 장렬하게 전사하던 상황에

신라 장정이라면 장정들이 전부 끌려가던 상황이니

김유신이 7살때 아막성 전투가 벌어졌으니

 

신라 고위귀족자제였던

김유신은 서라벌에서 소꿉장난하며 놀던 시기부터

친구들의 형 , 부모 , 삼촌들이 전부 전쟁터에 끌려가는 장면과

옆집 누구누구네 누가 죽었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매일같이 듣고 자랐을 것이고

이런 성장환경속에서 소년 김유신은 그렇게 삼국을 병합하려는 꿈을 꾸게 됩니다

 

[한국위인 삼국통일 불세출의 명장 김유신]

김유신은 15세때 화랑이 되었고

김유신 할아버지가 김무력으로서 가야국 마지막 왕자이자

관산성 전투의 승장으로서 진흥왕시기 신라 핵심장군이었고

아버지 김서현은 고위귀족장군이라 나름 로얄의 피였던 김유신이었기에

수많은 화랑들이 김유신을 따르며 용화향도라 불렀고

17세때 김유신은 고구려 , 백제 , 말갈이 침범하는 것에 비분강개해서

외적을 평정하려는 뜻을 품고 혼자 석굴에 들어가 수련하는데

하늘에 기도를 올리자 한 신선같은 노인이 나타났고

소년김유신은 범상치 않아 보이는 노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방술을 알려달라했고

노인이 가만히 있자

눈물을 흘리며 예닐곱 번 거듭 간청하자

노인은

 

<노인>그대가 어린 나이로 삼국을 병합하려는 뜻을 품고 있으니 ,

이 또한 장하지 않은가 !

 

하고는 비법을 가르쳐주며

 

<노인>부디 함부로 전하지 말라 !

만약 이를 의롭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재앙을 받으리라

 

하고는 작별했습니다

 

김유신의 수련 기록화

 

(삼국지의 황건적 장각도 이렇게 방술을 받았다는데

동양식 전설이 다 비슷비슷한듯싶고 ㅋ..

김유신은 금기를 지키고 영웅이 되고 장각은 지키지 않아서 망한듯ㅋㅋ)

 

18세에도 김유신은 열박산 골짜기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니

빛이 내려와 보검에 실리고 칼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았고

 

어린시절부터 이어진 백제 무왕의 대공습속에서 성장한 소년 김유신은

그렇게 삼국통일(백제멸망)의 꿈을 꾸게 됩니다

 

원래 김유신 이야기를 쓰려다가

이전에 너무 많이 썼기에

생략하기로 하겠고

더 자세한 이야기는

어린이 개인이야기 김유신편에 있으니

링크걸어놀테니 참조하시고

 https://labongbong.tistory.com/1277

 

 

김유신이 당대 신라인들에게도 굉장히 초인적인 인물이자

인간이 아닌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는데

이것은 바로 김유신이 어린시절에 삼국통일의 꿈을 꾸었기 때문이라 생각되고

사람은 그 꿈의 크기만큼 성장하기에

김유신은 성장하며 수많은 유혹과 시련속에서도

꿋꿋이 삼국통일을 생각하며 나아갔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유신과 이순신]

김유신 이외에도

한국사의 또한명의 초인적인 장군인 이순신 장군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은 어려운 성장환경 , 약해진 국가속에서 어려운 나라를 지키려 급하게 일어난

국토수호형 장군이어서 나라 지키기만 생각하신 분이라

동시대 정치인들에게 모진 고초를 자주 겪었고

 

과거 서울시청 앞 김유신 동상(1971년 , 박정희 정부때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김유신 , 유관순 , 이순신 상을 서울이나 학교마다 만들었음)

 

광화문 이순신상 , 서울시

 

김유신 장군은 신라가 강대국인 시절(한강유역 장악) 속에

백제와 고구려의 반격속에서 성장해

아예 삼국을 통일하려는 꿈을 품었던

영토확장형 장군이어서 신라 국정을 넘어 고구려나 백제의 내정까지 간섭을 시도했기에

아예 정치인까지 겸하던 인물이었고

 

완전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가세가 기운 양반가문에서 성장한 이순신이

방씨 부잣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충청도 부자였던 장인 방진의 경제적 도움으로 문과에서 무과로 전향해

32세에 겨우 무과에 합격해 고생고생하며 벼슬길에 오르고

죽을때까지 고통만 겪다가

왜구들 도망치고 이제 좀 편해지려는데

마지막에 왜구가 쏜 총알에 맞고 돌아가신 것과 달리

 

김유신은 애초에 할아버지 김무력이 가야왕자로서

증조할아버지가 가야 마지막 임금인 로얄출신으로서

항복한 왕손으로서 신라에 넉넉히 땅과 하인들도 받은 집안이었고

김무력이 신라 전쟁영웅이고 아버지 김무력도 고위귀족이었기에

마마보이에 경제적으로도 부족함 없이 자라서

술취하고 말에 올라탔는데 말이 자율주행모드로

전여친 집으로 안내해주니 기분나쁘다고

비싸디 비싼 말 목을 쳐서 죽여버린 금수저새끼였고

 

이순신이 어려운 시절부터 고생고생하며 눈물흘리며 수련한 것과 달리

김유신은 대충 국무총리 손자정도의 금수저로서

어린시절 술집에서 기생(천관녀 ㅠㅠ) 젖탱이도 주물럭거리다가

엄마한테 혼나고 천관녀와 눙물의 이별하고

주변 마을사람들 다 징집되서 전선에 나가는 시국속에서

수련에 초집중해 삼국통일의 꿈을 품게 되었고

 

짜식아 그녀 보기를 멈춰 나를 봐 우리에겐 사명이 있어 미녀는 일시적이고 삼국통일은 영원하지

 

이후부터는 정신차리고 여자도 끓고

김유신은 소년시절 만난 기생 천관의 품을 그리워하며 지조를 지키다

60살까지 결혼하지 않았고 (중간이 없음ㅋㅋ;;)

 

결국 노장군 김유신은 성관념이 왜곡되어버려

10대인 여조카(친여동생의 딸 ;;)와 결혼하며 79세로 사망할때까지

4~50살 연하 와이프와 9명의 자녀를 낳아버렸던

특이한 생명력을 가졌던 인물이고

 

김유신과 이순신 외에도

 

고구려 을지문덕과 연개소문 ,

백제 계백 ,

고려 강감찬과 이성계

등 수많은 한국사 명장들이 있지만

 

유독 신라 김유신과 조선 이순신은

한국인들에게 초인적 존재로 묘사됬고

 

(연개소문도 초인적 면은 있었지만 잔인해서 존경은 힘듬..)

 

일본 생산력이 조선 생산력을 넘어서며 점차 강성해지던 시기에 출생하시고

일평생 나라를 위해 사셨지만

수많은 정치인들의 질투와 고초까지 겪고

전쟁터에서 전사하실때까지 불행하기만 했던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달리

 

김유신 장군은 나름 좋은 집안 , 좋은 나라(주변국보다 강성한) 에서 성장해서

살아서 삼국통일도 보고 정치인들과 국왕에게도 깍뜻이 대접받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은 인물이라

럭키 이순신이 김유신이고

언럭키 김유신이 이순신인 그런 면도 사실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진짜 나라 지키려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면

김유신 장군은 나라지키려는 마음 외에도

소년시절부터 품어온 삼국을 통일하겠다는 꿈으로 버틴 인물이 아닐까 싶고

삼국사기에 김유신 열전에 나온것 처럼 '삼국을 병합하려는 뜻을 품었다' 고

김유신처럼 역사서에 나올만큼 구체적이고 정확한 목표(꿈) 이 있는 인물은

역사에도 참 흔치 않고 괜히 김유신 장군도 한국위인전에 실린 인물이 아니고

 

역사서에 실제로 나오듯 어린시절부터 삼국통일의 꿈을 꾼 김유신처럼

이전 지증왕 역시 순장을 폐지해야겠다는 꿈을 꾼 인물이 아닐까 싶고

세종대왕 역시 한자를 몰라 고초를 겪는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며

새로운 문자를 만들겠다는 꿈을 꾼 인물이 아닐까 싶고

개인 나아가 세계 그리고 역사를 움직이는

인간의 꿈의 힘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진평왕대는 백제 무왕의 침공이 시작되며

삼국통일전쟁이 시작되는 혼란의 , 전국 시기였고

진평왕이 즉위 54년동안 똥을 열심히 싸다가 아들없이 사망하자

 

(긴 재위와 여러 전설이 많은 것에 비해 명군은 아니었다 생각함;;)

 

결국 왕태녀였던 첫째딸 김덕만이 왕위를 이어

한국사에 전례가 없었던 최초의 한국 여왕 , 여성 지도자

'선덕여왕' 이 즉위하게 됩니다

 

[한국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

선덕여왕은 이름이 착할 선 덕 덕 자로 착하고 착하다는 뜻으로

왕으로서는 최고의 시호를 받은 인물이고

한국 최초의 여왕이자 세계적으로도 몇 안되는

실제로 실권을 가졌던 여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여성지도자인데

그럼에도 찬란한 이름과 역사적 의의에 비해 능력은 별로 없었던 인물이라 생각하고

 

(남성 지도자들과 같은 기준으로 적용해보면 평하타치 임금이란 생각 ;;)

 

하여튼 ,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명석하고 민첩했다하고

아들없던 진평왕 첫째딸로서 덕만은 왕위를 이어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이 됩니다

 

진짜 여왕님임 이런 여왕님 아님 ;;

 

정치적으로는 엄청 유능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백제가 침공하는 와중에

스님말 듣고 황룡사탑을 세우는 대공사를 하며

황룡사탑을 지으면 백제와 주변 국가들이 항복해올것이라 여기며

요행에 매달렸는데

 

선덕여왕이 만든 황룡사 구층목탑

 

선덕여왕이 사람 자체는 덕성있고 너그러운 성품이어서

무능하긴 했는데 아버지 진평왕마냥 크게 고집부리거나

신하들 말 안들으면서 나라 말아먹을 수준은 아니었고

그냥저냥 적당히 유능한 신하들말 잘 들으면서

여왕노릇하며 미소년 아이돌들(유신X춘추) 성장해가는거 즐기면서

시간때우다 사망한 인물이라 엄청 나쁘게 보기도 어려운 인물이고

 

늠름한 여왕님과 좌유신 우춘추 (이런 짤이 도대체 왜 현실에 존재하는 걸까요 ?..)

 

태종 이방원이 잔혹했어도 가장 큰 업적이

아들 세종대왕을 발견해냈다는 점이 있듯이

 

선덕여왕이 무능하긴 했어도

김유신(무)과 김춘추(문)를 발굴해서 그들을 차기 정치가로 밀어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는 점에서

나쁘게 보기도 어렵고

 

선덕여왕이랑 자주 비교되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여자의 몸이라는 한계속에

셰익스피어(문) , 드레이크(무) 등 훌륭한 인물들을 밀어주어

나라를 융성시켰다는 비슷한 면도 있고

 

사실 공부를 못하거나 돈이 없어도

유능하고 현명한 사람들 말을 잘 듣는 것도 지능이고 지혜라 생각하기에

옛날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도 능력치는 평범한데 (여자의 체력과 비슷)

주변 엘리트 책사들이 불편한 말 해도 말 잘들었고

그 또한 영웅의 자질이라 생각하기에

선덕여왕도 나름 미화될 이유는 없지않아 있던 여왕이었고

 

선덕여왕이 클레오파트라 여왕이나 엘리자베스 1세마냥

본인 자체가 새 시대를 열 만큼 담대하고 엄청 똑똑하고 유능한 타입은 아니었고

 

(막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극도로 미화된 소녀 덕만마냥

사막가서 모험하고 장기알 집어삼키고 지랄떠는 그런 타입이

절대 아니었음ㅋㅋㅋ;;)

 

이런저런 상황속에 억지로 여왕에 오르고

백제와 고구려의 공격속에 재위기간내내

뚜렷히 대처하지도 못하고 오락가락하며 혼비백산한 여왕이었지만

그냥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변 유능한 사람들을 믿어주고 따라주었다는 점만 봐도

어느정도 현숙한 여왕이었다는 생각은 들고

그냥 평하타~평타정도 치는 여왕이었고

나름 그녀도 전례가 없는 최초의 여왕이자 여성지도자라는

부담감도 컸을 인물이기에

평타정도만 쳐주고 김춘추랑 유신이 키워준것만 해도

그냥저냥 한 인물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괜히 (역사왜곡에 미화가 심한드라마인 ;;) MBC 선덕여왕의

캐치프라이즈가

 

'사람을 얻는자가 천하를 얻고 , 시대의 주인이 된다'

 

가 아니라는 생각이고

 

MBC 사극 선덕여왕

 

한고조 유방에게

한신(장군) , 소하(보급관) , 장량(책사) 라는 스타들이 있었다거나

삼국지에 와룡이나 봉추 두 사람중 하나만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유비가 오호대장군 외에도 와룡(제갈량)과 봉추(방통)를 둘 다 얻고

삼국지의 정통주인이 되듯

 

선덕여왕 김덕만은 김유신(장군) 과 김춘추(외교관) 가 있었고

김춘추는 원래 왕실일가니 그렇다 쳐도

김유신을 본격적으로 키워준건 선덕여왕이었기에

김유신에게 무열왕이나 문무왕은 친구나 조카라

왕이나 보스기엔 그래도 가족같은 관계고

김유신 장군이 진심으로 모셨던 유일한 국왕이 선덕여왕이었을 것이고

괜히 김유신 일파에 의해 선덕 시호를 받고 신라 최고의 여왕으로

찬양받은게 아닙니다

 

하여튼..

선덕여왕이나 임금들 이야기는

이전에 많이 했으니 이전 이야기를 읽어보시기 바라고

김유신이 어린시절부터 삼국을 병합할 꿈을 꾸었다면

선덕여왕때 김춘추의 딸 김고타소가 대야성전투때 백제군에게 죽어서

김춘추 역시 백제를 멸망시키겠다 결심하였고

 

어린시절부터 축구를 즐기던 친구였던

김유신과 김춘추라는 두 영웅은 빛과 그림자마냥

한쪽은 장군으로 , 한쪽은 정치가로 활약하며

서로를 도우며 새 시대를 열어나가려 노력합니다

 

[대나무같은 절개 죽죽]

선덕왕시기도 진평왕시기때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시기였고

642년 선덕왕 11년 8월 가을

백제장군 윤충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대야성을 공격합니다

 

이전에 대야성 도독 김품석(김춘추 사위 , 고타소 남편)은 자신의 부하인

사지 검일의 아내가 아름다워서

검일의 아내를 빼앗은 일이 있었는데

 

검일은 이를 한스럽게 여기던 참이었고

이러한 이유로 그가 이때 백제군과 내통해서

창고에 불을 지르니

성 안의 민심이 흉흉하고 두려워해서

성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김품석의 보좌관 아찬 서천은 성에 올라 윤충에게 말했습니다

 

<서천>만약 장군이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면 성을 바치고 항복하겠습니다

 

윤충이 대답했습니다

 

<윤충>만약 그렇게 하고도 공과 내가 함께 만족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 

그 때는 밝은 태양이 있으니 태양을 두고 맹세합시다

 

서천이 품석과 여러 장병들에게 권고하여 성 밖으로 나가고자 했지만

죽죽이 이들을 제지하면서 말했습니다

 

<죽죽>백제는 말을 번복하는 나라이므로 믿을 수 없습니다

윤충의 말이 달콤한 것은 필시 우리를 유인하려는 것이며

만약 성 밖으로 나간다면 틀림없이 적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쥐새끼처럼 숨어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호랑이처럼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품석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성문을 열었고

사졸들이 먼저 나가자 백제가 복병을 출동시켜 모조리 죽여 버렸습니다

 

김품석이 나가려다가 장병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자기의 처자를 죽인 다음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였습니다

 

(김춘추가 사위복은 없었고

김품석은 장인이 김춘추인데도 

부하 아내나 빼앗다가 궁지에 몰려 마누라 죽이고 자결함 ;;)

            

죽죽이 남은 군사를 수습하여 성문을 닫은 채 방위하고 있는데 

사지 용석이 죽죽에게 말했습니다

 

<용석>지금 전세가 이러하니 틀림없이 성을 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항복하고 살아서 후일의 공적을 도모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죽죽이 대답하기를 

 

<죽죽>그대의 말도 당연하지만 ,

나의 아버지가 나를 죽죽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나로 하여금 날씨가 추워도 시들지 말며 ,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는 것이니 ,

어찌 죽기가 두렵다 하여 항복하여 살겠는가 ?

 

라 하고

드디어 힘껏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용석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선덕여왕이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죽죽에게는 급찬을 추증하고 , 

용석에게는 대나마를 추증하였으며 ,

그들의 처자에게 상을 주어 왕도로 옮겨 살게 했습니다

 

고구려 , 백제의 침공에 선덕여왕대 신라는 궁지에 몰리던 시기였고

이에 당나라에 가서 당나라 황제에게 도와달라 부탁하지만

당황제는 그대의 나라는 여인을 임금으로 삼았기에

이웃나라에게 업신여김 당하는 것이니까

신라가 그냥 당나라에 항복하고 당나라가 되는게 어떠겠냐 꼽주었고

이때 당황제는 신라 사신의 됨됨이가 별로라 도와주기 어렵다 탄식했습니다

 

[비담의 난]

선덕여왕 14년 11월 겨울

선덕여왕은 이찬 비담을 상대등으로 삼았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비담을 주인공급 비중있는 주요인물로 묘사하며

선덕여왕의 애인이고 사실 사랑했는데 어쩌구 저쩌구 관계가 꼬여서

오해하다가 반란일으키고 눙물흘리며 이별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묘사하지만

실제론 작가의 상상이자 비담에 대한 별다른 정보는 없으며

선덕여왕도 사람인데 진짜 비담이 애인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하여튼 비담은 상대등이 된 다음해

 

선덕여왕 16년

비담과 염종은

 

<비담과 염종>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고 말하며 반역을 해서 병사를 일으켰는데

선덕여왕은 두려워하며 궁 안에서 이들을 방어했습니다

 

비담 등은 명활성에 주둔하고 왕의 군사는 월성에 진을 친 채

10일 동안 공방전이 계속되었으나

싸움이 끝나지 않았고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습니다

 

비담 등은 사졸들에게

 

<비담>별이 떨어진 자리에는 반드시 피가 흐른다는 말이 있으니 ,

이는 여왕이 패전할 징조이리라

 

라고 말했고

이를 들은 병졸들의 함성이 천지를 흔들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두려워 했는데

김유신이 선덕여왕을 뵙고 말했습니다

 

<김유신>길흉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으니 오직 사람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붉은 새가 모여 들어 주가 멸망하였고 , 

기린을 잡았기 때문에 노 나라가 쇠퇴했으며 ,

꿩의 울음으로 인하여 고종이 흥기했고 ,

용의 싸움으로 인하여 정공이 창성해졌습니다

이로써 덕은 요사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별의 변괴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김유신은 말을 마치고 허수아비를 만들었고

거기에 불을 붙여서 연에 실어서 띄워 보냈습니다

 

이는 마치 별이 하늘로 올라 가는 것 같았고

다음날 김유신은

 

<김유신>어제 밤에 별이 떨어졌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 갔다

 

는 소문을 내게 하여

적들로 하여금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게 했습니다

 

김유신은 또한 백마를 잡아 별이 떨어진 자리에 제사를 지내면서 다음과 같이 기원했습니다

 

<김유신>천도에는 양이 강하고 음이 부드러우며 ,

인도에는 임금이 높고 신하가 낮습니다

 

만일 이 순서를 바꾸면 큰 변란이 일어납니다

지금 비담의 도당이 신하로서 임금을 모해하며 ,

아랫사람으로서 웃사람을 범하니 ,

이는 이른바 난신적자로서 사람과 신령이 함께 미워할 일이요 ,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할 일입니다

 

지금 하늘이 이에 무심하여 도리어 별의 변괴를 왕성에 보인 것이라면 ,

이는 신이 믿을 수 없는 일이니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하늘의 위엄으로서 인간이 소망하는대로 ,

선을 선으로 여기고 악을 악으로 여기게 하여 ,

신령을 탓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그리고 나서 김유신은 장졸들을 독려하여 분연 돌격했고

비담 등은 패하여 도망쳤습니다

 

김유신은 그들을 추격하여 목을 베고 구족을 멸했습니다

 

비담의 난은 김유신에 의해 철저히 진압됬고

비담의 난이 일어난 해 선덕여왕도 오들오들 떨다가

사망했고

김유신 장군과 김춘추는 그렇게 선덕여왕의 장례와 뒷수습 및

비담의 난 진압과 처벌들을 주도하며

선덕여왕 사후 신라의 모든 전권을 가진 새로운 실력자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거의 박정희 사후 갑자기 권력을 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마냥

임금의 죽음+반란진압 이라는 상황속에 급속한 권력교체가 이뤄짐)

 

별개로 비담은 불교식 이름이고

춘추와 유신은 유교식 이름이기에

신라 불교계파와 유교계파가 대립했는데

춘추와 유신이 승리함으로서 신라는 유교국가화 되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태종 김춘추와 태종 이방원]

선덕여왕 사후

영리했던 태종 김춘추는 바로 왕위에 오르지 않고

 

마치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 이후 바로 왕위에 오르지 않고

믿을만한 친형이었던 정종을 왕위에 먼저 허수아비로 올리고

정종의 세자가 되어 왕이 될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갔듯이

 

태종 김춘추는 실권없는 허수아비 여왕을 올려서 한 번 더 여왕을 잇게해서

점차 자신이 왕이 될 준비를 해나갔고

김유신 장군이 이순신 장군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이방원이나 김춘추가 둘 다 태종 칭호를 받았다는 점 ,

로맨스가 존재한다는 점 (원경왕후 민씨 , 문명왕후 김씨) ,

브로맨스가 존재한다는 점 (하륜 , 김유신) ,

왕이 되기 전 문관으로서 격렬한 격동의 삶을 살았던 점 ,

엘리트 관료로서 중국에 다녀와서 주요한 문제를 해결했던 점 ,

중국에 무릎꿇은 사대주의자 (;;) ,

그래도 호걸기질이 있었다는 점 ,

자식농사 대성공했다는 점

 

등 비슷한 기질이 있고

유신과 순신 , 태종과 태종 나름 평행이론마냥

비슷한 구석이 있는 인물들이라 생각됩니다

 

 

[미녀여왕 진덕여왕]

그렇게 김춘추는 선덕여왕이 사망하자 왕이 되기 전

진평왕의 친동생 국반 갈문왕의 딸 김승만을 왕위에 올려

한국사 두번째 여왕 '진덕여왕' 을 옹립했고

 

선덕여왕이 진평왕에 의해 왕태녀로 삼아져

정식으로 옹립되어 정통성이 강했던 것과 달리

진덕여왕은 선덕여왕 사후 급하게 김춘추와 김유신 일파에 의해 옹립되었고

진덕여왕은 아무것도 모르던 얼굴 예쁘고 키 큰 순진한 아가씨 임금이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그냥 김춘추와 김유신이 해달라는데로 해주었고

이로인해 역시 김춘추와 김유신 일파에 의해

진짜 착한 여왕이라는 뜻의 진덕여왕의 좋은 시호를 받게 됩니다

 

(선한 호구 여왕 , 진짜 호구 여왕이라는

두 호구여왕을 모시며 성장한 김춘추일파들 ㅋ;;)

 

김춘추와 진덕여왕

 

위에서도 말했지만

본인 자체가 엄청 유능하거나 똑똑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주변 유능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지혜이고

본인이 허수아비로 옹립됬거나 쌓아온 경력이 아무짝에도 없음에도

사실상 주제를 모르고 기존 권신들 내치려다 사망한 임금들도 많기에

 

(공양왕이나 조선 1대 왕세자 이방석  ;; ㅠㅠ)

 

저는 괜히 되도 안되는 힘으로 맞서다

나락간 공양왕이나 이방석 사례를 보고는

차라리 조선 2대왕 정종이나 신라 선덕 , 진덕여왕처럼

유능한 동생 , 관료들에게 힘 실어주고

해달라는대로 해주고 왕되고 싶으면 왕 되게 도와주고

조용히 천수를 누리고 꿀빨며 사는것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기에

선덕 , 진덕여왕도 여왕을 떠나서 왕으로서의 삶도

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고

 

본인의 능력이나 지식이 부족해도

용인의 영역에서 성공한 지도자도 많았고

또한 본인의 지식이나 능력이 뛰어났던 현군들조차

본인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이들의 재능을 밀어주고 이끌어준

임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역시 역사만 잘하지 다른건 잼병이고

사람이 다 잘 할수는 없는 것을 알기에

다른 사람들이 역사를 모를땐 제가 도와주고 나서서 이끌어주고

또 제가 문외한인 분야는 나서지 않고

조용히 그들을 도와주고 밀어주는 편인데

 

꼭 뭣도 모르면서 나서고 나서야할때 가만히 있고

이런 놈들이 지금도 많다는 생각이라 ;;

선덕여왕과 진덕여왕도 여왕임에도 딱히 한 건 없지만

그냥저냥 김유신과 김춘추가 시키는대로 잘 하고

하지 말라면 가만히 있고 이정도만 해줘도

왕은 왕이기에 김유신과 김춘추에겐

눈물나게 고마운 여왕님들이었을 것이란 생각이고

괜히 선덕여왕이나 진덕여왕이 갑자기 그래도 내가 왕인데 하며

이래선 왕의 권위가 안선다면서 김춘추를 제거하려 시도하거나 했으면

곧바로 유신이 형님한테 철퇴맞고 효수되서 저잣거리에 가셨을 여왕님들인데

(여왕님에서 가축으로 급나락행;;)

안그래서 일단 신라의 삼국통일이 우리가 아는대로 흘러온 것입니다

 

하여튼 ,

진덕여왕은 특이한 기록으로는 생김새가 넉넉(풍만) 하고

아름답고 키가 일곱 자에 손을 내려뜨리면 삼국지 유비마냥 무릎 아래까지 닿았다하고

적당히 덕스럽고 아름다운 외모로서 여자 유비같은 타입의 여왕이 아니었을까 싶고

보통 우리가 블링블링 미녀여왕하면 선덕여왕을 떠올리지만

선덕여왕은 20대때 선덕여왕의 주연을 맡은 이요원 배우같은 미시여왕이 아니라

실제로 쭈글거리는 아줌마나 할머니 나이때 왕위에 올랐다는 말도 있고

 

진덕여왕이 외모가 아름다웠다는 기록(자태가 곱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7척이었고..)이 있는 것에 비해

선덕여왕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고 명민했다는 말만 있기에

 

(당대 사관들도 예의상이라도 최초의 여왕이신데

거참 예쁘다 한마디 써주지 죽어도 안쓰노 ㅋㅋㅋㅋㅋ)

 

그냥저냥 공부잘하게 생기고 착하게 생긴(^^;;) 버터페이스 여성일 확률이 높고

진덕여왕이 우리가 매체에서 상상해볼만한 키크고 나올데 나오고 들어갈데 들어가신

존경할만한 아름다운 미시여왕일 가능성이 큽니다

 

진덕여왕은 그냥 김춘추가 하란대로 했고

김춘추가 당나라가서 황제에 눈도장 한번 찍고 돌아오자

진덕여왕은 비단에다가 태평송을 써서 김춘추 아들 김법민을 당나라에 보내

당황제에게 바쳤고 대충 당나라는 최고고 당나라가 밝게 빛난다는 딸랑이송이라

보면 됩니다

 

[일가족 전원 자살돌격 비녕자]

진덕여왕시기 역시

백제와의 혈전은 계속되었고

진덕여왕 1년

백제가 대군을 거느리고 무산 , 감물 , 동잠 등의 성을 공격했는데

백제군은 정예군이었기 때문에 

김유신 장군이 고전하고 승리하지 못하여 사기는 꺾이고 힘이 빠졌습니다

 

김유신은 비녕자가 힘껏 싸워 적진 깊이 들어갈 뜻이 있음을 알고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김유신>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는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법이다.

오늘의 사태가 위급하게 되었으니 

그대가 아니면 누가 용감히 싸우며 기묘한 계책을 내어 

여러 사람의 마음을 격려하겠는가 ?

 

김유신이 이어서 그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은근한 마음을 표시하니 

비녕자가 재배(두 번 절하고)하고 말했습니다

 

<비녕자>지금 많은 사람 가운데 유독 저에게 일을 부탁하시니

가히 지기(친구)라 할 만합니다

진실로 죽음으로써 보답하여야 마땅하겠습니다

 

 

비녕자가 나와서 종 합절에게 이르기를 

 

<비녕자>내가 오늘 위로는 나라를 위하고 아래로는 지기를 위하여 죽을 것이다

나의 아들 거진이 나이 비록 어리나 장한 뜻이 있어서 

틀림없이 나를 따라 함께 죽으려 할 것인데, 

만일 부자가 함께 죽는다면 집안 사람이 장차 누구에게 의지하랴 ?

너는 거진과 함께 나의 해골을 잘 수습하여 돌아가 그 어미의 마음을 위로하라

 

했고

말이 끝나자 비녕자는 곧 말에 채찍질을 하며 창을 비껴 들고 적진으로 돌입하여 

여러 사람을 죽이고 자기도 전사했습니다

 

거진이 바라보다가 나가려고 하니 합절이 말했습니다

 

<합절>대인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도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서 부인마님을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아들이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어머님의 자애를 저버린다면 

효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합절은 말 고삐를 잡고 놓치 않았습니다

 

거진이 말하기를 

 

<거진>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고도 구차하게 산다면

이것이 어찌 이른바 효자이겠느냐 ?

 

하고 

곧 칼로 합절의 팔을 치고 말을 달려 적진으로 달려들어가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이에 합절 역시

 

<합절>상전이 모두 죽었는데 내가 죽지 않으면 무엇을 하겠는가 ?

 

라고 말하고 

그도 역시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신라 군사들이 이 세 사람의 죽음을 보고 감격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진격하니 

향하는 곳마다 적의 예봉을 꺾고 진지를 함락시켰으며 

적군을 대파하여 3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김유신이 세 사람의 시체를 거두어서 자기의 옷을 벗어 덮어 주고 슬프게 울었고

진덕여왕이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예로써 반지산에 합장하고 , 

그들의 처자와 9족에게 은혜로운 상을 특별히 후하게 주었습니다

 

[마지막 성골 진성여왕]

진성여왕은 마지막 성골여왕이고

진성여왕 다음왕인 태종 무열왕때부터 진골임금시대가 시작되는데

오늘날에도 성골과 진골의 차이가 무엇이냐에 대한 여러 말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박혁거세부터 진성여왕때까지 28명의 임금을 성골로 ,

태종무열왕때부터 마지막 경순왕때까지 임금을 진골로 구분했다하는데

 

오늘날 학계에서는 지증왕-법흥왕-진흥왕-동륜태자-진평왕-선덕여왕의 계통의 왕실을

성골로 구분해서 왕위 정통성을 강화하려 했다고 보고 있고

 

제 생각은 지증왕이 쿠데타설이 있다보니

고구려 , 백제보다 더 혈통이 중시되고 폐쇄적 근친으로 혈통을 유지해왔던 신라왕실에서

지증왕계가 능력은 있는데 명분이 떨어지다보니 자신의 일가를 성골로 지칭하고

권위를 강화하려 시도했고

당장 신라에서 지증왕-법흥왕-진흥왕 이렇게 3대가

연이어 최전성기 명군라인이 터지다보니

신라 백성과 왕실내에서도 진짜 성골의 피가 흘러서 명군이 이어지나 이러면서

신라 왕가에 환상을 가졌을 수 있고

 

조선시대에도 삼종혈맥이라고 효종-현종-숙종을 삼종이라 부르며

영조는 자신이 삼종혈맥의 피를 이었다 자부했는데

효종현종숙종 세 임금이 모두 명군도장이 쫙 찍힌 인물이었기에

숙종 아들이지만 어머니가 천민출신(숙빈최씨)이라

혈연컴플렉스가 있었던 영조는 이를 굉장히 중요시여기며

본인이 숙종의 아들이자 세 명군의 피를 이었음을 내세우며 권위를 강화했고

 

신라 성골계통도 신라 성군이었던 지증왕 후손들이

쿠데타로 집권한 아버지 , 할아버지의 권위를 강화하려

지증왕을 성골로 지칭하고 대충 얼버무렸는데

법흥왕 , 진흥왕때 가야가 항복해오고 한강을 확보하며

신라영토가 두배씩 늘며 신라 왕실의 권위가 극도로 강화됬기에

성골의 권위는 처음 의도보다 더 강해졌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당장 삼성 이병철-이건희 부자만 보아도

아버지대에 국내재계 1위찍고

아들(건희쨩)대에 미국대기업들과 어깨를 견주는 세계 5위권 기업으로 떡상해버려서

한국인들에게 삼성일가에 대한 시선이 굉장한데

현재도 당연 이병철과 이건희의 피를 이은

3대인 이재용에 대한 기대도 엄청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병철 아들이 이맹희랑 이창희도 있었는데

어쩌구 저쩌구 논란들로 삼남인 이건희가 삼성을 승계했듯이

부모가 대단하다고 무조건 자식이 대단한 것은 아니라

사실 그런 기대는 일찍이 접는 것이 좋고

그냥저냥 훌륭한 아버지가 있으면

밥상머리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겠구나 싶을 정도로 생각하고

일반인들보다는 우수한 교육과 환경에서 자라서 더 나을 수는 있겠다 정도로

생각하는게 좋지

막 아버지가 엄청 대단하다고 자녀들이 엄청 대단하게 유전되는건 또 아니고

아버지만큼 노력하지 못하면 부모보다 못한 자식이 되는 것이고

 

(삼종혈맥이자 똑똑한 명군이었던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광증으로 미쳐버린 것도 있고

또 반대로 미쳐버린 아버지 사도세자를 둔

정조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조선 후기 최고 명군 정조가 된 면도 있으니

범죄자 자식이던 금수저던 혈통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단 말씀 !)

 

원래 재산이란건 이루긴 수십년 걸릴만큼 어렵지만

잃기는 하루만에 잃을 수 있을만큼 매우 쉽기에

부자들도 3대를 못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닙니다

 

이런거 때문에

지증왕계로 이어지는 신라 성골도

점차 무뎌져가다가 마지막엔 조금이나마 희망을 부여잡으려고

주변국들의 비웃음에도

여자왕까지 올리는 무리수를 두어보지만

결국 선덕여왕 , 진덕여왕도 별다른 정세판단력은 없고

그냥 김유신과 김춘추의 거수기 역할정도에 머무른 여왕이었고

김춘추의 즉위로 결국 다시 신라가 진흥왕 사후 모처럼만에 제대로된 명군이 탄생해

통일신라라는 새 시대를 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라봉봉>신라이야기가 갈수록 텍스트압박이 커지는데

이전에 많이 반복한 이야기가 많고

삼국통일전쟁시기 동안 수많은 장군 , 백성들이

전쟁에 희생된 모습입니다

 

나라와 임금을 위해 희생한다..

이게 유교적 사상의 영향을 당시 신라가 깊게 받았음을 의미하는데

김춘추 , 김유신이라는 유교식 이름으로 대표되는 신세력의 등장은

불교식 세력을 점차 밀어내고 유교적 문신 , 무신들을 배출해냈고

당시는 유교초기라 신라에서 나라를 위해 일가족이 전부 자살돌격하고

이런게 굉장히 가치있게 여겨지는 풍조가 있었고

당대 신라 인구가 워낙부족해 이런 가정이 비녕자 외에도 여럿이었을 것입니다

유교 학론이 좀더 발전된 고려 , 조선시기때부터는

이렇게 전부 무식하게 자살돌격은 안하고 제사지낼 장남이나 아들 한명은 남겨두고

전장에 나가는 그런 좀 더 배려적인 형식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성골이니 진골이니 육두품이니 이런 골품제가

당대에도 존재했지만 당대 신라인들에게 그렇게 차별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고

귀족과 백성 , 노비들까지 백제와의 전쟁때 대동단결했는데

그 이유는 어짜피 귀족자제들도 평민이나 노비들처럼 공평하게 전쟁에서

계속해서 죽어갔고 이로인해 좋던싫던 인사적체가 발생하지 않고(;;)

누구던 전쟁에서 공만 세우면 출세하고 식읍과 관직을 받던 전국시대라서

골품제 힘이 약했던 시기였고

 

한국전쟁때도 20~30대 젊은장군들이 나오다가 (;;)

휴전후 인사적체가 심각해져서 장면내각에서 군대 구조조정하려다가

5.16 군사정변 맞고 나락간거고

현재 전쟁이 없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 20~30대 장군이 나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고

위관급 장교는 2~30대 영관은 4~50대 장성 5~60대가 국룰인데

전쟁나거나 쿠데타 일어나서 군사정부 들어서면

30대 장군도 충분히 나오지만 물론 당연 그러면 안되지요 ..;; 

 

근데 삼국통일전쟁기때는 이런 일이 일상이었던 시대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면 출세나 보상이 확실했고

이로인해 신라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나서고 똘똘뭉쳐 단결했던 풍조가 강했는데

통일신라때부터 인사적체가 시작되어 전쟁은 없어지는데 골품제로 나라가 곪다가

다시 전국시대(후삼국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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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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