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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12년

정월(1월) 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특산물을 바쳤습니다


3월

당나라에 들어가서 불법을 탐구하던 고승 자장이 돌아왔습니다


9월 가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말했습니다


<신라 사신이 전한 선덕여왕의 말>고구려와 백제가

폐국(말하는 이가 자기 나라를 낮추어 이르는 말)을 침공하여

수십개의 성이 누차 공격을 당했습니다


이제 이들 두 나라 군사가 연합하여

우리나라를 필히 빼앗고자

이번 9월에 군사를 크게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사직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삼가 저의 신하를 보내 대국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오니

일부의 군대라도 빌려 주어

구원해 주기를 원합니다


당황제(당태종 이세민)가 사신에게 말했습니다


<당태종>너희가 두 나라의 침략을 받는 것이

진실로 애통하다


그렇기에 자주 사신을 보내

너희 세 나라가 화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는 사신이 발길을 돌리자마자

약속을 어기고 있다


이는 너희 나라를 빼앗고 너희 나라를 나누어 갖자는 뜻이

있는 것이다


너희 나라에는 사직을 보전할 수 있는

무슨 특별한 대책이라도 있는가 ?


신라 사신이 말했습니다


<신라 사신>우리 임금(선덕여왕)께서는

상황은 급하고 대책이 없으므로

급한 사정을 대국에 말하여

나라의 보전을 바라는 것입니다

(별 대책없음 빨리 도와주셈)


당태종이 말했습니다


<당태종>(,,) 내가 변방의 군사를 조금 내고,

거란, 말갈과 함께 곧장 요동(고구려)을 치면

너희 나라에 대한 (고구려의) 포위가 자연히 풀리 것이다


이렇게 되면 1년동안은 포위 상태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후에 군사를 계속하여 보내지 않을 것을

그들이 알면

도리어 함부로 침략을 할 것이다


이리 되면 네(4) 나라가 모두 소란해지고

너희 나라도 편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첫째 계책이다


내가 또한 너희 나라에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붉은 옷과

붉은 기 수천벌을 주고

고구려 백제의 두 나라 군사가 올 때

이것을 벌려 세워 놓아라


그리하면 저들은 이를 우리나라 군대로 여기고

반드시 모두 도주할 것이다

이것이 두번째 계책이다


백제는 바다의 험한 요새를 믿고

병기를 수리하지 않은채

남녀가 난잡하게 뒤섞여

놀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수십 수백척의 배에

무장한 군사를 싣고

소리없이 바다를 건너

바로 그 나라를 습격할 것이다


너희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이웃나라로부터 경멸을 당하고 있으며

주인을 잃은 채 도적이 들끓고 있으니

편안한 시절이 없다


내가 나의 친척 한 명을 보내

너희 나라의 임금을 삼겠다


<신라 사신>크흠,, (잘나가다가 야심을 드러내는군,,

사실 가장 위험한 나라가 당나라다,,)


<당태종>그러나 그가 혼자 임금노릇을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당연히 군사를 파견하여 보호하다가

너희 나라가 안정되면

너희 나라에 맡겨 스스로 나라를 지키도록 할 것이다

(물론 그럴리는 없고 당나라가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지배할거지만ㅋ,,)


이것이 세번째 계책이다


그대는 잘 생각하여 보아라

장차 어느 계책을 따르겠는지


신라 사신은 다만 '예' 할뿐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신라사신>(결국 당나라의 목적은 삼한을 모두 지배하는 것이다,,

당황제가 성명하다지만

괜히 패륜을 저지른 인물이 아니구나 !

함부로 가까히 해서는 안되겠다,,) 예


<당태종>(삼한은 기존 오랑캐와 달리 학문에 밝고

백성들이 의가 있기에 역시 함부로 말려들지는 않는구나,,

그러나 신라가 그나마 손잡을 나라라는 것은 확실한데,,)

잘 생각해 보아라


당황제는 그(신라 사신)의 사람됨이 용렬(졸렬)하여

군사를 요청하고 급한 상황을 호소할 만한 인재가

못됨을 개탄했습니다


(당대 신라와 당나라는

서로의 필요함은 인정했으나

서로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다고

해석하면 됬다고 할 수 있고

또 신라인들 역시 당나라의 속내와 야심을

경계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직 신라와 당나라의 본격적인 나당동맹체결

이전 단계였다고 보면 됩니다)


선덕여왕 13년

정월(1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토산물을 바쳤습니다


당태종이 사농승 상리현장에게 조서를 줘서

고구려에 보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상리현장>신라는 운명을 우리나라에 맡기고

조공을 하지 않는 일이 없으니

너희 나라와 백제는 마땅히

군사를 곧 거두어 들여야 한다


만약 또다시 신라를 공격한다면

내년에는 틀림없이 군대를 동원하여

너희 나라를 공격할 것이다


연개소문은 현장(상리현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연개소문>고구려와 신라는 사이가 나빠진지 이미 오래이다

과거 수나라가 침범하였을 때

신라는 그 틈을 타서 고구려의 땅 5백여 리를 빼앗고

성읍을 모두 차지하였으니

그 땅과 성을 돌려주지 않으면

이번 전쟁은 그만 둘 수 없을 것이다


현장은


<상리현장>지나간 일을 어찌 따질 수 있겠는가 ?


라고 말했으나

개소문(연개소문)은 끝까지 따르지 않았습니다


(다소 중국 당나라식 사관으로 기록되 있다고

볼 수 있는 기록이나

당대 한국 고구려인들은 신라와 달리

결코 당나라에 굽힘이 없었고

당대 고구려인들 역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9월 가을

선덕여왕이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해서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했습니다


김유신은 크게 승리해서

일곱 성을 빼앗았습니다


<라봉봉>그렇게 선덕여왕 당대에 당나라에 대한

외교기록이라 할 수 있는데


신라 사신도

당태종이 대책은 있냐고 묻자


'우리 임금(선덕여왕)께서는

상황은 급하고 대책이 없으므로

급한 사정을 대국에 말하여

나라의 보전을 바라는 것입니다'


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당대 신라역시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고 할 수 있고

선덕여왕의 신하도 별로 선덕여왕을 신뢰하거나

하지 않았던거 같고

그렇게 선덕여왕은 당대 신라인들의 불신이나

주요 계층들로부터의 이탈도 있었던거 같고

표면적인 당대인들이 선덕여왕을 무시한 명분은

그냥 '여자니깐 그렇지 ㅉㅉ'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성별의 문제가 아닌 능력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고

이는 여성이어서가 아닌 그냥 능력부족이어서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나름 본인이 여성이라는 것에 대한것으로

여계 女系 (여자의 계통) 적 질서를 확립하려 한 거 같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이때 신라 기록들은 뭔가 계속 찝찝하고 불결한 느낌들이 있고

이에 대한 신라 신하들의 불신 등

괜히 신라에 안키워도 될 문제들이 커져나가던

그런 시기였다고 생각됩니다,,(만약 진정한 능력이 있는 여왕이었다면

단순히 여계적 질서가 아닌 남녀 평등적 질서를 세웠어야 할 것입니다)


딱히 대책도 없이 고구려,백제와 큰 충돌이 있었던 시기였고

당대 그나마 김춘추,김유신이라는 두 기둥들이 신라를 받치고 있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고

당나라와의 외교는 이때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점점 신라와 당나라 양국의 이해관계가 조율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고

이후 진덕여왕때 두 태종의 만남,

(태종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와 당태종의 만남때

나당동맹이 직접적으로 체결됬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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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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