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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

재위기간 7년 654~661년


태종 무열왕 太宗 武烈王 (대충 해석해보면,,

큰 조상이자 맹렬한 무예의 왕인데

태종도 아니고 무열왕도 아닌

태종 무열왕 이 두가지 칭호가 같이 붙었다는 것은

그만큼 신라인들이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존경해 높이 불렀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됩니다)

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춘추 春秋 이며

진지왕의 아들인 이찬(신라 2등벼슬) 김용춘의 아들입니다


<김부식>(김용춘은) 김용수 라고도 한다


<김부식>'당서'에 진덕(여왕)의 아우라 한 것은

잘못이다


어머니는 천명부인이니

진평왕의 딸입니다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성골이 아닌 진골이라서

혈연적으로 부족했다는 이미지가

있는 인물같은데 실제로 혈연적으로

할아버지가 왕, 아빠가 왕자였고

엄마가 공주였기에 애초에 혈연적으로

왕위 계승서열이 매우 높았던 인물입니다

성골은 단순히 김춘추의 시대부터

삼국통일이 시작됬기에 통일 전 신라와

통일 신라를 나누려 김춘추 이전은 성골

김춘추 부터는 진골 이렇게 나뉜거 같고

구분하기 위함이지 성골이 높고 진골이

낮은 것은 아닌거 같다고 이전 이야기때 했습니다)


왕비는 문명부인이며

각찬(=이벌찬, 신라 1등벼슬) 김서현의 딸입니다

(김서현은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이고

즉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 김문희와 결혼했고

김문희는 문명부인입니다)


태종 무열왕은 풍모가 영명하고 당당했으며

어려서부터 정치에 뜻을 두었습니다


그는 진덕여왕을 섬겨서


(이미 진덕여왕때 실세는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구 귀족세력들을 숙청했던

김춘추와 김유신 세력이었기에

애초에 신라에서 김춘추를 견제할 세력은

이미 사라졌고

사실상 섬겼다기 보다는

왕위 계승을 위해

임시로 바지사장같이,,

세운 임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찬(신라 2등벼슬)의 직위를 지냈으며

당나라 황제가 특진을 제수했습니다


진덕여왕이 붕어하자

여러 신하들이 이찬 알천에게 섭정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알천은 굳이 사양하며


<알천>나는 늙었고 이렇다 할만한 덕행도 없다

(이미 김춘추, 김유신 세상에서 내가 뭘 하겠냐,,)


지금 덕망이 두텁기로는

춘추공 만한 이가 없다


그는 실로 세상을 다스릴

영걸(영웅호걸, 뛰어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라고 말했고

마침내 김춘추를 받들어 왕으로 삼으려 하니

김춘추가 세 번이나 사양하다가

마지 못해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태종 무열왕 원년(1년)

4월 여름

작고한 태종 무열왕의 부친을 문흥대왕,

어머니를 문정태후로 추증했습니다


죄수들에게 대사령(형을 감형하거나 죄를 사해줌)을

내렸습니다


5월

이방부령 양수 등으로 하여금

법령을 상세히 검토하게 해서

이방부의 법령 60여 조를 정리, 보완했습니다


당나라에서 지절사를 보내와서 예절을 갖추어

태종 무열왕을 '개부의동삼사 신라왕' 으로 책봉했습니다


태종 무열왕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태종 무열왕 2년

정월(1월) 봄

이찬(신라 2등벼슬) 금강을

상대등(신라 최고위직, 신라 귀족들의 대표직)으로

파진찬(신라 4등벼슬) 문충을 중시


(중시는 집사부 장관직인데

왕의 직속 부하성격이 강하며

국무총리 격으로도 해석 할 수 있고

상대등이 귀족들의 권한을 상징하는 직책이었다면

이후 이름이 시중으로 바뀌는 중시[시중]는

왕의 직속신하적 성격이 강해서 왕권을 상징하는 직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 임명했습니다


고구려가 백제 및 말갈과 군사를 연합해서

우리(신라) 북쪽 국경을 침범해서

33개소의 성을 빼았았습니다


태종 무열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구원을 요청했는데


3월에

당나라가 영주 도독 정명진과

좌우위 중랑장 소정방을 파견해서

고구려를 공격했습니다


(태종 무열왕은) 맏아들(태종 무열왕의 첫째아들) 김법민을

태자로 세우고

서자 김문왕(태종 무열왕의 셋째 아들)을 이찬(신라 2등벼슬),

노차를 해찬(=파진찬, 신라 4등벼슬),

인태를 각찬(=이벌찬, 신라 1등벼슬),

지경과 개원을 각각 이찬으로 임명했습니다


10월 겨울

우수주에서 흰 사슴을 바쳤습니다

굴불군에서 흰 돼지를 진상했습니다

그 돼지의 머리는 하나, 몸체는 둘, 발이 여덟 개였습니다


태종 무열왕의 딸 지조가 대각찬(대각간, 신라 1등벼슬인

각간 즉 이벌찬보다 더 높은 김유신 장군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 관직) 김유신에게 시집갔습니다


(문제는 태종 무열왕의 부인은 김문희 즉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이었고

김유신 장군은 여동생의 딸과 결혼한 것입니다,,)


월성(신라 왕궁)안에 고루 (큰 북을 단 누각) 를 세웠습니다


태종 무열왕 3년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이자 신라의 당나라 외교통) 김인문이

당나라에서 돌아오자 그를 군주 軍主 로 임명해서

장산성의 축조 공사를 감독하게 했습니다


7월 가을

태종 무열왕의 (셋째) 아들 우무위 장군 김문왕으로 하여금

당나라에 조회하게 했습니다


태종 무열왕 4년

7월 가을

일선군에 큰 홍수가 났습니다

이 홍수로 3백여 명이 익사했습니다


동쪽 토함산에서 땅에 불이 났습니다

그 불은 3년이 지난 후에야 꺼졌습니다

(이런 기록은 진평왕때도 있었고

석탄매장이 그 원인으로 이야기 됩니다)


흥륜사의 대문이 저절로 무너졌습니다


OOO (삼국사기 기록 소실) 북쪽의 바위가

산산이 무너져 쌀로 변했습니다 (??)

그 쌀을 먹어보니 창고의 묵은 쌀과 같았습니다


(요상한 기록인데 아마 태종 무열왕의 덕을

높이려 나타난 정치 선전적 기록 같습니다)


태종 무열왕 5년

정월(1월) 봄

중시(집사부 장관) 문충의 벼슬을

이찬(신라 2등벼슬)으로 바꾸고

(태종 무열왕의 셋째아들인) 김문왕을 중시로 임영했습니다


3월

태종 무열왕이 하슬라(강원도 강릉쪽)는

지역적으로 말갈과 연이어 있으므로

백성들이 편안히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 경을 폐지해서 주로 만들고

도독을 두어서 그곳을 수비하게 했습니다

또 실직(삼척)을 북진(2선 방어기지)으로 만들었습니다


태종 무열왕 6년

4월 여름

백제가 자주 국경을 침범하므로

태종 무열왕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서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군사를 요청했습니다


8월 가을

아찬(신라 6등벼슬) 진주를 병부령에 임명했습니다


9월

하슬라주에서 흰 새를 진상했습니다


공주 기군강에서 큰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와서 죽었습니다

그 고기의 길이가 1백 자(24.5m) 였는데

이를 먹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10월 겨울

태종 무열왕이 조정에 앉아서

당나라에 파병을 요청했으나

회보(답장)가 없었으므로 근심하는 빛이

얼굴에 드러나있었습니다

(혹은 회보가 없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한 사람이

태종 무열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선대의 신하 장춘과 파랑 같이 보였습니다


그는


<장춘과 파랑>제가 비록 몸은 백골로 변하였으나

나라에 보답할 마음은 있기에

어제 당나라에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당황제가 대장군 소정방 등에게

내년 5월에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백제를 치도록 명령한 것을 알았습니다


대왕께서 이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므로

미리말씀 드립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 사라졌습니다


<장춘과 파랑>그럼 건강하시옵소서 폐하 !

저희는 이만 뿅 ~


~ 뭉게뭉게(구름) ~


태종 무열왕이 크게 놀라고 이상히 여겨서

두 집안 자손들에게 후하게 상을 주고

곧 해당 관청으로 하여금

한산주에 장의사를 지어서

그들의 명복을 빌게 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신라의 삼국통일의 시작을 알린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오랜 기다림끝에 왕위에 오르게 됬고

이때부터 신라의 기록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전설)'라는 요즘 말같은

전설적인 기록들이 많고

하여튼 이야기 하나하나가 전설적인 기록들이 많고

그렇게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삼한일통(삼국통일)의 방아쇠를 당기며(시작을 알리며)

700년 백제왕조를 멸망시킨 인물이기도 하고

한국사 위인이자 신라 영웅인 김유신 장군의 영원한 동지,친구였던

김춘추였고 저도 이 시기의 기록들을 읽을때는

보통의 기록들과 달리

뭔가 뭉게뭉게 안개와 구름속에 있는 느낌을 받고 있고


그렇게 왕이 된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결국 당나라를 불러들이게 됬고

오랜 숙적이었던 백제를 멸망시키려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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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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