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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7월 12일 

당과 신라 군사가 OOO (삼국사기 글자소실) 의자(의자왕의 이름, 부여의자)의

도성을 포위하기 위해서 소부리 벌로 진격했습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진격하지 않았습니다

신라 김유신 장군이 이를 달래서

신라와 당의 군사가 용감하게 네 방향에서 일제히 진격했습니다


백제 왕자가 다시 상좌평(백제 최고벼슬)을 시켜서 음식과 많은 선물을 보냈으나

소정방은 이를 받지 않았습니다


백제왕의 서자인 부여궁이 좌평(백제 1등벼슬) 여섯 사람과 함께

소정방 앞에 나아가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소정방은 이를 뿌리쳤습니다


7월 13일 (점점 달이 아닌 날까지 기록되고

이는 점점 기술의 발달등으로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그만큼 당대 백제 멸망 직전 시기가

하루하루가 촉박하고 긴급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줍니다)

의자왕은 좌우의 측근들을 데리고 밤을 틈타서 도주해서

웅진성을 지켰습니다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은

대좌평 천복 등과 함께 나와서 항복했습니다

(신라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첫째아들이자 신라 태자) 김법민이

(백제 의자왕의 첫째아들이자 [한때의 ??] 백제 태자 [로 추정]) 부여융을

말 앞에 꿇어 않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어 말했습니다


<김법민>예전에 너의 아버지(의자왕)가

원통하게도 내 누이(김고타소)를 죽여 옥중에 파묻었다


나는 이 일로 20년 동안

가슴이 아프고 머리에 병이 났다


그런데 오늘은 네 목숨이 내 손에 달렸구나


부여융은 땅바닥에 엎드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엎드려서 항복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굳이 기록된 것을 보면

뭔가 백제인들 특유의 자존심, 감성이 있는 기록같습니다

비록 항복했던 부여융이나

백제 역시 700년 사직의 나라였으며

백제인들 역시 북방의 부여,고구려의 후예였기에

신라와 달리 자존심이 강했던거 같고

백제 기록들을 읽어볼때에도 받은

백제 특유의 어떤 느낌이 있습니다,,)


7월 18일

(백제) 의자(왕)는 태자와 웅진방의 영군 등을 데리고

웅진성에서 나와서 항복했습니다


<의자왕>아아 ! 이 못난 후손 부여의자에 이르러

700년 대백제국의 사직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


<백제인들>,, (그러게 충신들 말 좀 들었어야지,,)


-660년 7월 18일 백제 멸망-


(신라) 태종 무열왕은 의자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29일에 금돌성으로부터 소부리성에 도착해서

제감 천복을 보내서 당나라에 전공을 보고했습니다


8월 2일

주연(술잔치)을 크게 베풀어서 장군과 병사들을 위로했습니다


<태종 무열왕>그동안 고생 많았소 !


<신라 장군들>황송하옵니다 폐하 !


<태종 무열왕>,, (700년 백제 왕조가 무너졌구나,,

700년이라,,)


<신라 장군들>말하지 않으셔도 어떤 심정인지 알고 있습니다

백제는 보통의 나라가 아니었지 않겠습니까 ?


<태종 무열왕>고맙구려 모두 한잔씩 받드시오 !


신라 태종 무열왕은 당나라 장수 소정방

밑 여러 장수들과 함께 대청에 앉고

(백제국왕) 의자(의자왕 부여의자)와 그 아들 부여융은

마루 아래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의자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했습니다


<신라 태종 무열왕>부여의자 우리는 비록 원수였지만

같은 조선(고조선)의 후예이기도 하지, 암 그렇고 말고


<백제 의자왕>예,, 예,,


<신라 태종 무열왕>오늘은 감회가 새롭소

부여의자 그대는 가끔씩 돌아다니며 술을 따라주시오


<백제 의자왕>아,, 알겠사옵니다,, 폐하,,


이에 백제의 좌평(백제 1등벼슬) 등 여러 신하들이

목이 메어 울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 날

모척을 잡아 참수했습니다

모척은 본래 신라 사람이었는데

백제로 도망가서

대야성의 (역시 신라인이었던) 검일과 공모해서

신라의 성을 점령한 적이 있으므로

참수한 것입니다


또한 검일을 잡아서

죄를 일일히 따지기를


<태종 무열왕>네가 대야성에서 모척과 함께 공모하여

백제 군사를 이끌고 와서

창고를 불질러 없앴다


이로 말미암아 성 안에 식량이 떨어져 마침내 패배를 당하였다

이것이 너의 첫번째 죄이다 !


네가 품석 부처 夫妻 (부부)를 협박하여 죽였으니

이것이 너의 두번째 죄이다 !


네가 백제와 함께 와서 본국 本國 (신라)을 공격했으니

이것이 네 세번째 죄이다 !


라고 말했습니다


그(검일)의 사지를 찢고

시체를 강물에 던졌습니다


(즉 이전 대야성 전투때 [왕이 되기전의] 김춘추의 사위였던

김품석과 그의 아내이자

김춘추의 딸 김고타소가 대야성 전투에서 죽었는데

이 때 모척과 검일이 배반이 신라 대야성 함락의

원인이 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검일도 억울한점이 있는게

대야성 성주였던 김품석이 권력을 이용해서

부하장수 검일의 미인이었던

아내를 뺏었고 검일이 한스럽게 여기다 백제에 투항했다 할 수 있어서

딱히 김품석이 불쌍하다고 보기도 그렇고,

검일이 배신자라고만 여기기에도

뭐한 사건이기는 합니다,,


저 생각에는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가족을 끔찍히 아끼던 인물이었던거 같고

단지 태종 무열왕의 분노의 원인은

사위 김품석의 죽음도, 대야성 함락도,

검일의 배신도 아니고 자신의 딸 김고타소의 죽음 때문에

오랜 기간동안 분노해 있었던 거라고 생각됩니다,,


또 아이러니 한 점은 이런 복수 이후

얼마후 태종 무열왕이 사망했던 것을 생각하면

딸 고타소가 죽었던 시점부터 '대장부로서 [원수인] 백제를 삼켜야겠다'라고

다짐하기 시작했던 김춘추, 태종 무열왕이었고

딸 김고타소의 죽음부터 계속 복수만을 목표로 하다

그 목표가 끝난 후 곧 사망했던 점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이야기되는

태종 무열왕 김춘추지만 또 삶의 목적, 목표등을 복수로

삼았던 인물이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백제의 남은 적병이 남잠, 정현 OOO (삼국사기 글자소실) 성에 웅거했습니다

좌평(백제 1등벼슬) 정무는 무리를 모아서 두시원 산에 진을 치고

당과 신라 사람들을 약탈했습니다


8월 26일

임존의 대책(큰 나무울타리 [목책], 백제인들은 토성과 목책을

주 된 방어수단으로 삼았습니다)을 공격했으나

(백제) 적병이 많고 지세가 험준해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소책(작은 나무울타리)을 공격해서 격파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한국의 풍요로운 부국이자

바다를 제패했던 한국의 해상제국 백제는 이 때에 이르러

700년 왕조가 끝나게 됬고

실제 백제는 정말 대단한 나라였기에

당대에도 단순히 의자왕이 항복한 뒤로 끝나지 않고

대규모의 격렬한 부흥운동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또 백제의 뒷마당이라 할 수 있었던 '왜'는

백제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의 군사를 보내기도 했고

하여튼 백제가 멸망전에 한강유역도 없고

충청도, 전라도 지역으로 작은 영토를 유지했다고

국력이 약했다고 해석해서는 안되고

충청도, 전라도 지역은 기본적으로 곡창지대이기에

그 인구가 어마어마했고 게다가 왜에 넘어가 살던 백제인들과

또 왜(일본)까지 백제로 포함시켜 본다면

진짜 멸망 전까지도 신라를 위협했던 거대한 대국이었다고 할 수 있고

당대 지도로만 보면 북방의 광활한 고구려나 또 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에 비해

작게 느껴질 수 있던 백제인데도

워낙 풍요로운 마한지역에 자리잡았고 왜까지 영향이 있었던 백제였기에

멸망 전까지 인구 규모자체가 어마어마했던 나라라고 보면 됩니다


당대 백제 마지막왕 의자왕은 굴욕적으로 마루 아래에 앉아서

술을 따랐는데 백제 역시 결코 보통의 나라가 아니었고

700년 역사의 대국이었기에 비록 충신들을 멀리한 의자왕이었지만

그런 초라해진 의자왕의 모습앞에 백제 신하들이 눈물흘렸다고 할 수 있고

이런 지배층의 투항 이후에도

그럼에도 백제 부흥운동은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700년 역사는 결코 만만한게 아니라서,,

통일 신라때에도 백제의 후손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그러다 후백제가 건국됬고,,

오늘날에도 경기,충청,전라도 지역은

백제의 영향이 깊게 자리잡고 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라 이야기인데 백제 이야기만 하는거 같은나

그만큼 백제 역시 한국의 역사로서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당대 그런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인들도

단순히 옛날 주변소국들을 정복하던 시기와 달리

여러 수많은 심정과 생각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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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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