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그렇게 칸나에 전투로 로마군이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에 궤멸된 이후

당대 로마시민들은 경악했고

여자들은 광장에 나와서 울부짖었는데

로마 원로원(귀족들, 오늘날 국회의원격)들은

이 상황에서 여자가 길거리에 나오는(나와서 우는)일을 금지시키고

다시 도시를 조용하게 한 뒤 생존 장병들을 파악하고

한니발에 대한 정보들을 파악했으나

충격은 가시지 않아서

혼돈과 공포에 휘말리다가

여사제들이 불륜을 저질러서 받은 신벌이라고

여사제와 간통한 남녀들을 생매장,인신공양 시키기도 했고,,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니발 측에서도

마하르발이

슬슬 로마 수도를 직접 공격하자고도 하고

그런 의견이 나오나

대승리에도 수도공격, 공성전은 무리라고 본 한니발은

수도로 가지 않고 로마 주변도시들을 휘젓고 다니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기거나 하며

로마를 압박하려는 전술을 구사하려 했고

이는 이후에도 비판받기도 하나

당대 전술의 천재 한니발이 정말 몰라서 보기도 어렵고

당대의 최선의 판단이라고도 이야기 됩니다,,


그러나 그런 전술의 천재 한니발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로마인들의 투철한 '애국심' 이었습니다,,

상업국가였던 카르타고는 상업국가답게 국민들이

애국심보다는 '돈'으로 움직였고

꼭 그게 비판받을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하여튼 자국 군대도 외국인 용병으로 움직이는 등

전형적인 해양국가,상업국가적 모습을 보인 나라였고

(조금 한국 백제같습니다)


그에 비해 로마는 농경국가적 모습과

정복국가적 강인한 기풍이 있던 나라였고

이에 애국심도 투철해서 나라에 위기가 있을때

평민,귀족할거 없이 대단결해서 나섰고

이는 아마 당대 한니발이 예측하지 못했던거 같고


일단 로마 수도를 포위해 놓으면 알아서 항복하겠지,

강화협상이 오겠지 했으나

로마인들은 그럼에도 그런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강화협상에 나설 생각이 없었고


결국 로마인들은 다시 지구전으로 돌입해서

폐기했던 지구전인 파비우스 전술을 부활시키며

소극적으로 숨으며 지구전,게릴라전을 감행하며

점점 다시 손실된 병력들을 회복시켰고,,


다시 한니발은 칸나에 전투 이후로

그렇게 로마 주변도시들을 공격하려했으나

점점 한니발의 야성에 한번 혼쭐이 난 로마인들이

극도로 수비적으로 나오는 틈에

한니발군은 점점 고립화화되기 시작했고


'로마군은 한니발을 이기지도 않았지만

지지도 않았다'


라는 말같이 점점 로마인들은 홈그라운드에서

장기전으로 끌고갔고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은

남의 영역을 휘젓고 다녔음에도 계속된 소모전등에

교착사태에 빠지게 됬습니다


이틈을 타 로마군은 바다로 시라쿠사섬을 점령했고

이때 시라쿠사인이었던 천재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수학문제를 푸는데 열중해 있었는데

로마군 지휘관 마르켈루스는 아르키메데스의

명성을 알았기에 그를 살려오라 했으나

아르키메데스는 모래판에 원을 그리고 연구하다가

쳐들어온 로마군에게

'그 원을 밟지 마라' 라고 했다가

그를 알아보지 못한 로마병사가 격분해서

그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고,,


<당대 시라쿠사는 아르키메데스에게 의뢰해서

지렛대와 도드래를 이용한 투석기,기중기와

거울로 로마군의 배를 태우는 무기들을 개발했다고도 이야기 됩니다,,>


결국 시라쿠사 섬까지 함락되자

한니발은 점점 고립이 커졌고

로마군은 점점 '한니발군의 카르타고'는 강하지만

'한니발이 없는 카르타고'는 약하다는 것을 파악함으로서

다른 카르타고군들에 승리하며

한니발군의 보급을 끊었으며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도

형을 도우러 가다가 로마군의 공격으로 패배했으며

하스드루발의 목은 로마군들이 참수해서 한니발에게 보내졌습니다,,

한니발은 이 모든 사실을 알게되고

크게상심해서 이탈리아 반도 끝에 웅크려 나오지 않았고

이탈리아 원정이 물거품이 된 것을 파악합니다,,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의 진격로로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지역에서 시작해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부터 남쪽까지 로마 전역을 휘젓고 다녔던

인물이나 점점 장기전화되고 로마의 수비적 전략등에

고립된 한니발 군이었습니다>


이에 점점 로마군은 '한니발이 없는 카르타고군'이

극도로 약하다는 사실에

계속해서 다른 카르타고 영역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히스파니아, 스페인 지역에서 카르타고 세력들을 완전히 물리쳤고

그렇게 다시 전황이 로마에게 유리해지자 로마인들은

아예 한니발이 없는 카르타고 본토침공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렇게 결국 많은 로마인들은 카르타고 본거지인 북아프리카를

직접 공격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원로원은 망설이다가 29세의 스키피오가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자

그를 아프리카 방면 집정관으로 임명한 후

병력을 원하는대로 모집할 수 있는 권한을 줬고

스키피오, 그는 로마의 운명을 걸고

카르타고 본토에 상륙하게 됩니다,,


<자마 대회전>


아프리카에 상륙한 스피키오는

새로 (기병으로 유명한) 누미디아의 왕 시팍스에게

로마편이 될 것을 요청하고

시팍스는 알았다고 하나 카르타고가 마시니사와 약혼한

절세미녀 소포니스바를 억지로 파혼시켜서 시팍스에게 보내서

유혹하자 이에 넘어간 시팍스는 카르타고 편으로 돌아섰으나

역시 한니발 없는 카르타고 답게,,

스키피오는 누미디아 수도 키르타를 점령해서

시팍스를 제포했고 마시니사를 누미디아 왕으로 앉혔고

절세미인 소포니스바는 다시 마시니사와 결혼하게 됩니다

(,,)


그러나 소포니스바는 적국의 왕비였기도 했고

결국 스키피오의 압력을 받아서

결혼식 이후 독약을 먹고 스스로 자결하게 되는 여인입니다

이후 누미디아 왕국에서는 더이상 그렇게 아름다운 여성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 포에니 전쟁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게 누미디아를 점령한

패기넘치는 젊은 로마대장 스키피오는

마시니사를 누미디아 왕으로 앉혀 로마의 세력으로

만들었기에 매우 강력한 누미디아 기병대를

마음껏 지원받을 환경을 만들었고


그렇게 스키피오는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지역)와

본토인 북아프리카에서 세력을 잃어 궁지에 몰린 카르타고에

의외로 관대한 협상조건을 제시했는데

한니발의 이탈리아 철수, 카르타고의 배상금 낼 것 등

나름 로마에서도 오랜 전쟁으로 고통받았기에

무리수를 두지 않으며 조심스러운 강화협상을 하려 했던거 같고

이에 카르타고는 본토가 위협받자 우왕좌왕하다가

강화를 하자 vs 한니발을 불러들여 다시 싸우자

라고 나뉘었는데

일단 이에 카르타고는 4가지 방책을 동시에 추진하게 됩니다,,

한니발의 본국귀환을 명령했고

스키피오에게는 사절이 파견됬는데

스키피오가 제시한 강화조건은


1.로마는 카르타고의 자주독립과 자치권을 인정함


2.이탈리아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 지방 카르타고군은 모두 철수할 것


3.에스파냐에 있는 카르타고 기득권을 완전히 포기할 것

(즉 카르타고는 앞으로 아프리카 빼고 모든 땅을 포기하셈,,)


4.마시니사의 왕국을 승인하고 그 주권을 존중할 것


5.20척을 제외한 모든 군선을 로마쪽에 양도할 것

(해양,상업국가였던 카르타고에게는 가장 어려운 조건이었고

카르타고 해군 해체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6.강화가 교섭되는 동안 카르타고는 아프리카에 있는

로마군의 군량미를 조달할 것


(추가로 5천 탈란트 배상금을 로마에게 지불하셈,,)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5번 조항이었고

사실상 카르타고의 해군 해체 요구였다 할 수 있고

이때 만약 스키피오도 카르타고가 5번까지 양보하고

강화를 충실히 이행하면 나름 오랜 전쟁의 상처와

한니발이라는 존재의 거대함 등에

전쟁을 피하고 적당히 물러가는 방법을 택하려 했던거 같고

당대 한니발을 상대로 무리수를 두고

싶었던 로마인들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협상이 진해되는 중

이탈리아의 한니발과 카르타고 군도 본국이 위협받자

어쩔 수 없이 귀국을 하게됬는데

이때 카르타고는 역시 5번조항이 걸려서인지,,

또 한니발이라는 백전백승의 명장덕분인지

협상을 파토냅니다,,

사실상 강화를 하자를 선택했다면 카르타고는 다시 재기할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일말의 희망, 믿을 구석' 이라 할 수 있는 한니발 장군이었고

아무리 애국심이 부족했던 해양,상업국가 카르타고였지만

그럼에도 한니발은 카르타고인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기에

그런 믿을 구석이 돌아오자 결국

카르타고는 로마와 포에니 전쟁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게 되고

패기넘치고 균형감각이 있었던 젊은 로마대장 스키피오와

알프스를 넘고 이탈리아에서 산전수전 겪은

전술의 천재 카르타고 한니발은 자마 평원에서 맞붙게 됩니다,,


그렇게 한니발은 본토가 위협받자

급하게 소환되서 아프리카로 돌아왔고

로마의 스키피오, 카르타고의 한니발,

양국의 두 영웅은 양국의 운명을 걸고

아프리카 자마 평원에서 대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자마 전투 전 한니발과 스키피오는 단독으로 만나서

회담을 하게 됩니다,,


<스키피오>한니발 장군과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강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


<한니발>내가 대군을 이끌고 로마를 들어왔던 것처럼

이번엔 그대가 대군을 이끌고 카르타고에 들어오게 되었소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니 위험한 도박은 피하고

여기서 그만 하는게 어떻겠소 ?


<스키피오>그렇다면 강화 조건을 이행하시오 !


<한니발>그것은 주권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른 바 없소,,


<스키피오>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또다시 한번 맞붙어야 되겠구려,,


<한니발>,,


그렇게 둘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고

협상이 결렬되자 전투를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결국 2차 포에니 전쟁 마지막 전투, 자마 대회전이 시작됩니다,,


<전투를 앞둔 스키피오의 연설>

그대들의 과거의 전투를 가슴에 새기고

그대들 자신과 그대들의 조국에 부끄러움 없이 용감히 싸우라 !

그대들의 눈앞에 이것을 그려라

만약 그대들이 적을 무찌른다면

그대들은 의심의 여지없는 아프리카의 지배자가 될 뿐만 아니라,

그대들 자신과 조국을 세계 위에 군림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전투의 결과가 그렇지 않다면,

조국을 위해 용감히 쓰러져간 사람들은 영원히 영광 속에 묻히고,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의 남은 인생을 비참함과 치욕 속에 보낼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그대들이 안전한 곳은 없다.

그리고 만약 카르타고군 손에 떨어진다면

그대들에게 어떠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두들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그대들 중에 누구도 그런 운명을 맞지 않기를 나는 기도한다.

지금 운명의 여신은 우리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의 대가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단지 생에 대한 애착으로 이 엄청난 선물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겁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바보에 가까울 것이다.

이제 나가서 적과 싸우라. 우리 앞에는 승리가 아니면 죽음뿐이다.

목숨을 버릴 각오로 전투에 나가는 군대는 항상 승리한다


양국 군대는 자마에서 마주하게 됬고

기존에는 항상 로마가 보병이 많고 기병이 부족하고

카르타고가 보병이 적고 기병이 많았다면

이번엔 누미디아를 포섭한 로마군이어서

카르타고군이 기병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대신에 카르타고군이 보병이 더 많게 됬습니다


<빨간색 한니발 카르타고군, 파란색 스키피오 로마군인데

로마 기병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또 역시 카르타고의 홈그라운드여서인지

로마군은 35500명, 카르타고군은 45000명으로

카르타고군이 숫적으로 우세해 있었으나

로마군은 35000 대군중 누미디아 기병만 1만이었고

(+로마기병 2500명,,)

이에비해 카르타고군은 카르타고 기병 2000,

누미디아 기병 2000으로 4천 기병이라는 압도적인

기병 전력차가 존재했고 카르타고의 자랑이라 할 수 있었던,

그러나 급조되어 훈련이 덜 된 전투코끼리 80마리정도가

있었을 뿐이라 할 수 있는데

점점 전투는 인구수만으로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로마군은 한니발을 상대하며 터득했다고 할 수 있고

한니발 장군에게 당하며 기병의 중요성을 배운 로마인들은

그대로 그 방법을 한니발에게 써먹게 됬습니다,,

결국 전투가 시작됬고 처음엔 한니발은

80마리의 코끼리들을 로마군에 돌진시켰고

애초에 급조된 훈련 덜 된 코끼리라

로마군 전열을 흩트러 뜨리고

보병들을 짓밟으려는 '버리는 카드'식으로 보낸 코끼리였는데

코끼리 전술에 대처하고 있었던 스키피오는

코끼리가 직진밖에 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넓은 간격으로 보병을 배치해서 직진밖에 할 수 없는

코끼리들을 무력화 시켰고


<직진밖에 못하는 코끼리의 성질을 파악한 스키피오의 로마군은

보병을 넓게 배치하며 코끼리들이 그냥 지나가도록 열어주게 됩니다,,>


보방 중심이었던 카르타고군은 로마 기병의 기동력에의해

후방에서 공격되며 전면에서는 로마 보병에게 포위되 참패됬고

마치 칸나에 대회전과 거의 비슷하다 할 수 있는데

칸나에 전투에서 기병에 참패를 당한 로마인들은

그 방법을 한니발에게 배워 자마 전투에서 그대로 썼다고

할 수 있었으며 한니발 장군 그가 백전백승의 명장이었음에도

급조된 카르타고군과 압도적인 기병 전력차의 열세 등으로

로마군에게 대패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마 전투>


보병싸움이 치열했는데

한니발 장군은 보병에서는

전방에는 급조된 카르타고 군을 배치했고

후방에는 자신과 16년을 함께한 베테랑 카르타고 군을 배치해서

전방 군사들의 이탈을 막고,, 점점 급조된 카르타고 보병들은 양 옆으로,

한니발의 정예 카르타고 군은 중심으로 가게 됬고

카르타고 정예병의 분전 역시 만만치 않았는데

문제는 카르타고 기병들이

로마 기병과의 압도적인 전력차에 곧

전멸된 상황이라

로마 기병들이 전장으로 복귀해서 포위망이 형성됬고

급조된 카르타고 용병들은 항복하거나 도망쳤지만

한니발과 함께한 정예군사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이곳에서 모조리 전멸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카르타고군은 한니발 정예군 1만 5천 전원 전사와

도합 2만명 전사에 총 4만명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며 궤멸됬고

로마는 1500~2000명 전사에 누미디아군 전사와 부상자까지 합치면

약 5천명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니발 역시 포로가 될 뻔했지만

살아남은 카르타고 기병과 보병들이 구를 구출하는데 성공해서

후퇴했지만 결국 자마 대회전에서 패배하고 궁지에 몰린

카르타고 본국은 로마와의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체결하게 됬고


결국 한니발은 자신의 정적들을 피해서 셀레우코스 왕조,

동방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2차 포에니 전쟁 종결>


그렇게 자마 전투,자마 대회전을 마지막으로

로마와 카르타고의 제 2차 포에니 전쟁도

1차 포에니 전젱과 마찬가지로 로마의 승리로 끝나게 됬고

로마인을 떨게 했던 한니발을 무찌른 스키피오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아프리카의 정복자' 스피키오 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한니발에게 당한 충격이 너무 컸던 로마는

제 2의 한니발이 나올 것을 두려워해서

카르타고를 철저히 탄압했고

이에 이후 제 3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3차 포에니 전쟁은 이후 쓰도록 하겠고

2차 포에니 전쟁으로 한니발에게 전략,전술을 습득한 로마군은

이때부터 전쟁 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힌 지중해 최강의

군대로 거듭나게 됬고 점점 이후 주변 세력들을 모두 제압하고

제국화 됬다고 할 수 있고


로마가 아프리카의 부국이자 상업,해양강국이었던,

그것도 한니말이라는 불세출의 명장이 있었던 카르타고를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조건들도 한몫 했으나

카르타고는 한니발군만 강했고, 다른 카르타고 장군들은

심각할 정도로 무능했다는 원인이 있었다고 하고

등등 이야기 도중에 했습니다,,


그렇게 당대 로마인을 떨게했던 한니발 장군은

결국 자마 전투 패배후 동방으로 망명했고

이후 스키피오가 외교적일로 동방에 왔을때 둘은 만납니다,


<스키피오>한니발 장군 ! 가장 위대한 장군은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

(비록 자신과 겨루었으며 로마의 원수였기도 했으나

워낙 전략적인 인물이라 당대 로마인들도 한니발을 인정했음을

보여준다고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뭔가 이혼한 옛 부부가 이혼후 쿨하게 만나서 이야기하는

그런 서양식 쿨함 그런거도 있는거 같습니다,,)


<한니발>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지요

적은 병력을 가지고 대군을 무찔렀고 인간이 일찍이 가보지 못한

세상의 끝까지 갔기 때문이오 


<스키피오>두번째로 위대한 장군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

(오케이 첫번째는 인정, 두번째는 제발 나라고 말하랑께 ~)


<한니발>(나는 니가 뭔말을 듣고싶은지 이미 안당께ㅋ)

피로스입니다 진영을 잘 짜는 방법을 생각해 냈지요

지형에 따라 군대를 잘 활용하기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지원을 잘 얻어냈고

그래서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에도

이탈리아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냈소

그들이 그 땅에서 잘 살아왔는데도 말입니다


<스키피오>그렇다면 세번째로 위대한 장군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


<한니발>나 !


<스키피오>당신은 자마 전투에서 나에게 패배했는데

어째서 세번째 장군임을 자처하는 것입니까 ?


<한니발>만약 내가 자마에서 이기기라도 했으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이었을 것입니다


<스키피오>음,, 인정합니다


<한니발>ㅋ


<스키피오>ㅋ(역시 한니발은 한니발이군,,)


그렇게 한니발 장군은 당대 로마에서도 평가가 특히나 높았고

당대의 영웅이었지만 역시 로마의 적장이었기도 했기에

점점 한니발이 망명한 지역도 점점 로마 영향이 커지다가

한니발 역시 로마에 넘겨질 거라는 소식을 듣고

궁지에 몰리게 되자 결국 반지속에 숨겨두고 다니던

독을 마시며 자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대 로마를 떨게했던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 바르카의

허무한 죽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어른들이 아이들이 울면

'애비 애비 호랑이가 물어간다' 하면서 아이를 을렀는데

여기서 애비는 이비 즉 귀 이, 코 비 자로

임진왜란때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죽이고 전과로 삼을 때

귀와 코로 그 공을 논했기에 수많은 조선인들의 귀와 코를 잘라갔고

이에 나온 말이 애비 애비 하는 말이라는 유래가 있는데

로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인들>계속 울면 한니발이 쫒아온다 !


실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로마인들에게 한니발은 공포의 대상이었고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은 베테랑의 카르타고 군사들과 함께

로마의 국토를 마구 휘젓고 다닙니다

(후세의 로마인들도 비록 적장이지만 전략적인 면에서는

교과서적인 모습을 보이며 로마 군사학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

이후 한니발 동상까지 세우며 그를 인정합니다,,)


그가 개발한 망치(기병)와 모루(보병) 전술(흔히 말해 쌈싸먹기)은

로마군이 그대로 습득해 로마군의 주특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고

한니발을 상대하며 그의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습득한 로마군은

이후부터 전쟁기계,인간병기화 되며,, 또 지중해에 카르타고라는

거대한 적수가 사라지기도 했기에 이때부터 점점 영토를 크게 확장하며

제국화됬다고 할 수 있고 로마사를 이야기하는데

성장기로마가 강대국으로 굴기하는 시점이 바로 이

포에니 전쟁이었고 그 포에니 전쟁 중심에는 한니발 바르카라는

군사전략가가 있었다고 할 수 있기에 오늘날에도 서양사,로마사에서는

그를 비중있게 다룬다고 할 수 있고

기나긴 로마 2차 포에니 전쟁 이야기를 어찌어찌 끝내긴 했는데,,

마지막으로 한니발 장군 대단한 인물 답게 여러 명언들도 많습니다,,


<어린 시절의 한니발의 맹세>로마를 멸망시키겠다


<한니발>나는 길을 찾아내겠다. 찾다가 없으면 길을 만들겠다 !


<한니발>불굴의 의지 앞에서는 높은 산도 몸을 낮춘다


<한니발>대부분의 일은 그 자체로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면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라봉봉>야심적이고 원대한 야망을 품었던 한니발 바르카,

그다운 도전정신이 강한 명언,어록들이라 할 수 있고

로마를 멸망시키려 했던 그의 어린 시절의 맹세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는 오늘날에도 군사,전술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게

이야기 되는 인물이 되었으며

이런 한니발의 명언들에서 뭔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프랑스 나폴레옹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실제로 나폴레옹 역시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원조,,) 같이

알프스를 넘었던 인물이라 할 수 있고

그만큼 서양사와 군사,전술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당대의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