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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당대 지중해 세력들의 패권다툼이었던

또 옛 강국 카르타고와 새로 일어나는 강국 로마의

지중해 패권다툼이었던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2차 포에니 전쟁' 역시

로마의 승리로 가게 되었고

2차 포에니 전쟁 당시 한니발은 정말

대단하게 로마를 유린했으나

끝내 본국의 후진성, 시스템적으로 강력했던 로마의 벽을

넘지 못하고 로마와의

'전투에서는 이겼으나 전쟁에서는 패배한

(즉 뛰어난 방법으로

로마군을 여러차례 제압했지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비유)' 결과가 되었고

이때 로마군은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에게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과 패배를 당하기도 했으나 이때의 경험으로

천재 군사전략가였던 한니발의 군사병법들을 로마의 것으로

흡수해버려서 이후 쇠약해진 한니발군을 한니발에게 배운 방식

그대로 해서 '자마 대회전'에서 카르타고군을 참패시키고

2차 포에니 전쟁을 로마의 승리로 종결시켰다고 할 수 있고

2차 포에니 전쟁은 총 3차로 이어진

포에니 전쟁중에서 가장 중요했으며

'한니발 바르카'이라는 인물의 이야기 등으로

워낙 길고 긴 이야기들이라 이전 이야기때서

여러차례로 나누어서 길게 썼고,,


이제 마지막 로마와 카르타고의 승부이자

사실상 이때는 승부라기보다

로마가 일방적으로 사실상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산송장(비유적 표현으로,,)이 된 쇠약해진 카르타고를

멸망시켰다고 할 수 있는 3차 포에니 전쟁로

1,2차에 비해서 짧고 허무해서 큰 비중은 없으나

그래도 한때의 지중해의 강국이자 부유한 해상국가였던

카르타고답게 로마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3차 포에니 전쟁의 배경>


로마의 2차 포에니 전쟁 승리 이후로

로마인들은 '제 2의 한니발 바르카'가 나올 것을 매우 두려워하며

패배한 카르타고를 철저하게 탄압했으며

사실상 다시 재기하지 못하게 여러 국권고 이권을

다 뺏어서 카르타고는 사실상 2차 포에니 전쟁때

멸망했다고도 할 수 있고

그러나 한때의 강대국이었던것 답게

쉽게 멸망하지는 못하고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 카르타고는

해군이 해체됬고 스페인 지역 등의 해외영토를

모두 로마에게 넘겼고 로마의 허락 없이는 전쟁도 벌일 수 없었던

사실상 로마의 속국이 됬으나

다시 카르타고인들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한지 50년이 지나며

경제적으로 부유해졌고

상당히 빠른 속도로 경제가 재건됬는데

이는 카르타고의 본토가 북아프리카 지역이어서

당대 북아프리카는 사막화가 되지 않았던 지역이어서

오늘날 모래사막의 아프리카 이미지로 봐서는 안되고

즉 따뜻하고 비옥한 지대였기에

풍요로운 농업과 해상강국다운 전통적인 뛰어난 상업력을 바탕으로

카르타고인들은 빠른 속도로 경제를 재건했으나

역시 군권은 없었고 그럼에도 로마를 압도할 여력은 없었고

로마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카르타고가 다시 재기에 성공하자

다시 카르타고를 크게 경계하게 됩니다,,


당대 카르타고의 문제점은 로마에 대항한다는 점도 아니었고

단지 2차 포에니 전쟁 패전후에도 '여전히 부유했다'는게

로마인들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왔고

더 정확히 말하면 부유했다는 문제라기보다는

부유했음에도 그것을 지켜닐 힘이 없었더는게

당대 카르타고인들의 문제점이면 문제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카르타고는 다른 '바바리안(야만인을 로마에서 이르는말)'들과

다르게 상당히 수준높은 문명국이었고

'2차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를 상당히 위협하며

멸망 직전의 위기까지 몰고간 나라였기에

로마는 1,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이겼음에도

계속해서 카르타고를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재기하는 카르타고는

'그 자체가 위협'이라는 다소 억지로 보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로마인들의 시각에서는 그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다시 당대의 정치적 배경으로는,,

로마는 그렇게 남쪽의 카르타고를 예의주시하는 한편

더이상 지중에에 적수가 없어지자

이번엔 로마 동쪽의 그리스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고

그리스계 제국 셀레우코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당대 무적의,,) 로마는(괜히 '지중해 깡패' 이런 별명이 있는게

아닌거 같습니다,,) 그리스에서도 역시 패권을 장악했고

평소같이 (정복후,,) 온건주의 외교책을 실시했는데

그리스인들은 오랜 문명국임을 자부했으며

로마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 로마가 강력한지도 잘 몰랐기에

이탈리아의 군사국가 로마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반대로 이탈리아 세력들은

이미 로마가 군사적으로 강력함을 알았기에

로마와의 강력한 동맹관계를 유지했는데

로마인들은 평소같이 그리스도 그러면 될 줄 알고

온건주의 노선으로 그리스를 지배하려 하다가


헬레니즘 문화와 개인주의 사상이 강했으며

완전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었던 그리스인들의

반발을 일으켰고 실제 옛날 그리스는 정말 대단한

문명국가였기에 그리스인들은 로마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으려하며

로마의 온건외교를 그리스에 대한 열등의식에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 해석했다고 합니다,,


(즉 당대 그리스인들의 심리는

왠 촌뜨기,오랑캐 녀석들이 우리 수준높은 문명국을

지배하려 듬 ? 이런 마인드였던거 같고

이런것은 동양에서도 강력한 북방 유목민족에게

쇠약하나 문명적 자부심이 있었던

중국이나 한국 농경민족들이 털리기 직전에,,

이런 마인드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로마인들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그리스인들에

대해 점점 온건주의 노선에 대한 회의가 생기게 됬고

그러다 강경주의계 정치가 카토가 로마에 등장하며


<카토>아니 우리가 그리스보다 더 쎈데 왜 우리가

얘네때문에 고생함 ? 당장 진압해버리자 !


하며 로마인들의 막힌 속을 뚫어주었고,,

온건주의 정치가의 대표였던 아프리카 자마에서

한니발을 꺾으며 젊은 나이에 영웅이 된

스키피오는 점점 실각했고

이는 단순히 그가 온건주의 노선만 걸어서라기보다

너무 젊은 20대의 나이에 로마의 대표가 됬고

로마의 숙적 한니발 바르카를 물리치며 로마를 구한 인물이었기에

그가 독재자가 될 것을 염려한 우려와 이에 대한 견제도 맞물려서

카토 일파의 맹렬한 정치적 공격을 받게되서

법적으로는 무죄였으나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시골에 내려가 살다가

그의 영원한 라이벌 '한니발'과 같은 해에 죽습니다


그렇게 카토는 로마 영웅 스키피오를 탄핵해 실각시켰고

그는 2가지로 유명했는데

하나는 그리스 문화 혐오,

두번째는 카르타고 멸망 (뜬금포,,) 이었는데


사실 카토의 주장도 당대 로마인들을 선동하기 충분했던

이유가 카르타고와 그리스는 비록 로마의 세력 아래로

편입됬다고 하나 워낙 전통적인 강국이자

'문명국' 이었기에 보통의 나라가 아니었고

그리스만이 아닌 아예 카르타고까지 멸망시켜서

확실하게 지중해 패권을 잡자는게 그의 주장이어쓸 것이고

그는 카르타고와 별 관계가 없는 연설에서도

연설 말미를


<카토>카르타고를 멸망시켜야 합니다 !


하며 로마시민들을 선동했고,,

확실히 지중해의 패권을 잡고하자 하는

당대 로마인들에게 이 선동은 꽤나 먹혔던 것으로 보입니다,,


<라봉봉>그렇게 3차 포에니 전쟁 이전에

로마에는 온건파가 실각하고 강경파가 득세하는

정치적 배경이 있었고

다음 이야기이자 포에니 전쟁 마지막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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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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