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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니 전쟁 종결, 철저하게 파괴된 카르타고>


그렇게 3차 포에니 전쟁 전의 로마내의 정치적 배경 이야기는

이전 이야기때 했고

다시 카르타고 상황으로는,,

로마의 정세변화를 지켜보던 아프리카 누미디아의 왕

마시니사는 이틈을 타서 만만한 카르타고를 침략했고

(당대 누미디아 역시 유목민에서 농경민으로 바꿨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카르타고는 돈은 많았어도,,

로마의 허락 없이 전쟁을 하지 못했기에

로마에 군사행동 허가를 요청했으나

카르타고를 극도로 경계했던 로마는

2차 포에니 전쟁때 기병들을 지원하며 로마를 도왔던

누미디아를 노골적으로 편들었고


(카르타고에게는 그냥 망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카르타고는 결국 로마와의 조약을 무시하고

결국 6만 용병을 모집해서 누미디아에 쳐들어갔는데

하필이면 누미디아에게도 패배해버립니다,,


이에 이때다 싶은 로마 원로원은 그리고 카토의 선동으로

즉시 무단으로 전쟁을 벌인(카르타고에서는 자위권 행사였는데도

노골적으로 그냥 카르타고를 죽이려는 의미입니다,,)

카르타고에 선전포고를 하고

그렇게 마지막 (강대한) 로마와

(사실상 시체가 된) 카르타고의 전쟁(혹은 일방적 학살,,)

3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로마는 카르타고와 오래전부터 싸울 구실을 찾고있었는데

카르타고는 불가피했다하더라도

결국 로마에 전쟁 명분을 제공해줬고,,

(당대 궁지에 몰린 카르타고인들은 즉 어느것을 택하던

사망이라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국력을 회복하며 경제적으로 재기하고 있었던 카르타고였다지만

로마를 이길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고

카르타고 내에서도 로마와 싸울지 강화할지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이 계속되자

온건파는 이미 누미디아의 공격으로 경제적 타격이 매우커서

로마와의 전쟁을 피해야 한다 했고

이에 카르타고는 온건책을 택해서

누미디아를 공격한 장수를 처형하고


로마 원로원에 여러차례 사절을 보내서

사과하고 강화를 준수하겠다 했고

로마에서는

모든 무기의 몰수 + 배상금 부과 등으 요구했고

카르타고는 정말로 나라안의 모든 무기를 로마에게 주게됩니다,,

그 수는 10만개가 넘었다고 하고

2차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에 해군이 해체됬다면

이번에는 결국 육군이 해체됬다고 할 수 있고

사실상 나라를 지킬 아무런 수단도 없게 된 것인데


그럼에도 카르타고가 아니꼬왔던 로마인들은

이번에는 카르타고에게 다음의 최후 통첩을 보냅니다


<로마>카르타고인들은 수도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주민들은 해안에서 15 km 떨어진 곳으로 모두 이주할 것


(지중해 한가운데에 있었던 북아프리카의 요지에 위치한

카르타고의 주 산업이 상업, 해상무역인데 해안가에 떨어져살면

그냥 죽으라는 의미입니다,,)


이에 카르타고인들은


<카르타고 사절단>이는 카르타고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


<로마 원로원>만약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다면

전쟁뿐이다


결국 로마 원로원은 카르타고 사절을

돌려 보냈고 카르타고 사절 절반 이상은

외국으로 달아납니다 이는 당대 카르타고 사절단은

카르타고 내에서 로마와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사절들이 카르타고에 돌아오자

분노한 카르타고 시민들은 사절들을 모두 처형합니다,,


그렇게 결국 로마의 카르타고에 대한 조건은

그냥 사라지라는 협박이라 할 수 있고

결국 카르타고인들은 애초에 로마에서는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려 했던 것이었음을 깨닫고

로마와의 결전을 준비하게 되고

이미 모든 무기를 넘겼으나 다시 카르타고인들은

사절들을 처형하고(즉 온건파 숙청) 로마와 결전을 준비합니다


카르타고인들은

주변에서는 농성전을 대비해서 식량을 모았고

나무와 나뭇가지를 무기로 사용하려 했고

일부 성안의 성벽을 헐어서 투척용 돌로 사용하려 했고

로마군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모든 물건이란 물건을

모두 모읍니다,, 또 카르타고 여자들끼리도 머리카락을 잘라서

석궁의 밧줄로 사용했고 전쟁의 화평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사형에 처하게 했습니다


이미 로마 입장에서는 늙은 이빨빠진 사자와의 결투,

시체 죽이기, 거의 누워서 떡먹기,, 같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로마인들은 저마다 옛날 카르타고 명장 한니발을 물리친

스키피오같이 공을 세우려

제 2의 아프리카누스(아프리카를 정복한자 칭호)를 노리며

카르타고를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는데

카르타고인들은 아예 살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처절하게 항전하며 3년이나 버텨냅니다,,

물론 카르타고인들에게 이는 이기는게 아니라

하루하루 파멸을 늦추는 것이었고,,


로마인들 역시 단기간에 끝날줄 알았던 이 전쟁이

3년이나 끌게 되자 로미 시민들의 전쟁피로도 커졌고

결국 한니발의 카르타고를 물리친 아프리카의 정복자

스피키오의 손자(정확히는 아들의 양자)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를 규정을 무시하며

다시 집정관에 선출하며 지휘를 맡겼고

이는 원칙을 어기며 뽑아준 만큼

끝장을 보고 돌아오라는 의사표시였다 하고

결국 3년만에 카르타고 성벽이 뚫렸는데,,

성벽이 뚫리고 로마군이 도시에 진입했음에도

카르타고 시민들은 이번에는 시가전을 벌여서 맞섰고


당대 카르타고군과 시민들은 스피키오의 4만 로마 정예병을

오로지 돌, 나뭇가지, 맨손으로 맞섰고

죽인 로마군들의 무기를 빼앗아 필사적으로 대항했다고 합니다,,


<3차 포에니 전쟁>


그러나 결국 로마군에 함락된 카르타고였고

전쟁전 25만 규모의 카르타고 인구는

전쟁이 끝날 무렵 고작 5만명 남짓으로 줄었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힘없는 노인과

어린 부녀자였고 로마군은 이들을 아프리카 외진 곳으로

강제 이주시킵니다,,


<로마군들>참으로 독한 녀석들이었습니다,,

이 남은 주민들을 노예로 파는게 어떨까요 장군 ?


<스키피오>그냥 이주만 시키거라

이는 ! 3년동안 칼과 창 한자루도 없이 맨손으로 자신의

조국을 위해 목숨바쳐 싸운 카르타고인들에 대한

로마인들의 존경의 의미이다


<로마군들>알겠습니다 !


텅 빈 옛 영화를 자랑하던 카르타고는 로마군에 의해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파괴되고 불탑니다,,

또 가래로 땅을 갈고 소금을 뿌려서

카르타고를 불모지로 만들었습니다


왠만하면 주민만 노예로 만들거나 이주시키고

도시는 로마의 식민지 거점으로 삼는게 로마의

방식이었지만 카르타고는 이례적으로 예외로

17일동안 도시가 철저히 태우고 파괴됬고

이는 제 2의 한니발이 나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로마를 크게 위협했던 카르타고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700년동안 번영을 누렸던 도시가 잿더미로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던 로마군 대장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승리의 노래가 아닌

비애의 눈물을 흘렸고

그는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모르나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트로이 총사령관 헥토르의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스키피오>언젠가는 트로이도, 프리아모스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뒤에 서있던 폴리비우스가,,


<폴리비우스>왜 하필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


스키피오는 폴리비우스를 돌아보며

그리스인이지만 20년지기이기도 한 그의 손을 잡으며 대답합니다


<스키피오>폴리비우스, 지금 우리는 지난날 영화를 자랑하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네


근데 그의 말대로 결국 로마도 멸망때는 이런 상황들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를 위협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명언으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니발>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계속 평화로울 수는 없다

국외에는 적이 없다 하더라도 국내에 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이 접근하지 못하는 건강한 육체라도

그 육체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내장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로마도 카르타고 멸망 이후 지중해에 적수가 사라지게 됬고

내부적으로 오랜 분열을 겪다가 새롭게 일어난

이민족들에게 허무하게 멸망하게 됬다고 할 수 있고

그렇게 3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게 됬으나

그렇게 더이상 견제 세력이 없어진

로마는 결국 그렇게 점점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두려워지는 상황'


에 직면하게 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키피오>수많은 제국들이 그렇게 무너졌지,,

로마만은 이렇게 되어서는 안될 것인데,,


-3차 포에니 전쟁 종결-


결국 그렇게 카르타고 영토는 로마영토로 편입되서

아프리카 속주로 재편됬고

카르타고의 탐스럽고 비옥한 농지는 라티푼디움,대농장으로 바뀌어서

로마 귀족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게 됩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의 카르타고인들에 대한 경계심은 상당했어서

철저히 파괴된 도시는 방치됬고 이후 100년뒤에나

로마인들에 의해 다시 재건되나 예전의 영광을 찾지는 못했다고 하고

당대 카르타고는 워낙 철저하게 파괴되서

이후에도 카르타고 흔적은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라봉봉>그렇게 3차 포에니 전쟁의 이야기였고

이 전쟁은 2차 포에니 전쟁에 비해서

카르타고에서는 한니발같은 인물도 없었고

로마의 일방적 학살에 가까운 공격이었으나

대신 카르타고인들의 결사항전이 있었다고 할 수 있고

비록 애국심,단합심이 부족했던

카르타고였지만 멸망전 순간 만큼은

모두가 합심해 죽기를 각오하고 로마군에 맞섰다고 할 수 있으며

영광과 번영을 누리며

지중해를 호령했던 카르타고인들의

마지막 불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대 로마와 카르타고의 승패의 원인은

로마는 이미 패배한 장수도 다시 격려하고 다시 기회를 줬다면

카르타고는 용병위주 군대에 패배해 돌아온 장수는

바로 사형에 처하는 관습이 있어서,, 1차 포에니 전쟁때도

3명의 장수를 처형했다고 하고,,(이로 인해 양국의 경험있는

지휘관들의 수는 로마는 점점 늘고

카르타고는 점점 줄었다고 합니다)


귀족,지도층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직접 전장에 나섰던 로마와 달리

돈으로 고용해 쓰는 용병위주의 군사와

항상 본국에서 지시만 내리던 카르타고 등 여러 원인이 있다고 하고


저 생각에는 이런것 이외에도

당대 로마는 우수하고 건강한 기풍에 안정된 시스템으로 한명의 장수가 죽어도

다른 대체 인물들이 계속 나오는 시스템이었고

카르타고는 부국이었지만 점점 부패하고 한니발 같은

소수의 특출난 인물 하나에만 의지하던 실정이라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그 몰락은 더 가속화 됬다고 할 수 있는거 같고

또 당대 로마는 계속 주변 이민족의

기술이나 양식들을 블랙홀같이 흡수하던 상황이라

한니발의 군사 전략을 습득한 이후부터는 당대 지중해 세계에서는

더이상 로마를 군사적으로 상대할 세력이 사라졌고 등등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는 지중해의 패자가 됬으며

사회,경제,정치,군사적으로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로마는 이때부터 넓어진 영토에서 값싸게 들어오는 물자와

전쟁 이후 귀족,원로원계급들에게 몰린 부의 독점 등으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이 시작됬고 (로마에서 중산층이 중요한 이유는

로마 주요 전력이 이 중산층이었기 때문이었고 이후 로마는

직업군인제로 변화하게 됩니다)

점점 건강한 기풍들을 잃어가며

사치와 낭비 풍조가 커졌다고 할 수 있으며

그렇게 제국화되다가 결국 이후 스키피오가

파괴되는 카르타고를 보며 비탄해 잠긴 것같이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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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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