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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시메노 호수의 전투>


트라메시노 호수를 지나던 한니발은

이 호수지역이 매복하기 아주 적당한 곳이라 생각했고

플라미니우스가 캠프에서 나와서 카르타고군을 추격중이라는 정보를 듣자

이곳에 복병을 배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곳은 길이 호수와 언덕 사이에 뚫려 있었고

한니발은 언덕쪽에 군사들을 매복시킵니다,,


이곳에서 한니발군은 매복하며 불도 피우지 않았고

훨씬 먼곳에 모닥불을 펴서 매복임을 알아채하려했고

다음날 로마군은 진군을 시작했고

안개속에서 행군을 시작합니다

플라미니우스는 모닥불을 보고 카르타고군에 멀리 떨어져 있다 생각하고

로마군들을 서둘러 행군하라 재촉했고

길에 진입한 한니발은 약간의 투창병을 내보내서

로마군을 공격하고 달아나게 했고

결국 유인된 로마군 전체가 길에 진입하자

로마군에 총공격을 명령했고

너무 급작스러운 공격에 로마군의 대형은 흐트러졌고

안개에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로마군은 호수에 내몰리며 카르타고군에 죽거나

익사하며 포위 섬멸됩니다,, 호수는ㄹ 로마 군사의 피로 붉게 물들게 됬고,,

2만 5천여명의 로마군중 살아서 로마로 돌아간 병사들은

2천에 불과했고

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도 이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트라시메노 호수의 전투>


이 소식을 들은 로마인들은

트레비아 강에서의 전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채

또다시 한니발군에 트라메시노 호수에서 큰 패배를 당하자

큰 충격에 휩싸였고

로마에서는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독재관(두 명씩 뽑는 대통령 격인

집정관보다 더 높은 한 명에 집중한 국가 재난사태의 비상관직)에 임명했고

병력을 보충할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한니발군과 비슷한 군을 보내서

한니발군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하고 동시에 다른 부대들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이 아닌 다른 카르타고군의 배후 보급을

차단하거나 하며 한니발 군을 고립시키는

'파비우스 전술'이라는 지연전술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전술 역시 로마 시민들에게

지나치게 소극적인 전술이라 비판받았고

이런 상황에서 한니발은 아폴리아에서 아무런 방해없이 마음껏

약탈을 자행했고 일부로 파비우스의 영지만 약탈하지 않았고

이에 로마시민들은 파비우스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로마시민들>파비우스는 겁쟁이 전술을 그만 사용하라 !


파비우스의 전술적 실책까지 더해지자 로마 귀족회의인 원로원의

신임마저 잃게됬고

결국 로마군은 '파비우스 전술'을 폐기하고

다시 군사를 모아 대규모의 회전(대전투)을 결심하게 되고

보병 8만, 기병 6천 4백명으로 한니발과 대규모 회전을 벌이려

남이탈리아로 진격했고

이는 한니발이 원하는 것이었고 된

한니발 역시 5만의 군대로 이에 맞서려 북진하고

양국의 군대는

칸나에에서 맞서게 됩니다,,


<(포위 섬멸전의 교과서이자

역사상 가장 완벽한 전투로 불리는) 칸나에 전투>


양국의 군사는 칸나에 평원에서 마주보며 대치했고

이 전설적인 전투를 짧게 요약하면


'다수(8만)의 밀집된 로마군이

소수(5만)의 카르타고군에게 포위되어 패배한(학살된) 전투'


라고 할 수 있고

한니발 군은 소수의 병력이었지만

강력한 기병으로 로마군 기병을 궤멸시키고

곧 포위해 섬멸했던 전투로

어떻게 보면 되게 단순한데

그만큼 '고전적인 포위섬멸' 전투로서

괜히 교과서적인 전투라거나

완벽한 전투라는 이야기들이 나오는게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투 진행양상은

서로 o ㅁㅁㅁㅁ o

      o ㅁㅁㅁㅁ o


이런식으로 대치하고 ㅁ은 보병

o는 기병이고 이런식의 전투가 당시 방법이고

이에 한니발은 약간 비틀어서 일자가 아닌 초승달 대형을 사용했고

이는 임진왜란때 조선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과 비슷한 대형입니다,,


<빨간색이 로마, 파란색이 카르타고 한니발 군으로

한니발은 압도적인 기병으로 먼저 로마 기병을 격파하고 재빨리

로마 보병 후방으로 가서 압박하게 됬고

이로 인해 로마군을 포위, 섬멸 합니다>


한니발의 초승달 대형은 앞이 불룩 튀어나와서

적의 공격에도 뒤로 물러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서

로마군의 포위를 예방,방지했다고 할 수 있고

또 점점 앞의 군사들이 뒤로 가며

로마군이 포위됨을 노렸다고 할 수 있고

이론적으로는 쉽게 말이 가능하나

당대 로마군 역시 중앙돌파를 하려 했고

자칫 중앙이 궤멸되면 심각한 피해가 있을 수도 있기에

이미 검증된 강력한 군사들을 중앙에 배치하고

이런 로마군의 의도를 철저,정확하게 파악했던

당대의 한니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당대 기병은 오늘날 공군이나 해군같이

재빠르게 적을 공격하고 퇴로등을 차단하는 역활이었다

할 수 있는데 한니발은 이렇게 기병의 중요성을 알고

'지중해 최고의 경기병'이라 이야기 되는

강력한 누미디아 경기병을 사용하게 됬고

보병 전력은 로마가 숫적으로 압도하고 있었으나

기병 전력은 카르타고가 2배 가까히 수적,질적 큰 우세가 있었다고

할 수 있고 강력한 기병으로 인한 포위, 승리였기에

그만큼 기병의 중요성을 알린 전투였다고 할 수 있고


당대 로마군은 8만이나 되는 대군이었기에

넓게 병사를 펼치지도 못했고 초밀집 방진을 펼치다가

이 전략들을 모두 읽고 있었던 한니발의

발빠른 기병들의 우회 등으로 점점

카르타고 군에게 포위됬고

이에 로마군은 대형들이 무너지고 너무 밀집되있어

무기도 사용하지 못하고 병사들은 공포에 질리고

지휘관들 역시 서로 도망가려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전투라기보다 로마군이 사실상 학살당했던 전투였고


5만여명의 로마군이 궤멸됬고 카르타고군 사망자는

겨우 5700명이었는데

소수의 5만 카르타고군이 8만 로마군을

10대 1 교환비로 학살하듯이 했고,,

이게 가능한 이유는

'포위'여서 가능했던 것인데

만약 병사들이 포위된다면 다수가 소수에게 포위되도

포위된 다수군의 중간의 병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아무리 병사가 많다해도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고,,

또 점점 압박에 밀리면서 칼등에 죽는 병사말고도

서로 밟혀 죽는 병사들도 많았기에

당대 1분당 600명의 로마군이 죽는

전투라기보다 일방적인 학살이라고도 이야기 됩니다,,


한니발은 이 '포위섬멸'이라는 군사학의 기초적인 방법을

잘 활용해서 비록 보병에서는 양적으로 밀렸더라도

발빠른 기병전력을 크게 강화함으로서 로마군 기병을

초기에 제압하고 곧 우회해서 로마군 보병 후방을 공격하며

점점 포위, 압박 전술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고

이에 강력한 보병의 로마군이 궤멸했던

전설적인 전투였다고 할 수 있고

워낙 단순하기도하고 고전적이어서

오늘날 세계각국의 사관학교에서는 꼭 가르친다는

전설의 전투라고 합니다


<칸나에 전투>


즉 한니발은 단순히 로마를 떨게한 명장이 아닌

병법,군사학의 아버지 격으로

서양에서는 동양에서 손자병법의 손무 격 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만큼 천재적인 전략,전술 등으로 로마를 궁지에

몰아간 명장이었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봉봉>칸나에 대회전이라고도 불리는 칸나에 전투는

포위섬멸전이었고 이런 포위섬멸전략을

'망치(기병)와 모루(보병) 전술'이라고 하고

요즘말로 '쌈싸먹기' 전략이라 할 수 있고

한니발 장군의 칸나에 전투는

상당히 단순히고 기본적이면서도

교과서적인 망치와 모루 전술 모습이었고

한니발 장군은 이 전술을 세심하게 다듬어서

전장을 예술 단계로 끌어올렸다고 하고,,

현대전에서도 계속 응용하는 이 쌈싸먹기 전략은

불후의 전술, 기초적인 전술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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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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