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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39대왕 소성왕 昭聖王 김준옹

재위기간 1년 799~800년


소성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김부식>소성 昭聖 을 소성 昭成 이라 쓰기도 한다


그의 이름은 김준옹이며

원성왕의 태자 김인겸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김씨이고 


왕비는 김씨 계화부인이며

대아찬(신라 5등벼슬) 숙명의 딸입니다


원성대왕(원성왕) 원년(1년) 에

그의 아들 김인겸을 태자로 봉하였으나

원성왕 7년에 죽었으므로

원성왕이 태자의 아들 김준옹을 궁중에서 길렀습니다


<원성왕>에휴 아들들도 다 죽어버리고,,

준옹이는 이 할애비 말만 잘 따르거라


<김준옹>예압~


<원성왕>허허 신세대구만 ~


원성왕 5년에

김준옹은 사신으로 당나라에 가서

대아찬(신라 5등벼슬) 직위를 받았고


원성왕 6년에

파진찬(신라 4등벼슬) 으로 재상이 되었고


원성왕 7년에

시중(오늘날 국무총리) 이 되었고


원성왕 8년에는

병부령(국방주 장관) 이 되었고


원성왕 11년에는

태자가 되었습니다


(원성왕은 태자로 책봉한 두 아들을이

죽어버린 상태였기에

손자 김준옹에게

훗날 왕이 되더라도 뒷탈이 없게

여러 관직을 거치게 하며

손자교육을 시키려 했던거 같습니다)


원성왕이 붕어(사망) 하자

김준옹, 소성왕이 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소성왕 원년(1년)

3월 봄

청주 菁州 의 거노현 居老縣 을 국학생(신라 교육기관 국학의 학생) 의

녹읍 祿邑 (관리에게 직무의 대가로 지급하는 논밭) 으로 정했습니다


냉정현령 冷井縣令 (냉정은 오늘날 부산광역시 동래쪽 ?? ) 염철이

흰 사슴을 진상했습니다


5월 여름

소성왕의 아버지인 혜충태자(김인겸)를 혜충대왕으로 추봉했습니다


우두주 牛頭州 (오늘날 강원도 춘천시)도독이

사신을 보내서 소성왕에게 말했습니다


<우두주 도독이 보낸 사신>오 폐하,,

소와 비슷한 이상한 짐승이 나타났사옵니다


그 짐승의 몸체는 길고 크며

꼬리 길이가 석 자 (73.5cm 정도) 쯤 되고

털은 없고 코가 긴 데

현성천 峴城川 에서 오식양 烏食壤 을 향하여 갔습니다


<소성왕>오,, 코가 길다고,,

코가 길다,, 코길,, 코낄,, 음,, 무슨 동물일까 ?


(신라는 중국이나 이슬람 상인들과도 교역하고는 했는데

아마 신라에 장사하러온 외국 상인이

코끼리를 신라에 데려왔는데 일단 신라 국제 무역항이

당항성[경기도 화성시] , 울산항 두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울산에서 춘천까지는 거리가 너무 머니까

당항성에 중국이나 이슬람 상인이

코끼리 데려왔다가 갑자기 화난 코끼리가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했을 수도 있고 이에 춘천까지 쿵쾅쿵쾅 걸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또 백제 금동대향로에는 코끼리가 새겨져 있어

백제인들은 이미 코끼리의 존재를 알았는데

삼국통일 후 백제가 멸망하며 한국인들 기억속에서

코끼리는 잠시 잊혀진게 아닐까 싶습니다)


7월 가을

길이가 아홉 자 (1자=24.5cm , 2.2m 정도) 인 인삼을 얻었습니다

이를 매우 기이하게 여겨서

사신에게 주어서 당나라에 바쳤습니다


당덕종은 이것이 인삼이 아니라하여 받지 않았습니다


8월

소성왕은 어머니 김씨를 성목태후로 추봉했습니다


한산주(오늘날 황해,경기,충청도) 에서 흰 까마귀를 바쳤습니다


소성왕 2년

정월(1월) 봄

왕비 김씨를 왕후로 봉하고

충분을 시중(오늘날 국무총리) 으로 임명했습니다


4월 여름

폭풍이 불어서 나무가 부러지고

기와가 날렸습니다

서란전 瑞蘭殿 (신라 궁궐내에 있던 전각중 하나)

에 쳤던 발(햇빛 가리개) 이 날아갔는데

어디로 갔는지를 알 수 없었으며

임해문 臨海門 과 인화문 仁化門 이 무너졌습니다


6월

왕자(이후 신라 40대왕 애장왕이 되는 김청명) 를 태자로 봉했습니다


소성왕이 붕어(사망했습니다)


(죽기 직전에 13세의 어린 아들을 태자로 지명한거 같습니다)


시호를 소성 昭聖 (직역하면 밝은, 빛나는 성인) 이라 했습니다


<라봉봉>소성왕의 생몰년도는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재위 전에 주요 관직들을 거쳤고

사망 직전 13살의 어린 아들이 있었단 점 등

소성왕 역시 사망때 나이가 약 20대 후반 정도로

나이가 없지는 않았던 인물인데

재위 1년 5개월만에 한창의 시기에 사망해 버린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딱히 재위기간동안 무엇을 잘한다거나 못한다 할것도 없이

너무 빨리 사망한 인물이고

딱히 안정도, 불안정도 없었던 시기로 보여집니다


하대 신라는 도중도중에 잠시간의 안정기는 존재했지만

계속되는 왕위 찬탈,쟁탈전이 벌어지는 시기이고

어린 아들(애장왕) 한명 남기고 죽은 소성왕인데

애장왕도 소성왕의 친동생에게 살해당하고

음,, 무엇을 말할려 하는 거냐면

통일신라 후기, 신라 하대는 상당한 혼란기라고 이야기 됩니다

그러나 분명 혼란 사이사이에 안정기들은 존재했고

신라는 다시 국력을 회복하고 부흥할 기회, 시간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동안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할 수 있고

점차 시대의 변화 등에 기울어가는 신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라 39대왕 소성왕이 800년 6월에 사망했으니

이제 신라 마지막왕이자 56대왕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는 936년 1월 8일까지 136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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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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