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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좌평에게 간첩을 보낸 김유신>


(*좌평 = 백제 1등벼슬)


영휘 6년 을묘

9월 가을

김유신은 백제에 진공(진격)해서

도비천성 刀比川城 (오늘날 충청북도 영동군 비봉산성 지역 ?? )을

공격해서 승리했습니다


이 때 백제는

임금(의자왕)과 신하가 사치하고 음란하여 국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의자왕은 삼천궁녀 의자왕으로 유명하고

여기서 삼천은 실제로 3000명의 궁녀가 아니라

수많은 궁녀의 시적 표현이라 합니다)


(백제)백성들은 이를 원망하고

신령이 노해서 재앙과 괴변(예상하지 못한 괴상한 재난이나 사고) 이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김유신이 태종 무열왕(신라 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에게


<김유신>백제가 무도(도리에서 벗어남)하여


(百濟無道 백제무도)


죄악이

걸, 주(역사속의 폭군)보다 심하니

이제는 실로 하늘의 뜻에 따라

(백제)백성을 불쌍히 여기어 그 죄를 다스릴 때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앞서 급찬(신라 9등벼슬) 조미압이

부산(원문에서는 천산 天山 인데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현령으로 있다가

백제로 잡혀가서 좌평(백제 1등벼슬) 임자(사람 이름)의 종이 되었었습니다


그(조미압)는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태만한 적이 없었습니다

임자는 그를 불쌍히 여겨 의심하지 않았고

마음대로 외부 출입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백제를 탈출하여 신라로 돌아와

백제의 사정을 김유신에게 보고했습니다


김유신은 조미압이 충직하여 쓸만한 인물임을 알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김유신>나는 (백제 좌평)임자가 백제의 국사를 전담한다고 듣고 있다

내가 그와 의논을 하려 하였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대가 나를 위하여 다시 돌아가서 이것을 이야기하라


그(조미압)는


<조미압>공이 저를 불초(못나고 어리석다) 하다고 여기지 않고

일을 맡기시니

비록 죽더라도 후회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조미압은 마침내 다시 백제로 가서 임자에게 말했습니다


<조미압>제가 기왕 백제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 나라의 풍습을 알아야겠기에

수십 일 동안 다니면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실 김유신 만나고왔지만,,)


그러나 개와 말이 주인을 그리는(그리워하는) 마음처럼

제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서 이렇게 돌아 왔습니다


임자는 그 말을 믿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조미압이 기회를 타서 임자에게 말했습니다


<조미압>전번에는 죄를 받을까 두려워서

감히 바른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신라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김유신이 전하라고 하면서 저에게


'나라의 흥망은 예측할 수 없으니

만일 백제가 망하면 그대(임자)는 신라에 의탁하고

신라가 망하면 내가(김유신) 백제에 의탁하기로 하자'


고 말하였습니다


임자는 이 말을 듣고 묵묵히 말이 없었습니다


<임자>,, (혼란스럽구나 김유신이 보냈단 말이지,,)


조미압은 황송스러워하며 물러나와

여러 달 동안 내내 처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임자가 불러서 물었습니다


<임자>흐음,, 네가 지난 번에 이야기한 유신의 말이 어떤 것인가 ?


조미압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지난 번에 말한 것과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이에 임자가 말했습니다


<임자>네가 전한 말을 내가 이미 잘 알았으니

돌아가서 (김유신에게) 알려라

(솔직히 지금 상황에 백제도 언제 망할지 모르는데

나도 일단 발하나 걸쳐놔야지,,)


조미압이 드디어 신라로 돌아와 임자의 말을 전하고

동시에 백제의 내외(안과 밖) 사정을 상세하게 이야기하니

김유신은 서둘러 백제를 병합(하나로 합침)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백제를 멸망시킨 김유신>


태종대왕(태종 무열왕) 7년 경신

6월 여름

대왕(태종 무열왕)은 태자 법민(김법민 , 훗날 신라 30대왕 문무왕) 을 데리고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서 군사를 크게 동원하여

남천 南川 (남천주 , 지금의 경기도 이천시) 에 이르러 진을 쳤습니다


이 때 당나라에 원군을 청하러 갔던

파진찬(신라 4등벼슬) 김인문(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이

당 나라 대장군 소정방 , 유백영과 함께

군사 13만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덕물도 德物島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도의 옛이름) 까지 와서

먼저 종자 從者 (심부름꾼) 문천을 보내서 보고하게 했습니다


태종 무열왕이 태자(김법민)와

장군 김유신 , 진주 , 천존 등에게 명해서

큰 배 1백 척에 병사들을 함께 태우고 가서 회합케(여럿이 모이게) 했습니다

태자(김법민)가 (당나라)장군 소정방을 만나자

소정방이 태자에게


<소정방>나는 해로로 가고 태자는 육로로 가서

7월 10일에 백제의 왕도(수도) 사비성에서 만나자


고 말했습니다


태자가 돌아와서 태종 무열왕에게 이 말을 전한 다음

장병들을 거느리고 사라 沙羅 (백제의 사시랑현 혹은 사라로 불린 곳으로

오늘날 충청남도 홍성군 지역)의 군영에 이르렀습니다


장군 소정방 ,

김인문 등은 해안을 따라 기벌포 伎伐浦 (금강 하구 , 오늘날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일대)에 이르렀으나

해안이 갯벌이어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버들(버드나무)을 돗자리로 만들어 깔아놓고

군사들을 하선케(배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당군과 신라군은 연합 공격하여 백제를 멸망 시켰습니다

이 싸움에서 김유신의 공로가 컸습니다

당나라 황제가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 김유신을 표창했습니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김유신 , 인문 , 양도 등 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소정방>내가 황제의 명을 받아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

이제 빼앗은 백제 땅을 공들의 식읍(개인 땅)으로 나누어 줌으로써

여러분의 공에 보답코자 하는데 어떤가 ?


이에 김유신이


<김유신>대장군(소정방)이 귀국(당나라)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우리(신라) 임금의 소망에 부응하고

우리 나라의 원수를 갚았으니

우리 임금과 온 나라 신민 臣民 (신하와 백성 , 백성)들이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유독 우리만이 땅을 받아 자신을 이롭게 한다면

이것이 어찌 의로운 일이겠는가 ?


라고 말하고는 받지 않았습니다


(받지 않은 이유는 다름아니라

애초에 나당동맹에서 백제땅은 신라땅이었는데

당나라는 백제 영토까지 욕심을 내서 백제땅도 가져가려 했고

백제 지역의 땅을 소수의 신라 장군에게 선심쓰듯이 준다며

어떻냐고 회유했지만 그것이 주권을 침탈당하는 것임을 인지했던

김유신 장군의 거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자

사비(백제 수도) 지역에 진영을 치고

신라에 대한 침공을 음모(나쁜 목적으로 몰래 흉악한 일을 꾸밈) 했습니다


(나당동맹 약속을 깨고 백제는 물론 신라까지 먹으려 했던

당나라의 야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왕(태종 무열왕) 이 이를 알고 여러 신하들을 불러 대책을 물었습니다


다미공 多美公 (이름은 다미) 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다미>우리 나라 사람을 백제인으로 가장하여

백제의 의복을 입혀서 역적행위를 하게 하면

당군이 반드시 이를 공격할 것입니다

이 때 그들을 공격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김유신이 말했습니다


<김유신>이 의견이 취할 만하니 시행하기 바라나이다


태종 무열왕이 말했습니다


<태종 무열왕>당군이 우리를 위하여 적을 격멸하였는데

도리어 그들과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 주겠는가 ?


김유신이 말했습니다


<김유신>개가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자기의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인다는 속담과 비슷합니다)


국난을 당하여

어찌 자위책 (스스로를 지키는 방책) 을 취하지 않겠습니까 ?

대왕께서는 이를 허락하소서


<태종 무열왕>유신공이 그렇게 말하는데 그렇다면야,,


당나라가 우리(신라)의 대비책을 정탐하여 알고

백제 왕과 신하 93명 ,

군사 2만 명을 사로잡아서

9월 3일에 사비로부터 배를 타고 돌아가면서

낭장 유인원(당나라 장수) 등을 남겨두어 수비(방어)하게 했습니다


소정방이 귀국해서

천자(황제)에게 (백제)포로를 바쳤습니다

천자(황제)가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당황제>어찌하여 뒤이어 신라를 치지 않았는가 ?


소정방이 말했습니다


<소정방> (황제께서 세상물정을 잘 모르시군,,)

신라 왕은 인자한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며

신하들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아랫 사람들은 윗사람을

부형(아버지와 형)과 같이 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라는 비록 작지만

일을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백제 공격 전

백제 좌평 임자를 회유해 정보를 캐낸

김유신 장군이었고

김유신은 백제도 ,당나라도 쳐야한다는

주전론자 主戰論者 (전쟁하기를 주장하는 의견이나 태도의 사람) 였지만

그가 어리석어서 라기보다는

오랜 기간동안 백제의 위협등에 신라는 점점

고구려, 백제 , 왜(일본) 의 압박에 고립되가고 있었고

까딱하다가는 멸망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중국 당나라와 손을 잡게 된 것이었고

백제는 오랜 기간동안 신라와

견원지간 (犬猿之間 개와 원숭이의 사이처럼, 매우 사이가 나쁜 관계) 이었고

또 백제 멸망 이후에도 당나라의 야욕에

나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맞서야 함을 주장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신라에서 그 누구보다 정세에 밝았던 김유신이었기에

일단 신라의 삼국통일은 김유신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 이루어진 대업이었고

이에 백제를 멸망시킨 태종 무열왕 , 고구려를 멸망시킨 문무왕이었음에도

김유신 장군 역시 태종 무열왕 , 문무왕과 더불어

삼한일통, 삼국통일의 3인(3명)의 주역이라고 이야기 된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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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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