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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거칠부와 고구려 스님 혜량의 의리 , 국사(역사)를 편찬한 거칠부>


신라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 거친남자 김거칠부


거칠부


<김부식>혹은 (그의 이름은) 황종 荒宗 이라고도 한다


(황종 荒宗 은 거칠 황 , 마루 종자인데

종은 부[남자]라는 뜻이고 거칠부의 한자식 표기로

보입니다 옛날에는 한국식 발음을 이렇게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한자식 이름이 아닌

한국 고대식 고유어 이름으로

옛날 미국 인디언 추장

' 성난 말 Crazy Horse ' 같기도 하고

다소 인디언식 이름같은

순수한 옛 한국이름 같습니다)


의 성은 김씨이고


나물왕(신라 17대왕 내물 마립간 김내물)의 5세손이며

조부(할아버지)는 잉숙 각간(=이벌찬 , 신라 1등벼슬) 이요

아버지는 물력 이찬(신라 2등벼슬) 이었습니다


거칠부는 젊었을 때 사소한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원대한 뜻을 품었습니다


<거칠부>이 한몸 ~ ! 언젠가 큰 듯을 펼치리라


그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서

사방을 유람했는데

문득 고구려를 정탐(몰래 살핌)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 나라 경내(지역 안)로 들어 갔다가

법사 혜량이 강당을 열고 불경을 강설한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그곳으로 가서 불경 강의를 들었습니다


하루는 (고구려 스님) 혜량이 물었습니다


<혜량>사미 沙彌 (초보, 어린 스님)는 어디서 왔는가 ?


거칠부가 대답했습니다


<김거칠부>저는 신라인입니다

(某新羅人也 모신라인야)


그 날 밤에 (고구려 혜량) 법사가

그를 불러 놓고 손을 잡으며 은밀히 말했습니다


<혜량>내가 사람을 많이 보았는데 너의 용모를 보니

분명 보통 사람이 아니다

아마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테지 ?


거칠부가 대답했습니다


<김거칠부>제가 외딴 지방에서 성장하여

참된 도리를 듣지 못하였는데

스님의 높으신 덕망과 명성을 듣고 와서

말석(맨 끝자리)에 참여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거절하지 마시고

끝까지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여 주소서


법사가 말했습니다


<혜량>노승 老僧 (나이든 스님 , 여기서는 혜량법사 스스로 낮추어 일컫는 말) 이

불민 不敏 (둔하고 재빠르지 못함) 하지만

그대가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네


이 나라가 비록 작지만

그대가 하려는 일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야

(해석해보면

좁은 동네일 지라도 여기도

사람 보는 눈은 있다)


그대가 잡힐까 염려되어

일부러 은밀히 일러 주는 것이니

그대는 빨리 돌아가는 것이 좋으리라


거칠부가 돌아가려 하니

법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혜량>그대의 상을 보니 제비턱에 매눈이로다

앞으로 반드시 장수가 될 것이다

만일 군사를 거느리고 오거든 나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


거칠부가 말했습니다


<김거칠부>만일 스님의 말씀과 같은 일이 생긴다면

이는 스님과 제가 모두 바라지 않는 일이니

밝은 해를 두고 그런 일이 없도록 맹세하겠습니다


거칠부는 마침내 귀국하여

본심대로 벼슬길에 나아가서

직위가 대아찬(신라 5등벼슬)에 이르렀습니다


진흥대왕(신라 24대왕 진흥왕 김삼맥종) 6년

을축에

거칠부는 왕명을 받들어

여러 문사 文士 (문학에 뛰어난 선비 ,문인) 들을 소집해서

신라의 국사 國史 (역사) 를 편찬하였고

파진찬(신라 4등벼슬) 벼슬을 더 받았습니다


(거칠부는 신라의 역사책 '국사 國史' 를 편찬한

인물로 유명하고 신라의 역사책 이름이 '국사 國史' 인지

아니면 '나라의 역사 國史' 를 편찬했다로 해석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해석이 직관적이지 않은 한자나

영어가 불편한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님과 한글 만세 !!!]


일단 거칠부는 신라 역사를 편찬한 인물이라 할 수 있고

이 책은 고려시대까지 전해지다

사라져서 현존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진흥왕 12년

신미에

진흥왕이 거칠부와 구진 대각찬 大角湌 (=대각간 , 태대각간 아래이자

신라 1등벼슬 이벌찬=각간 보다는 위인 특수 고위벼슬) ,

비태 각찬(=각간=이벌찬 , 신라 1등벼슬) ,

탐지 잡찬(신라 3등벼슬) , 비서 잡찬(신라 3등벼슬) ,

노부 파진찬(신라 4등벼슬) , 서력부 파진찬(신라 4등벼슬) ,

비차부 대아찬(신라 5등벼슬) , 미진부 아찬(신라 6등슬) 등

여덟 장군으로 하여금


백제와 협력하여(나제동맹) 고구려를 공격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백제인들이 먼저 평양을 격파하고(고구려 수도 평양쪽 부근까지

치고 올라간게 아닐까 싶습니다) ,

거칠부 등 (신라군)은 승세를 몰아서

죽령 竹嶺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에 사이에 있는 고개)

바깥(혹은 이북) 고현 高峴 (철원쪽으로 추정) 이내의

10개 군을 빼앗았습니다


이 때 혜량 법사가 무리를 이끌고 길가에 나와 있었습니다

거칠부가 말에서 내려서

군례 軍禮(군대의 의식과 예절) 로서

읍배 揖拜 (두손 모아서 인사) 하고 앞으로 나아가 말했습니다


<거칠부>옛날 유학 遊學 (타향[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공부)할 때

법사님의 은혜를 입어 성명 性命 (생명)을 보전하였는데

오늘 우연히 만나게 되니 무엇으로 은혜를 갚아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법사가 대답했습니다


<혜량>지금 우리나라(고구려)는 정사(정치)가 어지러워

멸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의 나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란다


<거칠부>두말할 필요가 있겠사옵니까 ?


이에 거칠부가

혜량을 말에 태워서 함께 돌아 와서

진흥왕에게 배알시키니(뵙게 하니)

진흥왕이 그를 승통 僧統 (승려 승  거느릴 통 자로 승려 관직) 으로 삼고

처음으로 백좌강회 百座講會 (=백고좌 百高座 , 사좌좌 [부처님을 모시는 자리]

백 개를 만들어서 고승들을 모셔다 설법하는 큰 법회)

를 열고 팔관법 八關法 (=팔관회 , 불교 대행사)을 실시했습니다


진지왕(신라 25대왕 진지왕 김사륜) 원년(1년)

병신 丙申 (병신년)에

거칠부가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이 되어서

스스로 군국사무 軍國事務 (군사일과 정치일)를 담당하다가

늙은 뒤에 자기 집에서 죽으니

향년 78세였습니다


<거칠부>내가 신라의 거친남자(터프가이) 김거칠부였도다 !!


(옛 신라이름이 순수하고 재밌는 이름이 많고

김거칠부나 김유신 장군 할아버지이자 신라 명장

김무력 金武力 같이

중국의 영향을 덜 받기 전 중국식, 한자식 이름을

짓기전의 신라인들은

고유어, 소망을 자식의 이름에 넣어 지었고

요즘말로 '닉값'을 하라며 지어주게 된 신라인들같고

신라에는 그렇게

닉값한 인물들이 은근 있습니다,,)


<라봉봉>거칠부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글에서 썼고,,

신라인 거칠부가 고구려 스님 혜량에게 가르침을 받고

혜량의 도움으로 살아나다가 후에는 거칠부가 혜량을 살림으로서

옛 의리에 보답한 터프가이 거칠부였고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 볼 점은

젊은시절의 거칠부가 그냥 고구려에 가서

혜량의 가르침을 받았다는데

이는 고구려와 신라의 언어가 통했다고도 해석해 볼 수 있고

삼국(고구려 , 백제 , 신라)인들은

동질적인 민족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칠부는 '국사' 라는 신라 역사책을 편찬한 인물로 유명하나

터프했던 군사적인 인물이기도 했고

문무겸비의 신라의 인물 거칠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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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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