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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울릉도와 독도) 정복자 신라장군 이사부>


신라 장군 이사부 異斯夫


이사부


<김부식>혹은 태종 苔宗 (이끼 태 , 마루 종)이라고도 한다


(이사부의 다른 이름 태종 苔宗 은 이끼 태 苔 자로

이끼태 苔 에서 이끼는 잇 이라 발음한거로 추정되며

종 宗 자는 부(남자)에 해당하는 말이기에

태종=잇부 쯤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사부 할 수 있고

한글발명전에는 한국어를 한자식으로 표현하느라 이렇게

여러 더듬어 찾는 그런게 있습니다)


의 성은 김씨이고(김이사부)


나물왕(신라 17대왕 내물 마립간 김내물)의 4세 손입니다


지도로왕 智度路王 (신라 22대왕 지증왕 김지대로 = 김지도로) 때

변경 관장(=爲沿邊官 위연변관 , 연해[바다근처 ??] 국경지역의 지방관)이 되서

거도 居道 의 권모(=권모술수 , 꾀) 를 모방해서

마희 馬戱 (말을 타고 하는 놀이) 로써 가야


<김부식>혹은 가라라고도 한다


국을 속여서 빼앗았습니다


(거도는 이전 이야기에 쓴 인물로

일부로 국경지역에서 군사들을 불러서

말을 타고 놀며 즐기게 했던거 같고

이에 신라 밖 한국의 소국이었던

우시산국[오늘날 울산광역시] 과

거칠산국[오늘날 부산광역시] 이

이를 항상보았기에 신라의 일반적인 일이라 여기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에 거도는 두 나라가 방심한 틈을 타서

병마[병사와 말]을 출동시켜서 정복했다 하고


이사부 장군 역시

거도 장군같이 가야 근처에서 군사들과 말놀이를 하는 척하다가

가야인들이 그러려니 여길쯤

곧 가야를 쳐서 멸망시키게 된 거 같습니다


이는 오늘날 식으로 치면

국경부근에서 무력시위로 비쳐져 외교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겠으나

그런 개념이 없었던 아주 먼옛날에는 이게 통했을 수도 있고

혹은 사실 신라에 당한 소국들이나

가야[당시 가야계 소국으로 보입니다]는 이런 사실을 직감했으면서도

신라보다 국력이 약해 대비도 못하며 두려워하다

공격을 받고 흡수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증왕 13년

임진(512년)

이사부는 하슬라주 何瑟羅州 (오늘날 강원도 강릉시)의

군주 軍主 (주의 장관, 주 으뜸 벼슬) 가 되서

우산국(오늘날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와 독도) 을 병합하려고 계획했습니다


이사부는 우산국 사람들이 미련하고 사나워서

힘으로 항복받기는 어려우나

전략으로 항복시킬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나무로 사자를 많이 만들어(나무로 만든 사자 인형)

전함(군함, 군선)에 나누어 싣고

우산국 해안으로 가서 거짓으로 말했습니다


<이사부>너희들이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들을 풀어 놓아서 밟아 죽이겠다


우산국 사람들이 두려워 해서 즉시 항복했습니다


진흥왕(신라 24대왕 진흥왕 김삼맥종) 재위 11년인

태보 원년(1년)에

백제는 고구려의

도살성 道薩城 (오늘날 충청남도 천안시 혹은 충청북도 괴산군으로 추정)

을 빼앗고

고구려는 백제의

금현성 金峴城 (오늘날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금성산 일대로 추정)을

함락시켰습니다


진흥왕은 두 나라(백제와 고구려) 군사가 피로한 틈을 이용해서

이사부에게 명해서 군사를 출동시켜 그들을 쳐서

두 개의 성을 빼앗은 다음

성을 증축하고 군사들을 남겨 두어 수비하게 했습니다


(어부지리 漁父之利 [둘 사이의 다툼을 틈타 제3자가 얻는 이익] 의

신라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이 역시 국력이 약하면

불가능해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 이 날 수 있었고

신라는 지증왕대 부터 시작된 강도높은 개혁 등으로 인해

악습이 철폐되고 농업과 수산업, 상업이 발달했다 할 수 있고

이에 점차 강대국화 되어서 진흥왕대에는

고구려와 백제를 모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커져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고구려가 군사를 보내서

금현성을 (되찾으려고) 치다가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이사부가 이들을 추격하여 대승했습니다


<이사부 장군 영정>


<라봉봉>이사부 장군은 신라 초기의 명장이셨고

신라의 전설의 왕이라 생각되는 또 저가 위인이라 생각하는 인물인

지증왕 김지대로를 모신 인물이라

조선으로 치면 세종대왕의 김종서급 포지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지략(슬기로운 계략, 슬기와 꾀)에 밝은 인물이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뜬금없이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억지가 시작되면서

한국의 고유영토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리는데 아주 중요한 근거로

지증왕 기록과 이사부 장군 기록이 인용됬기에

한국사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고


그 외에도 당시 신라 임금들의 아낌없는 신뢰를 받은

전설적 장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독도 사랑 노래인 '독도는 우리(한국)땅' 노래에서는


'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한국)땅 ~  '


이라는 유명한 가사가 있고

노래가사에서 이사부 장군이 지하에서 웃으시는 이유는

일본의 만행과 역사조작이 어이 없어서

웃으시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국사에서는 아무래도 최변방, 최동단(맨 동쪽)의 섬이고 작은 섬이었기에

당연히 제주도 , 강화도 같은 메이저섬같이 잘 주목받지는 않았으나

한국 동쪽 끝 외로운 섬이었고

이에 일본의 만행등이 여럿 있어왔지만

한국인들은 꾸준히 독도를 수호하려 했고

그렇게 이사부 장군대에 신라 영토로 편입된

아름다운 한국의 영토 독도입니다


비록 외로운 섬이었지만

오늘날 일본의 만행등으로 한국인들의 독도 사랑은 더욱 깊어져갔고

그 결과 독도는 한국인들의 애국성지같은 장소로서 꾸준히 발길이 이어지며

더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한국의 섬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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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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