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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세계에 슬픈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야기를 쓰기전에 라스베가스 총기 사건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pray for las vegas


<문무왕 이야기>


신라 김춘추,태종 무열왕은 왕이 되고나서 당나라와의 연합,

나당 연합군(신라,당나라)으로 백제를 공격해서

멸망시킵니다,,

이당시 태자였던 김춘추의 첫째아들,김유신의 누이였던 문희,

문명왕후의 아들 김법민도 참전해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사로잡아서

옛날에 대야성에서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과 아내인 고타소,

김춘추의 딸이자 김법민의 누이가 백제의 공격으로 죽은 일로,,

백제 왕자 부여융에게

무릎을 꿇게하고 얼굴에 침을 뱉은뒤

너의 아비는 나의 누이를 죽여서,,그로인해 나를 20년동안

가슴아프게 했다고 합니다,,


김춘추,태종 무열왕도 백제를 멸망시키고 1년뒤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태종 무열왕의 첫째아들 김법민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라 30대왕 문무왕이 됩니다 문무왕은 보통

중국이나 한국 발해 같은 나라에서는 문(文)왕이나 무(武)왕같이

문치주의 업적이나 정복군주,,등에게 이런 묘호를 올렸는데요

문무 두개의 호칭이 붙은것과 재위 기간동안의 행보를 보면

글과 무인적 업적 둘다 있는 왕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아직 고구려가 남아있었고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은 당나라 군과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한일통,삼국통일을 하게됩니다,,

그동안 고구려와 백제,바다 건너로는 왜,일본에게 공격받던

한반도 동남쪽의 작은 나라였던 신라는 삼국통일을 하게되고

유래가 없는 번영을 하게됩니다,,

사실 아버지 김춘추의 온갖 눈물겨운 외교나 김유신 장군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더라도,, 아버지와 신라인들이 피흘려 얻어낸 것들을,,

또 마지막 남은 고구려와 백제의 잔존세력을 멸망시키고

무난하게 삼한일통,삼국통일을 완수한 왕이라 할수있겠습니다,,

문무왕을 쓰면서 느낀게 조용한 성인같은 느낌과

적어도 아버지보다 병약해서 안타깝게 일찍 죽은 왕자들도 아니었고

조선 성종의 아들 연산군같이 아버지의 업적을 날려먹지 않은 사실로도

충분히 신라 태평성대를 이끈 왕이었다고 할수 있는거 같습니다,,

적어도 큰 위업을 못하더라도 선대께서 이뤄낸것을 날려먹거나

무시하지는 말아야 되는거 같습니다,,


당시 중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 시기까지만 해도 여러 나라로 흩어져있었으나

수와 당같은 통일 왕조가 등장하며 또 농업의 발달 등으로

인구가 매우 많았고 이에 같은 민족이라 할수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도

그런 시대적 경향에 통일이라는 이야기들이 생기지 않았나라는

개인적인 생각도 해본거 같습니다,,비록 그 과정은 슬픈 이야기들이 많았더라도요,,


이렇게 왕이된 김법민,문무왕은 고구려를 공격하고 고구려 멸망이후

당나라가 대동강 이남은 신라에게라는 약속과 달리

대동강 이남,백제나 신라영토까지를 지배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나당전쟁으로 당도 옛날 약속같이 대동강 이남은 신라에게

주게 됩니다,,


비록 신라 역시 당나라의 구원으로 망국의 위기에서 살아났다고 할수도

있고 당나라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나 당나라가 무리하게 약속을 어기며

백제에 웅진 도독부,신라 경주에 계림 도독부를 설치해서

지배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이에 신라인들 역시 반발했고

백제와 고구려 유민세력까지 끌어모아서 당나라에 맞서고

당나라는 대동강 이남에서 물러갑니다,, 이후 당나라는 개방적이고 세계적인 나라가 되고

신라와 서로 가장 중요한 외교 관계가 있는 나라가 되기는 하나

그랬던거 역시 불합리했고 신라인들과 삼한인들의 반발이 있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문무왕은

내부적으로는 당나라와 내통한 귀족들을 숙청합니다,,

이후 신라는 당나라와 잘 지내나 이당시에는 당나라의 야욕으로,,

전쟁 기간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귀족들에게는 엄격,백성들에게는 따뜻한,,그런 정치를 했던 왕 같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무기를 녹여서 농기구로 바꾸고

경주에 성벽을 쌓으려하나 의상대사는

들판의 띠로 엮은 집에살아도 도를 행하면 복이되나 그렇지 않다면

제아무리 사람을 힘들게 하여 성을 쌓아도 이익되는 바가 없다는 간언에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문무왕 13년 김유신 장군도 돌아가시고

8년정도 뒤 문무왕도 돌아가십니다

김유신 장군은 하늘의 신,,

문무왕은 동해바다의 용,해룡이 되어서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셨다고 합니다,,

신라는 이후에도 태평성대,황금기라 불리는 시기가

시작되나 그동안 나라를 지켜주시던 위인들이

돌아가시고 신라인들 역시 슬픈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문무왕과 호국대룡 전설>


문무왕은 신라의 성군이라 할수있으며 돌아가실때

이야기로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안정시키며

또 풍요로운 신라를 이끌었으나 스스로 어려운 고생을 무릅쓰다가

고칠수 없는 병에 걸렸는데도 계속 정치와 교화에 힘쓰느라 더 고치기

어려워져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문무왕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있는 글 같습니다,,


문무왕은 살아 생전에 죽어서도 용이되어서 신라를 수호하겠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에 불교식으로 화장한거 같고 동해바다에 뿌렸다는데요

장례도 서국식(인도,불교식,화장)으로 검소하게 하고 무덤을 크게 만들지 말라하셨다고 합니다

중국의 문경지치,태평성대라는 한나라 문제가 생각나는거 같습니다,,

문무왕은 돌아가시면서도 백성들에게 불편한 법들이 있다면 바꾸거나 폐지하고

백성들에게 이를 알리고 다음 왕은 이를 시행하라는

애민정신이 있는 유언들을 남기셨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용이되어서 왜구,일본 해적의 침입을 막겠다 하셨는데요

이로 인해서인지??,,이후에도 실제로 신라는 이후 일본의 침입을 받지 않았다

할수있습니다 사실은 이당시 신라 국력이 동아시아에서 당나라 다음으로

강했을때라서 그럴수 있게습니다,,


문무왕은 그렇게 돌아가시면서도 동해의 용,나라를 지키는

호국 대룡이 되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셨고

화장한뒤에 동해에 묻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경주시 바다에 가면 문무대왕릉이 있는데요,,

보통의 신라나 다른 한국 왕조들 묘같이 언덕으로 만든 무덤이나

굴식 무덤도 아니고 특이하게 바다 위에 있는 바위를 무덤이라 합니다,,


<그려본 문무대왕릉>

바다 위에 있는 묘라는 것과 고대인의 상상력이나 신비로운 이야기가 있는

무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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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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