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다 쓰고나니 어린이들이 보기에 적합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애초에 어린이들의 대상으로 쓴거였고

저가 어린이였을때도 현재 저가 쓴 내용들 정도는 어린이 서적들에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는거 같습니다,, 사실 삼국지,초한지,수호지 같은 경우에도

고전이나 어린이 필독도서라고도 할수있고 전쟁으로 가득한 이야기이나,,

이후 여러 비유,어휘력들이나

어린이들의 지혜와 기상들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라고 할수있습니다,,


단지 아쉬운거는

저는 어린이였을때 어린이 한국사 만화들도 많이 봤고

나중에 타블렛을 사서 그림,삽화들을 넣거나 하며 더 쉽고 어린이들의

눈높이를 맞출수있게 하는거도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어른용은 더 깊거나 자세한 이야기를 쓸거같고

현재 <라봉봉 한국역사>에 가시면 있습니다,,



퀄리티는 한국역사 고구려 이야기는

옛날에 쓴것이기도 하고 양이나 글들이 현재만 못한거도 있는거 같으나

역사라는게 한두번 쓴다고 되는거도 아닌거 같고 추후에는

더 나은 퀄리티와 양들로 다시 쓰게되는거도 생각한거 같습니다,,


<고구려와의 수나라와의 전쟁, 을지문덕 장군과 살수대첩>


중국은 오랜분열기,위진남북조 시대를 끝나고

중국대륙을 통일하고 새롭게 들어선 통일왕조 수나라의 시대가 시작됬습니다


중국인들은 통일왕조가 들어서고 다시 힘이 모여지자 곧 주변국들에게

외교,내정간섭을 시작하며 동아시아 세계에서 중국 중심의 질서를 세우려 했습니다

우리나라, 고구려,백제,신라도 이를 주시하며 수나라에 사신을 보냈습니다


특히 고구려의 경우에는 중국,수나라와 국경을 육지로 직접 맞대고 있어서

수나라를 경계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수나라의 통일 소식을 들은

고구려 평원왕(바보온달의 장인,평강공주의 아버지)은 수나라의 통일,

중국에 통일왕조가 들어선다면 이후 곧 외부로 힘을 뻗어나간다는것을 알기에

크게 두려워하며 곡식들을 모으고 무기들을 수선하고

수나라 무기장인들을 빼돌리며 전쟁을 대비했습니다


평원왕은 그래도 수나라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되

수나라의 전쟁을 대비했고

옛날 광개토대왕때같이 강대국 고구려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던 고구려였으나

백성들에게는 농사와 누에치기등을 권하는 훌륭한 모습을 보이고 고구려를

중흥시킨 명군이라 할수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장인,아버지로

유명한 왕입니다


그러나 평원왕이 사망하시고 평원왕의 첫째아들,고구려 26대왕이된 영양왕은

아버지 평원왕과는 다른 강경주의자였습니다,,

수나라는 주변국들에 조공,사대(수나라에게 굽히고 신하국이 되라는 의미입니다)를

하라는 요구를 했고 백제,신라,베트남,돌궐,토곡혼(티베트 계열 민족)등 당시의

중국의 이웃국가들 모두 수나라,중국에 조공을 했으나

유일하게 중국에 조공하지 않고 사대 요구를 거절한 나라가 고구려였습니다,,

고구려 역시 영양왕때 수나라의 조공요구가 써져있는 편지와 수나라 사신에

고구려 장군 강이식은 수나라가 오만하다며 칼로 답해야하고

적(수나라)를 쳐야한다고 했고

영양왕은 이에 기뻐하며 강이식 장군에게 군사를 주어 수나라를 공격하게 합니다

즉 수나라의 신하가 되고 중국 중심의 질서에 편입되라는 요구에

유일하게 거부한 나라가 고구려였고 고구려의 수나라 공격으로

고구려-수전쟁,여수전쟁(고구려의 려자가

두음법칙으로 여로 줄여부르는 것입니다 여{고구려}와 수의전쟁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작됩니다


여수전쟁은 고대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쟁으로

신생통일왕조 중국,수나라와 오랜 역사와 고대 동아시아 강국이었던

한국,고구려의 동아시아의 질서,패권을 두고 나라의 명운을 걸고 했던 전쟁으로

수나라나 고구려 할거없이 모두 모든 자원을 총동원한 대규모 전쟁이었습니다

이는 우경(소를 이용한 농사)의 도입과 농업,상업의 발달,철기의 보급등으로

인구가 증가했고 수만의 군대가 싸우게된 사건이라할수도 있습니다

이후부터 고대 삼국전쟁은 수백,수천에서 수만규모의 대규모 전쟁으로 됩니다,,

 

당시 중국을 통일한,수나라 최초의 황제는 문제,양견이었고

세계사에서는 과거제도를 최초로 실시한 왕으로 유명합니다

오늘날 수능시험,학교의 시험들은 이때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할수있습니다,,

(문제가 문제를 만들었네요,,)


<수 문제>


세계사 이야기 한개를 더 말하면 이후 문제 다음왕 양제는 대운하를 건설하는 왕입니다


수문제는 이에 30만 군대를 육로,해로로 보내서 고구려를 공격하고

이를 1차 여수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는 한여름이었고 수나라 육군은 찌는듯한 더위와 장마,전염병으로,

해군은 태풍을 만나서 가을에 수나라 군은 퇴각하는데

죽은 병사가 10명정 8~9명이었다고 합니다,,

별다른 전투는 벌어진 기록은 없는거 같으나 수나라에서도

많은 손실이 있었습니다,,

영양왕도 기존의 전쟁양식이 아닌

수나라의 30만 대군에 충격을 받고서

문제에게 사신을 보내 요동 분토(똥으로 된땅이라는 뜻으로

수나라의 체면을 세워주려 고구려를 낮춰부르는 말입니다,,)의 신하 아무개라하며

수나라 문제의 체면을 세워주게되고 이렇게 1차 여수전쟁은 끝납니다


수문제도 고구려가 생각보다 강한 나라인거를 알고서

모든 고구려 원정을 중단시킵니다

수문제도 고구려를 공격한 중국 황제였으나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고

관료들의 부정부패,뇌물수수와 사치에 매우 엄격했고

본이 스스로도 사치를 줄이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백성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중국사의 명군입니다

이렇게 수문제도, 고구려 영양왕도 1차 여수전쟁으로 서로를 함부로

대하거나 하려하지않았고 한국 고구려와 중국 수나라간에는

사신도 보내지고 어느정도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러다가 수문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중 둘째아들 양광,수양제이

형을 모함해 태자자리에 끌어내리고 왕이되고 형을 죽입니다,,


<수 양제>


중국사의 패턴??,,들이 또다시 반복되는거 같습니다

보통 문제나 문치주의를 중시한 명군,성군이 나오고

근검과 절약을 하며 백성들을 위하고 풍요롭게 하는 황제가 나오고

사후에는 무제라 할수있는 무를 중요시하고

근검과 절약보다는 사치와 크고 아름다운,, 그런거를 중요시한 황제가

나오는 패턴들이 한나라 문,경제 ~ 무제같이 있었는데요,,

양제도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권모와 술수,쇼맨십에 능해서 둘째 아들이나 문제의 환심을 샀고

문제 역시 다 같은 아들들이었기에 열손가락 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없겠으나

명군이었으나 어찌보면 자식관리를 못한 실책을 했다고 할수 있는거 같습니다,,


그렇게 문제가 죽고 수나라에는 양제가 즉위합니다


양제는 만리장성,성벽을 보수하고

장강과 황화강,회하강을 있는 대운하를 건설합니다

운하는 강들 사이에 땅을 파서 물길을 만들어

물류나 사람들의 이동을 하게해주는 해운 교통로라고 보시면 됩니다

1억 5천만명이 2700km의 땅을 깎아내며 강들을 이었고

이는 문제때부터 시행됬으나 국고의 손실을 염려해 중단되었고

양제때 이르어서 대공사가 시작됩니다

중국인들은 이 운하를 두고두고 이용하나 당시 대국이었던

수나라 재정에 비해서도 너무 큰 사업이었고

수나라가 얼마안되서 멸망하는 주 원인중 하나가 됩니다,,


또 별궁등을 만들고 양제는 아버지 문제가 축적해놓은 재산들을

신나게 탕진하기 시작합니다(이후 양제는 이런 원인들로 살해당합니다,,)


또 양제는 외부로도 눈을 돌려서,,

고구려에 조공하라 위협을 했고 고구려인들은 거부합니다,,

이후 고구려인들은 수양제의 침입에 대비하게 됩니다

당시 고구려의 상황도 썩 ㄱㅊ지는 않았습니다

남쪽의 곡창지대,주요 지대인 한강유역은 이미 신라에게 뺐겼고

신라는 지증왕이라는 세계사적으로도 위대한 임금이 나오고나서부터

여러 인물들이 계속 나오고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하는 떠오르는 나라라고 할수있습니다

(한국 신라사에서는 지증왕보다 법흥왕,진흥왕을 띄어주는거 같으나

사실 지증왕이 국력을 매우 쌓아놓은게 있다는 생각이 드는거 같습니다,,

저는 지증왕이 이미지는 밀려도??,,

세종대왕님과 비슷한 업적을 가진 임금님이라 생각합니다)


남쪽도 신라의 본격적인 등장과 서쪽에는 수나라라는 거대 중화통일제국의 등장,

전쟁의 양상도 수십만 대군으로 바뀌고 고구려인들도 여러 위기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수양제도 수나라 군사들을 모아서

무려 113만의 군사들로 직접 원정을 나서며 고구려 공격을 시작합니다,,

이는 천년이 넘게 세계사적으로도 깨지지 않은 기록으로

수천만의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를

교통과 시설도 부족했던 고대사회에 편성했다는것으로

고대사라 과장이 있을수 있더라도

당시 수나라의 거대한 국력을 보여주는 편성이라 할수있습니다


<수 문제와 양제의 침입로 지도입니다>


군사들을 나눠서 매일 1군씩 보냈고 출발하는데만 40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당연히 대군을 먹여야하는 군량미,보급품들의 수도 어마무시했고,,

수나라 군사들은 무거운 식량,보급품들을 직접 멘 상태로 행진을 해야했기에

행군도중에 몰래 보급품들을 땅에 묻거나 하는둥 버리곤 했습니다,,

스케일이 크나 허세가 심하고 내실이 부족한 수양제의 성격과 비슷하게

국정도 운영된거 같고 이는 오늘날에도 지도자의 성향과 성격을 따라

사업이던 정부던 운영이되니

지도자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이야기라고 할수도있습니다,,

113만 대군이었으나 이렇게 무거운 보급품들을 직접 매다가 탈진하고

죽는 병사들도 존재했고 이렇게 보급품들을 몰래 버린것은 이후

고구려군대와 싸울때 큰 독으로 돌아오게됩니다,,


가뜩이나 1억 5천만명이 동원된 대건설공사,대운하 공사로 수나라 민심의

동요가 있었는데 113만의 군대 편성으로 수나라에서는

요동에 끌려가서 헛되히 죽지마라는 노래가 퍼지고 중국인들은

전쟁,처벌으로 죽나 도망치다 죽나 마찬가지였기에

도적이 됩니다,, 수송문제부터 중국 민심의 큰 동요로 이미

이 수나라 113만 대군은 숫자에 비해 너무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수나라 군들은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향해

113만 대군의 출정을 시작하고 요수,요하강을 건너게 됩니다

강을 건널때 고구려인들의 화살공격에 큰 피해를 입었으나

역시 고대로부터 꾸준히 있어왔던 인산인해 전술의 중국인들 답게,,

다리를 만들어서 요하를 건너고 고구려인들도 1만의 사상자가 나는

대패가 있게되고 중국 수나라군들은 요하를 건너게 됩니다

그리고 승리한 기세를 타고 100만대군으로 요동성을 공격하나

요동성은 3개월동안 양제의 100만대군 공격을 버텨냅니다,,


고등학교다닐때 국사(한국사)선생님이 스타크래프트에 비유해

중국 대군들이 저글링이면

우리 고구려는 언덕의 하이템플러다 이런 비유를 해주신거 같습니다,,

물론 비유이고 현실의 전쟁은 게임이 아니기에 더 참혹하고

고구려인들, 중국인들 할거없이 너무나 큰 피해를 본

다시는 되풀이 되서는 안될 일들입니다,,


요동성이 너무 방어를 잘했습니다,,

우리가 레고블럭,,을 밟았을 경우에는,, 바로 아얏 합니다,,

우리의 몸은 어느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기에 바로

고통이 통증을 느끼는 뇌로 전달되서 가능한것인데요

거대 공룡의 경우에는 몸이 워낙 거대해 용암을 밟거나,,

나무 뿌리를 밟아서 박히게 되면 1분후에야 아픔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고통이 뇌까지 가는 시간이 그만큼 걸리게 되고

오늘날 경제에서 거대 기업들도 멸종위기 공룡에 비유하며 스스로 체질개선,

구조조정을 외치는 이유가 그런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수나라군의 문제도 그와 비슷했습니다 113만 대군이었고

수양제가 직접 나서는 친정이었으나

규모가 너무크고 조직이 비대해져서

어떤 일들이나 명령을 내려야할경우

거쳐야하는 관료들의 수도 많아지고 양제의 귀에 들어가야할때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고 고구려군들도 이를 이용해서

항복하는 척하는 의사를 보내게되고

수나라군들이 양제에게 계속 보고가 올라가는데 여러 시간이

걸리고 이를 이용해 시간을 벌거나 했다고 합니다,,


양제도 허세와 쇼맨십이 큰 왕이었으나

아버지 문제가 중국을 통일할때 큰 공도 세우고

그동안 수나라 통일 전쟁때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

같은 민족간의 싸움이었고 대충 위협하거나 위엄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쉽게쉽게??,, 항복을 받아왔다면

고구려는 전혀 다른민족, 중국 중화족과

한국 조선,중국식 표현으로는 동이족의 싸움이었고

고구려 역시 주몽의 하늘의 자손,천손의식이 있던 나라에

중국과 한반도,동아시아를 호령하던 광개토대왕,

수백년 역사의 자부심이 있었던 나라입니다

양제도 아버지 문제같이 고구려 원정이 슬슬 장난이 아닌거를

느끼게 되고 수나라 장수들을 질책하고

수나라 장수들 얼굴에도 두려워하는 기색들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끈질긴 요동성의 방어에 다급해진 양제는

우문술,우중문에게 35만 별동대를,, (35만 대군도 아닌

113만에서 나온 별동대의 수가 35만입니다,,)

주어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직접공격을 시킵니다,,


그러나 별동대는 날랜 병사라기보다 수십키로의 수많은 보급품들을

짊어지고 평양성을 가야하는 병사들이었고,,

수나라 지휘부에서는 병사들이 쌀과 보급품들을 버리지 못하게

통제하려하나 아니나 다를까,, 너무 무거워진 짐들에

수나라 별동대 군사들은 쌀과 보급품들을 땅에 묻어버립니다,,


이에 고구려에서는 구국의 영웅이라 할수있는 재상 을지문덕의 지휘로

수나라 35만 별동대를 맞게됩니다,,

을지문덕은 수나라 대군이 오는 길의 우물을 막고 농산물들을 태워버리거나

숨깁니다 이를 청야전술이라고 합니다

가뜩이나 보급품,쌀들을 무거워서 버리면서 온 수나라 군사들은 배고픈 상태에서

이렇게 고구려군이 청야전술로 현지에서 약탈할수있는 음식,물자들도 태워버리거나

숨겨버리니 더 배고파지고 사기가 떨어지게됩니다,,


을지문덕은 항복한척 하며 고구려 재상으로서 우문술,우중문 막사로가서

사신으로 가고 이에 수나라군에서는 을지문덕을 잡아두려 하나

사신을 잡는법은 없다며 을지문덕을 풀어주게됩니다,,

물론 역시 시간을 벌기위한 거짓항복이었습니다,,

배고프고 지친 수나라 별동대에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 별동대를 더 피곤하게 만드려,, 계속 진척하며 달아납니다

하루동안 7번 싸워 7번 모두 거짓으로 진척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배고프고 지친 수나라인들도 헛된 희망을 품었던거 같고,,

결국 고구려 수도 평양성 근처까지 오게됩니다,,

지치고 피로하고 배고픈,, 수나라 별동대에게도 정말 약간의 희망은 있었습니다,,

평양성 근처의 수나라 수군과 합류해 수군의 보급을 받는것인데요,,

실제로 수나라군도 육로보다는 보급이 쉽고 안정적인

해로의 중요성을 이때 깨닫게됩니다,,


그러나 수나라 4만 수군은 평양성 외성으로 유인되고

고구려 고연무의 500기병 결사대에 궤멸당합니다,,

즉 수나라 별동대가 배고픈 와중에도 고구려 수도까지 깊숙히 들어왔고

수나라 수군의 보급을 기대했으나 수나라 수군의 궤멸로

보급의 실패로 이어지게되고 이는 곧 2차 여수전쟁의 수나라 군 궤멸,

살수대첩으로 이어집니다,,

옛날이던 현재던 군대에서

보급은 매우 중요합니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의 주역활이 보급,

신라 김유신 장군의 주역활도 쌀배달,,군량미 보급이었고

프랑스 황제 천재 전략가라 불리는 나폴레옹의 명언으로는

군대는 잘먹어야 진격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군사반란들도 보급이나 밥줄문제가 대부분이었던거 같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친 수나라 별동대들은 더이상 싸울 여력이 없었고

이미 수나라 군들은 지리도 잘모르는 동쪽의 산천,

고구려에 수도까지 깊숙히 들어온 상태였습니다,,

이에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 별동대장 우문술에게 시를 써서 편지를 보냅니다

그 유명한 여수장우중문 (與隋將于仲文詩, 수나라 장군 우중문에게 보내는 시)

시입니다


<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우중문 시>


神策究天文 신책구천문

妙算窮地理 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 전승기공고

知足願云止 지족원운지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쟁에 이겨서 그 공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비유를 하면 우쭈쭈 잘했으니 이만 돌아가라,, 이런 의미라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게다가 이 편지를 보낼때 수나라 별동대 막사에 고구려 사신을 보냈는데

고구려 사신은 이미 지쳐있는 수나라군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오게됩니다,,


이에 우문술,우중문도 더이상 어찌할수 없다 판단해

퇴각을 명령합니다,,


계속 패한척하며 우중문,우문술의 수나라 별동대를

고구려 수도까지 깊숙히 유인한 을지문덕 장군과 고구려군들은

국토를 유린한 수나라 군들을 그냥 돌려보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지치고 퇴각하는 수나라군들은 고구려 살수,청천강(북한은 살수를

요동쪽이라고 합니다)에 이르자

을지문덕 장군은 전력을 다해서 고구려군 총공격을 하게됩니다

30만 수나라 대군은 단 2700명만이 살아남고 모두 죽습니다,,


<살수대첩 민족기록화 입니다>


저가 어렸을때는 살수에 가죽등으로 댐을 만들어서

물살을 얕게하고 수나라 대군이 살수를 건널때 물을 풀어서

물고기밥이 되게,, 수장시키고 몰살시켰다고 책에 나왔는데요

이는 근대에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합니다


수나라 군은 거의 99퍼센트가 이 전투,살수대첩으로 몰살당했고

이는 대운하 건설같이 수나라 멸망의 길로 가게되는 주 원인이 됩니다,,


이후 3차,4차 침입도 있었으나 고구려는 방어에 성공하고

가장 격렬해던 사건은 살수대첩이 있었던 2차 여수전쟁입니다

당시 수나라,고구려 할거없이 모두 큰 피해를 입었고

고구려는 4차 여수전쟁을 마지막으로 고구려가 수나라에 귀부(수나라 역사서 표현으로

스스로 복종한다는 뜻이나 상국 대우를 해준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한다고

수나라에 화친을 제의했고 양제가 받아들임으로서 여수전쟁은 끝나게 됩니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고구려와 수나라의 여수전쟁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의미는 우리의 외세에도 독립적이고 자주적이었다는 거를 보여주고

(오늘날 북한에서도 이런말을 자주 이용하나 현재 북한은 너무 폐쇄적인 나라입니다,,)

오늘날에는 고구려가 수나라,당나라 중국 통일왕조의 공격에

민족의 방파제 역활을 했다는 평가로도 유명합니다

고구려 역사는 특유의 당당함과 기상이 있습니다

고구려 내부 정치도 여러 혼란과 모순이 있었고

무조건적으로 ㄱㅊ은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대륙과 만주 벌판을 달리며 대국을 자처하던

이런 우리 민족의 특유의 당당한 태도는

신라 중심의 대동강 이남의 통일이 되고 많이 사라진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가 어린이 여러분들에게 해주고싶은 조언으로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살아가며

유혹,욕망,거짓,위선,비도덕,가난,무지,질병,허세 등

여러 난관을 맞이하게 될수 있습니다

그런 부정적인것들이 여러분을 잠식하지 못하게

그런것의 노예가 되지않게 우리 고구려 조상님들의

당당함 같이 맞서나가시면 됩니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이야기,을지문덕전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조선인들과 산과 들,국토,자원들이 일본에 유린당할때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민족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쓴 책입니다


<을지문덕전>


고구려와의 수나라와의 전쟁, 을지문덕 장군과 살수대첩 이야기였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길거 같다는 생각도 드나

10대초반 어린이 만을 위해썼다기보다는 청소년이나

역사를 잘 모르시는 어른,외국인 분들도 읽을수 있고

저역시 현재 더 쉽고 여러 풍부한 그림,삽화나 만화등으로

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는거 같습니다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거 같고

차차 더 나은글을 써가면 될거 같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