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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봉봉 어린이 한국역사>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입니다

평강공주는 평강이라는 공주라는 뜻이겠는데요

온달 앞에 바보가 붙은이유는 말그대로 바보였다고 합니다,,

저가 어렸을때 흔히 어리석은 이를 놀릴때 바보,천치,말미잘 이런 말들이

많이 사용된거 같은데요,, 우리 한국 역사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보면

우온달(愚溫達),어리석을 우(愚)를 써서 말그대로

어리석은 온달,바보온달이라고 기록되있습니다,,

역사서를 읽는게 즐거운 이유중 하나가 여러 사랑이야기도 기록되있고

사랑이야기는 결코 헛되거나 무가치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정치나 사회와도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사람들의 사랑과 가정이 혼란할경우에는 정치와 사회 역시 혼란해집니다

공자님이나 유교에서 중요한 사상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 사람만이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수 있다


이외에도 동양윤리,어린이 동양 윤리고전인 명심보감에서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일이 잘이루어진다라는 뜻으로

가정의 중요성과 이 시작은 남녀간의 진실된 사랑이 바탕이 된다고 할수있습니다


고구려는 무인적 모습을 중요시하던 군사,정복국가적 모습이 있었고

그런 고구려에서 남녀간의 순수,순결한 사랑이야기는 전쟁으로 가득한,,

고구려사를 읽다가 보게되는 안식처나 즐거움중 하나라 할수있습니다,,

또 우리선조들의 사랑에 대한 진실성,순수성,고결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에도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는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계속해서 이야기됩니다

가치있고 순수한 사랑이야기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변치않는 그 무언가가 있기에

저와 어린이 여러분들이 이후 죽어서도 끊임없이 재창조 되며 이야기 될것입니다

그러면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이야기입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


옛날에 고구려 25대왕 평원왕때 온달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온달은 용모,외모가 우스꽝스럽고 비천했으나 마음은 순수했습니다

온달은 구걸을 해서 늙고 눈이 먼 장님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았고

고구려 사람들은 온달을 가르켜 바보온달이라고 했습니다

또 산에가서 느릅나무 껍질같은 약초들을 벗겨서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온달 이외에도 쌀농사가 잘안되거나 흉년이 들때는 살기위해 산같은데가서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등을 캐어먹으며 흉년을 견뎠습니다,,

가난하고 어렵게 살던 온달의 생애를 알수있는 이야기입니다,,


평화통일의 대상이며 우리민족이기는 하나 현재

핵개발같은 잘못된 길을 가고있는 북한의 경우에는,,(핵을 포기하세요 김정은씨!!)

고구려영토가 현재 북한의 영역이기에 고구려 역사연구 자료,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온달 바보설에 대해

온달은 가난해서 느릅나무 껍질 채취등 산을 뒤져먹고,약초를 판매하며 살았는데

귀한 약초를 발견해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의 형편을 감안해

적은 대가만 받거나 그냥 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에 바보 온달이라 불렀으나 온달은 이에 웃어넘겨서

더욱 바보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거를 보면 북한도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 같은 역사를 공유한다는것과

새롭고 신선한 해석이라는 생각도 든거 같습니다 

물론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화의 길로 나와야

이런 연구도 서로 평화적으로 갈수 있을거 같습니다,,


온달의 어리석음,바보 소문은 고구려 사회로 퍼져나가서

당시의 고구려 임금님 평원왕의 귀에도 들어가게됩니다

평원왕에게는 예쁜 딸이 있었습니다 평원왕의 다른 말로는

평강상호왕이었고 평강상호왕의 딸이었기에 평강공주라고 불렀습니다

평강공주는 예쁘고 마음씨도 고왔으나 울보였다고 합니다

평강공주가 계속,너무 울어대자

평원왕은 어린 딸의 울음에 난감하게 됬습니다,,


이에 평원왕은 어린 딸,공주를 희롱하며 놀리기+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그러다가 계속울거면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합니다,,


<평원왕>너는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커서는 사대부,대장부의 아내가 될수 없으니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겠다(김부식 삼국사기 열전 온달편)


그럴때마다 이상하게도 공주는 울음을 뚝 그쳤고

평원왕도 공주를 달랠 묘책임을 알고 공주가 울때마다

자주 사용하게 됩니다,, 그럴때마다 공주역시 울음을 뚝 그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평강공주는 16살의 나이가 됬고 당시에는 16살이 되면

결혼을 하는게 사회적 분위기였고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현상이었습니다,,

이는 100년전 조선시대까지도 이어져오고 옛날에는 전쟁,혼란과 질병등이

많았기에 결혼을 일찍하고 아이도 많이낳고 많이 죽기도 해서 최대한 많이

낳아서 많이낳기,다산이라는 방법으로 옛날 인류는 종족을 보존하려 했습니다,,


즉 평강공주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평원왕은 평강공주에게

사대부,귀족집안으로 시집가는게 어떠냐며 권유를 합니다

그러자 평강공주는 대답합니다,,


<평강공주>대왕(평강공주의 아버지,평원왕)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된다' 하셨는데

지금 무슨 까닭으로 전의 말씀을 고치시나이까?

필부(평범한 사람,남자)도 식언(한번 입밖에 낸말을 도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약속한 말대로 지키지 않는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을 하지 않으려 하거늘

하물며 지존(왕,임금을 높여부르는 말)하신 분께서야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임금의 말은 헛된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의 명령은 잘못된 것이오니

소녀는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평강공주가 쎄게 나왔습니다,, 이는 김부식 삼국사기 기록된 원문으로

삼국사기를 집필한 김부식도 보수적인,현실적 고려 관료였으나

이런 사랑이야기는 가치가 있어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야 된다고 생각해

매우 상세하게 기록해놓으신거 같습니다

재벌 2세와 평범한 집안 남녀가 결혼을 하려는데 재벌 2세집안에서

반대를 하자 재벌2세 주인공이 부모님에게 반대하는 패턴은 오늘날에도

유명한 한국 드라마 클리셰,패턴중의 하나입니다 원조는 평강공주가 아닐까요??,,


이에 평원왕은 화가 나서 말합니다


<평원왕>네가 나의 명을 따르지 않겠다면,

정말 내딸이 될수가 없으니

어찌 함께 있을수가 있으랴?

너는 갈데로 가는것이 좋겠다 (내말 안들을거면 내집에서 나가라 공주!!)


이에 평강공주는 역시 왕의 딸,공주였기에 집안(왕궁)에 있던 보물팔찌 수십개를

팔목에 매고 집을 나갑니다,,(물론 집을 나가는게 ㄱㅊ은 방법같지는 않으나,,

부모님에 의존만 하지않으려는 공주의 독립적인 모습은 의의가 있는거 같습니다)


평강공주는 길을 나와서 고구려 사람들에게 물어서 온달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온달의 집은 막 내려앉을거같이 누추한 집이었고

평강공주가 온달의 집에 가자 온달은 집에 없었고

집에는 눈이먼 늙은 할머니만 있었습니다

평강공주는 할머니에게 가까히가서 절을 하고 온달은 어디있냐고 묻습니다,,

눈이먼 늙은 어머니,노모는 온달의 어머니로 온달의 어머니는

눈이 멀었기에 공주의 손을 어루만지고 답하기를,,


<온달의 노모>우리 아들은 가난하고 추하여,

귀인이 가까이 할 인물이 못됩니다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이상하고,

손을 만지니 부드럽기가 풀솜과 같으니

반드시 천하의 귀인이요,

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지못하여

산으로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간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돌아 오지않았소


그러자 공주는 다시 온달네 집을 나와서 산으로 걸어갑니다

산에서 온달은 느릅나무 껍질들을 지고 왔고

온달을 본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마음속에 품은뜻,결혼을 하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온달은 평강공주에게 화를내며 (ㅋㅋ,,뜬금없이 산에서 약초캐며 힘들게 사는데

고구려 공주가 갑자기 와서 결혼하자는거는 어이는 없겠으나

화까지 내는거를 보면 바보라는 평이 이유가 없는거는 아닌,명불허전 같습니다,,)


<화가난 온달>이는 어린 여자가 행동할 바가 아니다,

분명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이다

나에게 가까히 오지마라!


(여우는 한국 설화에서

여자로 둔갑해 총각,남자를 홀리는거로 유명합니다

총각을 홀리는 처녀귀신설화도 나타나고요)


그렇게 온달은 그만 평강공주를 돌아보지도 않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이에 근성과 의지의 평강공주는,,

혼자 온달의 집으로 들어와 사립문 아래에서 자고 다음날

다시 온달의 집 안으로 들어가서 온달과 온달의 어머니에게

그간의 일들을 상세히 말하였는데

온달은 우물쭈물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온달의 어머니,노모는


<온돌의 노모>내 자식은 지극히 누추하여

귀인의 배필이 될수없고,

내 집은 지극히 가난하여

귀인의 거처할 곳이 못되오


이에 평강공주는


<평강공주>옛 사람 말에, 한 말의 곡식도 방아찧을수 있고

한 자(단위) 베도 꿰맬수 있다고 합니다

진실로 마음만 맞는다면,

어찌 반드시 부귀한 후에야 함께 지낼수 있겠습니까?


저 생각에 온달이나 온달의 노모는 가난한거는 둘째치고

자존감이 결여되있는거 같습니다,,

평강공주는 뭘 아는 사람같고 오늘날 결혼은 현실이야라며

사랑이 아닌 상대 집안이나 상대의 능력을 보려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가하는 평강공주의 말이라 할수있는거 같습니다

정작 결혼은 현실이야 라는 말을 하는 사람치고

저는 원만하거나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당장 여성의 경우 30대가 넘어가면 출산을 할수없는 폐경기가 시작되고

대부분의 20~30대가 돈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집안에 돈이많은 자녀,금수저라는 비유로는

한국,세상에 1퍼센트정도일거고 99퍼센트는 결혼도 못하고 애도 낳지말고

나가 죽으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대부분 좀 찌질하거나

가난할수도 있을것이고 돈보다는 사랑이 먼저인게 진실이고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 돈도 가지게되는게 현실이라는것을

역사적 사례들을 볼때 알 수 있겠습니다,,


평강공주가 집나간거는 아닌거 같으나,,

평강공주의 당당하고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태도하나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온달과 평강공주,온달의 늙고 눈먼 어머니는 같이 살게됩니다

평강공주 역시 온달은 바보라는 소문에, 온달의 늙고 눈먼 어머니가

있었고 스스로는 집안의 보물들을 챙겨서(가족이나 훔친거로 절도라면 절도겠습니다,,)

온달의 집으로 홀로왔고 스스로에게도 모험이었을거 같습니다

어찌보면 그녀의 모험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가치있는 이야기로 전해지니

대성공으로 끝났다고 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그렇게 혼인을 하게된 두사람은 공주가 가져온 금팔찌들을

팔아서 집안 살림들을 장만하게 됩니다

땅도 사고 집도 윤택하게 짓고

노비들도 사서(당시에는 노예제가 있있었습니다,,)

사대부같은 살림살이를 갖춰나갔습니다

공주는 집안에 온달이 타고다닐 말을 구매하려는데

온달에게 구매하라고 돈을 주고 시킵니다


<평강공주>시장 사람들의 말은 사지말고

국가에서 늙고 병들어 파는 말을 사오세요!!


온달은 공주의 말대로 했고

공주는 매우 부지런히 말을 먹여서

말은 살이 찌고 건장한 말이 됬다고 합니다,,


시장의 말은 값이 나가서 값싸고 약한 말들을 사와서

부지런히 먹이려는

공주의 경제적이고 현명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같습니다

(더 경제적이었다면 평강공주가 아예 집안의 금팔찌를 횡령하지도 않았을것인데

어린이 여러분들의 동심을 깰까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온달>와 넝쿨째 굴러들어온 당신!,나의 우렁각시 평강공주!!

아, 신데렐라 안부러운 나의 인생이여

덕분에 발뻣고 누워서 잠이나 자고 평생을 놀고먹으면서 살겠습니당~~


<평강공주>ㄴㄴ 그러면 안되요 !! 부지런히 힘쓰고 공부하고

무예를 닦아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천재 온달로 만들어 줄게요!!


그렇게 온달은 평강공주의 지도로 공부도 하고 사냥,궁술 연습도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고 고구려인들 사이에서도 더이상 바보로 불리지 않게됬습니다


고구려에서는 항상 봄철,3월 3일이 되면

낙랑언덕에서 모여서 사냥대회를 열었습니다

고구려는 무예,무술,군사를 중요시한 군사국가였고

조선시대 양반가 자녀들이 과거를 준비하는거같이

이런 사냥대회는 고구려 지배층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고 할수있습니다

당시 이 사냥대회에는 고구려 왕,평원왕과 고구려 신하들,

5부 병사들이 모두 참여한 매우 중요한 행사였던거 같습니다,,


온달도 평강공주가 부지런히 기른 말을 타고

이 사냥대회에 참가합니다

온달은 말을 타고 달리는 품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앞에섰고

잡는 짐승도 많아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고

이에 평강공주의 아버지,평원왕도 그 사람의 이름을 묻게됩니다


<평원왕>정말 훌륭하구나 이름이 무엇인가??


<온달>온달이옵니다 폐하


<크게 놀란 평원왕>바보온달??!! 자네가 정녕 내딸 평강과 결혼한 바보온달인가??!!

놀라운 일이구만


그리고 얼마후 후주의 무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고

평원왕은 군사를 이끌고 이산의 벌판에서 맞서 싸웁니다(배산전투)

이에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서 날쌔게 싸워 수십명을 베자

여러 고구려 군사들이 기세를 타고 분발해서 크게 이겼고

후주군을 물리칩니다


<평원왕>우리 고구려가 중국 후주군을 물리쳤다!!


<고구려 장군,병사들>와아아아!!


<평원왕>여기서 누가 가장 공이 큰가


<고구려 장군1>온달이옵니다!!


<고구려 병사들>온달입니다!!


<고구려 장군2>바보 온달입니다~~!!


<온달을 가르키는 평원왕>이 사람이 나의 사위다!!


<고구려 장군과 병사들>와아아아~~!!


이에 평원왕은 온달에게 대형(大兄) 벼슬을 내리고

정식으로 예를 갖추어 사위로 맞습니다

온달은 더이상 바보온달로 불리지 않았고

평원왕의 총애를 받고 은총과 영화가 더욱 많아졌고

위엄과 권세는 날로 성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평강공주의 아버지,온달의 장인 평원왕이 돌아가시고

평원왕의 아들 영양왕이 즉위하자 영양왕에게 온달은,


<온달>신라가 우리 한강 이북의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았으니,

백성들이 심히 한탄하여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은적이 없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이 어리석은 신하를 불초하다 하지마시고

군사를 주신다면 한번 가서 반드시 우리땅을 되찾아오겠습니다


이에 영양왕은 허락하고 온달은 남쪽의 신라를 공격하러

떠나며 맹세를 합니다


<온달>신라에게 빼앗긴 계립현과 죽령 이서의 땅을 되찾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다


그렇게 온달은 나가서 신라 군들과 아단성(서울 아차산성이나 충청북도 단양 온달산성으로 추정)

아래에서 싸우다가 신라군의 화살을 맞고 넘어져 죽습니다,,

고구려인들은 온달의 시신을 거두어서 장례를 지내려하고

관을 옮기려 하는데 그의 맹세같이 관이 꿈적도 하지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평강공주가 와서 그의 관을 어루만지며


<평강공주>죽고 사는것은 이미 결정됬으니,,

아아 돌아갑시다!!,,


하며 애원하자 관이 움직여서 장례를 치룰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구려 왕(영양왕)도 이를 듣고 몹시 슬퍼했다고 합니다


<서울 아차산 입구(아차산성)에 있는 온달과 평강공주 동상>

<충청북도 단양(온달산성)에 있는 온달 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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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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