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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왕 3년 9월 가을


신대왕은 졸본에 가서 시조묘(주몽,동명성왕 무덤)에

제사지냈다고 합니다


10월 겨울

신대왕은 졸본에서 돌아옵니다


신대왕 4년


한나라 현토군 태수 경림이 침입하여

우리(고구려) 군사 수백명을 죽이자

신대왕은 자진해서 항복하고

현토에 속하기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고구려는 더 이후에 28대왕 보장왕때 멸망하게되고

신대왕때는 형식적으로 중국에 항복한거 같습니다


신대왕 5년

신대왕은 대가 우거와 주부 연인 등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한나라 현토 태수 공손도를 도와

부산 富山 의 적을 쳤다고 합니다


여기서 부산의 적에서 적자는

도둑 적자로 이민족이나 도적을 한나라의

요청을 받고 같이 쳤거나

신대왕때 한나라에 숙이는 외교를 하고

우호를 보이기위해

한나라와 연합해 군사행동을 했던거 같습니다

그러나 고조선대로부터 온

고조선의 후예였던 고구려 백성들에게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중국인들에 대한 불신은 변함이 없었을거 같고

한나라 인들도 고구려와 같이 도적이나 이민족을

같이 치면서도 평소 여러 전쟁을 했던

고구려 인들을 잘 믿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같이 연합 작전을 하면서도

서로 얘네 왜이래 ?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신대왕 8년 11월 겨울


한나라에서 대병,대군사를 일으켜서

우리(고구려)를 향하여 왔다고 합니다

3년전 같이 연합작전을 했으나

서로에 대한 불신은 여전했던거 같고

이번에는 한나라가 먼저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신대왕은 군신들(신하 무리들)에게,,


<신대왕>옛 왕이신 대무신왕 이래

또다시 한나라에서 대군을 보내서

고구려를 침공했다 ,

공격과 수비 어느쪽이 좋은가 ?


이에 여러 사람,신하들은 의논하여 말하기를


<어떤 신하>한나라 군사들이 수가 많은것을

믿고 우리를 경시하니 ,

만약 나가서 싸우지 않으면

적은 우리를 겁쟁이라 하여

자주 침입할것입니다


<다른 신하들>옳소 ! 옳소 !


<신대왕>진정들 하시고 계속 말해보시오 !


<어떤 신하>예 폐하,,

또한 우리나라는 산이 험하고 길이 좁으니,

이야말로 한명이 문을 지키면

만명이 와도 막아낼수가 있는 격이옵니다

따라서 한나라 군의 수가 많을지라도

우리를 어찌할수 없을것이니

군사를 출동시켜 방어하시옵소서


이에 국상 답부는 반대하며 말합니다,,


<명림답부>그렇지 않습니다

한나라는 나라가 크고 백성들이 많습니다

이제 그들이 강병으로 멀리까지 쳐들어오니

그 예봉(날카롭게 공격하는 기세)을 당할수가 없습니다

또한 병력이 많은자는 싸워야하고

병력이 적은자는 수비해야 하는것이

병가의 상식입니다


이제 한나라는 천리길이나 되는 먼곳에서

군량미를 수송해야 하므로

오래 버틸수 없을것 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성밖에 도랑을 깊게 파고 보루를 높이 쌓으며

성밖의 들판에 곡식 한알, 사람 하나없이 비워놓고

기다리게 된다면


(이를 주변에 적들이 사용할만할

모든 군수물자나 식량들을 태우거나

없애서 적들을 지치게만드는

'청야전술' 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열흘, 혹은 한달을 넘기지 못하고

굶주림과 피곤으로 돌아갈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강한 군사로서

압박하면 뜻대로 될수 있을것 입니다


신대왕은 명림답부의 말을 옳게여겨

성문을 닫고 굳게 수비했습니다


한나라 군사들이 공격하다가

승리하지 못하고

답부의 말같이 장수와 졸병들이 굶주리게됩니다,,


<한나라 장군>기껏 먼 고구려까지 왔는데

식량은 부족하고 약탈할 곡식들도 태워버렸다

독한놈들 !


<한나라 장군 참모>장군 우리의 군사는 많고

군량은 적어서 모두 지치고 굶주려 있습니다

퇴각해야합니다 !


이에 한나라 군사들은 퇴각하게되고

이때 답부는 수천명의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여

좌원 에서 전투를 벌이니

한나라 군사가 크게 패배하여

한필의 말도 살아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명림답부의 승리에 신대왕은 크게 기뻐하며

답부에게 좌원과 질산을 식읍으로 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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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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