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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천왕 2년 2월 봄


고국천왕은 왕비 우씨를 왕후로 삼았고

그녀는 제나부 우소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9월 가을


고국천왕은 졸본에 가서

시조(주몽,동명성왕)의 사당에 제사지냈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시조묘에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여럿 나오는데요

옛날 불교가 들어오기전 고구려,백제,신라 한국에서는

토속신앙인 토테미즘,애니미즘과 샤머니즘,

무당이라는 분들이 국가적 제사에서 이런 일들을

담당했던거 같고 저는 종교나 무당분들이 요행을 바라는

기복신앙적인 모습보다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도덕성,인간 윤리적 모습을

담당했던 순기능도 있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거 같습니다


고국천왕 4년 3월 봄 갑인일 밤에는


붉은 기운이 태미 성좌를 관통하였는데

마치 뱀과 같았다고 합니다


4개월 후 7월 가을에는

혜성이 태미 성좌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고국천왕 6년

한나라 요동태수가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고구려)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이야기로는 고국천왕의 형 발기가

한나라군을 끌여들여서 공격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이때에는 발기가 언급되지않고

정황상 추측하는거 같습니다,,


고국천왕은 왕자 계수 (삼국사기에는 왕자라 기록되있으나

계수는 고국천왕의 동생이라고 합니다)를

파견하여 대항하게 했으나

승리하지 못했고


<고국천왕>내가 직접 나서겠다

창과 갑옷을 가져오라 !


이에 고국천왕은 직접 정예 기병을 거느리고

한나라 군사들과 좌원에서 싸워

한나라 군사들을 패배시켰고

이때 적(한나라 군)의 머리가 산처럼 쌓였다고 합니다,,


고국천왕 8년 4월 여름 을묘에

형혹성(화성)이 심성 성좌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5월 그믐(달의 마지막 일) 임진일 그믐날에

일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국천왕 12년 9월 가을

서울에 눈이 여섯자 내렸고


중외대부 패자 어비류와 평자 좌가려는

모두 왕후(고국천왕의 부인)의 친척으로 권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를 역사 용어로 외척이라고 합니다


그 자제들이 모두 그 세도를 믿고

교만하고 사치하였으며

다른 사람의 딸들을 겁탈하고

남의 토지와 주택을 갈취했다고 합니다


이에 백성들이 원망하고 분개했고

고국천왕은 이 소문을 듣고

노하여 그들을 처형하려 하자

좌가려등이 네 연나와 함께 모반(반란)했다고 합니다


7개월 후인


고국천왕 13년 4월 여름

좌가가 무리를 모아 서울(고구려 수도)을 침공했고

고국천왕은 서울 부근의 병사들과 말들을 징발하여

그들을 진압합니다


그리고 고국천왕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


<고국천왕>근자에 관직이 정실에 따라 주어지고

직위는 덕행에 의해 승진되지 않아서

해독이 백성들에게 미치고

나의 왕실을 동요시키고 있다

이는 내가 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희 4부에 명령하노니

각각 자기 하부에 있는 총명한 자들을 천거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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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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