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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을 구제한 고국천왕과 을파소, 진대법의 시행>


고국천왕 13년 10월 겨울


고국천왕은 안류에게 말하기를


<고국천왕>만일 그대의 말이 아니었다면

내가 파소를 데리고 나라를 함께 다스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모든일이 정리된것은 그대의 공로이다


하고 안류를 대사자에 임명했다고 합니다


이에 삼국사기를 쓰신 김부식님은

사론(역사가의 의견,생각)을 적으십니다


<김부식>논하여 이른다

옛날에 명철한 임금들은 현명한 자를 등용함에

상례를 따지지 않았으며

등용한 후에는 의심을 하지 않았으니

은나라(중국) 고종은 부열에게,

촉나라 유비는 공명(제갈량)에게,

진나라 부견은 왕맹에게 그러하였다


이러한 연후에야

직위에서 현명함과 능력이 발휘되어

정치가 개선되고 교화가 이루어져

국가를 보존할수 있는것이다

이제 왕이 결연히 혼자 용단을 내려

을파소를 바닷가(시골)에서 발탁하고

중론에 구애받지 않고

그를 백관의 윗자리에 임용하였으며

또한 천거(추천)한 자 (안류)에게 상을 주었으니

가히 옛 임금의 법도를 체득하였다고 말할수 있다


고국천왕 16년 7월 가을

서리가 내려서 곡식이 죽었고

백성들이 굶주려서

이에 창고를 열어 구제했다고 합니다


3개월 뒤인 10월 겨울

고국천왕은 질산 남쪽에서 사냥하다가

길가에 앉아 우는 자를 보고

우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고국천왕>자네는 어쩌한 일로 울고있는가 ?


우는 사람이 대답하기를,,


<우는 사람>흑흑 제가 빈궁하여

항상 품팔이로 어머님을 봉양하는데

금년(올해)에는 흉년이 들어

품팔이 할곳이 없으므로

한되나 한말의 곡식도 얻을수 없기에

그래서 우는것입니다


라고 말했고 이에 고국천왕이 대답하기를,,


<고국천왕>아아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으로 하여금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는 나의 죄이다


하고는 그에게 옷과 음식을 주어 위로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서울과 지방의 해당 관청에 명령하여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없는 늙은이, 늙고 병들고 가난하여

혼자 힘으로 살수없는 자들을 널리 탐문하여

구제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매년 배고팠던 계절인

3월 봄부터 7월 가을까지 관곡을 풀어

백성들의 식구의 다소(많고 적음)에 따라

차등있게 구제곡(곡식)을 빌려주었다가

추수가 끝난 10월 겨울에 상환,갚게 하는것을

법규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에 모든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추수,수확이 지나서

쌀이 부족했던 계절인 봄에 쌀을 나라에서 빌려주고

수확을 한 계절에 다시 갚게하는 제도를

진대법이라고 합니다

고국천왕때 처음으로 시행됬으며

세계 최초의 복지제도라는 말도 있습니다


당시 국상,재상은 을파소였고

을파소는 직접 농사를 지으며 백성들의

삶을 경험,체험했기에 백성들의 고충들을

잘 알았을거고 삼국사기에는 을파소가 시행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이에 진대법은 을파소가 시행했다고

오늘날 이야기 됩니다


<라봉봉>

명군에 명재상이라는 말같고

백성들을 위한 고국천왕과 국상 을파소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인재 등용등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기에

여러 할말이 많은거 같으나 이야기가 길어지는거 같고

저가 13살때 ?? 책에 써놓은 메모가 있는데요


<13살 라봉봉>좋은 친구를 사귀기전에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자


이렇게 써놓았던거 같습니다

13살인데 똑똑한 글 같습니다 ㅋㅋ,,(자화자찬)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나타날거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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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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