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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나라인들의 귀순, 고국천왕의 죽음>


고국천왕 19년

중국에 큰 난리가 일어나

피난하여 고구려로 귀순하는

한나라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고 합니다

이때가 한 헌제 건안 2년이었다고 합니다


한나라 헌제는 소설 삼국지,삼국지 연의를 읽어보시면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한나라 마지막 황제로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 비극적으로 왕위를 뺏기는 황제로 유명합니다


고구려 고국천왕 시대 당시 중국은 혼란기였고 우리에게는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유비,관우,장비,제갈공명,조조,손권 등

중국 영웅호걸들의 시대로 유명하나

삼국지 소설이 아닌 역사에서 실상은 잦은 전쟁으로 계속되는 혼란기에

도적의 난, 황건적의 난부터 중국 백성들이 죽어나가던 시대였습니다

오죽하면 한 헌제 시기 당시 세 나라로 분열된

중국 삼국중에서 위나라 영토와

인구가 가장 넓고 많았는데도

위나라 인구 400만에서 걷는 세입이

통일 중국,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 무제 당시

한개의 주(지방) 인구가 750만이었는데,,

그 주에서 걷는 세입보다 낮았다고 합니다,,

즉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으나

역사적으로 보면 긴 내전이었고 중국 인구가 옛날보다

배 이상으로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중국인들은 이후

유목민족에게 지배되는 시대가 펼쳐집니다


이렇게 중국 사정을 자세히 적은 이유는,,

사실 고국천왕 마지막 이야기인데 너무 짧게 끝나는거도 있고,,

또 이후부터 아직 더 이후 이야기이나

중국은 5호 16국시대(위진 남북조 시대)라는 분열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이 시대가 고구려인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중국인들은 매우 많이 분열되있고 힘이 약해져서

옛날 거대 제국이었던 진나라나 한나라때같은 영향을

외국에 발휘하지 못했고 자연스레

국경밖이나 한나라인들의 영역 밖 정복지들에는

힘을 쓰거나 신경을 쓰기 어려워집니다


중국,한나라에게 고조선이 멸망하고

그땅에는 한나라,중국인들의 식민기관 한사군이 설치됬고

고조선의 옛 영토를 수복하려 했던 고구려인들에게는

중국의 혼란과 분열은 큰 기회였습니다

이후부터는 고구려는 중국인들에게 뺏긴

옛 영토들을 되찾아나가고 중국인들이 설치한

한사군이라는 식민기관 중 가장 큰 군현이었던

낙랑군을 끝내 축출,수복해 냅니다


다시 고국천왕 이야기로 돌아가서,,


안타깝게도 고국천왕은

고국천왕 19년 5월 여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고국천왕>출신, 혈연보다 능력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게나 !


고국천 故國川 언덕에 장사 지내고

호를 고국천왕 故國川王 이라 했다고 합니다


고국천왕 이야기는 이후 고국천왕의

왕후였던 우씨 이야기로 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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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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