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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왕의 부인이 된 우씨왕후>


그렇게 반란을 일으킨 발기는

그래도 형은 형이었기에 계수가 급하게

발기의 시체를 거두어 시체가 되어서 돌아왔고,,


그해 가을 9월

산상왕은 관리에게 명하여

형이었던 발기의 상례를 지내되

왕례,왕의 예로서 배령에 장사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산상왕은 원래 우씨 왕후에 의하여 왕위를 얻게 되었으므로

다시 장가가지 않고 우씨를 왕후로 삼았다고 합니다,,


즉 우씨왕후는 9대 고국천왕때 고국천왕의 왕후가 됬고

고국천왕 사후 동생이었던 10대 산상왕과도 재혼해

2번 연속으로 고구려의 왕후가 되는 것 입니다,,

여성의 정절을 중요시한 조선시대 선비,유학자들에게는

지탄받을 일이었겠으나

당시 고구려에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아내와 결혼하는 형사취수제 풍습이 있었고

당시에 고구려에서도 문제가 되기는 했으나

그래도 대부분 남성 위주의 고구려 정계에서

이렇게 또다시 왕후가 되었다는거는

우씨 왕후에게도 능력이나 카리스마 같은게 있었을거 같습니다,,


산상왕 2년 2월 봄

산상왕은 환도성을 쌓았습니다


4월 여름

산상왕은 전국의 사형수 이하의 죄수들을

사면했습니다


산상왕 3년 9월 가을

산상왕은 질산 남쪽에서 사냥했습니다


산상왕 7년 3월 봄

산상왕은 아들이 없어

산천에 기도했는데

이 달 15일 밤

꿈에 하늘께서 왕에게 말하시기를 ,,



<하늘>내가 너의 소후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할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에 산상왕은 잠에서 깨어 군신에게 말하기를


<산상왕>꿈에 하늘께서 나에게

이와같이 간곡하게 말씀하셨는데

소후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


하니 국상 을파소가 대답했다고 합니다


<을파소>천명이란 헤아릴수 없으니

왕께서는 기다리소서


<을파소의 죽음>


8월 가을

국상 을파소가 죽으니

고구려 온 백성이 통곡했습니다


을파소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으나

혈연과 출신을 따지지 않던

고국천왕때 발탁되어 고구려에 국상이 되어

고구려에 선정을 하고 개혁을 하며

왕을 보좌했던 고구려의 명신이라 할수있습니다


산상왕은 이후 고우루를 국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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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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