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영양왕 18년

초기 수나라 양제가

계민(돌궐의 계민 가한[왕,추장])의 막부에 행차했을때

우리 사신이 마침 계민에게 가있었습니다


계민이 우리(고구려) 사신을 감히 숨길수 없어서

계민과 같이 수양제(수나라 양제)를 배알했고

이때 황문 시랑 배구가 수양제에게 말했습니다


<배구>고구려는 원래 기자에게 봉하였던 땅이며,

한나라와 진나라가 모두 군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하의 나라로 행동하지 않고

별도의 지역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선제께서는 오랫동안 그들을 정벌하려 했습니다

그리하여 양량(수문제의 다섯째 아들로

1차 여수전쟁때 대장)이 불초(못나고 어리석다,

양량은 수문제의 둘째아들,다음왕인 양광,양제에게

반란을 일으켜서 사망함,,)

하여 군사를 내었으나 공을 세우지 못한 것 입니다


이제는 폐하의 시대이니

어찌 그들을 정벌하지 않고

예절의 땅이

오랑캐의 소굴로 변하도록 합니까


오늘 고구려 사신은

계민이 나라를 바쳐

왕화 王化 (임금의 덕행으로 감화하게 함.

또는 그런 감화)에 복종하는것을 직접 보았으니

그가 우리를 두려워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고구려가 우리에게 조공하도록

위협해 두는것이 좋겠습니다


수 양제가 이를 따라서

고구려 사신에게 자기의 뜻을 전하도록

우홍에게 명령했습니다


<우홍>우리 대 수나라 황제 폐하께서는

너희 고구려 사신에게 이렇게

전하라 하셨다,,


<수 양제>짐이 생각하기에

계민은 성심으로 중국을 받들엇기 때문에

내가 직접 계민의 막부에 온 것이며

명년에는 응당 탁군으로 갈 것이다


너(고구려 사신)는 돌아가는 날로 너의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


마땅히 빠른 시간 내에 입조하되

스스로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이리하면 내가 너의 왕을 보호하되

계민과 같이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입조하지 않는다면

계민을 거느리고

너의 땅을 토벌하리라


이 말을 들은 영양왕은

번방으로서의 예절을 하지 않았으므로

수 양제가 장차 토벌해 올 것을 걱정했습니다


<김부식>계민은 돌궐의 가한,즉 추장이었다


5월 여름

영양왕이 군사를 보내서

백제의 송산성을 공격하다가

항복받지 못하고

군사를 석두성으로 옮겨서 습격해서

남녀 3천명을 포로로 잡아서 돌아왔습니다,,


영양왕 19년

2월 봄

영양왕은 고구려 장수에게

신라의 북쪽 국경을 습격하도록 명해서

8천명을 포로로 잡아왔습니다


4월 여름

신라의 우명산성을 빼앗았습니다


<라봉봉>돌궐 계민가한의 막부에서

고구려 사신과 수양제가 만났을때

고구려왕에게 입조하라는 명령에

고구려 사신은 오히려 조선의 영토가

수나라의 영토이므로

고구려는 수나라의 군주국이며

수나라의 요구를 지적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수양제는 중국에서도 최악의 폭군이라고

뽑힌다고 합니다,,

진시황도 최악의 폭군이나

의외로 치밀하고 유능한 모습은 보였고

이에 비해 수양제는 계속 사치와 대공사,

고구려 전쟁으로 큰 혼란,

무리수를 크게 두는 황제로

아버지 수 문제가 이뤄놓은 업적을

모두 말아먹고 반란을 일으킨

부하들에게 처형당합니다,,


뭔가 이야기가

중국 중심으로 쓰여진거 같은데요,,

그 이유는

사실 삼국사기가 고국원왕 이후대부터는

기록이 부족해서

중국측 기록을 그대로 베껴온 모양새이고

중국 중심 사관이 작용해서라 할수있습니다,,

그렇다는거는 중국이 유리하게 기록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거는 축소,

수정할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도

중국측의 기록에 많이 의존하는데도

중국인들의 고구려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