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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왕 23년

6월 기미일

결국 요동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수 양제는 요동성 남쪽으로 가서

성곽과 연못의 형세를 관찰하고

곧 여러 장수들을 불러서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수 양제>그대들은 벼슬이 높다거나

또한 가문과 세도를 믿고

나를 어리석은 자로 대하려 하는가 ?


전일 내가 서울(수도)에 있을때

그대들이 내가 이곳에 오는것을

원하지 않은것은

그대들의 단점이

들어날까 두려워 한것이로구나


이제 내가 여기에 온것은

바로 그대들의 행동을 보아서

그대들의 목을 베려는 것인데


그대들은 지금 죽는것이 무서워

힘을 다하지 않고 있으니


내가 그대들을 죽일수 없을것으로 생각하는가 ?


<수나라 장군들>(또시작이네,, 여기는

중국이 아니라 고구려라고요 !!) ,,,,


여러 수나라 장수들이

모두 실색을 하고

무서워 떨었습니다,,


양제는 성의 서쪽으로

몇 리 떨어진 곳에 머물러 있으며

육합성을 엿보고 있었으나


우리,고구려의 모든 성은 굳게 지키고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고구려 군의 덫에 걸린

수나라 내호아의 수군>


수나라 좌익위 대장군 내호아가

강,회의 수군을 실은

수백리에 달하는 선단을 끌고

바다를 통해서

패수로부터 들어오니

평양과의 거리가 60리였고


우리 군사와 조우하자

그들이 진격해서 우리가 대패했습니다,,


<고구려 장군들>확실히

성안에서의 방어는 우리가 강하나

수나라 군들은 인구가 많기에

야전(산이나 들 따위의

야외에서 벌이는 전투)

에서는 우리가 약하구나,,


모두 퇴각하라 !

성안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잠구고 지켜라 !


내호아는 승세를 타고

성으로 진격하려 했습니다


이때 부총관 주법상이 만류해서

여러 군사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함께 진격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호아가 듣지 않고

정예병 수만명을 선발해서

곧장 성밑까지 왔습니다,,


이때 우리 장수는

외성에 있는 빈 절간에 군사를 숨겨놓고

군사를 출동시켜서 내호아와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하는 체 했고


내호아는 성안으로 쫒아들어와서

군사들을 풀어서

백성들을 사로잡고 재물을 약탈하며

미쳐 대오를 정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우리의 숨었던 군사들이 출동하니

내호아가 대패했고


내호아는 간신히 포로 신세를 면했고

살아서 돌아간 군사는 수천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로서 바닷길로 수나라 육군의

보급을 담당해야했던

수나라 수군은 궤멸되고

이 결과는 수나라 대군의

궤멸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 군사는 선창까지 추격했으나

수나라 장수 주법상이 진을 정비해서

대비하고 있었기에

우리 군사는 곧 물러나왔습니다


내호아는 군사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돌아가서 주둔하며

다시는 감히 다른 군사들과

호응하고 접촉할 수 없게되었습니다,,


<라봉봉>당시의 전투는 한국 삼국사기보다

중국 기록에 더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요동성 함락에 실패한 수양제는

분노해서 30만 별동대로 하여금

(113만 대군이어서 그런지

별동대의 수만 30만입니다,,)

바로 고구려 수도 평양성으로 진격하게했고

원래는 내호아의 수군과 별동대가 같이

만나서 별동대는 수군의 보급을 받았어야하나


이렇게 내호아가 고구려 군의 덫에 걸려서

수나라 수군이 궤멸됬고

이에 평양까지 진격한 수나라 별동대는

고구려 군뿐만이 아닌

굶주림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중국의 천재적인 군사전략가로 알려진

초한지에 나오는 한신은,,


<한신>패전하여 불리한 상황에 있더라도

초보는 공격을,

중수는 방어를,

고수는 병참(보급)을 생각한다


라고 말했고

보급은 전쟁에서 그만큼

가장 중요한것중의 하나였기에


보급을 담당했던

수나라 수군의 궤멸은 곧

수나라 113만 대군의 패배로 이어지게 됩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위인으로 불리는

삼국지의 제갈량이나

한국,신라 김유신 장군의 역활이

쌀배달,즉 보급이었고

이 이유는

고작 하는일이 쌀배달이라서가 아니라

쌀은 군사들의 생명이라

할수있기에 누구보다도 더

믿을수 있고 신뢰할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서 그렇게 된거 같습니다,,


만약 당시에

내호아 같이 성급한 장수가아닌

신중한 주법상이 수나라 군대의 보급을 맡았다면

고구려 멸망은 더 빨라졌을수도

있었습니다,,


이후에 수나라가 멸망하고

새로 들어선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해서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킬때

김유신장군이 담당한 신라군의

쌀,조 등의 보급이

원할했기에 백제와 고구려의

항복을 받아낼수가 있었습니다


아직 고구려는 멸망하지 않으나

고구려인들도 정말 기를 쓰고

아득바득, 힘겹게 방어하는 형세였고

이당시 시기부터

고구려 멸망은 너무 허망하고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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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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