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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왕 23년

7월 가을


수나라 장군 우문술의 군사가

살수에 이르러

강을 절반쯤 건널 때

우리,고구려 군사가 후방에서

그들의 후속 부대를 공격했습니다


적장 우둔위 장군 신세웅이 여기서 전사했고


그러자 여러 부대들이 한꺼번에 무너져서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을지문덕>우리의 국토를 침범하고

유린한 자들을

단 한명도 살려보내지 말라 !


대 고구려 군사들이여

모두 총공격 하라 !


수나라 중수와 군졸이 뛰어서

도주하는데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압록강까지

450리를 행군했습니다,,


이는 176km로

서울 - 부산 절반거리로,,

당시 살아남은 수나라 군사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죽기살기로 전력질주해서

도망갔다는것을 알수있습니다,,


수나라 장군 천수 사람

왕인공이 후군이 되서

우리 군사를 막아 물리쳤고


수나라 수군장군 내호아는

우문술이 패했다는 소문을 듣고

역시 퇴각했습니다


다만 위문승의 군대만이 온전했고


처음 9군이 요동에 도착했을때는

총 수가 30만 5천명이었는데

요동성으로 돌아갔을 때는

다만 2천 7백명 뿐이었고

수만에 달하는 군량과 군사기재들이

망실되고 탕진되었습니다,,


수 양제는 크게 노해서

우문술 등을 쇠사슬로 묶어서

계묘일에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고구려 원정에 참여했던

우문술은 관직 삭탈되서

일반 백성이 되나

곧 613년 수나라의 3차 고구려 침공때

수양제의 비호로 다시 복귀됩니다


그(우문술)의 첫째아들 우문화급은

이후 반란을 일으켜서

수 양제를 시해합니다,,


<라봉봉>중국 군사 병볍서의 고전,기초인

손자병법에는


<손자병법>적군이 강을 건널때

공격하면 필승 !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굶주림과 고된 행군에

녹초가 된 수나라 30만 대군은

살수라는 강까지 건너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것 입니다,,


그렇게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으로

수나라 30만 원정군은 궤멸되고

약 2700명만이 살아서 돌아갈수 있었던

한국사의 전설적인 승리,주요 대첩이고

영광의 고구려사를 이야기할때

빠지지 않는 이야기라 할수있으며


중국,수나라에서는 치욕,굴욕의 역사로

조선시대 초기때 명나라 사신 축맹이

조선 대신 조준에게 오만방자하게 굴자

준이 절구,한시로 살수대첩을 언급하자

축맹은 불쾌한지 입을 다물었다고 합니다,,


조선 조준의 살수대첩 시는

안주회고 安州懷古 라는 시로

조준이 고려말기, 34대왕 공양왕 3년 성절사로

명나라로 가면서 안주(평안북도 지역,살수 근처)를

지나다가 옛날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을 이룬것을 회고하며 쓴시입니다


안주회고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주회고 安州懷古>

살수 강물 파도치며 허공에 출렁이니

薩水湯湯漾碧虛

수나라 백만군사 고기밥이 되었것다

隋兵百萬化爲魚

지금까지 어초(어부)들의 얘깃거리로 남아

至今留得漁樵話

지나가는 나그네의 한바탕 웃음거리 되고도 남네

不滿征夫一笑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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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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