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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구국의 영웅 을지문덕 장군>


을지문덕은

그의 선대의 계보를 알수가 없었고

자질이 침착하고 날쌔며

지략과 술수가 뛰어났고

겸하여 글을 알고 지을 수 있었습니다


수나라 개황 연간에

수 양제가 조서를 내려서

고구려를 치게 했습니다


이에

좌익위 대장군

우문술은 부여도로 나오고

우익위 대장군

우중문은 낙랑도로 나와서

아홉 개의 군부대와 함께

압록강에 이르렀습니다


을지문덕이 왕명을 받아

그 진영에 나가서 거짓 항복했습니다

사실은 그 허실을 엿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앞서 우문술과 우중문은

수 양제의 밀지를 받았는데


고구려 왕이나 을지문덕이 찾아오거든

잡아두라 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우중문 등이 억류해두려 했는데

상서우승 유사룡이

위무사(전쟁,재해때 민심을 무마하려

임시로 파견하는 관리)였는데

굳이 말리므로,

그만 을지문덕을 돌아가게 했습니다


<을지문덕>수나라 군들의

상태가 말이 아니군,,

굶주리려있기에

조금만 더 우리 땅으로

깊게 끌여들인다면

충분히 궤멸시킬수 있겠다,,


우중문은 곧 다시 깊게 뉘우쳐서,

아차 싶어서

사람을

문덕(을지문덕)에게 보냈고

마침 을지문덕 장군은

압록강을 건너는 중이었습니다


우중문이 보낸 사람이

문덕을 속여서 이르기를,,


<우중문이 보낸 사람>

을지문덕 장군 !


중문 장군께서

더 의논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시니

다시 오라고 하셨소이다 !


그러나 을지문덕은 돌아보지 않고

드디어 압록강을 건너서 돌아왔습니다


<우중문이 보낸 사람의 보고>

중문 장군 !

돌아오라 했으나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우중문>그래 알겠다,,

(우리를 염탐하기 위한

거짓 항복이었구나,,

이렇게 된 이상

무슨 낯으로 폐하를 뵐것인가,,)


우문술과 우중문은

을지문덕을 놓치고서는

속으로 불안해 했고

우문술은 식량이 떨어졌으므로

돌아가려 했고

우중문은 정예부대로서

을지문덕을 추격하면

공을 이룰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문술이 말리자

우중문이 성을 내며 이르기를,,


<우중문>장군이 10만 병력을 가지고

능히 이 작은 적(고구려)을 무찌르지 못하면

무슨 낯으로 황제(수 양제)를 뵈겠습니까 ?


이에 우문술 등은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따랐습니다


우중문,우문술 수나라 군대는

압록강을 건너서 을지문덕을 추격했는데

을지문덕은 수나라 병영에 거짓 항복했을때

수나라 군사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음을 보고

더 피로케 하고자 해서

싸움마다 일부로 문득 패하니,

우문술 등은 하루동안에

일곱 번 싸워서 다 이겼습니다,,


이미 여러번 이긴것을 믿고

또 중의(여러 사람의 의견)에 몰려서

마침내 동쪽으로 진격해서

살수를 건너서 평양성까지

30리 되는 지점에서 산에 의지해서

진을 쳤습니다,,


<우문술>하,, 평양성은 험하고

견고해서 쉽게 뚫기 어렵겠구나,,

우리 병사들은 굶주리고

피곤해 있고

어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때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시를 지어 보냈습니다


<우중문에게 보낸

을지문덕의 시(여수장우중문시)>


그대의 신통스러운 계책은 천문을 뚫었고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묘한 계산은 지리를 다했도다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았으니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만족한 줄 알아 그만둠이 어떠한가 ?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우중문>;;;; 을지문덕,,

이는 칭찬이 아니고

분명 나를 비꼬아

희롱하구 있구나,,


이에 우중문은 답서를 보내서

효유(타이르다)했고

을지문덕은 또다시 사자를 보내서

거짓 항복하고

우문술에게 이르기를,,


<을지문덕의 사자>

우리 을지문덕 장군께서는

이렇게 전하라 하셨소,,


군사를 돌려가시면

왕을 모시고

행재소(임금이 멀리 거동할때 머무는곳으로

수양제가 있는곳)로 가서 직접 뵙겠다


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우문술은 군사들이 피로하고

고달파함을 보고

더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하고

또 평양성이 험하고 단단해서

갑자기 함락시키기

어려움을 알고는

마침내 그 거짓 항복을 받은 것을

핑계삼아 돌아갔는데

방진으로 편성해서 행군했습니다


을지문덕이 군사를 내어서

사면에서 수나라 군을 습격하니

우문술 등이 싸우면서 행군했고

살수에 이르러 군사가 반쯤 건넜을 때

을지문덕이 군사를 전진시켜서

그 후미를 공격해서

우둔위 장군 신세웅을 죽였습니다,,


이에 수나라의 모든 부대가

함께 허물어졌으나

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홉 부대의 장군과 병사가

달아나서 돌아감에

밤낮 하루동안에 압록강에

도달했으니

450리(176km 서울-부산 거리의 절반정도,,)

를 걸었다고 합니다,,


처음 요하를 건넜을 때는

아홉 부대의 군대가 30만 5천명이엇는데

요동성에 되돌아 간 자는

겨우 2천7백명 이었다고 합니다,,


<김부식>사가가 논한다

양제(수 양제)가 요동 전쟁에

보낸 군대는

이전에 유례없이 많았다


고구려는 한 귀퉁이의 작은나라로서

능히 이를 막아내어

스스로를 보전하였을 뿐 아니라

그 군사를 거의 다 섬멸한 것은

을지문덕 한 사람의 힘이었다


경전(춘추좌전)에 이르기를


'군자가 있지 않으면

어찌 능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으랴'


하였는데

참으로 옳은 말이다


<라봉봉>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은

신라 김유신 장군,

고려 강감찬 장군,

조선 이순신 장군 같이

나라를 구하신

구국의 영웅,장군이라 하실수 있습니다


역사에 남은 그의 기록에도

그의 꾀와 그가 쓴 시는

평범한 시라 할수가 없었고


일제 강점기때 활동하신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그를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에 빗대어

을지문덕을 본받는 이들이 많이 생겨서

우리 독립에 이바지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주길 간절히 바라셨다고 합니다


을지문덕은 직접 거짓항복을 해서

수나라 30만 대군이 있는 병영으로

홀로 들어가서 수나라 군의 동태를

살폈으며

적을 기만하고 조롱하는

고도의 심리전과

적의 수가 많음에도

확실히 이길수 있을때까지

기다리고 과감하게 야전(들판,평지 전투)을

거는 판단력 등등

고려 강감찬,조선 이순신 장군같이

한반도 역사상 최고 수준의 명장이라고 합니다


살수대첩의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은

고구려 구국의 영웅으로서

오늘날에도 독립,자주적 정신을 이야기 할때

나오시는 한국사의 위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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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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