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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에게 무릎을 꿇은 아신왕>


아신왕, 그에 대한 기록은

한국 기록 '삼국사기'나

일본 기록 '일본서기'말고도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에

이렇게 써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 기록]

백잔(잔인한 백제,백제 오랑캐라는

뜻으로 고구려가 백제를 낮춰불렀던 말)이

의 義 (옳음,착함)에 복종치 않고

감히 나와 싸우니

왕(광개토대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한강)를 건너 정병 精兵 (우수하고 강한 군사)을

보내어  그 수도(백제수도 한성)에

육박 肉薄 (바싹 가까이 다가붙다)하였다

(백잔군이 퇴각하니 ,,, ) 곧 그 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잔주 殘主 (백잔의 주인,백제왕 아신왕을 낮춰부른말)가

곤핍해져 남녀 생구 生口 (포로,사로잡은 적) 1천명과

세포 細布 (곱고 가늘게 짜여진 삼베) 천 필을 바치면서

왕(광개토대왕)에게 항복하고

이제부터 영구히 고구려 왕의

노객 奴客 (직역하면 노비 손님,즉 노비,종이 되겠다는 말)

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광개토대왕>잔주(백잔[백제]의 주인) 아신은

어찌 왕이 되어서

의에 복종하지 않고

도적의 흉계를 꾸리고 있는가 ?


잔주 아신은

내앞에 무릎을 꿇어라


<아신왕>죄,,죄송하옵니다

태왕폐하,,

소인이 폐하를 몰라뵈고

큰 실례를 저질렀사옵니다


앞으로 영원히 폐하의

노객(노비 신하)가 되겠사옵니다

부디 이 목숨만은 살려주시옵소서,,


<광개토대왕>(흡족) 으음,,

백제왕의 정성이 갸륵하고

기특하구나


이로서 나는 할아버지

고국원왕의 원수를 갚았다 !


<고구려 병사들>와아아아아 !!

고구려 만세 !

태왕폐하 만세 !


<광개토대왕>직접 나와서

무릎을 꿇은 그대의 정성에

내 친히 그대의

죄를 용서하겠다

부여아신 그대는

선조 부여온조(백제 1대왕 온조왕)가 나의 선조

추모(주몽)임금의 다른 아들이자

유류왕(유리왕)의 이복형제인 것을

잊지 말고 앞으로 영원토록

고구려에 복종하여라


<아신왕>예 폐하

생각이 짧았던 신으로서는

앞으로 폐하와

고구려에만 의지할 따름이옵니다


<광개토대왕>허허, 그래

내 너희들의 정성을 갸륵히 여겨

너희 백잔의 신하와 백성들에게

내 사후(죽은 후) 무덤을

수호(지킴)하고 소제(청소,관리)하게 하는 영광을 주겠노라


태왕(광개토대왕)은 잔주(아신왕)의 잘못을

은혜로서 용서하고

뒤에 순종해 온 그 정성을 기특히 여겼다


이에 58성 700촌을 획득하고

잔주(아신왕)의 아우와 대신(백제신하) 10인을 데리고

수도로 개선 凱旋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옴)하였다


- 광개토대왕릉비 -


<라봉봉>고구려는 백제 이외에도

주변에 거란이나 수많은 나라들이 있었고

이에 광개토대왕 당시에는 동서남북으로

영토를 광활히 확장해나가던 시기였습니다


아신왕이 계속 고구려를 공격하자

분노한 광개토대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아리수를 건너서

백제 수도에 바싹 가까히 다가붙자

아신왕은 결국 광개토대왕에게 가서

무릎을 꿇게되었고

삼국사기에는 없는 이야기이나

광개토대왕릉비 비석에는 기록되어있는

이야기로 정황상 충분히 고구려 국력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고 실제 있었던 일 같습니다


아신왕은 이때에도 순간을 모면하기위해서

거짓으로 항복한 거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왜 광개토대왕이

한창 힘이 강했을때

백제와 신라를 멸망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었냐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당시 백제왕인 아신왕이 광개토대왕에게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마당이었고

신라는 광개토대왕대에 사실상

고구려의 속국이 됩니다

그러나 신라는 고구려에게 여러

문물들을 전해받고

힘을 키워서 이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기에

저도 옛날에는

이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야기로는

당시에는 백제와 신라를

멸망시켜서 흡수하는 거 보다

주요 성과 풍요로운 마을정도만 얻어도

충분히 좋은 환경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본거 같고


백제와 신라 역시

오랜 역사의 나라였고

당시 고구려보다 약한 나라였어도

풍요로운 지방에 자리잡았고

만만한 나라는 아니었기에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멸망시킬수 있을정도의

여력까지는 없었던거 같습니다


또 당시 삼국통일에 대한

의식자체가 고구려,백제,신라인들에게

별로 없었던거 같고

광개토대왕대에 신라에

고구려 문화들이 전파되며

이때부터 신라인들은

삼국통일 의식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당시 중국이

갈기갈기 찢겨져서 혼란했던 시기였기에

굳이 한국인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 역시

중국에 대한 큰 위기감을 못느꼈던 시대였기에

그랬던거 같고

이후 중국에 수나라라는 통일제국이 들어서자

고구려,백제,신라인들도

그 압도적인 힘에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고

삼국통일에 대한 의식이 고무,각성(커지게)되게

된거 같습니다


뮬론 원삼국시대,삼국정립기라고 불리는

고구려,백제,신라 이전에

한국에 삼한이라고

마한,진한,변한은

고조선에서 위만의 쿠데타,반란으로

고조선왕 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남하해서 진국 辰國 (한국 韓國 진 辰 나라로 중국 中國 진 秦 나라와 다릅니다)

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하며

한은 마한,진한,변한 세갈래로 나뉘었으나

원래는 모두

같은 조선인(고조선)들이세운

진국이었다고 합니다

백제와 신라가 초기에 싸웠다는 이야기도

이에 시작된거 같고

백제는 부여,고구려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였고

부여,고구려 역시 조선의 북방지역인들의 후예였고

고구려,백제,신라인들은

서로 언어가 통했고[백제와 신라는

같은 마한,진한 즉 같은 한 韓 계국가에서

발달했기에 언어가 통했고 백제는

부여,고구려인들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모두 조선,고조선인들의

후예들이 건국한 나라입니다


기록에는 고구려어와 백제어가 서로

통한다고 전해지고있다고 하고

고구려,부여어는 말갈어,퉁구스계 어와는

구분된다고 합니다


삼국의 서로의 방언,사투리가 달랐을 지언정

어찌 말이 안통했겠습니까 ?

오늘날 언어학자들도 대부분

이에 동의하는거 같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중국과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음)


삼국통일 의식 자체가 초기에는

뚜렷히는 안나타났더라도

완전히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시대를 읽을줄 아는 왕이었기에

비록 백제왕의 항복을 받았으나

그들을 멸망시키기까지는 무리가 있음을 알고

적당히 항복을 받아내고

좋은 땅들을 고구려 땅으로 만드는 선에서

만족한거 같고

아신왕도 비록 굴욕적이었을지라도

그 나름대로

광개토대왕의 비위를 맞쳐주며

백제의 멸망까지는 막은거 같습니다


고대인들의 지적능력들은

현대인들이 보기에 의아한 느낌들이 있습니다

아신왕도 고구려의 공격등에

국가적 재난을 타개하려고

일본에 큰 구슬을 보내달라 하는등

종교,샤먼(무당)적인거에 의지하려 했고

영리한 왕이었던 고구려 광개토대왕도

백제 아신왕의 거짓항복을

눈치챘을 법도한데 그냥 기특하다 여기고

돌아갔다는 점 등 의아한 구석이 많으나

당시 고대인의 세계로 직접 간다면

그 상황들이 이해가 될수도 있겠습니다

먼저 고대인들 역시 정말 무능하지는 않았고

위대하고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술과 지식,자원의 한계 등으로

민도 등은 매우 낮았고

오늘날 보기에는 별거도 아닌거로

쉽게 선동이 가능하고

거짓이 통했던 시기였습니다


(예를들면 비가 안내리면

왕이 잘못을 했다는 것도

고대인들 뿐만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수백년 전까지 통용되었습니다,,)


오늘날 미래를 아는

우리의 시각으로 봐서

우리가 그들을 무식하고 어리석다

여기기는 곤란하고

당대 그들 역시 그들의

한정된 자원,기술,시각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산것이고

우리는 이미 그 이후이야기들을

쉽게 역사를 통해 볼 수있으나

고대인들에게는 항상 현재를

살았기에 역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등도 있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시에는 정말 대단한 신기술일 수도있고

또 미래인들이 보기에 현재 우리도

수준이 낮아보일 수 있고

사회가 발달한다면

그게 당연한 것일 겁니다,,


하여튼 지금의 시각으로만

당시 사람들을 판단해서는 안되고

당시 사람들 역시 최선을 다했기에

후손을 낳고 그 후손들이

우리를 낳았고 오늘날 세상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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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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