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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장수왕의 한성함락, 백제 개로왕의 죽음>


그렇게 백제에 간첩으로 파견된

고구려 승려 도림은 뛰어난 바둑실력으로

백제왕 개로왕의 환심을 샀고

얻은 신뢰등을 바탕으로

개로왕을 꼬드겨서(부추겨서)

나라에 사치와 바탕을 일삼케 해서

백제의 국력을 소진시켰고

임무를 마치고 다시 백제에서 고구려로

도망쳐와서 고구려 장수왕에게

이 사실들을 보고했습니다,,


장수왕이 기뻐하며

백제를 치기 위해서

고구려 장수들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


<개로왕>뭐라고 ??!

도림이 고구려왕 거련(장수왕)이

보낸 첩자였단 말인가 ??!!


아차 내가 속았구나 !!!!!


<백제 신하들>,,


근개루(개로왕)이 이 말을 듣고

아들 문주(백제 22대왕 문주왕,

문주왕의 이름 부여문주)에게 말했습니다


<개로왕>내가 어리석고 총명하지 못하여

간사한 사람의 말을 믿다가

이렇게 되었다


백성들은 쇠잔 衰殘 (쇠하여 힘이나 세력이 점점 약해지다)

하고 군대는 약하니

비록 위급한 일을 당하여도

누가 기꺼이 나를 위하여

힘써 싸우려 하겠는가


나는 당연히 나라를 위하여 죽어야 하지만

네가 여기에서 함께 죽는 것은

유익할 것이 없으니


난리를 피하여 있다가

(내가 죽으면)나라의 왕통을 잇도록 하라


<백제 왕자 부여문주>아바마마 !


<개로왕>백제는 멸망의 위기에 있다

문주야 ! 너는 백성을 사랑하므로

내 후계로 충분하다,

너라도 반드시 살아남아서

다시 백제를 일으켜야 하느니라 !

어서가거라 !


개로왕의 아들 문주가 곧

목협만치와 조미걸취를 데리고


(목협씨,조미씨로 백제인들은

왕족인 부여씨부터

두글자로 된 성인 복성 複姓 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목협과 조미씨는 각각 목씨와 진씨로

1글자 성인 단성화가 됬다고 합니다)


<김부식>목협,조미는 모두 복성(2글자 성)인데

[수서,중국역사책]에서는 목협을 두개의 성으로 보았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남쪽으로 떠났습니다


이때

고구려의 대로 對盧 (벼슬 이름) 제우,

재증걸루,고이만년 등이


<김부식>재증,고이는 모두 복성(2글자 성)이다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북쪽 성을 공격한지

7일만에 함락시키고

남쪽 성으로 옮겨 공격하자

성 안이 위험에 빠지고

개로왕은 도망해서 나갔습니다


고구려 장수 걸루(재증걸루) 등이

개로왕을 보고 (개로왕을 잡아서,,)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개로와의 낯(얼굴)을 향해서 세 번 침을 뱉고서

죄목을 따진 다음

아차성 밑으로 묶어보내서 죽이게 했습니다,,


<고이만년,재증걸루>붙잡힌

백제왕 부여경사(개로왕)는

먼저 한때나마나 모셨던 우리들의

절을 받으시오


<개로왕>,, 너희들이 결국 백제의 신하였음을 잊고

고구려의 향도 鄕導(길잡이,앞잡이)가 됬구나,,


<재증걸루>부여경사 네이놈 !

이제 우리의 운명이 서로 뒤바뀐 것을 보니

기분이 어떤가

캬악 퇘 ! 퇘 ! 퇘 !


<개로왕>내가 부족하고 명민하지 못한 탓인데

그 누구를 탓하랴,,

아아 ! 원통하고 원통할 따름이다 !


<고이만년>부여경사

네놈의 죄를 네가 알렸다 !

네놈은 백제의 어라하(왕)으로서

너의 신하들과 백성들을 괴롭혔으며

사치와 방탕을 일삼아 나라를 피폐하게 했다

나 고구려의 장수 고이만년과

재증걸루는 오늘로서 그 죄들을 단죄하겠다 !


<개로왕>내가 어리석고 총명하지 못한 죄로다

나는 백제 어라하로서 이곳에서 죽겠다


<재증걸루>이곳은 앞으로 너희 부여씨의 땅이 아닌

천하대국 天下大國 고구려 고씨의 땅이되었다

부여경사(개로왕)를 아차산 밑으로 묶어보내서

죽여라 !


<고구려 군사들>예 장군 !


걸루(재증걸루)와 만년(고이만년)은 원래 백제 사람으로서

죄를 짓고 고구려에 도망했었던 사람들입니다,,

개로왕은 그냥잡은거도 아니고

한때 모셨던 왕이었음에도

얼굴에 침을 세번 뱉었다는 기록을 보면

재증걸루와 고이만년등이

개로왕에게 원한이 많았다고

추론(추측)할 수 있다고 하며


(비슷한 사례로는

김부식 삼국사기에 백제에게 누이가 죽은

김법민,이후 문무왕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백제 태자를 무릎꿇게하고

침을 뱉고 꾸짖었습니다,,

삼국사기는 매우 정제되고 우아한 글이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시대적 상황의

적개심,분노심과 증오들도

그대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이에 고구려에 도망해서

장수왕에게 가서 당시말로

향도 鄕導(길잡이), 앞잡이,길잡이

노릇을 했던거 같습니다,,


<김부식>논평한다


초명왕(중국 초나라 명왕)이 망할때

운공 신의 아우 회는

마침 왕을 시해하고 말하기를


'평왕은 나의 아비를 죽였으므로

나는 그 아들을 죽였다


이 또한 옳지 않은가'


하자

신은 말하기를


'임금이 신하를 쳐죽였는데

누가 감히 이를 원수라 하겠는가


군(임금)명은 천명이다 君命天也

(임금의 목숨은 하늘이 준 목숨이다)


만약 천명에 죽으면

누구를 원수라 하랴 '


라고 하였다


그런대 재증걸루와 고이만년 등은

스스로 죄를 져서

나라에서 용납되지 않으므로

도망하여 적병의 향도 鄕導 (길잡이,앞잡이)가 되어

전의 임금을 묶어보내고

이를 살해하였으니


그 불의의 됨은 아주 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자서가 영에 들어가서

초왕의 시체를 매질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옛 중국사례들)


양자 법언에 이를 논평하여


'덕이 따르지 않는 인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른바 덕이란 것은

인과 의일 따름이다


곧 자서의 사나움은

운공의 어진 것만 같지 못하니


이로써 이를 논한다면

재증걸루와 고이만년 등이

의롭지 못한 짓을 한 것은 명백하다


<라봉봉>그렇게 고구려에서 보내진

첩자( 같은말 간첩,스파이) 도림스님의

말을 듣고 국사를 엉망으로 했던 개로왕은

결국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에

약 500여년(정확히는 493년)의

백제수도였던 한성(오늘날 서울)은

한번에 부셔지듯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장수왕 기록에서는

장수왕이 오랫동안

조용히 참고 참고 참고 참고 하다가

갑자기 백제 수도를

함락시키는 그런 느낌의 기록입니다,,


장수왕 기록에서는 백제왕 부여경[개로왕의 이름

부여경사의 줄임말로 추측한다고 합니다]을 죽이고

남녀 8천명을 사로잡고 돌아갔다고

백제 개로왕 기록에 비해 정말 짧게 나옵니다

이는 고구려에서는 단지 땅을 넓힌 영광의 승리였고

백제에서는 국가 멸망의 위기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성,한강유역은 풍요롭고

바닷길로 당시 선진국이었던

중국과 교통이 쉽기에 고구려,백제,신라의

각축장 角逐場 (서로 이기려고 다투고 있는 곳)이 됬고


백제 시조(첫조상) 1대왕 온조왕이

한강유역에 자리잡고 수도로 삼은

한성은 그만큼 백제인들에게 중요하고

또 중요한 국가적인 땅이었고

한성이 고구려에 함락되고 고구려 영토로 넘어감으로서

백제는 나라가 사실상 뒤집어지고

멸망의 위기까지 가게됬습니다


일본서기에서는 과장해서

이때 백제가 멸망했고

이에 왜왕이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

라는 식으로 서술된게 있다고 합니다,,


(당시 왜,일본은 백제에 문화,

기술을 전수받고 있었고

사실상 백제인들의

뒷마당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본국[백제]이 위험해지자 왜에서 국가적 규모로

백제를 지원하러 올 상황은 있다하더라도


일본기록인 일본서기는 완전 거짓말은 아니더라도

자국을 높이기 위한 조작,허세가 심한 역사서입니다,,)


일본서기에서 말한대로

백제가 이때 멸망했다는 것은

과장이라 할 수 만도 없었고

당시 개로왕도 이에 스스로 위기를 직감하고

아들 부여문주(개로왕 다음왕인 백제 22대왕 문주왕)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왕통을 이어달라 부탁했고


사실상 백제가 멸망했고

충청도 지방에서

아들 부여문주의 백제 부흥운동이 성공해서

결국 오늘날 서울특별시 지역인 한성백제에서

오늘날 충청도 지역으로 옮겨가서

웅진(오늘날 충청남도 공주시)백제,

이후 사비(오늘날 충청남도 부여군)백제로 이어지는

시대가 열리게 됬고

결국 백제는 이후 일시적으로 신라와 함께

한강유역을 고구려에게 되찾기도 하나

금방 신라에게 뺏기게 됩니다,,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은

백제의 두글자성인 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들로

백제에는 부여씨,재증씨,고이씨,흑치씨 등

두글자 성이 많았고

오늘날에는 두글자 성은 많이 없거나 사라지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기에

신라 성씨인 김씨,석씨,박씨 등의

한글자 성,단성을 흔하게 볼 수 있으나

백제의 영향을 매우 깊게 받았던 일본에서는

오늘날에도 이런 두글자 복성들이 흔하다고 합니다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이

한때는 자신의 주군 主君 , 임금이었던

개로왕에게 절을 하고 침을 세번이나 뱉고

죄를 묻고 죽였다는데

위에서 말한대로 평소 개로왕은

궁궐공사,방탕한 사치 외에도 신하,장수들과

원한을 사거나 하는 일도 많았던 것으로 보여지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라는 우리속담같이

평소 방탕한 사치와 생활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는데

(양심있거나 충신인)신하들과 잘 지냈다는 것 역시

모순된 행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름 마지막에 아들 문주에게

왕통을 이어달라 할 때

스스로 어리석고 총명하지 못하다

인정한 점이나

그가 위나라에 보낸 표문,편지등을 볼때

나름 완전히 무능하거나 하지는 않았어도

아신왕대에 하필 고구려에 광개토대왕이 있었듯이

역시 개로왕대에 하필 고구려에 장수왕이 있었단 점 등

평범한 범인 凡人(평범한 사람)이

거인 巨人 (큰 사람)을 상대하기에는

그 힘이 벅찼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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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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