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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문주왕은 고구려군에게

백제 수도 함성이 함락되고

부왕,아버지 왕인 개로왕이 고구려군에게

사망한 와중에 국난을 수습하고

웅진(오늘날 충청남도 공주시)으로

도읍으로 옮기게 됬습니다,,


문주왕 2년

2월 봄

대두산성을 수축하고

이곳으로 한강 이북의 민가를 옮겼습니다


<라봉봉>고구려군이 한성을 함락시키긴 했으나

한성,한강유역은 493년,거의 500년간 백제의 수도였기에

고구려에서는 한번에

고구려 영역으로 만들지는 못한거 같고

이때에는 나름 한강 이북의 백제 백성들을

옮길 여력은 있었던거 같습니다

대두산성의 위치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고

충청남도 아산시로 추측한다고 합니다


3월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예방 禮訪 (예를 갖추는 의미로

인사차 방문) 하려 했으나

고구려가 길을 막았으므로

이르지 못하고 되돌아 왔습니다


4월 여름

탐라국(제주도)에서 토산물을 바쳐오자

문주왕이 기뻐해서

그 사신을 은솔(백제의 3품벼슬)로 임명했습니다


8월 가을

해구를 병관좌평(지방의 군사담당, 오늘날 국방부장관)에

임명했습니다


문주왕 3년

2월 봄

궁실을 중수(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해 고침)했습니다


4월 여름

문주왕의 아우 곤지를 내신좌평(상좌평이 생기기전까진

백제 최고위직,총리격이었으나 그럼에도 왕명의

출납을 담당한 백제 최고위관직중 하나라 할 수있습니다)

으로 임명하고 (곤지,부여곤지는 일본 기록 [일본서기]에서는

개로왕의 아들이 아닌 개로왕의 동생이라 합니다)

맏아들 삼근을 태자로 책봉했습니다


5월

검은 용,흑룡이 백제 수도 웅진에 나타났습니다


7월 가을

내신좌평 곤지가 사망했습니다


곤지는 백제 정계의 실력자였던거 같고

개로왕대 왕자시절의 문주왕도

상좌평,백제 최고위직으로 활동했다 하니

백제가 부여씨,왕족 사실상 가족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사례들이라 할 수있습니다


곤지는 유능한 인물로 보여지나

이런 사례들로 봐서

신라 정치도 골품제,근친혼 같은 것으로

여러 폐단이 있었듯이

백제 역시 가족운영에

여러 폐단이 심했던 거로 보여집니다


문주왕의 동생 곤지는 이렇게 사망했으나

이후 곤지의 후손들이 대대로 백제의 왕위를

잇게 됩니다


이외에 곤지는 개로왕 7년대에

왜에 파견되서

16년간 왜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곤지는 아스카베(오사카) 일대를

경영하며 기반을 닦았다는 전승,

이야기가 전해져온다하고


오늘날에도 오사카의 일본 아스카베 신사(사당)에서는

곤지를 신으로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백제는 주변 고구려,신라나 중국등에게서

왜의 군사력등이 필요했다고 하고

(혹은 왜는 특별한 세력이 없어서

한반도 도래인들이 건너가서 모여산거 같고

특히 백제인의 뒷마당,

바다너머 영토로 사용한거 같습니다)

왜는 백제의 선진문물이 간절했기에

개로왕은 왜에 곤지를 보내서

양국관계를 개선하고자 했고

곤지 역시 왜에 파견되서

자신의 역활을 충실히 수행한거 같습니다


이외에 곤지가 백제에 돌아와서

문주왕 3년

4월 여름에

곤지는 재상직이라 할 수 있는

내신좌평이 됬고 곤지의 입지는

이미 백제 내에서 왕위 계승서열에서

2위라(개로왕대는 문주왕 다음의 2위

문주왕대는 태자다음)

할 정도로 높았을 것인데

내신좌평이 되고

고작 3개월만에 사망했다는 점

(만약 곤지가 건강하지 못했더라면

죽기 3개월전에 재상직인 내신좌평을

맡기긴 어려웠을거 같습니다),

곤지 사망 2개월 전인

5월에 검은 용,흑룡이 웅진에 나타났다는 점은

검은용의 출현은 백제 20대왕 비유왕이

죽을때 검은용이 한강 나타났다는 거도 있고

정계다툼,암투에 대한

은유적 표현일 수도 있기에

이후 문주왕 말기에 병관좌평 해구가

왕권을 위협하며 자객을 보내서

문주왕을 죽인 거같이

왕위 계승서열 2위이자

문주왕의 아끼는 동생이라 할 수 있었던

곤지도 해구에게

그런식으로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고 합니다,,


<라봉봉>곤지는 그렇게 왜(일본)에서도 명성을

떨친 백제인이었고

이런 기록들을 보면

'(고대)일본은 곧 백제'라는 말이

단순히 국가주의적,한국을 높이기 위한

과장이나 농담이 아닌

정말 사실같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왜에서는 백제멸망 이후

곧 '일본'을 건국하며

과거를 지우려 한 거 같으나

오늘날에도 일본에는

이런 백제 유적이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인들이 계속 신라때부터

한국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 영토라 조작하며 우기는데

일본은 한국땅이라 하는게 차라리

더 근거가 있는 사실 같습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삼국시대 이후부터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며

각각 고유의 개성이 있는 나라로 발전하게됬고

(저도 한국 중심으로 글을 쓰기에

삼국시대 왜는 한국과 관련이 깊은거 위주로

쓰고 있는거 같으나 이후 일본의 조선시대라 할 수 있는

에도시대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꽃피던 시기라

한국,조선과 엮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에는 유전자는 비슷하나(백제인의 일본도래)

언어와 특색이 다르기에

'가깝고도 먼나라' 라나

또 '가까운 이웃나라' 이런 나라라 할 수 있으나


해상대국으로서 이렇게 바다 건너 왜,일본을

경영했던 찬란한 문화의 백제였기에

한국인으로서 저가 삼국시대를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라 할 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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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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