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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전에,,


<라봉봉>yo 반갑습니다 경애하고 친애하는 라봉봉 역사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동무,동지 여러분 이블로그는 오늘부로,,

는 장난이고 블로그 공지를 따로 쓰기는 뭐한거 같아서

글 쓰기전에 근황등을 잠시 쓰겠습니다


저는 6개월간 야간 편의점 알바를 했는데

역시 밤잠을 못자다보니

5개월 넘어가니 우울감이 급상승하기 시작했고

6개월째에 그만두려했는데 마침 현재 일하는 곳에서

오후 알바가 그만둬서 사장님에게 부탁했는데

사장님이 오후로 바꿔주셔서 드디어

6개월간 주말 야간 알바를 마치고 같은 가게에서

주말 오후 알바로 바꾸게 됬습니다

오후가 손님이 가장 많고 바쁘다는데

그래도 밤잠 못자는거보다는 낫더라고요,,


6개월간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하며 느낀점은

집안이 유복하면 안하면 좋고 ㅎ,,

알바는 최소한으로 하고 자기계발,

저의 경우에는 이 역사 블로그를 운영하는게

자기 계발이기에 어쨋든 알바나 자영업도

쉬운게 하나 없으니 생존에 필수적인 정도만 하고

자기계발에 집중하는게 나은거 같고

이번에 오후로 바뀌며 월급은 줄었어도

근근히 용돈벌이정도는 되고

현재 야간 빡세게 하며 100만원은 넘게 모아놔서

앞으로 현재 블로그 활동에

쓰는 컴퓨터가 고장날때의 대비나

비상금으로 남겨두기에는 적절한 금액이고


야간 알바하면서

그래도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어느정도는 높아지게 된거 같습니다,,


이따 자고 오후에 출근하지만

밤잠을 잘 수 있다는게 너무 좋습니다

지금도 새벽이지만 내가 자의적으로 밤새는거와

강제적으로 밤새는거는 그 격과 삶의 질이 다른거 같습니다 ㅎㅎ,,


어저께는 출근부담없이 남북정상회담도 보고

저는 밤출근 걱정도 안해도 되는거는 너무 좋습니다 ㅎ

블로그가 더 잘되서 알바를 그만두면 더 좋겠고 ㅎㅎ,,

빨리 무노동 고임금의 지상락원(??)을 향해서,,

블로그가 쑥쑥 컸으면 좋겠습니다


나름 현재 한국 고대사는 인터넷에 검색하시면

저의 블로그가 자주 나오는거 같고

현재 고구려,백제 이야기나 왕들을 입력하며

저의 블로그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나름 자부심있게 쓰고 있는거 같고

여러분도 모두 잘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ㅎㅎ


야간 알바때의 접니다 ㅋ


백제 23대왕 삼근왕

재위기간 2년 477~479년


삼근왕은


<김부식>혹은 임걸이라고도 한다


문주왕의 맏아들,첫째아들입니다


문주왕이 붕어,사망하자

왕위를 이었으나

나이 13세였습니다


군사 임무와 나라 정사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좌평 해구에게 맡겼습니다


<라봉봉>해구는 삼근왕의 아버지인

문주왕을 도적,자객을 보내서 죽인 백제 신하였는데

그런 자에게 나라에 군사와 정치를 맡겼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으나

나름 해구가

백제의 권신 權臣 (권세를 잡은 신하, 권세 있는 신하)

으로서 백제의 국정을 장악하고

백제 최고위직이라 할 수 있는

좌평(기존에는 병관좌평,지방군사 담당,

오늘날 국방부 장관격이었는데

이후에는 그냥 좌평이라 나와서

어느 좌평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왕을 죽이고 국정을 좌지우지 하는데

사실상 직책이 의미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되서

어린 삼근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앉혀놓고

전횡 專橫 ( 권세를 혼자 쥐고 제 마음대로 함,

독선적 행위, 마음대로 함)을 하게 된거 같습니다


삼근왕 2년

좌평 해구가

은솔 연신(연신은 지역 토착세력이라 합니다)과

함께 무리를 모아서

대두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미 군권과 국정을 장악한 해구가

왜 반란을 일으켰을지는 의문 같으나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같이

해구는 결국 불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잡아서 국정을 좌지우지,제 마음대로 했기에

금새 바닥을 보인거 같고

결국 인성이 폭발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된거 같습니다,,)


삼근왕이 좌평 진남 眞男 에게 명령해서


<라봉봉>진남의 진씨 眞氏 는

해구의 해씨 解氏 와 같이

백제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있던

8개의 성씨 가문, 대성팔족의 일원이었고


여기서 진씨와 해씨는 원래 백제 수도였던

오늘날 서울특별시인 한성을 기반으로 했던

귀족이었으나 결국 한성이 고구려에 넘어가며

충남 공주시,당시 백제 2번째 수도 웅진으로

진씨와 해씨가문들이 밀려나게 된거 같고

여기서 해씨 가문인 해구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씨가문인 진남이 어린 삼근왕을 도와서

해씨가문에 대항했던거 같습니다


백제정치는 이렇게 왕족이었던 부여씨들이

주요 요직에 있었던거로 가족운영 정치 외에도

대성팔족인 진씨,해씨등 여러 귀족들이 난립했고

대체적으로 왕권이 약했던 나라 같습니다


삼국중 가장 왕권이 강한 나라는

물론 왕의 유능함에 따라

변수 등은 있었겠으나

대체적으로는

북방의 거친 환경에서 무예를 중요시하는

상무정신 尙武精神 이 발달한 고구려가 가장 강한거 같고

백제가 왕족,귀족들의 난립으로 가장 약했던거 같습니다

삼국중 정치가 가장 발달했다고 생각되는

신라는 폐쇄적인(소백산맥의 영향)

경상도 지역에서의

골품제나 근친혼등의 폐단은 있었지만

왕권과 신권이 균형있게 조화를 이룬거 같습니다


군사 2천명으로 토벌하게 했으나

이기지 못했습니다


다시 덕솔 진로에게 명령해서

정예 군사 5백명을 거느리고

해구를 공격해서 죽이게 했습니다


연신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그의 처자들을 체포해서

웅진(백제 두번째 수도, 오늘날 충청남도 공주시)

시장,저자(시장)에서 목을 베었습니다,,


<김부식>논평한다

춘추의 필법에

군주가 적에게 시해되었는데

토벌하지 않으면

심히 이를 꾸짖었으니

이는 신하다운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삼국사기 연개소문 열전에서도

연개소문이 임금을 시해한것 때문에

마지막에 김부식님이 논평하며

공자님의 책 '춘추'를 언급하시며


'임금이 시해되었는데도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면

나라에 사람이 없다고 한다'


라는

춘추의 구절을 언급하셨고

이때에도 유교적 사관등에 입각해서

춘추를 언급하신거 같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백제 기록 다음에 쓰인게

개인들의 이야기인 열전 같습니다])


해구가 문주왕을 시해하였는데도

그 아들 삼근(삼근왕)이 즉위하였으나

능히 이를 참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에게 국정을 맡기고

드디어는 일성 一城 (하나의 성,근거지)에

의거(의지,의존)하여 모반하게 만들고

그런 뒤에야 다시 크게 군사를 일으켜

이를 토벌하였으니


소위 서리를 밟을 때 경계하지 않았다가

굳은 얼음을 얼리는데 이르게 하고

불이 반짝거릴 때 끄지 않고 있다가

불길이 심하게 타올라 올 때 이르러

덤벼드는 것과 같으니


그 연유하는 바가 점점 더해 가는 것이다


당의 헌종을 시해한 적도

삼세 三世 (아버지,아들,손자 3대)

이후에야 겨우 죽일 수 있었는데

(중국 사례)


황차(하물며) 해우황벽의

삼근동몽이야 또한 어찌 말할 걸이가 되겠는가

况海隅之荒僻 황해우지황벽

三斤之童蒙又烏足道哉 삼근지동몽우오족도재


(하물며 바다 모퉁이에 있는

외진 땅의 삼근과 같은 애송이,

어린애에

있어서야 어찌 말할 것이 있으랴)


(요약하면,,

해구가 난리를 치는데

일이 커지기 전에 대비했어야 하는데

삼근같은 어린애가 뭘 알겠냐 ? )


3월

초하루(달의 첫번째 날) 기유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삼근왕 3년

봄과 여름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9월 가을

대두성을 두곡으로 옮겼습니다


(해구가 대두성에서

반란을 일으켜서 옮긴거 같습니다)


11월 겨울

삼근왕이 붕어,사망했습니다


<라봉봉>삼근왕대의 백제 정치는

귀족들의 난입과 수도 한성이

고구려에 함락되고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 후

혼란의 백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해구가 국정을 장악하고

또 반란후 진압되고 혼란에 혼란의 연속입니다,,


게다가 삼근왕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이에 삼근왕 다음왕인 백제 24대왕 동성왕의

세력들이 어린 삼근왕을

제거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동성왕은 해구의 반란을 진압한

덕솔 진로,진씨 귀족들에게 옹립된 왕이고

이에 진로라는 사람이 삼근왕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얽혔을 거라

추청한다고도 합니다


평소 유교적 사관에 입각해서

왕의 권위를 중요시하고

충성하는 신하들,충신들을 의의있게 보며

글을 쓰신 김부식 님도

여기에서는


'삼근(삼근왕) 같은 어린 애송이가 뭘 알겠는가'


이런 식으로 왕을 욕하는

글을 쓰실 정도로

당시 백제 상황이 나빴던거 같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삼근왕 이후부터는

백제에서는 중흥 中興 (쇠퇴하던 것이 중간에 다시 일어남,

또는 다시 일어나게 함) 군주(왕)가 나타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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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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