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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왕 10년

위나라가 우리(백제)를 침공했으나

우리군사가 그들을 물리쳤습니다


魏遣兵來伐 위견병래벌

爲我所敗 위아소패


[삼국사기 기록]


위나라는 중국 북조로

마한지방,당시 백제는 한강유역은

고구려에 뺏겼더라도

충청,전라도 지역에 자리잡은

백제를 중국 북조인 위나라가 공격했다는 기록은

한국,중국기록에 모두 있고

(삼국사기가 부족한 부분은 중국 기록을

배껴왔다해도 중국기록에 여러번 실려있습니다)


또 남제서에는 모대(동성왕)때에

위노(북위)가 기병수십만으로 백제를 공격해서

모대,동성왕은 장수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를

파견해서 군사를 거느리고 위노,북위,위나라 군사를 크게

깨뜨렸다는 기록[남제서 58권 동남이열전 백제]이 있고


<남제서 58권 동남이 열전 백제>이해 위노(북위,위나라)가

또 기병 수십만 명을 내어

백제를 공격하여 국경에 들어왔다.

이에 모대(동서왕)는 장수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를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위노 군사를 기습하여 크게 깨뜨렸다.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 大破之.


남제서에는 백제가 위나라군의 공격에

기병을 거느리고 시체를 평원에 붉게 물들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제서 58권 동남이 열전 백제>

건무 2년에 모대(동성왕)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중략) 지난 경오년에는 험윤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히 쳐들어왔습니다.

신이 사법명 등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거꾸로 쳐서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흉리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말을 몰아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베어죽이니

그 시체가 평원을 붉게 물들이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예기가 꺾이어

고래처럼 사납던 것이 그 흉포함을 감추었습니다.

지금 천하가 조용해진 것은 실상 사법병 등의 꾀이니

그 공훈을 찾아 마땅히 표창해 주어야 합니다.

이제 사법명을 가행 정로 장군 매라 왕으로,

찬수류를 가행 안국 장군 벽중 왕으로,

해례곤을 가행 무위 장군 불중후로 삼고,

목간나는 과거에 군공이 있는데다

또 누선(臺舫)을 깨뜨렸으므로 행 광위 장군 면중후로 삼았습니다.

부디 바라옵건대 천은을 베푸시어

특별히 관작을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또 표문을 올리기를

“신이 사신으로 보낸 행 용양 장군 낙랑 태수 겸

장사 신 모견과 행 건무 장군 성양 태수 겸 사마 신 왕무와

겸 삼군 행 진위 장군 조선 태수 신 장새와 행 양무 장군 진명은

관직에 있어 사사로운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공무에만 힘써,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내던지고

어려운 일을 당해서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신의 사신의 임무를 맡아 험한 파도를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 그의 지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실로 관직을 올려주어야 마땅하므로

각각 가행직에 임명하였습니다.

부디 바라옵건대 성조에서는

특별히 정식으로 관직을 제수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이에 조서를 내려 허락함과 아울러 장군의 호를 내려주었다.

建武二年 牟大遣使上表曰 (중략) 去庚午年 獫狁弗悛 擧兵深逼 臣遣沙法名等領軍逆討 宵襲霆擊 匈梨張惶

崩若海蕩 乘奔追斬 僵尸丹野. 由是摧其銳氣, 鯨暴韜凶. 今邦宇謐靜, 實名等之略, 尋其功勳, 宜在襃顯. 今

假沙法名行征虜將軍․邁羅王, 贊首流爲行安國將軍․辟中王, 解禮昆爲行武威將軍․弗中侯, 木干那前有軍功,

又拔臺舫, 爲行廣威將軍․面中侯. 伏願天恩特愍聽除. 又表曰: 臣所遣行龍驤將軍․樂浪太守兼長史臣慕遺, 行

建武將軍․城陽太守兼司馬臣王茂, 兼參軍․行振武將軍․朝鮮太守臣張塞, 行揚武將軍陳明, 在官忘私, 唯公是

務, 見危授命, 蹈難弗顧. 今任臣使, 冒涉波險, 盡其至誠. 實宜進爵, 各假行署. 伏願聖朝特賜除正." 詔可, 竝

賜軍號.


백제에서는 개로왕이 위나라 현조에게 편지를 보낼때도 그렇고

날쌔게 공격했다라는 비유를 '번개처럼 공격했다'라고 주로

표현했던거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백제인들의

언어학적 수사(언어 기술) 이외에도,,


위나라에서 기병 수십만을 보내서 백제를 공격했다는데

상식적으로 동성왕대에 백제는 충청도나 전라도 지역과

왜(일본)지역이 영역과 주 거점지였는데

기병 수십만을 당시 기술로 배를 타고

중국 북조인 위나라에서

서해,황해로 수십만 기병을

보냈다는게 말이 안된다 할 수 있습니다,,

(아예 대규모 수송 군선을 편성하는 기술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지상전으로

피가 물들었다고 기록되있습니다)

게다가 위나라는 수군(해군)이나 해전에 익숙치 않았던

유목민족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이는 한국사 미스터리라 하나

이로 인해 백제가 요서지역에 영토가 있었다는

요서경략설이 더 부각되는 계기가 됬습니다


<백제가 진출했다고 하는 요서지방으로

백제가 요서에 영토가 있었다면

북위의 수십만 기병을 막았다는 기록들이 납득이 됩니다>


만약 백제가 바다건너 요서에 땅이 있었다면

위나라 바로 옆에 영토가 있었을 것이고

위나라의 수십만 기병을 백제군이 물리쳤다는 기록이

납득이 되게 됩니다,,


백제 지휘부에서도 사법명,해례곤,목간나는

사씨,해씨,목씨로 백제 주요 귀족들인

'대성팔족'의 일원으로서

백제 귀족들은 대게 왕명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백제는 왕권이 약하기로

유명했는데도 당시 백제인들도 주요귀족들이

직접 나서서 위나라 수십만 기병을 방어할 만큼

상태가 심각했고 백제인들도

결사적으로 방어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과장해서 백제의 영토를 과대하게

확대하는 이야기들도 있으나

실제로 백제는 바다 건너 요서지방에

영토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이야기 되고 있고 백제인들이 자리잡은

마한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에서

풍요롭고 비옥한 지방을 바탕으로

삼국에서 농업생산력이 가장 높았고

가장 인구가 많았기에 백제인들이

왜에도 많이 건너갔고

또 요서지역은 대대로 동이족의

영역이었기에


<동이족 분포범위 지도>


'백제는 강성했을때

강병(강한 군사)이 백만으로 중국의

커다란 좀이 되었다'


라는 한국기록 [삼국사기 열전 최치원] 기록도 있고

중국 역사서에서는 수많은 기록들에서

고구려가 요동,백제가 요서를 차지해서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근거가 아귀(앞뒤)가 맞습니다


저도 백제인들이 조그만한 지역에서

어떻게 배를 타고 요서를 건너가서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었나 싶어서

흥미롭고 의문으로 생각했으나

백제는 바닷길을 일찍이 개척한

해상강국이었고

특히 풍요로웠던 마한(경기도,충청도,전라도)지방의

거대한 인구로

백제인들이 왜까지 계속 대규모로 건너간 판에

충분히 가능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에도 북한을 제외한 대한민국에서

서울,경기,충청,전라도민은

3천만명이 넘어서 한국 인구에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백제가 결국 신라에게

멸망한 후 유산들,기록들도 파괴됬고

대부분의 유산들이

일본에 남아있다하더라도

우리가 백제 역사를 잊어서는 안되는

수많은 이유중 하나입니다)


백제는 황해바다와

풍요로운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성장했기에

그런 백제인들이 바다건너서

활발하게 거점들을 만들지 못했을

이유가 없었을 거 같습니다


요서경략설은 한국 교과서에서도 실렸고

논리적 비약으로 너무 과잉확대해석은 경계하더라도

충분히 사실로 볼 수 있는 이야기 같습니다



<라봉봉>백제 기록들은 고구려 기록 못지않게

너무 신기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는 신라 기록도 마찬가지로

저도 왠만한 한국 역사책을 많이 읽어봤으나

늦게나마 우리 한국 고전 [삼국사기]를 읽게되며

출판된 책에서는 나와있지 않았던 부분까지 원본으로 보고

여러 인터넷에서 체계적인 연구자료들을 볼 수 있게 되서

너무 놀랍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요서경략설은 고구려보다 작은 백제가

비록 해상강국이었어도

어떻게 요서까지 가서 영토로 했나해서

저도 의문이 있었으나

백제 인구가 삼국에서 영토는 고구려보다

작아보여도 인구가 가장 많았다는 기록들을 보고

또 왜,일본에 대규모로 활발하게 건너가서

왜 지역을 경영했다는 점(대표적인 사례는 부여곤지) 등

이제서야 요서경략설이 이해가 되고

놀라서 소름이 돋는거 같고

요서경략설 자체는 정말 진실로 생각됩니다


물론 위나라에서 장수왕대에 고구려로 육로로 지나서

백제에 가려했는데 거부했고

요서는 고구려와 중국 북조의 사이에 있기도 하고

여러 세력들의 변동이 많았던 땅이기에

백제가 장기적으로 요서를 점령했을지는

의문이나


(이때문에 미스터리라고도 불립니다

현재 학계에서도 요서경략설이 백제가

장기적으로 경영한거 같지는

않은거 같다고 생각한다 합니다)


백제 전성군주 근초고왕과

백제 중흥군주 동성왕때에는

백제의 영토였던거 같고

혹은 요서의 해안가 근처의 일부지역만

장기적으로 거점 겸 점령했을

가능성도 있는거 같습니다

아니면 영토가 아니었을 때라도

해상강국이었던 백제의 산동반도와

더불어 상업 거점지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애국심때문에 거짓을 사실로 만들면 안되나

수많은 기록과 백제가

요서를 진출했을 저력(거대한 인구력)이

있었기에 부정할 여지는 없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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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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