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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왕 4년

8월 가을

병관좌평(지방군사 담당, 오늘날 국방부장관) 해구가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해서

법질서를 문란하게 하며

임금,문주왕을

경시 輕視 (대수롭지 않게 보거나 업신여김, 깔봄, 얕봄)

했으나

문주왕은 이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9월

문주왕이 사냥하기 위해서

나갔다가 외부에서 묵었는데

해구가 도둑(자객)으로 하여금

그(문주왕)를 해치게 해서

문주왕이 마침내 붕어,사망했습니다,,


<백제 백성 1>니리므(일본기록 '일본서기'에

써있는 백제에서 왕을 부르던

어라하,건길지 이외에 다른 말,

오늘날 존칭 님의 유례가 됬다고도 합니다)

가 자객에게 살해당하셨데 !!,,


<백제 백성 2>혼란의 백제를 다시

안정시키신 어질고 좋은 니리므셨는데,,

평소 너무 우유부단하신게 화근이 되신거 같구먼,,


<라봉봉>문주왕은 아버지 개로왕이 고구려에

크게 패하고 수도 한성을 뺏긴 뒤

패전후의 왕들이 대게 그렇듯이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을거로

추측된다고 하며 수도이전,

귀족,지배층 내부의 갈등으로

백제 내부의 혼란이 심했던 거로 보입니다


문주왕은 백성을 사랑했고 백성또한

문주왕을 사랑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름 왕자시절에는 신라에 파견되서

구원병 1만명을 얻어서 돌아온점

(비록 돌아왔더니 수도는 함락되었으나,,)

,전후 수도를 남쪽 웅진으로 옮기고

나름 전후 수습을 한 점 등

완전히 무능한 왕은 아니었던거 같으나

우유부단한 성격이 있었다는 기록같이

우유부단 함으로 주변 신하들을 통제하지 못해서

병관좌평으로 군권을 쥐고있던 해구가

날뛰게 했고 해구를 통제하지 못했고

곤지의 죽음도 해구가 죽였다는 말도 있고

결국 해구가 보낸 도적,자객에게 죽게됩니다,,


개인적으로 문주왕은 나름 위기의 백제를 구하며

전후 수습을 해서 멸망까지 갈뻔한 백제를

다시 부흥시켰다 할 수있기에

그리 무능하다고만 보여지지는 않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문주왕의 아버지 백제 21대왕 개로왕이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잘못된 정치를 해서

임진왜란때 수도 한성(백제 한성과 조선 한성은

같은 오늘날 서울특별시 지역입니다)

이 함락된 조선 14대왕 선조가 생각난다면

(두 왕 모두 암군으로 불리거나

이미지가 썩 좋지 못한거 같습니다)


백제 22대왕 문주왕은 그런 아버지의 왕자,아들이었으나

혼란의 백제에서 신하들과 남쪽으로 탈출해

수도를 옮기고 나름 정국을 수습하려 했기에

조선 선조의 아들 조선 15대왕 광해군이 생각나고

비슷한거 같습니다

광해군 역시 임진왜란때 왕자의 신분으로

혼란의 정국에서 직접 발로뛰며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고 유능한 모습들을 보여주었으나

이후 왕이 된 이후에는 역시 신하들과의

갈등이 있었고 결국 신하인 해구에게 죽은

문주왕같이 신하들의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쫒겨나게 되는 왕이라 할 수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역사에서 사실 꽤 많이 있는

일들 같습니다

이런 사례를


'말위에서 얻은 천하를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있겠나'


라는 비유가 있듯이

그만큼 왕위에 오르는 것 못지않게

수성,지켜냄의 어려움을

말하는 말이라 할 수있고


국난이나 위기의 상황들을 수습하고

왕위에 오르거나 성공하는 영웅담 같은 이야기들은

여러 있는거 같으나

보통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같이

난세,혼란한 시기에는 급한 불은 꺼야하기에

사람들의 단결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안정된 나라를 운영하려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문주왕이나 광해군은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활은 충실히,

성공적으로 한 왕들이라 할 수 있으나

이후의 정국운영,

수성 守成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일을 이어서 지킴)

에 실패한 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문주왕,광해군은 무능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으나

그만큼 수성,지켜내고 나아감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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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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