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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왕 11년

가을

크게 풍년이 들었습니다

大有年 대유년  (대유년, 큰 풍년 豐年 이 든 해)


<백제 백성 1>모처럼만의 좋은 소식이구만

대풍 大豐 (대풍년 大豐年 농사가 아주 잘된 풍년)이여 !


<백제 백성 2>새로운 건길지(왕)가 건길지가 되시고

다시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 ㅎ


남해 南海 의 어촌 사람이 두 이삭이 하나로

합쳐진 벼를 바쳤습니다


당시 동성왕대의 길조,좋은 조짐의 의미로 보여지고

이기록으로 근초고왕때 백제에 편입된 호남지방,

전라도 지역인

남해는 전라도,호남권 지역에 대한 백제의

지배권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지는 기록이라고도 합니다

또 백제인들이 전라도 지역까지 지방관,

관료를 파견해서 직접통치로 전환됬다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백제는 서울,충청도 지역이 수도였기에

전라도는 별 중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는거 같은데

전혀 아니었고 후기 백제로 갈수록 전라도 지역의

중요성이 확대됬고

엄연히 왜에 문물을 전한 왕인박사나

침류왕대에 불교를 전한 인도 승려 마라난타도

전라도 지역 출신이거나 전라도 지역으로 입항했으며


백제 말기로 갈수록 전라도 지역의 중요성은

더 커졌고 백제 30대왕 무왕도

전라북도 익산출신이고 무왕의 왕비 사택적덕의 딸

사택씨 가문도 익산출신의 호족이었다고 합니다

또 무왕대에 익산에 미륵사가 건립됬고

익산이 제 2의 수도 역활을 했고

무왕은 익산으로 수도를 옮기려고도 했고

결국 백제 멸망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이후 신라 왕조가 쇠약해지자

백제 출신 사람들은 전라도 지역에서

후백제를 건국했고

점차 전라도 지역은 백제라는 인식이 생겨났는데


이렇게 초기,중기에는 서울과

충청도지역이 백제의 주요 지역이었으나

말기엔 전라도지역이 주요 지역이 됬기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백제 24대왕 동성왕때 이 기록은

단순히 백제 13대왕 근초고왕때

전라도 지역이 백제의 영역이 됬다고

다가 아니라 백제 전성군주 근초고왕이

전라도를 백제영역으로 만들었다면

백제 중흥군주 동성왕때 전라도에

백제의 행정력이 확대됬음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지방에는 중앙정부의 행정력보다는

지방의 자치권이 강한 경우가 느껴지는데

기술과 문화가 오늘날보다 덜 발달했던

당시 백제나 고대사회에서는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방까지 가기가

더 어려웠고 경기,충청,전라도지역의

광대한 마한지방은 백제 시조 온조왕대부터

근초고왕,동성왕까지 차근차근

백제로 편입되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백제 후기인 6세기 중엽까지

전라남도 지방을 마한이 지배했다고도 합니다)


고구려같이 광대한 영토를 한번에 획득한 느낌보다는

차근차근 이루어진 백제의 마한 영역 확대였으나

산지가 많았고 인구가 백제에비해 적고

거친 환경이었던 고구려와는 달리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지역모두 인구가 많고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중 백제가 인구가 가장 많았고

오늘날에도 한국인구에서 서울,경기,충청,전라도 지역의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풍요로운 곡창지대였기에 백제는

이렇게 점진적(조금씩)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간거 같습니다


10월 겨울

동성왕이 제단을 만들어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11월

동성왕이 남당 南堂 에서 군신(여러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동성왕>드디어 모처럼만에

백제에도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네


<백제 신하들>올해는 대풍년이옵니다 어라하(왕) !

다시 어라하의 덕으로

백제가 안정을 찾고 있사옵니다 ㅋ !


<동성왕>허허 과찬이구려

잔치를 베푸니 많이들 들게나 ㅋ


<라봉봉>백제의 마한 남쪽,전라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이야기를 쓰다가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저는 동성왕대에 백제가 안정을 찾기 시작함의 원인은

또 다른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성인의 출현입니다,,

당시는 시기적으로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에서 모두 인물이 나오던 시기이고

혼란의 시기 난세가 점차 종식되어 갑니다

보통 한 지역에서 성인이 나오면

여러 인물들이 같이 나오는데

백제에서는 동성왕의 이복형인 무령왕(삼국사기에는

동성왕의 둘째아들이라 나오나

옛 백제 역사서를 직접 참고했고

무령왕릉 유물들이 일본서기 기록의

시대와 년도가 맞기에

일본기록 '일본서기' 기록이 정확하다고 본다 합니다)

이 동성왕 당시

조용히 자신의 세력을 키워간 거로 보이고

신라에서는 한국사 전설의 왕 지증왕이

역시 조용히 왕이 될 준비를 해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려에서는 장수왕 ~ 문자왕이라는 고구려

마지막 최전성기 왕들이 나오고

이때가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

모두의 절정기라고 생각됩니다


어둠,야만과 혼돈의 시기,암흑기라 불리는

중세 유럽에 이탈리아에서

전설의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나오고나서

대변혁,문명의 발달기인 르네상스시대가 시작됬는데

당시 다빈치가 나오고나서 다빈치 이외에도

미켈란젤로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왔듯이

또 조선 초기 세종대왕 시기에 세종대왕이라는

인물 외에도 수양대군,황희,장영실,집현전 학사들,

최윤덕,김종서,이징옥장군 등 인물들이

계속 나왔고 역사적으로도 한명의 인물이 나올경우

그 지역과 주변지역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대거로 나오는

시기들이 있습니다,,(비슷한 예로 춘추전국시대

중국에서 사상가[공자,맹자]들이

계속 나왔고 20세기 유럽에서

전설적인 과학자[아인슈타인,퀴리부인]들이

계속 나왔습니다,,)


비록 논리적 비약이 있다 하더라도

당시 신라에서는 김지대로(지증왕의 본명),지증왕이

왕이 되기전 조용히 세력을 키워가던 시절로

신라 22대왕 지증왕은

저가 조선 세종대왕 못지않은 위인으로 생각하는 인물로

한국사의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때 지증왕이라는 인물이 나오면서

백제에 동성왕,무령왕이라는 중흥군주도 나타났고

고구려에는 마지막 전성군주 문자왕이 나타났고

삼국에는 거대한 변혁기가 시작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단순히 동성왕대의 백제만 안정기가 시작된게 아니고

모처럼만에 삼국 모두에 평화의 시기,절정기가

시작됬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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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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