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든든했던 동성왕대의 나제(백제,신라)동맹>


동성왕 16년

7월 가을

고구려와 신라가 살수벌판에서 싸웠는데

신라가 이기지 못하고 견아성으로 퇴각해서

방어하고 있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포위됬습니다


<동성왕>장인의 나라(신라)의 군사들이

고려 高麗 (고구려) 역도 逆徒 (역적 무리)들에게 포위되었다 !

그대 장군들은 가서 신라군을 구원하라 !


<백제 장군들>예 어라하(왕) !


동성왕이 군사 3천명을 보내서

신라군을 구원하자

고려,고구려 군의 포위가 풀렸습니다


<신라군들>든든하군 !


동성왕 17년

5월 여름

초하루(달의 첫번째 날) 갑술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8월 가을

고구려가 치양성을 포위하자

동성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서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신라왕(신라 21대왕 소지왕, 소지마립간)이

장군 덕지에게 명령해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게 하니

고구려 군사가 물러났습니다


<백제군들>든든하군 !


<신하들을 견제하기 시작한 동성왕>


동성왕 19년

5월 여름

병관좌평(지방군사 담당, 오늘날로 치면 국방부장관)

진로가 사망하자

달솔 연돌을 병관좌평으로 임명했습니다


<동성왕>비록 진씨 가문에서 나를

왕위에 올렸지만

나도 이제 오랜 국정경험이 있고

이제는 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야겠군,,

연씨들도 임명하고 새로운 가문들과

신진 세력들을 등용해야겠다


,,,


<진씨 귀족 1>아따 이게 뭔일이여 ?


<진씨 귀족 2>시방(지금의 충청도 사투리)

어라하(왕)가 장난하나벼

우리가 무리해서까지

해씨 역도를 토벌하고

왕위에 올려줬는데잉

이거 참말로 섭섭한데 ;;,,


<진씨 귀족 1>아니 왕위만 올려줬는가 ?

그동안 찬물 더운물 가리지않고

궂은일까지 다한게 우리인데

섭섭하구만,,


6월 여름

큰 비가 내려서

백성들의 가옥이 유실 流失 (떠내려가서 없어지다)

되고 무너졌습니다


동성왕 20년

웅진교를 가설했습니다


7월 가을

사정성을 쌓고

한솔 비타로 하여금 곳을 지키게 했습니다


8월

동성왕이 탐라(제주도)에서

공납과 조세를 바치지 않는다 해서

그를 직접 치려고 무진주 武珍州 (오늘날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에 이르니

탐라에서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서 사죄하므로

중지했습니다


<김부식>탐라는 곧 탐모라이다


중국 기록 [수서]의 '백제전' 기록에는

담모라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렇게 나옵니다,,


<수서>진을 평정하던 해에, 군선이 표류하여

바다 동쪽의 탐모라국에 닿았다.

그 배가 돌아올 때 백제를 경유하여 가게 되었는데,

창(위덕왕)이 이 배를 후하게 지원하여 보내고,

사신을 같이 파견하여 진을 평정한 것을

기리는 표를 올렸다. … (중략) … 그(백제) 남쪽에

바다로 3달을 가면 탐모라국이 있는데,

남북으로 1000여 리이고 동서로 수백 리이다.

토산물로 노루, 사슴이 많이 나고 백제에 부용(의탁)해 있다.


平陳之歲, 戰船漂至海東耽牟羅國.

其船得還, 經于百濟, 昌資送之甚厚,

幷遣使奉表賀平陳. … (중략) …

其南, 海行三月有耽牟羅國, 南北千餘里,

東西數百里, 土多麞鹿, 附庸於百濟.


문제는 여기의 담모라국이 탐모라국,제주도면

아무리 당시 기술이 오늘날에 비해

부족했어도 전라남도에서 제주도까지

3달이나 걸리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또 제주도는 남북 길이보다

동서 길이가 더 넓은데

기록적으로는 제주도보다 대만이 더 맞기에

위 삼국사기 이야기에서 탐라는 제주도겠지만

이에 담모라국 대만설도 있습니다

백제인들이 인도,동남아와 교류했던 것은

사실이라 하며(금동대향로 악어,코끼리 조각)

수나라,중국인들이

백제는 바다건너 나라기에

대충 들은대로 기록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런 설도 있고 혹시 몰라서 써놓겠습니다,,


물론 백제는 오늘날에도 여러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는 나라같고

백제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영토를 관리해서

오늘날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신라인들의 영토와 달리

해양,해상대국이었던 백제는

해외에 이리저리(산동,요서,왜,남방 ?? ) 발을 뻗쳐놓았기 때문에

혹시 또 모르겠습니다

저는 근거없는 자료는 믿지 않으나

어쨋든 중국 기록 '수서'에 기록되있는 이야기입니다,,


<라봉봉>어린 나이에 해씨귀족인 해구의 반란을 진압한

진씨 귀족에게 옹립되서 왕이 된 동성왕도

재위기간이 어느정도 넘어가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보여주며

슬슬 진씨귀족들을 견제하고 자신의 세력들로

대체해가려 하는 모습들이 보여지는 거 같습니다


진씨귀족도 처음엔 나이도 있고 총명했던 무령왕보다는

어린 동성왕이 제어하기,다루기 좋아서,,

동성왕을 왕위에 앉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결국 진씨귀족이 세력이 커진 동성왕의

적극적인 왕권강화책에 밀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됬습니다


현명한 자(무령왕)가 버젓히 있는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린 동성왕을 앉히고

백제 국정을 좌지우지 하려 했던 진씨 가문은

처음엔 당장의 이익을 봤을지는 몰라도

결국 역풍을 맞게 된거 같습니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 진시황의 아버지

장양왕을 왕위에 앉힌 여불위도

자신의 아버지와 이야기하며

가장 좋은 장사는 왕을 만드는 것이라 하고

장양왕을 왕위에 앉혔는데

얼마후 장양왕의 뒤를 이은 장양왕의 아들 진시황에게

숙청되기도 했고

(그런데 이거는 여불위가 불쌍한면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에 대한 투자라 할 수 있고

여기서 동성왕을 옹립한 진씨 가문과

중국 여불위는 오늘날 말로 치면 '킹메이커' 노릇을

했다 할 수 있고

현대사회에서도 정부던 작은 집단이던 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의가 아닌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지도자를 선출하게 된다면 결국 그 역풍을

받게 된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진씨귀족은

현명한자였던 무령왕이 버젓히 살아있음에도

자신들의 짧은 권세를 위해

어린 동성왕을 왕위에 앉힌거 같고

동성왕이 성인이 되고 이후 결국 진씨세력들을

견제하게 된거 같습니다,,


물론 동성왕도 결국

이런 신하들과의 균형을 찾지 못하고

점차 독선의 길을 걷게되다가

원한을 품었던 신하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합니다,,


폭군들도 초기에는 유능한 모습을 보이다가

폭군화 되는 경우들이 있고(로마 5대황제 네로,

고구려 5대왕 모본왕,

조선 10대왕 연산군)


동성왕도 결국 어설프게 신진세력들을

등용하며 구세력들과의 갈등을 빚고

백제인들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점차 말년에는 타락,폭군의 길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