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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게된 동성왕>


(*간언 諫言 웃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하는 말)


동성왕 21년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서

백성들이 굶주리고 서로 잡아먹었습니다


도적이 많이 생기자 신하들이 창고를

풀어서 구제하자고 했으나

동성왕이 이를 듣지 않았습니다


<백제 신하들>어라하(왕) !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고

도적들이 생겼사옵니다

창고를 풀어 구제해야 하옵니다 !


<동성왕>백성들이 배부르면

나태해 지는 법이다

창고를 굳게 닫고 지켜라 !


,,,


<백제 신하 1>아니 이게 뭔소리여 ?

어라하가 백성들이 굶주리는데

창고를 풀지 않겠다는데 ?


<백제 신하 2>어라하가 

점점 총기 聰氣 (총명한 기운)를

잃어가고 있군,,


한산 漢山 사람들 중에 고구려로 도망간 자가

2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라봉봉>한산 漢山 은 한강유역 일대인데

장수왕대에 백제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한강유역이 고구려에게 넘어갔음에도

동성왕대의 이 기록은 의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는 고구려가 백제 21대왕

개로왕을 죽이고 백제 첫번째 수도였던

한성을 함락한 후 한강유역을 고구려 영토로

점령했다는 설이 주류였으나

요즘에는 백제가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 이후에도

한성,한강유역이 백제가 계속 영유했다는

주장도 활발히 나온다고 하고

고구려 문자왕~안장왕때

흥안태자(안장왕)와 한씨미녀 설화의 무대인

개백현 皆伯縣,오늘날 고양시 전설에

오늘날 한강 북부인 고양시가

백제땅이라 나오는 거도 있고

삼국사기 기록에서도

한강유역이 백제의 거의 500년 수도였던 만큼

고구려 입장에서도 쉽게 영유하지는 못했던거 같고

그렇다해서 고구려가 또 한성유역에 영향이

없었다고 보기도 어려운게

고구려의 활발한 남진정책으로 충청북도 충주시에는

장수왕때 세워졌다고 본다는 충주 고구려 비가 있고

한강유역은 백제의 500년 수도였고

비옥한 땅인만큼 수많은 인구가 있었을 것이기에

고구려에서도 단번에 점령하지는 못하고

백제와 고구려가 여러 엎치락 뒤치락 했던

지역이었던거 같고

백제가 웅진(오늘날 충청남도 공주시)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부터는 국경지대,

중립지대로서 여러 변동이 있던 땅 같고

그러다가 점점 백제의 영향력이

사라져가게 된거 같습니다,,


동성왕대의 기록들에도

여러번 한강유역이 백제 땅이라고 나오고

옛날에는 교통,기술들이 오늘날 같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여러 변동이나

한번에 고구려에서도 백제영토를

장악하지 못했던거 같습니다,,


10월 겨울

전염병이 크게 돌았습니다


동성왕 22년


대궐 동쪽에 임류각(잔치에 쓰는 누각 이름)을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길(11.5m)이었습니다

또한 연못을 파고 기이한 짐승을 길렀습니다


간관 諫臣 (임금에게 옳은 말을 간하는 신하)들이

이에 항의해서 글을 올렸으나

듣지 않고

동성왕은

다시는 간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해서

대궐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백제 간관 1>어라하 !

지금 시국에 화려한 누각과

사치는 왠말이십니까 ? !!

어서 빨리 고구려에 뺏긴 한성을

수복하는데 집중하셔야 하옵니다 !!!


<동성왕>무슨 소리인가 ?

지금 궁궐에는 곡식들이 넘쳐나고

모처럼만의 태평성대가 도래하였도다 !


<백제 간관 2>현재 궁궐 밖에는

백성들이 흉년과 전염병으로 죽어가고

도탄에 빠져있사옵니다 !

북방에는 고구려가 우리의 오백년

수도를 장악하고 있고 힘을 모아서

그들을 물리치지 않으시면 안됩니다 !!


<동성왕>시끄럽다 !

그대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서

오랫동안 그대들의 말만 들었던 나이다 !

현재 국경은 안전하고

고구려는 더이상 우리 백제를

넘보지 않고 있는데

왜 그대들은 굳이 나를 재촉하는가 ?!!


<백제 간관 3>어라하께서는

왜에서 태어나셔서 우리 한성이 얼마나

중요한 땅인지를 간과하시는데

어라하께서는 백성들을 구제하시고

옛수도 한성을 반드시 되찾으셔야만 하옵니다 !!!


<동성왕>모두 시끄럽다 !

나도 이제는 내가 하고자하는 것을 하려 하는데

괜히 일벌릴려 하지 말거라 !

모두 물러가거라 !


고구려 장수왕에게

백제 개로왕이 죽고 한성이 함락되고나서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 백제인들의

숙원은 고구려에게 뺏긴 한성을 수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성왕은 왜에서 태어나서

어린나이에 백제의 왕이 됬고

나이가 들어가며 신하들을 멀리하고

한성 수복에도 소극적이었고

왕권을 강화하려

왕위에 오르는데 도와준 일본계 백제세력도 배제했다하고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진씨귀족 세력도 견제했고

사비를 신경쓰며 웅진귀족 세력들에게도 반감을 샀다하고

포악함을 드러내며

바른말 하는 간관들을 내치며

사치와 향락의 길로 빠지게 됬습니다,,


이는 동성왕도 어린나이에 유능한 이복형

무령왕을 제치고 진씨귀족의 국정장악의도로

왕위에 오르게 됬으나

동성왕도 나이가 먹어가고 성인이 되며

점차 기존 귀족들에 반감과 회의감을 느낀거 같고

왜에서 태어났기에 백제인들의 기반이자

거의 500년 수도였던 옛 백제의 수도 한성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한성 수복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거 같고

백성들은 죽어가는데 창고문을 풀지 않았고


비록 동성왕이 이후 시해당하기에

동성왕 다음왕인 무령왕의 세력들이

동성왕을 폄훼하려고

폭군 이미지를 뒤집어 씌웠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해도

백제 백성들과 신하들의 여러 반감을 사는

모습을 보였던거 같습니다,,


<김부식>논평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충성된 말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옛날의 현명한 임금은

사심을 버리고 정사를 묻고

안색을 부드럽게 하여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며

오히려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여

항상 간하는 북을 걸고

비방하는 표목을 세웠는데


지금 모대왕(동성왕)은 간하는 글을 올려도

이를 살피지 아니하고

또한 문까지 닫고 이를 막아 버렸다


장자는 말하기를


'허물을 알고도 고치지 않고

간함을 듣고도 더욱 심하여지면

이를 사납다 말할 것이다'


하였는데

그것은 모대왕을 두고 말한 것인가


<라봉봉>김부식님도 고려의 권신으로서는


(삼국사기를 집필하기 전 김부식님은

개경파 관료의 거두 巨頭 [우두머리격]이자

문하시중[오늘날 국무총리]로서

표면적 권력과 실권을 모두 장악한

사실상 고려 왕 다음 1인자였습니다)


사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정치에서는 예로부터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이런 말이 나온거같이

이런 사례가 많았습니다,, 김부식님도

권신시절에는 반대파를 찍어누르고

친구 정지상을 죽입니다,,)


역시 당대의 대학자답게 올바른 사례를 들며

모대왕(동성왕의 이름은 모대입니다, 동성왕)을

비판하시고 김부식님이 언급한

옛날의 현명한 임금의 사례는

오늘날 사람이 보기에도

정말 세련되고 멋지다고 생각됩니다


백성을 사랑한 지도자였던

조선 4대왕 세종대왕은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백성이 나를 비판한 내용이 옳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니 처벌해서는 안되는 것이오

설령 오해와 그릇된 마음으로 나를 비판했다고 해도

그런 마음을 아예 품지 않도록 만들지 못한

내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찌 백성을 탓할 것인가 ?'


사람은 사람이기에 시행착오나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실수를 하는 사람보다는

귀를 막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실수를 하더라도 주위에서 잘못된 것을 알려주면

그것이 쓴소리 임에도

받아들이고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주위에서 쓴소리이거나

비록 고되더라도,

꼭 필요한 소리임에도

귀를 막아버릴경우

그 결과는 대재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동성왕도 말년에 이런 타락의 길을 걸었다 하고

백제 마지막 왕이라는 의자왕의 경우에도

동성왕과 같이 성충이나 바른말 하는 신하들을 멀리하고

당장 달콤한 말만 해주는 신하들만 가까히 하니

결국 달콤함에 이가 천천히 썩는 것 같이

백제는 멸망하게 됬습니다,,


동성왕은 궁궐공사등은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왕권 강화책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당장 백제의 오랜 영역이자

주요 거점지였던 수도 한성이 고구려에 넘어가고

백성들은 굶주리고 서로 잡아먹었다는 기록도있고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판에

시기등이 부적합했고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결국 백제는 동성왕 말기에 또다시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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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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