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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25대왕 무령왕 武寧王

재위기간 22년 501~523년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 斯摩 이니

 

<김부식>혹은 융이라고도 한다


백제역사서를 참고해 써졌기에

백제사에서는 신빙성이 높은

일본기록 '일본서기'에서는

무령왕의 이름을 시마키미 嶋君, しまきみ 즉

섬왕 이라고 전하고 섬에서 태어난 분,

섬님 이런식으로

높여서 부른거 같습니다


무령왕은 개로왕의 임신한 아내가

개로왕의 둘째아들과 함께 왜로 갔을때

도중에 산기가 있자 섬에서 내려서

왜의 섬(현재 후쿠오카 북쪽 가카리시마 섬)에서 태어난 왕입니다


여기서 시마는 무령왕의 이름 사마와 비슷하며

즉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 = 시마 = 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사마 斯摩,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발견된

무령왕릉 비석에서는 사마 斯麻 라고 기록되있습니다


모대왕(동성왕)의 둘째 아들이라 합니다(삼국사기,삼국유사)


무령왕이 동성왕의 둘째아들이란 기록은

한국기록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으로

오늘날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동성왕의 아들로 써있으나

무령왕 사망년도가 무령왕릉의 비석와 일치해서

더 신빙싱이 높아진다 여겨지는 일본 기록 '일본서기'에서는


(일본서기가 자국 우월주의의 과장과 허풍이 많아도

일본은 백제의 영향을 매우 깊게 받은 나라고

백제 기록들을 많이 참고했기에 백제 기록은

정확한 편이라 합니다)


무령왕은 개로왕이 동생 곤지(삼국사기에서 곤지는

개로왕의 둘째아들이나 일본기록에서는 동생입니다)

를 왜,일본에 사신으로 보낼때

곤지의 간청에 따라 자신의 임신한 부인 夫人 (삼국시대에는

왕비를 부인이라 불렀다고 합니다)을 곤지의 아내로 삼아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 부인이 산기를 느껴서

도중에 가카리시마 섬(오늘날 후쿠오카 북쪽 섬)에

정박해서 그곳의 거친 야생동굴에서

무령왕을 출산했다고 합니다


<일본서기>

(462년) 6월 병술삭(1일)에 임신한 부인이

가수리군(加須利君) (개로왕)의 말처럼

축자(筑紫;츠쿠시)의

각라도(各羅島;카카라노시마)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아이 이름을

도군(島君) (섬왕) 이라 하였다.

이에 군군이 곧 배에 태워 도군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이가 무령왕(武寧王)이다.

백제 사람들은 이 섬을 주도(主島) (주인섬, 주 主 는 임금,왕을

뜻하기도 합니다)라 불렀다.


그렇기에 무령왕의 이름은 도군 島君,

시마키미 嶋君, しまきみ (시마=섬, 키미=왕) 이라 불렀고

한국에서는 사마왕,부여사마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백제인들을 귀인으로 여겼고

이렇게 백제인들에 이름 뒤에 왕을 붙여불렀습니다

이는 중국의 황제 아래의 왕이 있다는 거같이

일본 왕인 덴노,천황 아래에 왕이 있고

왕은 그 아래라는

일본 우월주의적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어도

사실상 당대의 일본인들은 진심으로

문물을 전해준 백제인들을 고마워해서

존칭으로 불렀던거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고대 백제인이나

한국에서 건너온 인물들을 기리는 사당들이 있습니다,,


사마왕 = 시마키미에서

키미는 당시 일본 상류층사이에서의 존칭이나

현재는 키미란 말은 너,네놈이라는 의미도 있다하고

오늘날 한국어에서 마누라,영감 이런말이

실제로는 세자의 부인이라는 뜻인

마노라 抹樓下 나

고위벼슬 영감,대감 이런거에서 나왔으나

극존칭,존칭의 지배층 언어에서

계급제의 몰락과 함께 사회로 전파되서

다소 친근하거나 속된 의미가 있게

낮춰부르는 의미로 변한것과 비슷한거 같습니다


일본기록 '일본서기' 기록도 의외로 정확한게

여러 있는거 같고 한국기록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동성왕의 둘째아들로 나오나

무령왕릉 발굴결과


(무령왕릉 발굴로

무령왕은 62세에 사망했고 무령왕이

동성왕,삼근왕보다 나이가 많음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즉 동성왕의 둘째아들이라는 한국기록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보다

여기에서는 일본측 기록이

정확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와 정황상 일본 기록대로

개로왕의 아들이 맞는거 같고

오늘날에도 일본 기록쪽을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가카리시마가 속해있는 사가현에서는

곳곳에 한일,백제와 왜의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하고

현재도 무령왕 탄생을 기념해서

무령왕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가카리시마 섬은 60여가구에

250명이 사는 일본 서남부의 작은 섬이나

무령왕이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서

매년 6월 무령왕 탄생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라봉봉>무령왕은 한국인 입장에서도

특히 백제에서는 백제를 건국한

시조 온조왕과 더불어

정말 전설적인

성군중 한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로왕때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사망한 뒤

사실상 멸망의 길을 가며

혼란의 연속이었던 백제를

중흥시킨 명군으로서

사실상 백제를 재건국 한 어라하(왕)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무령왕은 왜에서 태어났기에

외국에서 태어난 한국의 지도자라고 이야기도 되고있으나

당시 왜가 과연 백제에게

외국이었을까 하는 의문도 있는거 같습니다


왜국에는 마땅한 큰 세력이 없어서

한국인들이 건너가서 모여 살았다고 하며

무령왕의 형식적 아버지인 부여곤지,곤지는

아스카베,오늘날 오사카 일대를 경영하며

기반을 닦았습니다

오늘날 일본인들이 보기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어도

사실상 당시 왜는 한국인,특히 백제인들의

뒷마당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한일은 고대시대인 삼국시대 이후부터는

서로 다른길을 걸으며 서로의 특유의

문화를 발전시켜갔으나

당시 고대에는 정말 가까웠고

이때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대규모로 건너가서

오늘날에도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유전자는

매우 비슷하고 중국인과는

별 연관이 없다는거 같습니다,,


대한민국 군사정권시기

경제성장을 달성할때마다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단군이래라는 말을 강조했는데

단군시대부터 대한민국까지 우리민족은

항상 수탈만 당하고 외국에게 당했고

우리 민족이 항상 수탈당하고 분노,아쉬움과 슬픔이라는

뜻의 한 恨 의 민족이고

기본적인 정서는 한이라는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정부나 사회에서 이야기했던거 같은데


실상은 물론 조선(고조선)멸망후

한사군 설치나 원간섭기나 일제강점기 등

어두운 시대도 있었으나

한 韓 민족의 원류인 동이족은

산동,요서,요동,한국지역과 황해바다를

활자 모양으로 해서 살며 중국과 다른

자신들의 독특한 문명을 꽃피워냈고

중국인들이 조선(고조선)지역에 설치한

식민기관 한사군을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축출,쫓아냈으며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에는

중국인들이 한국인들 눈치를 봤고

백제 근초고왕때는 요서를 경략하고

무령왕의 왜에서 탄생한 이야기는

백제가 바다 건너에도 여러 거점이 있던

해양대국임을 보여주고

신라역시 지증왕대의 태평성대와

신라의 삼국통일후 경주는 세계 상인들이 모여드는

국제도시가 되었고 (고려,조선도 자랑스러운게

정말 많습니다,,)결코 한국은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다소 신비스럽고 베일에 쌓여있어서

외국과 교류가 부족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식민사관등으로 한국인들은

열등민족 이런식으로 일본인들에게

거짓 교육들이 주입되며

한국인들의 정신세계가

한때 오염되었던거 같습니다,,


한국들의 조상들은 대륙을 호령하고

바다를 건너 자신들의 무대로 삼았으며

무령왕의 경우 왜에서의 출생이

부끄러운게 아니라 백제인들의

활동 무대가 그만큼 넓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기록이라 할 수 있고

오늘날 일본 국왕(일본은 국왕은 있으나

실권이 없고 총리가 실권이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입니다)인 아키히토 일왕은

스스로를 무령왕의 자손임을 밝히며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 했습니다


백제에서 가장 강한 왕이라면

아무래도 담대하게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남하해서

백제를 건국했던 시조 온조왕이나

근초고왕이 생각나나

가장 멋있는 왕이라면

무령왕이 생각됩니다

무령왕은 일본과도 인연이 깊은왕으로

일본어로 멋을 간지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일본어로 간지는

느낌이라는 뜻입니다)

한때 2000년대 우리나라,한국에서 유행했던

간지난다라는 일본말같이

무령왕은 정말

정말 감각적이고 멋있는 왕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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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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