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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된 백제 아좌태자>


백제 27대왕 위덕왕 이야기는

한국 기록 이외도 위덕왕의 부왕 父王, 아버지였던

성왕같이 일본 기록에 또다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당대의 이야기로는

위덕왕의 아들이었던 아좌태자 이야기로

아좌태자는 그림을 잘그렸고

597년에 일본에 사절로 파견됬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아좌태자는 일본 고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쇼토쿠 태자,성덕태자 聖徳太子 의 스승이 됬습니다


쇼토쿠 태자는 왜(일본)의 정치가로

외국에서 문물을 받아들여 왜를

급격히 성장시킨 인물로

여러 내정개혁과 일화들을 남긴 인물로

수나라 양제에게 사신을 보내서


'해뜨는 곳(왜)의 천자가

해지는 곳(중국)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

별고(별일) 없으신가 ?'


라고 한 대범한 인물이었고

백제 성왕때 왜에 전래됬던

불교를 공인시켰으며


일본인들의 사상인

'이이토코토리' 즉 '(남의 것이라도) 좋은 것은 가까이 취한다' 혹은

'좋은거 따오기'를 만들었는데

이이토코토리는 섬이었던 왜인들은

외국과 무역이나 교통을 하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 했고

문명발달이 늦었기에 좋은거를 그대로 모방하거나

배끼면서 발전해 나가자는 사상이고

이 사상을 창시했고 또

단합이나 잘 지내자는

와 和 (화할 화) 사상으로 일본인들의 사상의

정신적 원류가 됬다고 합니다


즉 왜의 개혁가로 유능한 인물이었고


당대 백제 위덕왕은 자신의 아들,아좌태자를

왜에 보내서

(별개로 일본에서 태자라는 말은

차기 황위계승자라는 말로

직계후손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사용됬다고 합니다)


백제와 왜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게 했고

(+신라 견제)


아좌태자는 왜에 건너가서 머물며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좌태자는 뛰어난 그림솜씨로

후에는 쇼토쿠 태자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다고 하고

이는 보물로 호류사에 전해 내려왔다고 합니다


아좌태자가 그린 쇼토쿠태자 그림으로 1000년도 넘은 그림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게 신기합니다(목판본을

복제했다고 합니다)


아좌태자의 그림으로 백제 문화,미술의 섬세함을 알 수 있고

고구려 미술이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힘차고 웅장하다면

백제 미술은 온유하며 우아하다 하고

개인적으로는 백제 미술이 부드럽고 세련됬다고 생각됩니다

아좌태자의 쇼토쿠태자 그림은

옷주름 처리에 신경을 썼다 하고

그림에 강세를 가하여 입체감을 나타나게 했다고도 합니다


이외로 안타깝게도 백제는 신라에 패망하며

찬란한 예술품들이 대부분 파손되고 말았다고도 합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예술품들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멋지며 백제인들의 뛰어난 예술감각을

느낄 수 있고 아좌태자가 그린

쇼토쿠 태자 그림은 불후의 명작으로

찬양받는다고 합니다


위덕왕의 아들이었던

아좌태자는 위덕왕이 사망했음에도

위덕왕 다음왕은 명왕(성왕)의 둘째아들,

위덕왕의 동생인 부여계, 혜왕이 왕위를 이었고

이는 백제사의 의문점,미스터리라고 합니다


위덕왕이 죽을때 그냥


'시호를 위덕으로 하였다'


가 아니라


'군신들이 의논하여(논의한 끝에)시호를 위덕이라 하였다'


라고 나오는데 굳이 군신들의 의논하여 라는

말이 붙은 삼국시대왕은 위덕왕이 유일하다 하며

위덕왕 말년 불안정한 백제 정국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아좌태자는 위덕왕의 아들이었음에도

위덕왕 사후 위덕왕의 동생이 왕위를 이었다는 점에서

백제 사회의 내분이 있었다고도 추측되는거 같습니다


<백제(한국) 전통머리 쌍계머리>


또다른 이야기를 하면,,

위의 아좌태자가 그린 쇼토쿠태자 그림에서

쇼토쿠 태자를 보필하는 두 시녀 ?? 같아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은 쇼토쿠태자의 동생 에구리 황자(왼쪽)와

야마시로 황손(오른쪽)으로 왕자들이라 하고


불교식으로 일부로 조금 작게 배치한 구성이라고도 한다는데

그런걸 떠나서 저 헤어스타일은 한국 백제시대의 유행했던

'쌍계머리' 라는 한국 전통 머리모양이라 하고


중국 역사서 '북사'의 '백제조'에는


<북사>부인들은 분대(분, 화장)를 바르지 않고

여자는 변발을 뒤로 늘어뜨리는데

출가(결혼)하면 양쪽으로 나누어

머리 위에서 둥글게 튼다


라고 기록되 있는데

백제 여인들은 요즘말로 노메이크업,

화장을 하지 않았던 거로 보이고

변발을 뒤로 늘어뜨린다는 말은

머리를 땋아 늘인 머리로

조선시대 결혼전 남녀들이 했던 댕기머리로 보이고

이런 풍속은 북방 유목민들에게도 나타나는데

백제 건국자들이 부여,고구려 북방 한국계 인물이었기에

이런 영향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백제인들의 풍속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서

남녀가 땋은 머리를 하다가

결혼하면 남자는 상투, 여자는 머리를 둥글게해서

비녀를 꼽는거로 이어진거 같고

조선시대 여인들은 한개로 머리를 묶었으나

당대 백제 여인들은 쌍계머리, 양쪽으로 나누어

둥글게 튼거 같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여자만 이렇게 했다면

당대 백제에서는 남자들도 이런 머리를 한거 같고

또다른 백제 유물 '백제 금동대향로'에 새겨진

백제 악공들은 모두 오른쪽으로 머리를 묶은

중발머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백제 금동대향로에 새겨진 백제 악공>


백제인들의 머리모양은 이렇게 한쪽 혹은 두쪽으로 머리를

묶은 머리형태로 보이고 남녀무관하게 이런 식으로 머리를 묶은거 같습니다

2005년 KBS 드라마 '쾌걸춘향'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거기 나오는 여자 주인공 성춘향역을 한 배우 한채영 분의 머리스타일이

이렇게 양갈래로 묶여있고

옛날에는 그냥 특이한 머리스타일이다 생각한거 같은데

이런 글들이나 삼국시대 머리를 보고나서부터는

물론 조선시대,대한민국 배경이기에

의도한 거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실제 한국 전통머리모양으로 존재했던

머리스타일이었던거 같습니다,,


<드라마 쾌걸춘향 포스터로

쾌걸춘향은 ost로 유명하고 어렸을때 즐겁게 본

한국 드라마 명작으로 기억합니다

2010년도 이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정도면

거의 어른으로 여기는 시대적 분위기였던거 같고

(2000년대 한국 로맨스 드라마 명작들이 고등학교 배경이 많습니다,,)

이때 배경,스타일들이 하나같이 촌스러운데도

당시에는 그게 유행이었고

그시절에만 가능했던 명작 같습니다

딴길로 샛지만,, 왼쪽 배우 한채영씨의

헤어스타일을 다시보니

한국,백제 전통머리 모양인

'쌍계머리' 헤어스타일과 똑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잘 나타나지 않은 머리모양이나

확실히 삼국시대에 한국,백제에서 있었던 머리모양으로

오늘날 한국 고대시대 사극제작때에는 고증들이 조선시대스타일로

재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바로 전 왕조이자

한복을 입었던 조선시대가 익숙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으나

백제 헤어스타일인 '쌍계머리'같이

당대 삼국시대를 오늘날 인식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할 수 있는게 많습니다,,


쌍계머리는 백제 이외에도 고구려,신라 즉

삼한사회 모두에서 나타났으며

고려,조선시대에도 나타난 한국 전통머리입니다


물론 쇼토쿠 태자 그림에도 나오는

한국,백제인들의 전통 머리였던 쌍계머리는

사치스러운 머리모양이고

오늘날 보기에도 좋은 머리모양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미 美 와 멋을 중요시한 백제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는거 같고

역시 그럼에도 비효율적이기에

좋은 머리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라봉봉>아좌태자 이야기를 하다가

아좌태자가 그린 쇼토쿠 태자 그림의

머리 모양까지 이야기 하게됬으나,,

이는 백제인들의 전통머리가

왜 倭 에도 그대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고

백제 전통머리인 '쌍계머리' 이야기는

언젠간 한번 하려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백제 아좌태자는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음에도

위덕왕 사후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고

의문이 있는 인물이나

그의 그림은 그대로 남아 불후의 명작이 됬고

백제 예술의 찬란함을 보여주는 사례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별개로 위덕왕대는 선대왕대에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이후

위덕왕대에 이르러 중국에서 받아들인 선진문물,문화들에

백제 장인들의 섬세한 기술과 한국,백제인들 특유의 멋,

한국 불교문화들이 결합되서

독특한 백제인들의 문화들이 크게 나타나던 시기였던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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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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