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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28대왕 혜왕

재위기간 1년 598~559년


혜왕의 이름은 계이니

명왕(성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창왕(위덕왕)이 붕어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성왕은 명왕으로,

위덕왕은 창왕으로 나왔고

실제 다른 이름이긴 하나

보통 삼국사기에서는

2가지 이름을 가진 왕들을 이야기할때


'성왕은 혹은 명왕이라 부른다'

'위덕왕은 혹은 창왕이라 부른다'


이런식으로 다른 이름도 나와야하는데

그냥 별 설명없이 각자의 이름인

성왕 = 부여명농 = 명왕

위덕왕 = 부여창 = 창왕 이런식으로 나온거 같고

백제왕은 별다른 시호 없이 이렇게

이름으로 불린 경우가 여럿 있고

백제 시조 온조왕,사마왕(무령왕),

명왕(성왕),창왕(위덕왕),의자왕(의자왕의 이름은 부여의자)가

있습니다


보통 삼국사기 기록 같으면

성왕,위덕왕 기록 처음부분에 명왕,창왕설명도 있어야 할텐데

별다른 설명이 없는듯 하고


다시 혜왕 이야기로 돌아가서,,

혜왕 기록은 정말 짧습니다,,


위의 글같이


'창왕(위덕왕)이 붕어하자

그(혜왕)가 왕위에 올랐다'


다음기록이


'혜왕 2년

혜왕이 붕어,사망했다

시호를 혜라고 했다'


이정도가 끝입니다,,


즉 즉위기사와 사망기사만 나와있고

일본서기에서는 위덕왕의 아들

'아좌태자'가 있었다는데

아좌태자는 일본에 머물렀고

위덕왕 사후 아좌태자가 아닌

성왕의 둘째아들,위덕왕의 동생이

왕위에 오른것에는 의문이 있다고 하고

(반정,쿠데타)


위덕왕이 72~73세에 사망했는데

위덕왕의 동생 부여계,혜왕도

당시 고령의 나이였을 거고


반정세력이 위덕왕 세력을

쫓아내고 고령의 혜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앉혔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저의 생각은 기존 백제 초기왕,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아들이나

구수왕이 사망하고 그의 맏아들 사반이

나이가 어려서 초고왕의 아우 고이,고이왕이

왕위에 올랐기도 하고


근초고왕의 아버지인

비류왕의 경우도 분서왕이 사망했을때

분서왕에겐 여러 아들이 있었으나

어려서 왕으로 세울 수 없었기에

왕위에 올랐다 하고


혜왕도 정말 별다른 기록이 없고

왕위에 오르고 얼마안되서 사망했다는 점은

그가 굳이 성왕,위덕왕대에는 그래도

백제 왕권이 약했을 때라고 보기도 어려운 시기인데

굳이 뛰어난 군주라 평가받았던

아버지 성왕과 효심이 깊었던 형 위덕왕을 배반하고

늙은 나이에 굳이 반정을 일으켰을지도 모르겠고


또 혜왕 다음왕 법왕은

삼국사기에서는 혜왕의 아들이라 나오나

중국 역사서 '수서'와 백제사,백제 가족력에 관해서는

신빙성이 높다 할 수 있는 일본기록 '일본서기'에는

위덕왕의 아들로 나온다하고


혜왕이 왕위를 찬탈했고

이에대한 복수로 법왕이 아버지 위덕왕의 원수를 갚으려

복수를 한 것으로도 본다고 한다 하나


문제는 법왕은 불교를 매우 숭상하고

극단적 평화주의자였던 왕이었는데


먼저 성왕,위덕왕때에는 왕권이 강했고

정통성도 문제가 없었던 시기이고

혜왕다음의, 일본서기에서는 위덕왕의 아들이라는

법왕은 극도의 평화주의자였는데


과연 그 사이의 혜왕이

왕위를 찬탈할 엄두가 났을 지도 모르겠고


기존 선대의 전례같이(구수왕의 맏아들 사반이

너무 어려서 초고왕의 동복아우로 왕이 된 고이왕,

분서왕의 왕자들이 어려서 왕이 된 비류왕)


위덕왕의 아들 법왕이 어려서

나이가 지긋했던 위덕왕의 동생 혜왕이

먼저 왕위에 올랐을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기존 선례들이 있었는데

당대 백제가 관산성 전투로 큰 트라우마를 겪었으나

그래도 이후에는 그렇게 난세도 아니었고

또 혜왕 선대,후대왕들의 성격상

혜왕이 고령의 나이에 딱히 반정을 일으켜서

왕위를 찬탈했을거 같지도 않습니다


<라봉봉>기존 학설등에는 혜왕이 일본에 가있는

위덕왕의 아들인 아좌태자를 제거하고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을 가능성을 유력하게 본다고 하나

당시 시대상과 정황상,또 다음왕 법왕의 성격상

그가 만약 일본서기 기록같이 위덕왕의 아들이라면

쿠데타를 일으킨 작은아버지에 대한 복수로서

살았다고 보기에는 왕이 되고나서

살생을 금하라는 명을 내린

그의 행보로 무리가 있어보이고

그 역시 재위기간이 혜왕같이 1년이기에

쿠데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거 같습니다


반정,쿠데타를 한 인물들은 보통

고구려 연개소문,조선 수양대군(세조),

한국 박정희 전 대통령같이

강렬한 기록들을 남기는 경우가 많고

후대에도 원망을 받거나 칭송받는 두가지 극단적인

사례로 나뉜다고 할 수가 있는거 같은데


(조선시대 '중종반정',

'인조반정' 은 반정인데도 강렬한 느낌은 없으나

이는 중종,인조 전 왕 연산군,광해군이 폭군적 행보로

원망을 산 인물이었기 때문이고

위덕왕은 젊었을때는

호기롭고 또한 무모했던 태자였으나

왕이 된 이후에

폭군적 행보를 보였다기엔

무리가 있으며 나름 성왕,위덕왕대에

백제도 안정을 누리던 시기였다 할 수 있는데

혜왕이 뚜렸하고 강렬한 기록도 없고

반정을 일으켰다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딱히 그런거도 없고

아무리 백제 정치가 귀족들의 권한이 강하고

왕들이 살해당하거나 비운의 죽음을 맞은 경우가 많았어도

성왕,위덕왕때에는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던거 같고


당시 백제 사정상

위덕왕의 아들 아좌태자는 왜국에서

자리를 잡아서 귀국을 꺼렸다거나


(이전에 위덕왕은 아예 왕이

되지 않고 출가를 하려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백제는 상식적으로

보면 안되는 나라같기도 합니다,,

북방 부여,고구려+남방 마한+유교+불교+도교+

농경문화+해양문화+왜[일본] 등

여러가지 사상과 문화가 혼재해 있어서 같습니다,,)


다른 아들 법왕은 어려서


(물론 위덕왕도 나이가 있던 왕이었으나

늦게 둔 아들이라거나

여러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거 같습니다)


기존의 선례가 있었던 거같이

나이 지긋했던 혜왕이 잠시 왕위에 앉다가

1년후 사망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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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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