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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컴퓨터도 하나 고장나서 수리중이고

바쁜일이 많아서 이제야 글 올립니다,,


백제 역사는 고구려 역사와 마찬가지로

깊게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고

앞으로 쓸 신라 역사 역시 기대가 됩니다


요즘 저가 쓴 글을 읽다가

도중에 못쓴 이야기들이 있는거 같아서

다시 쓰려하면 여태 워낙 쓴 글들이 많아서

또 뭘 쓰려했는지 까먹는 현상들이 일어나서

꼭 재채기를 하려다가 안나오는 그런 느낌이긴 하나


앞으로 삼국사기 이야기 이외에도

삼국유사,조선상고사 이야기도 쓸거 같고

이후에 다시 못쓴 이야기등이 쓸 날이 올거같습니다,,


역사는 써야하는 양들이 많으나

한국인으로서 한국사를 쓴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하고 먼길을 가야하는거 같아서

부지런히 써야겠습니다,,


요즘드는 생각은

그래도 목표는 확실하니

먼길을 가야하는거 같아서

어짜피 뛰어봤자

금방 지치는거 같고

나름 생활도 안정되가고 있기에

길게보고 부지런히 걷는 마음으로

사는거 같습니다,,


또 요즘 생각에 음식으로 비유하면

한국인들에게 한식이 일상이고 워낙 익숙하기에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게 한식같은데

저역시 한국사가 그런거 같고

대신 외국인들도 결국 한국오면 찾는게 한식이기에

외국에서 저의 글을 많이 보는거 같고

또 신토불이, 축구로치면 그래도 홈그라운드라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도 들고

정성껏 옛맛 그대로 그리고 요즘 최신경향까지 더불어

정성을 다해서 저가 할수있는 최고의 글을 쓰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믿고 보셔도 될거같고

문제가 있거나 궁금하신게 있다면

언제든지 댓글달아주시면 친절하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



<백제왕실의 복잡함을 보여주는 백제 법왕 이야기,,>


백제 29대왕 법왕

재위기간 1년 599~600년


법왕의 이름은

선이니


<김부식>혹은 효순이라고도 하다


혜왕의 맏아들입니다


혜왕이 붕어하자 아들 선(법왕)이 왕위를 이었습니다


<김부식>'수서(중국 역사서)'에서는

선을 창왕(위덕왕)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라봉봉>법왕이 한국기록 '삼국사기'에서는

혜왕의 맏아들로 나오나

중국기록 '수서'와

백제 왕실 가계도에서는

신빙성이 높다하는 일본기록 '일본서기'에서는

혜왕의 형인 위덕왕의 아들로 나오기에

비록 한국기록인 삼국사기에서는

혜왕의 아들로 나오더라도

실제로는 위덕왕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은거 같습니다


(물론 김부식님도 외국기록과 다른거를 알기에

위에 설명을 붙여놓으셨고

당대 김부식님이 참고하신 한국책에서는

혜왕의 아들로 나왔던거로 보이기에

완전히 한국 기록의 신빙성을 배제해서도 안될거 같습니다)


이 때문에 위덕왕의 동생인 혜왕이

위덕왕의 아들인 법왕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기에

혜왕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하나

이후 극단적인 평화주의자 행보를 보였던

법왕의 성격상 아닌거 같고

백제 선대왕들중

왕자들이 너무 어려서 왕이 된

고이왕이나 비류왕의

선례같이 법왕이 어려서

나이가 지긋했던 위덕왕의 동생

혜왕이 왕위에 올랐다가 사망후

법왕이 왕위를 이은거로 저는 보고있습니다


게다가 백제 성왕과 위덕왕은

고구려 시조 주몽과 백제 시조 온조왕을 흠모한거로 보이고


(성왕의 국호를 남부여로 변경한것과

사비천도)


또 성왕과 위덕왕은 각각 근초고왕과

근구수왕을 흠모해서

직접 아버지와 아들이 전장에 선두에서서

백제의 영광을 재현하려 했던 왕같고

이렇게 역사에서는 옛 인물들을 흠모해서

그것을 모방하려는 사례들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어찌보면 큰 모험보다는

잘된 옛 사례를 통해서

안정을 추구하려는

사람의 마음중 하나라 할 수도 있고

이에 백제 정계에서도

그래도 백제에서 좋았던 시절이었던

고이왕과 비류왕때처럼

법왕의 숙부,작은아버지 혜왕이

어린 조카 법왕을 대신해

왕위에 올랐을 수도 있는거 같습니다


물론 이게 맞다면

성왕,위덕왕,혜왕때 모두

백제 정계에서는 바로 옆 신라의

급격한 성장들에 여러 위기감을 느끼고

훌륭했던 선대왕들을 닮으려 하며

옛 백제의 영광의 시절들을 되찾으려 했던

그들의 바람을 담은 여러 시도였을 수도 있으나

안타깝게도 시대의 변화등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던

당대 백제인들이었던거 같습니다


또 위덕왕의 또다른 아들 아좌태자가 있었다하나

아좌태자는 일본 문화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아좌태자는 왜 倭 , 일본에서 자리를 잡아

왕위를 포기하고 귀국을 꺼렸을 가능성도 있고


(아좌태자의 아버지인 위덕왕도

원래 왕이되기전 왕위를 포기하고

승려가 되려했습니다)


혜왕이 자극적인 기록이나 별기록도 없고

혜왕 선대왕이었던 성왕,위덕왕때에는

그래도 백제 정치가 나름 안정된 모습을 보였기에

딱히 혜왕이 형인 위덕왕을 죽이고

반정,쿠데타로 왕위에 올랐고

이에 위덕왕의 아들인 법왕이 이에 복수를 해서

혜왕을 죽였다고 보기는

어려운거 같습니다


또 별개로,,

한국,중국,일본 기록에서 나온

백제 왕실 가계도가 저마다 다른 경우가 있어서

백제 왕실은 족보 보기가 복잡하고

이는 백제 왕가에서 여러 후궁을 들여서

여러 자식을 낳아서 족보가 복잡하게 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로인해 백제 정치가 크게 흔들리고

여러 불안들의 원인이 된거 같습니다


비록 가난한 집안은 또 가난한대로 문제가 있으나

예로부터 왕실이나 부유한 집안에서는

또 이렇게 후궁,첩등으로 자식이 많아져서

왕자의난, 상속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있는거 같고

물론 가난한 집도 이런게 있다하더라도

아무래도 잘 드러나지 않는 반면

왕실이나 부유한 집안에서는

규모가 크기도 하기에

이런게 크게 들어나는거 같기도 합니다


백제 역사가 매력있으면서도

고구려나 신라 역사에 비해서

꺼려지는 이유가

이런 백제 왕실 가계의 복잡함,

정계암투,왕들의 죽음 등

정치가 막장인게 많아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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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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