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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에 오른 서동>


-삼국유사 무왕, 서동이 왕위에 오르다-


그렇게 훗날의 무왕이 되는 서동은

백제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신라 서울(서울 = 수도, 신라의 서울,수도는 경주

경상북도 경주시)까지 가서


'서동요'를 지어 퍼트려서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혼인하게 됬고

다음 이야기로는,,


함께 백제에 이르러

(선화공주는)모후 母后 (선화공주의 어머니,왕후) 가

준 금을 내어서 장차 살아갈 계획을 의논했습니다


<선화공주>이렇게 된 이상

같이 잘 살아봅시다 !

저의 모후께서 노잣돈으로

금 한말을 주셨으니

가히 가정을 꾸리고 살 만 하옵니다


이에 서동이 크게 웃고 말했습니다


<서동>허허,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오 ?


선화공주가 말하기를,,


<선화공주>이것은 황금이니

백년의 부를 누릴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서동이 말하기를,,


<서동>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황금을 흙처럼 많이 쌓아 두었소


선화공주는 이 말을 듯고 크게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선화공주>(띠용 ? ) 이것은 천하의 지극한 보물입니다

그대가 지금 그 금이 있는 곳을 아시면

부모님(신라 진평왕과 왕후)이 계신 궁전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서동은


<서동>좋다


라고 말했습니다


(서동 성격이 좋게말하면

쿨하고,, 이후에도 이런 성격때문인지

백제 30대왕 무왕이 되고서

잦은 전쟁으로 백제 국력을

소모시킨거 같습니다)


이에 금을 모아서

언덕과 같이 쌓아 놓고

용화산(전라북도 익산시) 사자사의 지명법사에게 가서

금을 실어보낼 방법을 물으니

법사가 말하기를,,


<지명법사>내가 신통한 힘으로

보낼 터이니

금을 이리로 가져 오시오


라고 했습니다


선화공주는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지명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금을) 신라 궁중으로 보내어 두었습니다


(신라)진평왕은 그 신비스러운 변화를 이상히 여겨서

더욱 서동을 존경해서

항상 편지를 보내서 안부를 물었습니다


<진평왕>내 사위가 확실히 인물은 인물이군 !


서동은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서 (백제)왕위에 올랐습니다

(백제 30대왕 무왕)


<라봉봉>그렇게 삼국유사 무왕편에 나오는

서동이 지은 노래인 '서동요'와

그 배경이야기들이었고 서동은 꾀로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혼인하고

이후에도 마캐던 곳에 황금을 흙처럼 많이

쌓아 두었다는 이야기와

지명법사라는 스님의 도술(요술) 등

민간 사이에서 전해져오던 신비로운 전설들을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 기록하신거 같습니다


한국 설화중 상당히 유명,메이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고 그나마 해피엔딩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정자체는 오늘날 보기에도

성희롱이나 모욕죄에 걸릴 수도 있고

서동도 성공하기는 했으나

일종의 도박을 했던 거로 보이기에

완전히 옳다 할 수 는 없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남게 되서

오늘날 까지 전해져 오고 있고,,


이제 설화가 아닌 현실적으로 당대 상황들을

보게 된다면,,


서동이 금을 흙같이 쌓아 두었다는 말은

정말로 흙같이 쌓아두었다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이는게


먼저 백제의 원형이라 할 수 있었던

마한(경기,충청,전라도 지역)에서는 마한인들은

금,보화,비단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고

오직 구슬을 귀히 여겨서

옷에 장식하거나

귀나 목에 매달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고


이는 백제의 비옥한 경기,충청,전라도 지역의

풍요로운 곡창지대,해산물 등

풍요로움에서 금,보화,비단보다는

구슬같이 꾸미개,장식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게

귀하게 여겨진거 같습니다


그러나 백제는 신라와도 꾸준히 영향을

주고 받고 있었고

마한은 멸망하고 중앙집권화가 끝난

백제에서도 옛 마한의 풍속들은

남아있었겠지만

과연 당대의 서동이 금의 귀함을

모를만큼 순진하거나 그런 인물은 아니었을거 같고

또 신라에서는 금을 귀하게 여겼는데

바로 옆 백제에서 꾸준히 신라와

교역을 하던가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인데

당대가 아무리 옛날이어도

백제인들이 금의 귀함을 몰랐을리는

없었을 거 같습니다


금을 정말 흙처럼 많이 쌓아두었다면

굳이 마를 팔거나 하는 생활을 안해도 됬을거 같고

또 지명법사가 금을 신라 왕궁으로

순간이동,텔레포트 시켰는데

뭐라 재밌는 말을 하고 싶은데 너무 유치해서

할말이 없는 그런기분입니다,,

(그만큼 되게 고전적인 설화입니다,,)


어찌됬건 이 이야기들을 현실적으로 본다면

곧이 곧대로 믿기는 어렵고

그만큼 서동이 마를 파는 생활을 하면서도

비범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이로인해 선화공주와의 결혼 이후에도

성공적으로 장인이었던 진평왕의 인정을

받게 된거 같습니다


또 이로인해 인심을 얻어서

서동은 백제의 왕위에 올랐다는 마지막 이야기로는

민간생활을 하던 무왕의 즉위에

신라 진평왕,신라의 힘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으로 보여지고


다르게 보면 그만큼

신라는 한때는 영광의 시절을 보냈던,

또한 바로 옆에서 계속 부딪혔던

라이벌중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었던

백제 왕실에 개입할 정도로

이미 크게 성장해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백제 무왕 바로 다음왕인

의자왕때 백제가 멸망하기에

단순히 의자왕때의 실정으로

백제가 멸망했다고만 하기보다

(물론 이거도 크겠습니다)


이미 국운은 신라가 왕성하고

좋았을 때였고(당장 백제 성왕이

사위였던 신라 진흥왕에게

목이 잘린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무왕,의자왕때

백제는 북진에서 외교방책을

동진,신라멸망으로 방향을 바꾸고

신라를 국난에 몰고갈만큼

총공세를 시작하나


이미 신라가 기초체력이

매우 높았기에

이는 백제의 마지막 발악


(이를 죽기직전의 강한 힘이라는 뜻의

단말마 [원래 뜻은 최후의 고통]

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라 할 수 있고

물론 백제는 무왕,의자왕때에도

워낙 풍요로운 땅에

인구수가 많았기에

마지막 발악이었을 지언정

신라에 정말 위협적이었던 것은

사실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봐서는

이미 창창했던 신라에게

국운이 기울어진 상황이었고


삼국유사에서는 무왕의 사랑,

불교적 이야기등으로

무왕이 뭔가 로맨티스트에

불교를 중요시한 왕으로 나오나

삼국사기에서는 무왕은 즉위초부터

자신을 왕위에 앉히는데

보탬이 되기도 했던

장인의 나라인 신라를 공격했고


즉 이런 이중적인 면모등에

무왕대부터 백제는 국제사회에

신뢰를 잃어가게 된거 같습니다


이후 삼국유사 기록에서는

진평왕이 공인 工人 (기술자) 들을 보내서

무왕이 미륵사를 짓는것을 도왔는데


삼국유사에서는 무왕이 진평왕의 신라를

공격하기도 하고


무왕의 이런 모습은 결국

이후에도 여러 이중적 모습을 보이다

중국이 신라와 손잡음으로서

백제 멸망의 길로 가게 된거 같고


그렇다고 저는 모아니면 도,

둘중 하나,중간이 없다

이런 식으로만 하는거는 싫어하나

문제는 밀어야 할때는 밀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할때는 하지 말아야 하는거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제때에 맞춰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중도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냥 자기 이익에만 집중하다

큰 것을 잃는 기회주의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기에

서동,무왕의 모습이 좋게만 볼 수도 없는거 같고

이는 평소 서동,무왕이 앞뒤없이 살다가

드디어 앞뒤를 재야할 상황(백제 국왕)이 오자

평소같이 패기있게 해도 안되고

(더 강한 세력등이 나타났기에)

외교적 대처 미흡으로 나타나게 된거 같습니다


또 서동,무왕은 당대 처갓집인

신라 진평왕의 도움으로 결국

백제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 초부터 (처갓집인)신라를 공격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와 별개로

이런 모습들은 인간,외교적인 신뢰를

잃게 한거 같고


오늘날에는

삼국의 정복군주나 무왕의 사랑이야기

서동요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거 같으나


(근데 서동요는 역사 이외에도

문학에서 전통 노래로서도 유명한거 같습니다)


실제로는 한국사에서도

이렇게 정복군주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랑이야기 말고도

조용히 내실을 다지거나

큰 도박이나 무리수 없이

인간적인 사랑을 한 경우도 있으나

아무래도 이런 경우보다는

정복군주들이나 이런 서동이야기등이

이야기되는거 같고

물론 그럼에도 모두 가지각색의

인물들이 나오기에

역사가 즐거운 것이기는 합니다


하여튼 서동요 이야기는

사랑에서는 그럼에도

대범함등은 필요한거 같고


선화 善花 공주 , 착한 꽃 공주라는

되게 고전적인 이름부터

이상한 소문,황금,기이한 도술 까지

되게 고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거 같고

특히 삼국유사는 쓰신분이 일연 스님으로

불교 승려 출신이셔서

이런 초능력,도술이야기들도 여럿 나오고

아무래도 정사 正史 라고 불리는

삼국사기같이 몇년도에 이런일이 있었고

하는 정치,외교적 이야기 중심보다는

삼국유사는 민간에서 돌아다니는,

소문들인 야사 野史 중심으로 기록되있기에


서동요는 단순히 기록적 사실만이 아닌

민간에서의 소망,바람등이 담겨있는

사랑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저가 서동,무왕을 약간 비판적으로

본 감이 있는거 같으나

사랑이야기에만 집중해서

당대 역사적 현실등을 걸러 쓸 수는 없고

물론 그래도 한국사의 유명,메이저한 이야기답게

이야기가 직선적이고 고전적이고

또 해피엔딩인것은 좋았습니다,,


아직 삼국유사에서 무왕의 이야기는

하나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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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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