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그렇게 삼국유사에 나온

백제 서동,무왕의 (신라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 '서동요'이야기를

잠시 했고 다시 삼국사기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백제 30대왕 무왕

재위기간 41년 600~641년


무왕은

이름은 장이니

법왕의 아들입니다


<라봉봉>삼국유사에서는 과부와 용의아들,

삼국사기에서는 법왕의 아들로 나오고

상식적으로 진짜 용의 아들일리는 없고

그렇다고 삼국유사 기록 역시

정확한게 있는 편이기에

왕실의 정통적,직계 자손,적자라기보다

법왕의 후궁, 방계 자손,서자로

민간 생활을 했던거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법왕 아들설을

정설로 보고있습니다


그러나 법왕은 뭔가

후사를 갖기에는

너무 어려서 법왕 전왕인

혜왕이 미리 왕위에 오르다

1년후 사망하자 왕위에 오르고

1년후 사망한거 같고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전에 혜왕,법왕 때

쓴 이야기들에 써놨습니다)


바로 다음에 장성한

무왕이 왕위에 올랐다면

그 기록이 이상한거 같습니다


중국 남북조시대 북조쪽의 사서인

'북서'에서는 둘다 1년씩 재위했던

혜왕과 법왕의 존재가 빠지고

위덕왕에서 무왕으로 왕통이 바로

넘어가는 거로 나오기에

위덕왕 아들설도 있고

여러 설들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성왕의 후손들이라 하는

오우치 가문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타 가문의 원형)


의 족보에서는

위덕왕의 다른아들로 추정되는

진이왕이 있다고 하는데


19세기 조선시대 실학자

이규경이

중국을 방문하고 글로 기록한

오늘날에는 소재불명의

중국 당나라대 비석에서는

부여장,즉 무왕의 아버지가

부여관 夫餘寬 이라고 나오는데

물론 삼국사기 기록같이

무왕의 아버지라 나오는

법왕의 이름이 부여선 扶餘宣 이기에

오기일 가능성도 있다 하더라도

부여관이 진이왕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고


만약 그나마 정확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당대 당나라대 비석이 사실이라면

무왕은 법왕이 아닌 다른 왕의 아들이고

일본 오우치(도요타 자동차를 만드는

도요타 가문의 원형)가문의 족보에서도

진이왕의 존재가 나오는데

솔직히 법왕의 아들이라는 것은

저가 법왕은 어려서 혜왕이

먼저왕위에 올랐다고 썼고

또 살생을 극단적으로 금하고

극도의 채식주의자 왕 느낌이었던

또 어렸던거로 보이는

법왕이 과연 민간의 여인을 건들이거나

하며 후사를 두었을 지도 의문이고

이미 무왕은 왕이 될 때

서동요의 주인공이라면

청년이상은 됬을 거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법왕의 아들이라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거 같고


저의 생각에는 법왕이나

다른 백제 왕족이

민간 여인을 건드려서

임신을 시켰다거나,,

이후 그렇게 민간에서 자라면서

서동은 아버지가 왕인 것을 알고

생업으로 마파는 생활을 하면서도


'재기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라는 기록과 같이

백제 왕실 후손임을 잊지않고

자신의 비범함을 알리기 위해서

용의 아들이라고 소문을 냈던거 같고


아니면 용은 왕을 상징하기도 하기에

사람들에게 정말로 백제국왕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대신 용의 아들이라고 비유를 해서

말하다가 진짜 용의 아들로 소문이

났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역시 백제 왕실족보는

여러 설들이 난무하고

하여튼 어떤 설이던간에

백제 30대왕 무왕은

정설이라는 법왕의 아들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이는거 같고

위덕왕이나 진이왕 혹은

백제 왕실 인물이

민간 여인을 건들여서 그런게 아닐까 싶고

백제 역사는 특히 족보도 그렇고

보기가 정말 까다롭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