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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 12년

2월 봄

백제 무왕은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서 조공했습니다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치려 하므로

무왕이 국지모를 수나라에 보내서 행군 일정을 물으니


수양제가 기뻐하며

후하게 상을 내리고

상서 기부랑 석률을 보내서

무왕과 상의하게 했습니다


,,, 그렇게 당대의 회담과

회담이 끝나고 난 뒤의

백제와 수나라의 입장들을

창작해서 재현해 본다면,,


<석률>백제왕 여장(무왕의 이름 부여장) !

그대들이

우리 대수제국의 고구려 원정을

돕겠다는것에

우리 황제폐하께서는 심히 흡족해 하시고 있네 !


<무왕>네 고구려는 저희 백제의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자신들만의 질서를 만들며

중국의 질서에 편입되지 않으려 하고 있는데

이 어찌 무례한 일이라 하겠습니까 ?


우리 백제국은 폐하께서 고구려를 치실때

국경에서 군비를 엄하게 하여

수나라에 협조할 것입니다 !


<석률>확실하제 ?


<무왕>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


그렇게 회담이 끝나고,,

끝나고 난 뒤의 이야기를 창작해보자면,,


-수나라 측-


<석률>음,, 백제애들 믿을 수 있는거 맞나 ?


<수나라 사신들>글쎄요,,

일단 고구려는 소국일 뿐이니

백제가 도와주면 좋을정도지

큰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석률>하긴 이번 원정은

유례가 없는 대군(113만,,)으로 원정하는 건데

고구려가 별 수 있겠나 ?


-백제 측-


<백제 신하들>어라하(왕) !

정말 수나라와 같이

고구려를 치실게 사실이옵니까 ?

고구려는 만만한 나라가 아닌데

신라가 우리를 위협할 정도로 커진

지금에 무리한 일이 아닌지요 ?


<무왕>어짜피 누가 이기던 간에

우리는 그때 맞춰서 행동해서

어부지리 漁父之利 (둘 사이의 다툼을 틈타

제 3자가 얻는 이익)

격으로 이익을 취하면 되는 법이네 !


<백제 신하들>그나마 고구려는

북방에 집중하느라 남쪽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지만

만약 그러다 수나라의

미움을 사게되면 어찌 하실 것이옵니까 ?


<무왕>어짜피 고구려가 북방에서

버티고 있는데 수나라가 우리를 공격할 수나 있겠는가 ?

적당히 유연하게 행동하고

우리는 신라 공격에나 집중하면 될일이야 !


<백제 신하들>(불안하긴 하군,,) 예 어라하 !


8월 가을

무왕은 적암성을 쌓았습니다


10월 겨울

신라의 가잠성을 포위해서

성주 찬덕을 죽이고

그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 전투는 '가잠성 전투'라고 불리며

당대에서 중요한 전투였던게

무왕은 그렇게 신라 공격에 크게 집중했고

모처럼만에 신라군에 대승을 거두며

백제인들의 자신감을 되찾게 했다고 하고

신라에서는 백제가 *불구대천 不俱戴天 의 원수

(*불구대천 不俱戴天 하늘아래 같이 살수없는 원수)

로서 더이상 존립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된 계기가 된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잠성 전투 이야기는 매우 처절하며

삼국사기 해론 열전(열전 = 개인,일반인이야기,

해론 열전 = 해론이라는 인물의 이야기)

에 자세히 기록되있어서

다음 이야기때 하고

가잠성 전투는 백제에게는

모처럼만에 일방적으로 지기만 하던 신라에게

대승을 거두며 신라인들에게 위기의식을 가지게 하고

백제인들에게는 안정감과 자신감을 찾고

기존의 소극적인 자세와 달리

적극적으로 국제문제에 개입하는 계기가 됬다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신라는 한창 혈기왕성하게 강하며

삼국에서 탄탄대로,전성기와 안정기를 구가할 때였는데

그동안 만만하게 여겨졌던 백제에서

무왕대에 비유를 하자면,,

정면승부는 신라가 이길수 있었겠지만

무왕이 신라의 뒤통수,옆구리를 쎄게 치니

크게 당하며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거 같고

사실 뒤통수에 장사가 없기에,,

당장 신라 정예군들이 한강유역에 배치된 와중에

무왕이 백제 북쪽의 한강유역이 아닌

백제 동쪽의 신라 본토를 공격한 것은

신라인들에게는 만만하게 여겨졌던

백제가 다시 큰 적으로 부상하며

큰 위기로 다가오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잠성 전투이야기는

바로 다음이야기때 하고,,

다시 '삼국사기 무왕' 기록에는,,


무왕 13년

수나라 6군이 요수를 건너자

(수나라 113만군의 고구려 침공, 제 2차 고수전쟁)


무왕이 국경에서 군비를 엄하게 해서

수나라에 협조한다고 성명했으나

실은 다음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백제 신하들>어라하 !

드디어 수나라 대군이 요수를 건너서

고구려 침공을 시작했사옵니다 !

유례가 없는 규모로서

113만 대군이라고도 하고

200만 대군이라고 한다고도 한다고 합니다 !!


<무왕>113만이나 200만이나,,

중국이 크다고 했지만

이정도 규모였을지는 상상도 못했구나,,


<백제 신하들>군사를 내어 수나라를 도와야 할까요 ?


<무왕>적당히 가만히 기다리다

결과를 보고 행동하자꾸나

현재로서는 신라공격에 집중해야 한다 !


,,,


<이후의 중국인들>백제 뒷통수가 얼얼하군,,

앞으로 백제보다는

차라리 예의가 바른 신라를 믿어야겠어,,


4월 여름

대궐 남문에 벼락이 쳤습니다


5월

호수가 나서

인가 人家 (사람이 사는 집)가 유실됬습니다


<라봉봉>무왕이


'수나라에 협조한다고 성명하였으나

실은 다른 마음을 품고있었다'


라는 기록은

위덕왕대에는 백제가 수나라에 적극 협조하다가

고구려의 공격을 받게 됬고

무왕대에는 이에

적당히 수나라,고구려 두 나라의 사이에서

이익을 취하려하고 신라 공격에 집중하는거로

외교 방향을 바꾸게 됬는데


당대 한국 고구려와 중국 수나라 모두

중국에서 통일제국이 등장하자

당대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어느 한쪽이 굽힘이 없이 맞서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무왕은

수나라에게 고구려 공격을 돕겠다 말하고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것은

결국 백제의 외교적 신뢰를 깎아먹게 됬고

차라리 애초에 돕겠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것만 못하게 된거 같습니다


중국에서도 이로인해 점점 백제보다는

이후 신라와 손을 잡게되는 계기가 됬다고 합니다


당대의 백제 외교가 정말 암울했던게

당대 백제에서도 단순히 간보기를

했다고만 한거라기 보다는

무왕이나 백제에서도

나름의 자구책과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이나

당대 신라가 너무 강성하자

계속 나쁜 결과로 이어지고

외교가 늪,수렁에 빠지게 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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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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