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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백제 무왕의 다음 기록은,,


무왕 26년

11월 겨울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서 조공했습니다


무왕 27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명광개 明光鎧 (밝을 명 明 빛 광 光 갑옷 개 鎧 )


라는 갑옷을 바치면서

고구려가 길을 가로막고 상국을 입조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당 고조는 산기상시주자사에게 조서를

우리(백제)와 고구려에게 보내서

서로의 원한을 잊으라고 달랬습니다


<당고조>지금은 외부보다는 막 나라를 건국했기에

내부 안정이 우선이지,,


8월 가을

무왕은 군사를 보내서 신라의 왕재성을 공격해서

성주 城主 (성의 주인) 동소를 잡아 죽였습니다,,


12월 겨울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습니다


위 기록의 명광개는 갑옷의 한가지로 당대 중국에서 유행하고

당나라의 대표적 갑옷이라 하며

백제때 사용했던 것인데

황 黃 칠을 해서 그 광채가 상대방의 눈을 부시게 했다고 합니다

백제의 황금갑옷 같으나

중국 '신당서 백제전' 기록에는


<신당서 백제전>

백제에는 황칠 나무가 나서 작은 오동나무와 흡사한데

커서 유월에 즙을 취하여 칠기들이 황금과 같아 그 빛이

눈을 사로잡는다

國西南海中有三島,出黃漆樹,似小榎樹而大。

六月取汁,漆器物若黃金,其光奪目 


라고 기록되있고 황칠나무라는 나무가 실제 있는데

옻나무 수액을 채취해서 옻칠하는 거같이

황칠나무 진액은 노란빛을 띄는데

그것을 칠하는 것을 황칠이라 하고

정말 황금같이 황금빛을 띄게 됩니다


황칠은 금속에 끼얹으면

진짜 순금같은 아름다운 황금빛을 띄게 되면서도

원래 금속보다 더 견고하고 멋진 금속이 된다고 하며

즉 실제 황금보다 저렴하면서 황금빛을 내며

갑옷을 튼튼하게 해주는 실용성과 멋,경제성이 혼재해있는

가히 백제인 다운 갑옷으로


조선에서는 강철에 수은을 끼얹어서 아름다운

은빛이 도는 수은갑을 만들었다면(문제는 수은중독의 위험이 있는거 같습니다,,)

백제에서는 강철에 황칠을 끼얹어 화려한

금빛이 도는 명광개 (밝게 빛나는 갑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명광개는 남북조시대부터 당나라에서 유행했던 갑옷이며

당나라를 대표하는 갑옷이라는데

갑옷을 빛추게 한 원료가 바로 백제,한국에서 나와서

한국에서 중국에 보낸 조공품중 하나였고

왕실에서 쓰이는 양도 상당해서

황칠나무가 자라는 지역 백성들의 고통이 심해서

조선시대에는 황칠나무가 자라면 백성들이 베어버렸다는 기록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는 검은빛의 옻칠공예등은 익숙하고

황금색의 황칠공예는 익숙하지가 않으나

당대 백제인들은 화려한것을 매우 좋아했던거 같고

또 그러면서도 진짜 황금을 칠한게 아닌

나무에서 황금빛을 내는 액체를 채취해 칠했으므로


백제문화의 기본 모토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儉而不陋 華而不侈


라는데 정말 그런게 백제문화는 매우 화려한데도

정갈하고 검소한 느낌이 양립해서 존재해있고

원래 예술이 발달한 나라 물건들은

외국에 나가면 프리미엄이나 거품등이 붙어서

가격이 매우 높아지고 사치품 이미지가 되게 강하게도 되는데

정작 예술도 사람이 향유하는 실용적인 것이기에

예술이 발달하려면 경제성,실용성은 필수이고

예술이 발달한 나라 본국에서는

그렇게 비싸거나 한다기보다는

경제성,실용성이 있기도 하다고 할수있습니다


백제 예술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이미지라고 생각될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런 면도 있었지만

또 백제예술이 독특한게 의외로 자세히 보면

검소하고 정갈한 느낌이 있고


실제 갑옷에 황금이 아닌

황칠나무로 황금빛을 내고

금속을 더 우수하게 한

멋과 실용성 모두를 잡은 것

역시 백제인들의

지혜라고 할 수 있고


최근에도 2011년

1400여년전 백제 의자왕때 가죽갑옷이 발견됬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서기 645년,의자왕 5년에 만든 백제 가죽갑옷이

공주 공산성에서 발견됬는데

유적 내 저수시설 바닥에서


당태종 연호인

정관 19년 명 貞觀 十九年銘


이 붉은 글씨로 적힌 갑옷 한 벌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의 갑옷은 가죽갑옷에 검은빛의 옻칠을

한 것인데

옻칠이 두껍게 되있어서

가죽임에도 저수지 바닥의 뻘에 묻힌 채

1400년을 견뎠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황금빛의 황칠나무,황칠갑옷은

백제 귀족이나 지배층,장군이 사용한거 같고

검은빛의 옻나무,옻칠갑옷은 일반 평민,병사들이 사용한게

아닐까 싶고


황칠이던 옻칠이던간에

갑옷을 만들고 위에 덧대 발라야 되서

가성비는 둘째치고 시간과 정성이 컸을거 같습니다,,


[추가글로는 백제는 당나라의 연호를 쓰지 않았기에

발견된 위 사진의 옻칠갑옷은 당나라군의 갑옷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황칠은 칙칙한 색의 강철을

황금이랑 거의 비슷한 금빛으로 만들며

그 강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고

종이에 바르면 자외선까지 차단해주는

속어로 '개사기,캐사기,,' 도료(염료)라고 한다고 하고,,


문제는 조선시대 들어서까지

백제의 황칠공예기술이 이어진거 같은데


(의외로 조선시대에도 삼국 문화들이 꽤 남아있던거 같으나

역시 한국은 전쟁과 수탈등 날라간게 한두개가 아닙니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수탈에 시달리다 못해

위 이야기같이 멀쩡히 자라는 황칠나무를 베어버리는 등

스스로 황칠공예 명맥을 끊어버린 바람에

안타깝게도 우수한 기술인 황칠 기술 방법이

실전 되었는데

최근에는 다행히 이 황칠공예를 복원해서

명맥을 잇고 있는 분이 계시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현대인이 대체적으로

사회,기술의 발달등으로

조상들보다는 똑똑,우수하다 할 수있겠으나

그렇다고 현대인이 무조건적으로

옛 조상들보다 우수한면만 있는게 아니었고


옛 조상의 좋은 기술이나 과학적 지혜등이

당대 환경이나 사회적 요인등으로

잊혀진 기술도 있었고

대표적인게 고대 그리스에서 발명된 증기기관이

당대에는 노예들 인건비가 더 싸서,,

안쓰이다가 영국의 산업혁명때 부활했다고 할 수 있고

황칠기술도 오늘날에도 또 과학적으로 연구할 대상이라

할 수 있는 기술 같습니다,,


저도 이런 이야기들은 처음보기에

양광개, 황칠나무 기록으로 생각을 해보니

통일 신라때 존재했다는 금입택 金入宅 ,황금 입힌 집은


아무리 신라가 황금이 많았다 해도

신라인들이 바보가 아닐것인데

실제로는 백제를 멸망시키고 흡수된 백제 장인들의

기술로 집 지붕에 황칠을 해서 지붕을 황금빛으로

물들인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의외로 조선시대까지 황칠기술이 있었기에

또 모르겠습니다

찾아보니 실제로 저같은 생각을 한 사람도 있으나

역시 금박인지 황칠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대 신라인들의 번성함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고


다시 백제 이야기로 돌아가서,,


위 사진의 백제 옻칠갑옷도

황칠은 아니기에 일반 병사의 것 같으나

고고하고 품위가 있어보이고

하여튼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에서

백제인들의 예술미를 따라올 나라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라봉봉>백제 미술은 오늘날 보기에도

고고하고 우아하며 세련되고

또 되게 실용적,과학적입니다,,

가히 요즘 용어로 오파츠(시대를 초월한 유물)라 불릴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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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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