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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 28년 

7월 가을

무왕이 장군 사걸에게 명해서

신라 서부 변경의 두 성을 함락시키고

남녀 3백여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무왕이 신라에 빼앗긴 땅을 회복하기 위해서

군사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웅진에 주둔했습니다


<무왕>짐은 신라놈들에게 뺏긴

우리 선조들의 영토를 반드시 회복할 것이다 !


<백제 군사들>건길지(왕) 만세 ! 대백제국 만세 !


신라왕 진평(신라 26대왕 진평왕)이

이를 듣고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위급한 사태를 말했습니다


무왕이 이 사실을 알고 중지했습니다


<무왕>현재 당나라의 군주(당태종 이세민)는

보통의 인물이 아니라고 들었다


<백제 신하들>예 어라하(왕) !

그는 상당한 야심이 있는 자라고 들었사옵니다 !!


<무왕>현재는 크게 무리하는 것 보다는

조심히 국제 정세를 관망해야겠다


8월 가을

무왕이 조카 복신을

당나라에 보내서 조공하니

당태종이 백제와 신라가 대대로 원수를 맺어

서로 자주 침공한다고 하면서

무왕에게 조서를 보내서 말했습니다


<당태종>백제 신라 너네는 한때는 동맹도 맺었다는데

수백년동안 지치지도 않냐,,


근본적으로 고구려,백제,신라는 같은 족속이라 들었다만

해이 海夷 (바다 오랑캐,한국)들은

유구한 역사가 있고 학문을 중히 여기니

보통의 오랑캐들과는 달라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게 했다

앞으로 저쪽도 언젠간 우리같이 하나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


그러면 조서를 내리노라 !


왕(무왕)은 대대로 군주가 되어

동쪽 변방을 진무 鎭撫 (안정시키고 어루만져 달래다)하고 있다


먼 바다 한 끝에서

바람과 파도가 험한 것을 무릅쓰고

충성이 지극하여

조공이 계속되니 (백제 너네 공예품 짱임ㅋ)


왕의 아름다운 생각을 높이 평가하며

매우 기쁘게 여긴다


내가 삼가 영광스러운 대명을 이어받아

천하를 통치하게 되었으니

정도를 넓히고

백성들을 아껴 양육하며

배와 수레가 통하는 곳과

바람과 비가 미치는 곳마다

모두 천성에 따르며

모두가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


신라왕 김진평 新羅王 金眞平 은

(신라 26대왕 진평왕, 실제 진평왕의 이름은 김백정 金白淨)


나의 번신(번방의 신하)이요

왕(무왕)의 이웃이지만


매번 군사를 보내

토벌하는 것이 그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군대의 힘을 믿고

잔인한 행위를 마음대로 하는 것은

나의 기대에 매우 어긋난다


내가 이미 왕(무왕)의 조카 복신과

고구려, 신라 사신들에게

서로 화친하도록 타이르고

모두 화목하게 지내게 하였다


왕(무왕)은 반드시 전날의 원한을 잊고

나의 본뜻을 헤아려서

모두 이웃의 정을 두터이 하여

즉시 전쟁을 중지하라


그렇게 무왕은 당태종의 편지를 읽었고,,


<백제 신하>현재 당나라 황제는

성명하여 세상에 드문 인물이자

중국을 안정시키며 때마다 기이한 꾀를

내어 향하는 곳에 대적할 자가 없으며

그는 고구려를 공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왕>짐이 보기에도 그의 글에서

그가 상당히 공부를 많이 했음을 알 수 있군

걱정되는거는 신라가 당나라와

계속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는 것이야


<백제 신하>그렇다면 어찌할까요 어라하 !


<무왕>일단 표면적으로는 당황제에게

명을 따르겠다고 하고

내년에 신라에 뺏긴 가잠성을 공격할 준비를 하여라 !


<백제 신하>예 어라하 ! (괜찮을런지,,)


무왕은 곧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표문을 바쳐 사죄했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당태종의) 명령에 순종하겠다고 했으나

실제적으로는 이전처럼 서로 (신라와) 원수지간이었습니다,,


<라봉봉>무왕은 삼국사기 무왕 13년에도

중국 수나라에게 협조한다 말하고

실제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있었다고 기록되있고


삼국사기 무왕 28년에도

중국 당태종이 백제 신라 서로 화해하라고 하는 편지에도

알겠다 했으나 실제로는 신라와 원수지간이라는 기록 등

이렇게 중국에 알겠다면서 실제로는 아니라하며

결국 이는 백제의 외교적 신뢰를 깎아먹어서

중국 당나라가 무왕 다음왕 의자왕대에

백제를 신뢰하지 않고 신라와 손을 잡아서

결국 나당(신라 + 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게 됬습니다,,


무왕대에는 당나라가 먼저 당고조때는

막 건국해 나라 내부정리를 하고있었고

당고조 다음 황제 당태종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아버지 당고조를

떨게하며 황위를 양위(양위 = 양보,

양위지만 실제로는 공포 분위기 조성 등,,)받았고


동양 왕들이 흠모한 인물로서 비범한 인물이었고

그는 건국한 당나라의 내부정리를 마치고

고구려 원정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백제와 신라에 신경쓸 여력이나 생각등은 없었고


이에 무왕은 백제와 신라에게 싸우지 말라는

당태종에게 알겠다고 말하고

신라 공격을 계획한거 같습니다,,


신라가 당나라에게 적극적으로 몸을 낮추고

사대(몸을 낮추는) 외교를 한 것과 달리

(고려,조선때까지 이어진 중국에 대한 사대외교가

이때부터 시작됬고

이래서 신라가 욕먹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때부터 시작된 한국식 사대는

독립성을 유지하며 해왔던 사대지

독립성이 침해될 경우에는 어김없이 중국에

맞서왔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백제는 이마저도

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는 전혀 그러지 않았고

중국이 약했을때는 중국을 공격하기도 했고 


무왕 역시 중국에 알겠다 말해놓고

뒤로는 다르게 행동했고


이는 당대에는 중국에서 백제,신라까지는

크게 생각을 못하던 때라

또 육로로는 고구려가 있어서

중국에서 백제를 지상군으로 공격하기는 어려웠고

이에 무왕대에는 상관이 없었다 하더라도

결국 이렇게 국제적 신뢰를 갉아먹고

결국 이후 당나라는 수군을 백제에 보내고

신라군과 연합해서

백제가 멸망하게 됬습니다,,


물론 이를 백제, 무왕의 자주성,당당함이라 해석 할 수도 있고

실제로도 무왕은 그런 성격의 인물이었고

이에 그가 백제사에서 인기가 많은 인물이라 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오랜 전쟁으로 백제의 국력을 소모시키고

당대 통일제국이며 힘이 강대했던 중국에 대해

앞뒤가 다르게 행동하며 외교적 신뢰를 깎아먹었다는 평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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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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