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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마지막 태자 부여융의 죽음, 완전히 멸망한 백제>


그렇게 백제 마지막 태자 부여융(다른 설도 있지만

부여융은 보통 의자왕의 첫째아들,태자라고 합니다)

의 신라 30대왕 문무왕에 대한 항복의식으로

백제는 신라에 병합되었고,,


당나라 장수 유인원 등이 당나라로 돌아가니

백제 마지막 태자 부여융 역시 군사가 흩어질 것을 염려하여

그 또한 당나라 수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부여융은 한때나마 백제 태자였기 때문에

당나라에서도 함부로 백제에 주둔시켜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당나라로 귀환시킨거 같습니다)


당 의봉(당 고종의 9번째 연호)년간에

부여융을 웅진도독대방군왕으로 삼아

귀국하게 해서

남은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곧이어 안동 도호부를 신성으로 옮겨서 통할하게 했습니다


(670년 나당전쟁 전까지는 옛 백제 수도권 지역 중심으로

부여융의 통치가 이뤄졌으나

나당전쟁 개전과 함께 신라군의 웅진도독부 공격으로

부여융은 당나라로 돌아갔고 웅진도독부 간판은

백제와 거의 아무 상관 없는 요동땅으로 쫒겨났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부여융은 강제 이주 당한 백제 백성 1만명 정도를

통치했다고 합니다


즉 당나라에서는 한국 흡수의 전초기지로 백제지역에

웅진도독부를 출범시켰으나 신라에 쫒겨나고

웅진도독부는 뜬금없이 고구려 지역에서 백제 유민 자치기구 성격으로

변하며 당나라에서 '소백제 [小百濟 소백제 라고 검색해보니

자료가 잘 안나오는데 작은 백제라는 뜻일 거 같습니다]'라고도 불리다가

이후 고구려 유민들이 건국한 한민족 韓民族 국가인

발해에 통합됬다고 합니다)


이 때 신라가 강성해지니

부여융이 감히 고국(백제)로 들어오지 못하고

고구려 지역에 가서 의탁하고 있다가 사망했습니다


무후(당나라 측천무후로 당고종의 부인이었는데

이후 당고종이 죽자 자신이 황제가 되는 여인입니다,,)

가 또한 그의 손자 경(부여융의 손자 부여경)으로

하여금 (백제 계통의)왕위를 계승케 하려 했으나

그 지역이 이미 신라,발해,말갈에 의하여 분할 통치 되고 있었으므로

나라(백제)의 계통이 마침내 단절되었습니다,,(백제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김부식>논평한다

'신라고사 新羅古事(현재 전해지지 않는 신라시대의 역사책)'에 이르기를


'하늘에서 금궤 金樻 (금궤짝, 궤짝은 상자형 가구) 가

내려온 까닭으로 성을 김 金 ( 金 은 쇠 금, 성 김 두가지 뜻입니다) 씨라

하였다'


하니


이 말은 괴이하여 가히 믿지 못하겠으나

사신이 역사를 편찬할때

옛날 그대로 전하여

그 말을 깎아 없앨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듣건대


'신라 사람은 스스로 소호김천씨 小昊金天氏 의 후예이므로

서을 김씨라 한다'


<김부식(김부식의 논평 안의 속의 김부식의 설명)>이는 신라의 국자박사 설인선이

지은 김유신의 비문과 박거물찬이 지었고 요극일이 쓴 삼랑사의 비문에 나타나 있다


라고 하였고


고구려도 또한


'고신씨 高辛氏 의 후예이므로

성을 고씨다'


라고 하였는데


<김부식>'진서 晉書 (중국 역사책)'에 실린 기록에 나타나 있다


'고사 古史'에서 말하기를


'백제와 고구려는 같이 부여에서 났다'


또 이르기를


'진과 한의 난리 때

중국 사람이 많이 해동 海東 (바다 동쪽, 중국의 동쪽 즉 한국)으로 왔다'


고 하였으므로


삼국의 선조는 어쩌면 옛 성인의 후예가 아니겠는가 ?

(삼국시대나 김부식님이 활동한 고려시대의 당대 중국은

세계적인 선진국이었기에 한국에서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오래도록 나라를 향유할 수 있었는가 ?

(실제 한국사 왕조들은 세계사적으로 봐도

정말 오래간 나라들이라고 하고 이는

국가주의적 자긍심을 논외로 해도 정말로

한국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지혜가

세계사적으로 봐도 정말 뛰어났음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요즘들어 조상탓을 하거나 '헬조선'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그런 말을 하는 스스로가 

이 땅을 살아간 조상님들보다 뛰어난 행적을 보였는지

생각하게 하고 싶어서

한국사 이야기들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백제의 말기에 이르러서는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 많았으며

또한 대대로 신라와 원수가 되고

고구려와 화친하여 신라를  침략하고

유리한 조건과 적당한 기회만 있으면

신라의 중요한 성과 큰 진을 빼앗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이른바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고

이웃과 잘 사귀는 것이

나라의 보배'


라는 말과 달랐다


이에 당나라의 천자(황제)가 두번이나

조서를 내려 백제와 신라 사이의 원한을 풀기 위하여 노력했으나


겉으로는 순종하는 듯 하면서도

안으로는 이를 어겨 대국에 죄를 졌으니,


그(백제의) 멸망은 또한 당연하다 하겠다


<라봉봉>그렇게 700년 역사의 백제왕조,

정확하게는 678년을 존속했던 백제는 부흥운동 세력도

그 명맥이 끝나고 이후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고

그동안 써왔돈 부여,고구려의 후예인 온조의 남하부터

백제의 성장과 전성기 근초고왕대의 해양대국화된 백제는

이후 고구려의 성장에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으며 대항했고

이후 신라의 성장에 백제 성왕이 신라 진흥왕에게 목이 잘리는 등

이후부터 신라와 원수지간이 되며 격렬하게 싸우다

무왕대에 마지막 전성기이자 백제의 절정기였고

의자왕대를 마지막으로

백제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인데

의외로 많이 쓰지를 못했고 이후 자세히 써야겠습니다,,)


또 멸망 당시 신라 영웅이자 한국사 위인인

김유신 장군의 5만 신라군에 맞선

백제 마지막 충신 계백 장군의 오천결사대와

멸망 이후 백제를 다시 부흥시키려 했던

백제 부흥운동 등


이야기 하나하나가 생생하고

살아있는 느낌이었고

우리 조상님들의 삶의 흔적들과 숨결을 느낄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고구려,신라에 비해 덜 중요하게 여겨지거나

기록이 부족한 백제이야기를 썼는데

백제의 기록에 대해 자세히 접근할 수록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에 비해 결코 덜 중요하거나

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고

동아시아 바다를 누비며 바다 너머를 경략했던

강력한 해상대국이자

오늘날 일본,당시 왜에 수많은 기술과 문화를 전파해주고

또한 대규모로 건너가며 오늘날 일본의 원류가 된 나라가

곧 백제이고

아름다운 예술과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가지고있는

또 수많은 절개를 지킨 인물들,위인들이 있는

동아시아의 부유한 나라이자 대국 大國 이었던

백제의 이야기였고


이야기를 쓰면서 중요하게 느낀게

분명 중국 통일제국의 등장이나

여러 국제적 정세, 또 동일민족이었던

한국 삼국의 통일은 반드시 필요했으나

신라가 온전하게 삼국을 통일하지는 못했고

고구려의 만주땅 이외에도

백제의 아름다운 문화와

드넓은 해상영토의 상실이 있었다는 사실로

진정한 삼국의 통합은 태조왕건의 고려건국으로

이어져왔고 오늘날의 지역갈등이나 남북분단문제 등

아직도 한국의 진정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조상들이 우리에게 유산만 물려준 것이 아닌

우리에게 주어진 선조들의 숙제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백제 이야기로 돌아가서,,

백제는 일본의 원류가 됬기에

일본스러운 감성도 많이 있는거 같고

저역시 백제사가 워낙 넓게 펼쳐져 있고

기록들이 말이 서로 다르기도 하고

또 자료가 부족한것도 있었는데

백제가 삼국의 '장난꾸러기'라는 생각도 든거 같고

백제역사가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이야기를 쓰며 최대한 전통에 충실해서 또 근거와

올바른 자료들, 최신 경향들을 최대한 넣으려 했고

정성을 다해서 썼으나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들도 있고

부족한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후 또 쓸거고


하여튼 후기를 쓰자면,,

백제사는 강렬하고 직선적이었던 고구려사에 비해

되게 꾸물꾸물하기도 하고 곡선적인게 많아서

쓰기가 되게 힘들다거나 어렵다기보다 뭔가

복잡,난해 했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또 가볍고 경쾌하기에 완전히 이해가 안될 수준은 아니었고

실제로 백제사가 삼국에서 가장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대신 가볍고 얕은 느낌은 있어서

백제사도 정성과 시간을 들인다면 백제사 역시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라 생각됩니다


다음 쓸 신라 이야기도 기대가 되는데

앞으로도 쓸 삼국의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고

지금 쓰면서도 뭔가 아쉬우면서도 말하기 그런게

있는거 같은데 하여튼 백제 역사는 사춘기 청소년 같기도 하고

그런 느낌도 있고 오늘날 일본 역사,문화,문학이나 만화에서 본

괴이하다고 생각된 느낌들이 백제사를 공부하며

그대로 나타나기도 했고

앞으로도 백제사는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들과

써야할 이야기들이 많다고 생각되고


예나 지금이나 백제는 같은 부여의 후예임에도

고구려에 비해 덜 중요하게 이야기 되고,,

신라의 후손들에게 안좋은 이미지가 뒤집어 씌워지며

약간 한국사의 '미운 오리 새끼'이지만

백제의 진실들이 현대에 들어서 점점 밝혀지며

점점 백제의 실상이 동아시아의 부국(부자나라)이며

강력한 해상대국이자 문화대국이며

'아름다운 백조'였음이 들어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또한 역사의 즐거움같고 다음 이야기는

삼국을 통일하고 한국인들의 원류가 된 신라의 이야기로

또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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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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