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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는 신라 시조 혁거세 거서간>


혁거세 거서간 19년

정월(1월) 봄

변한(마한[백제],진한[신라],변한[가야] 중 

삼한중 하나로 각각 삼한은 [] 기호안에 있는 나라의

원형이 됬습니다, 가야의 원형)이

나라를 바치고 항복했습니다


혁거세 거서간 21년

서울(수도)에 성을 쌓고

금성 金城 이라 불렀습니다


<김부식>이 해에

고구려 시조 동명(주몽)이 왕위에 올랐다


<라봉봉>별다른 변한과의 충돌 기록이 없는거로 보아서

또 혁거세 거서간의 성격에

아마도 덕이 있음을 알고 변한이

신라로 자진해서 속해 들어가게 된 거

같아보이는데


문제는 변한은 이후 가야의 원형이 되는데

가야는 이후 신라 23대왕 법흥왕, 신라 24대왕 진흥왕때 신라에 흡수되므로

당대의 기록을 믿기는 곤란하나

대신 변한 역시 여러 갈래갈래 나뉘어 있었던 나라이고

그 나라의 세력중 한 세력이 신라에 항복해 왔다고 해석하면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당대 한국은 도시국가규모의 수많은 나라들이 있었고

별 듣도보도못한 희한한 나라들도 많이 있었는데

점점 고구려,백제,신라가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가 됬고

이 세 나라로 여러 한국의 소국,도시국가들은 흡수되고

이후 고구려,백제,신라 삼국만 남자 삼국 역시

치열하게 서로를 공격하고 싸우다가

신라의 삼국통일로 삼국시대는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삼국지에 나오는


'천하는 오랫동안 나뉘어져 있으면 반드시 합쳐지게 되고,

오랫동안 합쳐져 있으면 반드시 나뉘어지게 된다


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


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번에는 서울(수도) 이야기로

금성은 신라의 서울(수도)를 부르는 말이 됬습니다

신라 수도의 또다른 이름은 서라벌,쇠벌인데

쇠는 한자로 金 이므로

서라벌을 그대로 한자로 옮기며 금성이 됬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이라고 합니다


또 신라는 서라벌,사라,사로,계림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부르다가

신라 22대왕 지증 마립간,지증왕 때

나라이름을 신라 新羅 로 고정시킵니다


즉 수도라 할 것도 없이 수도 자체가 나라일 정도로

초기 신라는 작은 나라였기에

혁거세 거서간이 당대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했는데

서라벌은 점점 영토가 확장되며 이후 수도를 뜻하는 말로

변하게 된거 같고


(유럽 고대 로마는 도시,수도 이름이 나라 이름이 되었는데

신라는 나라 이름이 수도 이름이 되었습니다

동서양은 철학,사고관이 반대라며

폭포[동양, 자연에 순응]와 분수[서양, 자연을 개척]에 비유되는데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 이름역시 이후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

신라로 고정되게 된 거 같습니다

또 신라는 고유어들이 삼국에서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자세히 남아있는 편에 속하는거 같습니다


혁거세 거서간 24년

6월 여름 그믐(달의 마지막 날) 임신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혁거세 거서간 26년

정월(1월) 봄

금성에 궁실을 지었습니다


<라봉봉>일식 기록은 꾸준히 옛 고대 한국 조상님들이

부지런하게 기록하신거 같습니다,, 삼국사기 일식 기록은

정확성이 높아 한국 고대인들의

천문 관측능력이 뛰어났음을 보여준다고 하고

한국이 정말로 유구한 역사가 있는 나라였음을 보여줍니다,,


궁실 이야기로는 예로부터 국가적으로 귀족,신하들과

백성들 모두가 예민해 지는게 궁실,궁궐공사인데

궁궐공사는 폭군이라 불렸던 왕들이 특히

사치스럽게 짓다가 백성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으나

일단 사람이 집은 필요하기에

성군,폭군이던 어느 왕이던 궁실 공사를 하기도 했는데

현명한 왕들이나 보통의 경우엔 검소하게 필요한 만큼 짓거나

한번에 무리하게 크게 짓지 않고

조금씩 궁궐 크기를 늘리는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무리가 안가는 정도로 지었고

폭군의 경우에는 말할것도 없이 백성들의 원망에도

사치스럽고 크고 거대한 궁궐을 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대 성인 聖人 이라 불린 혁거세 거서간은

백성들에게 무리가 안가는 선에서 적당하게 지은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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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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