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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로 장군을 *중용했던 조분 이사금>


(*중용 重用 중요한 자리에 임용함)


신라 11대왕 조분 이사금 (조분왕 석조분)

재위기간 17년 230~247년


조분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김부식>제귀라고도 한다


조분 이사금은 성이 석씨이고

벌휴 이사금의 손자입니다

조분 이사금의 아버지는 갈문왕 골정입니다


<김부식>홀쟁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김씨 옥모부인입니다

그녀는 갈문왕 구도의 딸입니다

왕비는 아이혜부인입니다

그녀는 내해왕(신라 10대왕 내해 이사금)의 딸입니다


전 임금(내해 이사금)이 죽음을 앞두고

사위 조분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라고 유언했습니다


조분 이사금은 키가 크며

외모가 훌륭하고

이리 생기면 명석한 판단을 내렸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경외(공경하면서 두려워하다)했습니다


조분 이사금 원년(1년)

연충을 이찬에 임명해서

군무와 국정을 맡겼습니다


7월 가을

조분 이사금이 시조묘에 참배했습니다


조분 이사금 2년

7월 가을

이찬(신라 2등벼슬) 우로(석우로)를 대장군으로 삼아서

감문국을 토벌하여 승리하고

그 땅을 군으로 만들었습니다


<조분 이사금>석우로 장군 !

비록 내가 태자였던 장군대신에 왕위에 올랐지만

그대가 있어 든든합니다 !


<석우로>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라봉봉>석우로는 원래 조분 이사금의 전왕인

내해 이사금의 아들,태자였고

조분 이사금은 비록 원래대로 전전왕의

장손으로서 왕위에 오르는게 맞았으나

나름 전왕인 내해 이사금대에도

내해 이사금의 태자였던 석우로는(당대에는 굳이 계승권자가

아니더라도 왕자를 태자라고 불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큰활약을 했던 인물었기에 조분 이사금 역시

원래대로 왕위에 올랐음에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며

석우로를 중용하게 된거 같습니다

또 나름 조분 이사금은 석우로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공생관계를 유지했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조분 이사금 다음 왕으로는

석우로가 조분 이사금의 사위였기도 했고(근친혼,,)

군사적인 공,군공으로서는 완벽하고

혈연적 정통성,유능함 역시 꿀릴게 없는 인물이었기에

차기 왕위 계승권자로 유력했는데

조분 이사금 사후에 조분 이사금의 친동생

석첨해가 다음왕이 됬고 석첨해,첨해 이사금은

석우로를 중용한 형과 달리 석우로를 크게 견제한 인물로

보입니다


조분 이사금 3년

4월 여름

왜(일본)인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금성을 포위했습니다

조분 이사금이 직접 나아가 싸웠습니다

적이 흩어져 도주하자

정예 기병을 보내서 추격해서

1천여 명을 죽였습니다


조분 이사금 4년

4월 여름

큰 바람이 불어와서 기와가 날았습니다


5월

왜병이 동쪽 변경을 약탈했습니다


7월 가을

이찬(신라 2등벼슬) 우로(석우로)가

왜인과 사도에서 싸웠습니다

그(석우로)는 바람을 이용해서 불을 질러서 배를 불태웠습니다

적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조분 이사금 6년

정월(1월) 봄

조분 이사금이 동쪽으로 순행해서 백성을 위문하고 구제했습니다


조분 이사금 7년

2월 봄

골벌국왕 아음부가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해왔습니다

조분 이사금은 그들에게 집과 밭을 주어서 편안히 살게 하고

그 땅을 군으로 만들었습니다


조분 이사금 8년

8월 가을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쳤습니다


조분 이사금 11년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범했습니다


조분 이사금 13년

가을

큰 풍년이 들었습니다


고타군에서 상서로운(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

벼이삭을 진상했습니다


조분 이사금 15년

정월(1월) 봄

이찬(신라 2등벼슬) 우로를 서불한(=이벌찬, 신라 1등벼슬)에

임명하고 병마사를 겸하게 했습니다


<라봉봉>이로 인해 석우로 장군은 전왕인 나해이사금의 태자였고

현왕인 조분 이사금의 사위임과 동시에

신라 1등벼슬,재상인 서불한,이벌찬에 올랐고

병마사를 겸해서 군권을 통솔하게 됬습니다

또 충직한 참군인으로서 여러 공들을 세우며

병사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고

당장 다음 왕이 되어도 백성과 신하들에게 별다른

반대도 없없을 것이고 차기 왕으로 도덕성,명분 등

이상할게 없었던 그였는데

그의 잘못이라면 잘못이

왕이 될 권한등은 이미 다 갖추어 졌음에도

왕위에 오르지 않고 엉뚱한 인물에게 왕위를 내주며

조분 이사금 다음 왕인 첨해 이사금에게 큰 견제를 받았고

사실상 그런 파워게임에 밀려들어가서 죽게 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석우로 장군 스스로는 왕위에

별다른 욕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미 그의 주변사람들은 그의 강대했던 권한을

보통으로 느끼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파워게임에 밀려서 사망한 인물로 보입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왜국과의 관계때문에 죽었으나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이야기에서 했습니다)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탐내면서도 제공될 때 받지 못하면

두번 다시 그것을 찾지 못할 것이다'


라는 의미심장한 명언을 남겼고

한국에서도 '줄때 받아라' 라는 말들이 있습니다


석우로는 이미 권력승계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상황에서 왕위를 포기하다가

결국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거같고

신라에서도 명장,큰 인물을 잃게된거 같습니다


조분 이사금 16년

10월 겨울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자(고구려의

첫 신라 공격기록입니다)

우로(석우로)가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서 마두책을 수비했습니다


그날밤 날씨가 몹시 추워지자

석우로는 사졸(병사)들을 위로하고

직접 장작불을 피워서 그들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사졸들이 진심으로 감격했습니다


조분 이사금 17년

10월 겨울

동남방에 흰 기운이

한필의 명주를 펴놓은 것처럼 뻗쳤습니다


11월

서울(수도)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조분 이사금 18년

5월 여름

조분 이사금이 붕어,사망했습니다


<라봉봉>조분 이사금 기록은

특히나 석우로 장군의 기록이 많고

당대 석우로 장군이 국정과 군사를 주도했을

인물로 보이나 그렇다고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과는 달리

진짜 왕처럼 전권을 행사했다기 보다

조분 이사금과 형동생 하며 친분을 유지하면서

서로 존중하며 국정을 같이 이끌었던 시기로 보입니다


조분 이사금 역시 든든한 장군이자 신라의 큰 인물이었던

석우로를 중용하며 그를 총애했던거로 보이고

석우로 역시 한때 태자였고 명장이었지만

조분 이사금이 자신을 존중하자 왕위에 대한 별다른 욕심 없이

신라의 장군으로 활약하게 된 거 같고

문제는 이런 평화로운 관계가 조분 이사금이 죽자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며 깨지게 됬고

실제 역사에서는 왕이 신하들을 총애하다가

왕이 죽자 신하들이 숙청된 사례들이 여럿 있어왔는데

석우로 장군 역시 그렇게 사실상 정계에서 밀려나다가

왜국과의 마찰로 죽었으나 사실상 숙청된 인물로 보입니다


나름 조분 이사금도 어린나이였기에

내해 이사금이 먼저 왕위에 올랐으나

약속대로 장성하자 장손으로서

왕위에 올랐으나 이미 내해 이사금의

세력들이나 내해 이사금의 태자 석우로라는 인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상황에서 왕위에 올라서

나름 무리한 국정을 하지 않고

이전 세력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현명하게 국정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에 석우로라는 인물이 한때는 왕위 계승권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서로 긍정적인 효과를 내며 국정을 운영했던거 같고


'키가 크며 외모가 훌륭하고

일이 생기면 명석한 판단을 내려서

백성들이 그를 경외했다'


는 그의 기록같이

나름 미약한 상황에서 왕위에 올라서

석우로를 중용하고 현명하게 국정을 운영했던 인물 같습니다


석우로에 대한 이야기는 위에 글이나

이전 글에서 했고

석우로 역시 초기 신라의 큰 인물,명장으로 보이는데

저는 신라의 큰 장군하면

4명정도가 생각나는데


첫번째는 초기 신라의 명장 석우로,

지증왕때 우산국을 정복한 이사부,

불세출의 명장이자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바다의 왕자 혹은 해상왕 장보고


정도가 생각나고

하나같이 병사들이 믿고 따랐던

신라의 큰 인물,명장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초기 신라의 석우로 장군 역시 그런 인물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다 차려진 밥상을 먹지를 못한다거나,,

용이 되려다가 실패한 이무기(용이 되기전의 동물)

이런 말들이 생각나는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고

나름 어진 인물이었고 훌륭한 신라의 명장이라 할 수 있는데

뭔가 아쉽고 허전한 인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조분 이사금대의 기록은 그렇게

석우로 장군의 활약상이 많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석우로를 중용하고 현명한 정치를 했던

그 역시 어질고 훌륭했던 인물로 보여집니다

나름 신라 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 장군의 (의리의) 관계같이

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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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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