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라 12대왕 첨해 이사금

재위기간 15년 247~262년


첨해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조분왕(신라 11대왕 조분 이사금, 조분왕 석조분)의

동복 아우(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입니다


첨해 이사금 원년(1년)

7월 가을

첨해 이사금이 시조묘를 참배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골정을 세신 갈문왕으로 봉했습니다


<김부식>논한다

한나라 선제가 즉위하였을 때

유사가 다음과 같이 상주(임금에게 말씀을 아뢰다)하였다


'대를 잇는 자는,

자기에게 대를 물려준 그 사람의 아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친부모를 낮추에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이는 황제의 조상을 높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황제께서는 생부를 친 親 이라 부르고

생모는 도후 悼后 라고 불러서

제후나 왕의 지위와 같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경전의 뜻과 합치된다

따라서 이것이 만세의 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후한의 광무제와 송나라 영종은

이를 본받아 시행하였다


신라에서는 왕의 친족 신분으로서 왕통을 이은 임금이

자신의 생부를 왕으로 추봉 追封 (죽은 뒤에 관위 따위를 내리다)

하지 않은 일이 없었으며

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인까지 왕으로 봉한 일도 있었다


이는 예에 맞지 않으므로

절대로 법도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사론을 요약하면,,

'그래 왕이 되고 부모를 높이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신라에서 장인까지 왕으로 높이는 것은 아니지 않냐 ?')


첨해 이사금 2년

정월(1월) 봄

이찬(신라 2등 벼슬) 장훤을 서불한(=이벌찬, 신라 1등벼슬)에

임명해서

정사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기존 서불한,이벌찬이었던 석우로를 견제하려

자신의 사람을 이벌찬 자리에 임명한 첨해 이사금 같습니다)


2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맺었습니다


첨해 이사금 3년 4월 여름

왜인이 서불한(신라 1등 벼슬) 석우로를 죽였습니다


(기록이 이게 전부이고

왜인이 석우로를 죽인 과정은

'석우로 열전'에 자세히 기록되있고

전전 이야기에서 했습니다)


7월 가을

남당 南堂 을 대궐 남쪽에 지었습니다


<김부식>남당을 도당 都堂 이라고도 한다


양부를 이찬에 임명했습니다


첨해 이사금 5년

정월(1월) 봄

처음으로 남당에서 정사를 처리했습니다


한기부 사람 부도란 자는 집이 가난했으나

아첨하는 일이 없고

글씨와 산수에 능해서 당시에 명성이 높았습니다

첨해 이사금이 그를 불러서 아찬으로 임명해서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 업무를 맡겼습니다


(창고 관리 업무는 물건을 빼돌리거나 해서는 안되는

정직성이 있어야 하고 또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잘 관리해야 했기에 첨해 이사금은

남에게 아첨하는 일이 없었고

숫자,계산에 능했던 부도에게 창고 업무를 맡기게 된거 같습니다

평소 가난했던 부도였으나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오자

결국 그런 행실등으로 출세를 하게 된 인물 같습니다)


첨해 이사금 7년

4월 여름

대궐 동쪽 연못에서 용이 나타나고

금성 남쪽에서는 쓰러졌던 버드나무가 저절로 일어났습니다


5월부터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으므로

조묘와 명산에 제사지내고 기원하니

곧 비가 내렸습니다


흉년이 들어서 도둑이 많이 생겼습니다


첨해 이사금 9년

9월 가을

백제가 침범하자

일벌찬(=이벌찬, 신라 1등벼슬) 익종이 괴곡 서쪽에서

그들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10월 겨울

백제가 봉산성을 공격해왔으나

성을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첨해 이사금 10년

3월 봄

동쪽 바다에서 큰 물고기 세마리가 나왔습니다

그 길이는 세 발(발=장=10척=2.3m로 즉 6.9m,,)

폭은 한 길(1길=10자=2.3m) 두 자 (46cm) 였습니다


10월 겨울 그믐(달의 마지막 날)

일식이 있었습니다


첨해 이사금 13년

7월 가을

가뭄이 들고 메뚜기 떼가 생겼습니다

흉년이 들어서 도둑이 많았습니다


첨해 이사금 14년

여름에 큰 비가 내려서

40여 군데의 산이 무너졌습니다


7월 가을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습니다

혜성은 25일만에 사라졌습니다


첨해 이사금 15년

2월 봄

달벌성을 쌓고

내마 奈麻 (=나마, 신라 11등 벼슬) 극종을 성주로 임명했습니다


3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요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겨울 12월 28일

갑자기 병이 나서 첨해 이사금이 붕어,사망했습니다


<라봉봉>첨해 이사금대에는 재위기간동안

여러 자연재해나 재앙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고

그나마 눈에 띄는 기록으로는

한기부 사람 부도라는 자가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산수에 능하자 그를 불러서 창고관리 업무를 맡겼다는 점인데


첨해 이사금은 왕의 동생으로서 정통성이

어찌보면 석우로 장군보다 부족함에도 왕위에 올랐고

다르게 해석해보면 그는 수학,계산적 능력이 우수한 자여서

왕이 되기전부터 뛰어난 계산력으로

왕이 되려는 작업을 차근차근 해나가서

조분 이사금이 죽자 석우로를 제치고 왕위에 올랐고

당장 석우로의 힘이 강했기에 그를 정치적으로 견제해서

파멸로 이끌지 않았나 싶고

또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산수에 능한 인물을 창고관리에

맡긴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올바른 해석이 아닐 수도 있겠으나

하여튼 첨해 이사금은 한국말로 좀 깍쟁이(이기적이고 인색한 사람,

아주 약빠른 사람)스타일이거나

정치적인 계략,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로 생각됩니다


또 죽었을때

보통 삼국사기 기록과 다르게

그냥 왕이 붕어,사망했다가 아니라

'겨울 12월 28일 임금이 갑자기 병이 나서 돌아가셨다'라고

기록되 있는 것은 나름 수학적 관찰력이 있었던

그의 시대를 비추는 기록이라 할 수 있을 수도 있고

다음 왕인 최초의 김씨왕인 김씨 계열등의 반정,쿠데타가

있었다고도 해석된다고도 하는데

첨해 이사금대에 아무리 재난적 기록이 여럿 있었더라도

다음 기록에서 백성들이 김미추를 왕위에 올렸다고 나오고

현 기록에서는 분명 갑자기 병이 들어서 사망했다고 나오기에

아무리 다르게,후대의 조작으로 해석해보더라도

반정,쿠데타까지 있지는 않았을거 같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