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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김씨왕조의 시작 내물 이사금(마립간),

신라 사회의 근친혼의 폐단>


신라 17대왕 내물 이사금 奈勿尼師今 (내물왕 김내물,

혹은 발음상 나물 이사금이라고도 합니다

또 보통 내물왕,내물 '마립간'으로 잘 알려져 있는거 같으나

이는 삼국유사 기록이고 삼국사기에는 아직까지는

신라 국왕의 칭호를 이사금 칭호로 사용하다가

19대왕 눌지왕,눌지 마립간대부터 삼국사기에는

마립간이라 기록되있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현재는 삼국사기 기록 위주로 글을 쓰는 중이기에

이사금 칭호로 쓰겠습니다)


재위기간 46년 356~402년


내물


<김부식>나밀이라고도 한다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성은 김씨이고,

구도 갈문왕의 손자입니다


아버지는 말구 각간(각간=이벌찬, 신라 1등벼슬)이며

어머니는 김씨 휴례부인이니

미추왕(김미추)의 딸입니다


흘해(신라 16대왕 흘해 이사금 석흘해)가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내물(김내물)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김부식>말구는 미추 이사금의 동생이다


<김부식>아래와 같이 논한다

부인을 얻을 때

같은 성의 여인을 얻지 않는 것은

동성과 타성의 구별을 철저히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이유로

노공이 오나라 왕실에서 아내를 얻고

진후가 성이 같은 네명의 첩을 가진 것을

진사패와 정자산은 몹시 비방하였다


신라의 경우에는 같은 성씨끼리

혼인하는 행위를 그치지 않았고

사촌이나 고종,이종 누이들까지도

아내로 삼았다


비록 외국과 우리나라의 풍속이 각각 다르다고 하지만

중국의 예법을 기준으로 따지자면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오랑캐들이 어미나 자식을 간음하는 것은

또한 이보다도 더욱 심한 것이다


<라봉봉>고려시대에 삼국사기를 편찬하신 김부식님도

정확히 과학적으로 근친혼의 폐단을 지적하지는 않으셨지만

옳지 않다고 생각하셨고

옛 사람들도 과학적으로는 근친혼의 위험성을 잘은 몰랐어도

경험적으로 그것이 잘못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구석기시대까지는 근친혼이 있었다가

그로 인한 기형아,장애아 출산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얻었거나

기술의 발달들로 생활이 풍족해지며 선택 폭이 넓어졌다는

이유 등으로

신석기시대부터는 '족외혼'이라고 같은 씨족과

결혼하지 않고 다른 부족과 결혼하는 풍습들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근친혼은

경험적으로는 그 폐단을 알면서도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편법적,자폐적 권력유지 수단으로

행해져 왔고 신라사회 역시 그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물왕 김내물의 아버지 김말구는

유례 이사금 기록에도 등장하는데


'말구를 이벌찬(신라 1등벼슬)에 임명하고

말구는 충직하고 지략이 많아서

유례 이사금이 자주 그를 찾아가서 정사(정치)의 요령을 물었다'


고 하고

또 유례 이사금대에 미추 이사금 김미추의 무덤의 (사실상 귀신) 병사들이

신라를 보호했다는 이야기로 보아서는

유례 이사금 바로 전왕인 미추 이사금 김미추대부터

김씨 일족들이 처음으로 김미추를 왕위에 옹립하고

이후에는 다시 석씨왕조가 시작됬지만 그런 와중에

계속 힘을 키우다가 내물 이사금 김내물을 왕위에 옹립하며

사실상 신라는 김씨왕조국가화 된거 같습니다


또 어머니 김씨 휴례부인이 미추왕의 딸이라는 것은

즉 내물 이사금 김내물은 김씨 아버지와

김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여기도 가계도가 복잡한게

김말구의 아버지는 김구도이고 김구도는

미추 이사금 낳아서

즉 근친혼입니다,, 당대 신라사회에서 근친혼은

왕가에서는 자주 행해졌고

저는 이로 인해 신라인들이

표면적으로는 인정하나 암묵적으로는

경험상 근친혼의 위험성을 고대인들 옛날부터

경험적으로 알았기에

당시 신라인들이 왕실의 근친혼등에

등을 돌렸을 것이라 이야기 했는데


만약 모두가 한통속같이 박씨,석씨,김씨 모두가 근친혼을

했다면 그때부터는 같은 근친혼을 한 인물끼리 사이에서도

능력위주로 왕위가 옹립됬을 것이고

그럼에도 김씨가 가장 세력이 커져있었기에

김씨 왕조 시기가 열렸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초 김씨왕은 미추 이사금 김미추이지만

사실상 김씨왕조의 시작은

내물 이사금[마립간] 김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근친혼은 폐해가 많고 잘못되어서

인류는 경험적으로 신석기 시대부터는

거부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고대사회에는 과학의 발달,

현재보다 인구가 적었다는 점 등

여러 선택 폭이나 당대 민도,의식 수준 등이

현재 사회보다 떨어졌기 때문에

한국 신라 이외에도 근친혼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행해져왔다고 할 수 있었다고 하나

그럼에도 역시 당대 고대사회인들도 신석기 시대부터

경험적으로 근친혼의 위험성등을 알았을 것인데

결국 자폐적 권력유지 방법으로 근친혼을 선택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만이 권력을 유지하거나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역사에서도 흥한자들은 인간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고

망한 자들은 편법, 자폐적 권력유지 방법들을 사용하다가

망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폐적 행복감,편법들의 위험한 점은


'남에게 피해안주고 나만 즐기는데 무슨상관?'


이 아니라

그로 인한 다음 세대가 단절되거나 불행해진다는 것의

문제가 있는 것이고

당장 당대 신라 왕실 당사자들끼리

근친혼이 합의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태어난 자식들은 말못할 질병들이나

평생 질병,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위험이 있는것이고 나만 행복하면 된다거나

다른 사회인들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끼리만' 합의하면

된다거나만 하는게 위험한게

바로 그런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상당한 '이기주의'적인 당대 신라 왕실의 일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신라사는 근친혼이 이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고

한국사 위인인 신라의 영웅이자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도 근친혼으로 엮여있는 인물이고

하여튼 신라사가 장대하기도 하나

기괴하고 역겨운 면이 있는 이유는

이런 이유도 한몫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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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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