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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25대왕 진지왕

재위기간 3년 576~579년


진지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륜 舍輪 (집 사, 바퀴 륜)이며


<김부식>혹은 금륜 金輪 이라고도 한다


(금륜은 황금 바퀴로 불교의 '전륜성왕' 사상에서 나온

불교식 이름이라 할 수 있고

전륜성왕은 수레[바퀴]를 타고다니며

세상을 교화한다는 불교식 지배자라 보면 되고

요즘식으로 보면 '금수저' 이런 뜻과 거의 비슷하다 보면 됩니다

또 원래 이름 사륜은 사는 쇠여서

철륜, 철 바퀴이라고도 해석한다고도 합니다

아마 진흥왕은 자식 이름을 불교의 전륜성왕처럼

귀하게 되라는 의미로 동륜[동,구리 바퀴]과

사륜[철륜 혹은 금륜]으로

짓게 된거 같고 당대 한국에

전륜성왕 사상이 유행한 것도 있습니다


또 왜 김사륜의 형이었던

일찍 죽어버린 태자 이름이 금륜,금바퀴도 아니고

동륜,동바퀴냐 해서 이에 밝혀지지 않은

다른 아들이나 여자 누나가 있다던가 금륜과 은륜은

법흥왕과 진흥왕을 상징하지 않냐는 해석도 있습니다)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사도부인입니다

왕비는 지도부인입니다


태자(진흥왕의 첫째아들 김동륜)이 일찍 죽었으므로

진지(진흥왕의 둘째아들인 김사륜) 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진지왕 원년(1년)

이찬(신라 2등벼슬) 거칠부를 상대등(신라 귀족들의 대표격으로

신라 최고관직중 하나)으로 임명해서 국사를 맡겼습니다


진지왕 2년

2월 봄

진지왕이 직접 신궁(시조 사당)에 제사지내고

대사령(대사 = 죄수를 석방하거나 감형)을 내렸습니다


(불교가 크게 유행하기도 했으나

토착종교였던 무속신앙 역시 오랫동안 믿어온

신라인들이기에 왕이 직접 신궁에 행차한거 같고

굳이 이를 무속적으로 해석하지 않더라도

조상묘를 찾아가 제사지냈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10월 겨울

백제가 서쪽 변경의 주군을 침범하자

이찬(신라 2등벼슬) 세종 世宗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한자가 똑같으나 실제 이름은 '노리부'로

세 世 의 뜻이 '누리'이기에 세로 썼다 하고

이렇게 한국식 이름을 한자로 옮기다보니

변형된 이름들이 여럿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하게 했습니다


세종은 일선 북쪽에서 이들을 격파하고

3천 7백명을 목베었습니다,,


내리서성을 쌓았습니다


진지왕 3년

7월 가을

진에 사신을 보내서 토산물을 바쳤습니다


백제의 알야산성을 점령했습니다


진지왕 4년

2월 봄

백제가 웅현성과 송술성을 쌓아서

산산성, 마지현성, 내리서성의 통로를 막았습니다


가을 7월 17일

진지왕이 붕어, 사망했습니다

시호를 진지라 하고

영경사 북쪽에 장사지냈습니다


<라봉봉>진지왕은 재위기간도 짧고

별다른 중요 기록은 없는 인물이지만

그는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춘추 태종 무열왕의 할아버지라는 것은

중요하다 할 수 있고

짧은 재위기간이었지만 왕은 왕이었기에

그의 아들 김용춘(김용수)이 왕위를 잇지는 못했지만

이후 신라에서 주요 대우를 받았다고 할 수 있고

덕분에 진지왕의 손자 김춘추는 신라국왕이 되어

김유신 장군과 함께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 진지왕에 대한 기록은

위의 글처럼 간략한 편이지만

또 폐위됬다거나 하는 기록은 없는데

삼국유사에서는 그가 음란함에 빠져서

폐위됬다고 하고

도화녀 설화등의 주인공인 인물이기도 하나

간단하게 요약하면 진지왕이 유부녀 도화녀를 건들다가

실패했는데 이후 진지왕이 죽고

도화녀도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자

귀신이 된 진지왕이 도화녀와 관계를 해서 임신시켰고,,

도화녀는 비형이라는 아들을 낳고

이에 진평왕이 비형을 데려길렀다고 하는

막장이라 하기엔 귀신이 되어서까지 했기에,,

막장 그 이상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이후 삼국유사 이야기를 쓸때 하겠고


비록 그가 신라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인물은 아니었다 해도

당대 신라는 한창 강성할 시기였고

폐위됬다고 하기에는

그의 아들 김용춘이 다음왕대에 중용됬기에

그냥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도 하고

아니면 정말 여색을 밝혀서 백성들 사이에서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던

인물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 다음왕때 중용된것을 보면

폐위까지 된 인물은 아닌거 같고

여색을 밝히다 인심을 잃고

그러다 건강을 해쳐서 일찍 사망한 왕이 아닐까도 싶고

이에 백성들 사이에서 폐위됬다거나 하는

부정적 소문들이 돌고 삼국유사에 그렇게 기록된게

아닐까도 싶고


음,, 김춘추 태종무열왕의 할아버지라는 것

이외에는 딱히 생각나는게 없는 거 같고

나름 손자한명 잘둔 인물 같습니다,,

또 저가 생각하기에

김춘추 태종 무열왕은 그래도 할아버지와 다르게

문란하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던 인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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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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